I
2월 29일, 밤 9시 KBS 뉴스 김명주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삼성비자금 특검사태의 뉴스를 전하면서 삼성비자금 특검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했음을 지적했다. 그 내용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로비 대상 명단에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 인사가 포함돼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2월 28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검찰 내 최고위층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장관급 각료와 청와대 고위직 인사들도 삼성의 로비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 정부 초기에 이런 의혹 대상자들을 공개하면 정치적으로 관여하는 형태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그 근거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외에 다른 많은 인사들의 로비 실태를 문서와 녹취 형태로 기록해 놨다고 덧붙였다. 파장이 커지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김 변호사와 함께 회의를 열고 로비 대상자 명단의 공개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제단 측은 조만간 최종 회의를 열고, 명단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로비 대상 명단이 공개된다면 비자금 차명 계좌와 경영권 승계 의혹에 치중된 특검 수사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필자는 지난번 대선 직전에 월간조선 인터넷사이트(www.monthlychosun) 전문가칼럼에 올린 <‘삼성비자금’ 特檢수사가 대선정국에 주는 함의(含意)>(2007/11/29)라는 글에서, 하필이면 대선을 불과 얼마 남겨놓치 않은 시점에서 터졌으므로, 사실여부를 떠나서 폭로시기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선에서 궁지(窮地)에 몰린 친북좌파가 부패세력 대(對) 反부패세력의 구도로 몰고 가려는 마지막 총공세의 일환으로 해석했었다.
삼성비자금폭로사태가 12.19 대선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했다. 김-노 친북좌파세력은 참패를 당하고 권력을 이명박이 이끄는 한나라당에게 넘겨주었다. 10년만의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는 여러 곳에서 발생하였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신정부가 작은 정부의 기치하에 심혈을 기울인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600년을 지켜온 국보급1호 숭례문 화재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급하게 발표한 인수위의 영어공교육 정상화 정책과 이 당선자의 숭례문 재건축 비용의 국민성금 발언은 대중들의 가슴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장관급 국무위원도 검증절차에서 여러 가지 하자를 노정하여 국정운영의 부분적 파행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국국민들은 유달리 성격이 급하고 변덕이 심한데 그것이 투표행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큰 특징이며 문제점이다. 널뛰기형 투표행태가 이루어져서, 贊反의 진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를 해도 용납이 되지 않으므로 정치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벌써 “이명박을 찍은 국민들은 후회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인수위의 오버행위와 장관인선에 대해서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출신)이란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세계의 경제사정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곡물가와 석유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대중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으니, 747 목표도 하향 수정해야될 것 같다는 한숨 섞인 우려가 신정부의 집권층에서도 나오고 있다.
II
이러한 국내외 정세를 돌이켜 보면서, 작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하면서 점화(點火)된 삼성비자금 특검사태가 주는 함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역시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않으면 안되겠다. 한국사회가 좌경화되는 시점은 80년대말 공안기능이 무력화되는 것과 궤를 함께 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윤석양 이병 폭로(양심선언?)사건이었다.
1990년 '윤석양 이병 폭로사건'은 국군 보안사가 좌파성향의 민간인과 반체제인사들을 대상으로 동향파악 및 사찰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폭로한 사건이다. 1990년 7월 군복무 중 소위 '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 사건' 피의자로 보안사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윤석양(당시 이병, 24세, 외대 러시아과 4년 제적)씨는 보안사로부터 프락치 권유를 받고 혁노맹 조직원 검거와 관련해 방첩2과(분석반)에서 수사협조를 해 왔다. 그러던 중 9월 24일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있던 자료를 가지고 탈출한 윤씨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에 은신했고 10월 4일 '양심선언'을 통해 “보안사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동향파악 및 사찰활동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이 사건과 관련해 10월 8일 국방부장관(이상훈→이종구), 보안사령관(조남풍→구창회)이 경질됐고 이어 이종구 국방부장관은 10월 22일 국회 국방위에서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하면서 연말까지 보안사 서빙고분실의 폐쇄, 하급부대까지 배치돼 있는 보안반의 철수, 지방 보안파견대의 폐지 등과 함께 보안사 개편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군보안사령부'는 91년 1월1일부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좌파들은 이 사건을 철저하게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했다. 그 결과,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좌파가 득세하는 토양을 만들어주는데 기여했으며, 공안기능이 완전히 무력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좌파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정치쟁점화하는데 성공했고, 좌파 언론매체들이 함께 춤을 추면서 윤석양을 국민영웅(?)으로 만들었고 공안당국의 기능을 무력화시킴으로서 최종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사찰대상이 된 인물들의 일부는 언론매체를 타고 더욱 주가가 올라 국가적 인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 사찰대상에 후일 대통령이 된 김대중, 노무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분기탱천하여 그것이 내포한 함의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이것에 이용당하여 한국사회의 좌경화에 손을 들어준 것이 바로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이미 80년대말부터 90년초에 좌경세력이 극성을 부리고 공안사건이 꼬리를 몰고 발생하고 있었다. 89년에 전농, 전민연, 전교조, 90년초에는 전노협 등 좌익세력이 창립되어 힘을 결집했었고, 그해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이 불법으로 방북하였으며, 서경원 의원이 간첩 및 밀입북 혐의로 체포되는 등 국가보안법의 실천이 없다면 사회기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만큼 한국사회는 좌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민주화의 값비싼 댓가는 좌경화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직선제를 요구하는 87년 6월 항쟁으로 공안의 방파제는 그와 함께 이미 무너져 있었다. 노태우 정권은 통치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중간평가를 유보하면서 지역과 계층간의 화해라는 미명하에 급진좌경 노조와 운동권세력들을 8.15특사로 방면하여 주어서 그들의 감옥소행으로 훈장을 달고 나온 꼴을 만들어 주었고, 그 뒤 김영삼 문민정부가 극렬노조와 중도-좌익에게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관용을 베풀면서, 자신을 지지하던 보수세력을 내치고 후계자 구도에 실패하면서, 소위 친북좌파의 권력 장악에 기여하고 말았다.
III
아래의 주요 사건 관련 주요 일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안당국이 무력(無力)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좌파들의 득세(得勢)를 잘 알 수 있다.
1988. 2.25.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제6공화국 출범)
4.26.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여소야대 국회)
11.18. 국회 ‘광주특위’ 1차 청문회 실시
11.23. 전두환ㆍ이순자 부부 사과문 발표, 설악산 백담사 은둔
1989. 1.21.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출범
3. 1. 전국농민운동연합(전농) 결성
3.20. 노태우 대통령, 중간 평가 유보에 대한 특별담화 발표3.25. 문익환 목사 방북, ‘통일 논의하러 왔다’는 도착성명 발표
4. 3. 정부, 안기부ㆍ경찰ㆍ검찰ㆍ보안사 등 관계기관 공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공안합수부) 설치, 재야단체에 대한 일제 수색
4.27. 보안사 3처, ‘청명 T/F’ 구성해 ‘청명카드’(체포카드) 작성 시작
5. 3. 부산 동의대 참사사건 발생, 전경 6명 사망(동의대 사태)5.28.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위원장 윤영규(전남고 교사)
6.27. 안기부, 간첩 및 밀입북 혐의로 서경원 의원 구속
6.30. 전대협 대표 임수경,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도착8.15. 임수경,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 통해 귀환 (구속)
12.31. 전두환 前 대통령, 국회증언에서 ‘광주ㆍ5공비리’ 관련 모두 부인
1990. 1. 1. 노태우 대통령, ‘5共청산’ 종결 선언
1.22. 민정ㆍ민주ㆍ공화당, 합당 통한 신당창당 선언(3당 합당)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성균관대 수원캠퍼스에서 창립대회
4.21. 대학생ㆍ재야단체 등 3,000여명, 연세대에서 국민연합 결성5. 1. 윤석양, 군 입대(3사단 훈련소, 6주 신병 교육)
7. 3. 윤석양, 사단 보안부대 연행
7. 4. 보안사, 윤석양 서빙고분실 연행
7.19. 윤석양, 홍익대 앞에서 ‘혁노맹’ 수사 협조
8.22. 보안사, 치안본부:현역군인 10명 포함 ‘혁노맹’ 사건 발표
8.31. 윤석양, 보안사 서빙고분실 ‘분석반’ 작업 협조
9.21. 『말』10월호 ‘혁노맹 조작’ 보도, ‘이중 스파이’ 의심(조기탈출 결심)
9.24. 윤석양, 보안사 서빙고분실 탈출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 은신
10. 4. 윤석양, ‘민간인 사찰’ 폭로 양심선언(KNCC 인권위 사무실)-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 1,303장, 개인신상카드 4명(노무현, 문동환, 이강철, 박현채), 개인별 동향파악 내용 입력 컴퓨터 디스켓 30장(447명분) 공개
10. 5. 국방부 대변인, “전시ㆍ계엄령시 적으로부터 보호ㆍ차단 목적” 작성 자료라고 발표
10. 8. 국방부장관(이상훈→이종구), 보안사령관(조남풍→구창회) 경질10.10. 국방부, ‘보안사 사건 합동조사단’ 구성
10. 이종구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 1차 보고 - “대민 사찰은 법적근거 없는 월권행위 인정”
10.13. 확대비상시국회의, “보안사 불법사찰 규탄과 군정청산 국민대회” 개최(보라매공원)
10.22. 이종구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 보고 - 국방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ㆍ개선방안 보고- “군 보호 목적, 적 또는 좌익 불순세력 연계 차단하기 위해 신상자료 작성”11.14. 서울민사지법, “보안사 민간인 사찰 자료” 증거보전 검증- KNCC 인권위, 사본은 법원 제출하고 원본은 국방부에 반환
12. 3. 국회 국방위, 국방부(보안사) 국정감사KNCC 인권위, ’90년도 인권상 수상자로 윤석양 결정1991. 1. 1. 보안사,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
6.27. ‘보안사 민간인 사찰’ 대상자 148명,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1992. 9.23. 윤석양, 대구에서 기무사ㆍ헌병대 요원들에 의해 피검
9.24. 윤석양, 군무이탈 혐의로 구속
10.30. 3사단 보통군사법원, 윤석양에게 군무이탈죄 적용 징역 3년 선고
1993. 2. 9. 육군 고등군사법원, 윤석양에게 징역 2년 선고
6. 8. 대법원 형사2부, 윤석양의 상고 기각, 징역 2년 확정
7.29. 윤석양, 육군교도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
9.17. 윤석양, 안양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
1994.11. 7. 윤석양, 공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
1998. 7.24. 대법원, 사찰 대상자(원고)들에게 각각 200만원 위자료 지급 판결
IV
지금의 형국은 새로운 신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이명박 정권은 10년동안의 적폐를 씻어야하는 막중한 과업을 안고 있다. 법치국가의 기틀을 새로 다듬고, 각계 각층에 독버섯처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붉은 대못’의 뿌리를 뽑아야하는 시점에 와있다.
친북좌파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좌파청산 작업에 결사적으로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민주국가에서는 여론의 향배가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그러므로 좌파는 다시 20년전에 했었던 윤이병 폭로사건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집권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처럼, 이번에도 삼성비자금 사태를 이용하여 검찰 및 사정, 공안당국을 무력화시킬 필요성이 당연히 제기된다.
윤석양 이병 폭로사태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고발과 유사한 점이 많다. ①내부에서 비밀문건을 들고 나온 내부 고발자라는 점, ②폭로직전에 몸을 의탁한 곳이 KNCC와 천주교정의사제단이라는 좌파성향의 종교단체란 점, ③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정치쟁점화 되고 있다는 점, ④배후에 좌파들이 포진하여 좌파들이 사건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아주 유사하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삼성의 불법 비자금의 부도덕성이나, 부당성을 구태여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연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삼성은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대기업의 부정 사건이 아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요점은 이 사건이 가지는 함의이며, 또 그것이 미칠 보수우익과 친북좌파에게 미칠 파장과 이해득실이다. 여기에서 김용철 과 그의 배후세력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가 무엇인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깨끗한 기업풍토를 희망하는 양심선언의 성격을 가졌나? 아니면 이명박 신보수정권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일종의 정치공세로 보아야하는가?
김용철의 무자년 폭탄선언의 시점은 바로 25일 대통령 취임식 3일후에 있었다.
“검찰 내 최고위층 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장관급 각료와 청와대 고위직 인사들도 삼성의 로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권의 장관인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등 검찰수뇌부의 實名을 거론하여 公安機能의 無力化를 노리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모두 까발린 것이 아니라, 시간차로 하나씩 하나씩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점에 대한 심사숙고의 흔적이 역력하다. 충분히 상의한 후에 계산된 발언이다.
“만약 새 정부의 출범 초기에 폭로하면 정치적으로 개입하여 큰 파장이 걱정된다”고 공언하면서도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이률배반적인 행동을 보였다. 진정으로 신정부를 걱정한 태도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전 명단을 미리 검찰에 넘겨 조사를 받게 하던지, 아니면 신정부 초기가 지나서 발표했어야 할 것이다. 김용철의 발언에 의하면 칼날은 지난 정부가 아니라 새정부로 향하고 있다.
V
이번 김용철의 발표에는 그 폭로시점에서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면서 몇 가지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로, 公安의 無力化 기도이다. 검찰의 수뇌부가 삼성과의 뇌물수수로 옷을 벗고, 여론의 공세에 시달리게 된다면 공안사범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공안이 무력화되어, 극렬좌파들의 원기는 되살아나서 각계각층에서 陣地를 재구축하면서, 기세등등하게 활개를 펴는 세상이 반복될지 모른다. 친북좌파에게 소생의 시간적 여유를 주게 만든 점이다.
두 번째,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권을 겨냥한 흠집내기이다. 이명박 신정권이 인사에서 부패세력을 등용한 문제가 많은 ‘부패정부’라는 점을 대내외에 알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강관급 인사에서 땅 투기 의혹이 많았고, 연구업적에서 표절시비가 있으며, 부자들은 많았는데 연구업적이 많은 학자는 드물었다. 어쩌면 이명박 정권은 함정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김용철은 구체적 명단은 발표하지 않고 언론플레이로 흘리면서 국민적 의혹만 잔뜩 부풀리면서 효과를 극대화했다.
세 번째로, 총선을 겨냥한 좌파의 정치공세의 큰 흐름속의 연장선상에서 김용철의 폭로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 폭로로 인해 총선에서 손학규의 통민당이 부수적으로 챙기는 實益은 결코 적지 않다. 이번 김용철 무자년 28일 폭로사건은 2008 총선의 이슈가 한나다랑에 대한 安定論에서 牽制論으로 기울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이다. 최근 통민당을 이끄는 손학규 대표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면서 근래 보기 드물게 和色이 돌고 있다. 그렇게 되면, 90년대의 상황이 재발하여 한나라당의 집권은 단명으로 마침표를 그을 것이다.
네 번째로, 김용철의 무자년 폭로가 주는 정치적 의미는 BBK-김경준의 逆風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미 한나라당에서는 작년 김경준을 기획입국시킨 인물에 대한 내밀 조사에 착수하여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할 것인가를 숙의중일 것이다. 이명박 신임대통령이 무혐의로 처리된다면, 김경준을 기획입국시킨 세력에 대한 법적 대응책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점에 대해서 손학규의 통민당은 정치적 곤경에 처해서 무척이나 당황했을 텐데, 김용철의 청와대 수석과 국무위원의 삼성관리대상자 의혹제기는 코너에 몰린 좌파가 사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일종의 역공(逆攻)적 측면이 있다는 함의가 담겨져 있다.
김용철이 언급한 비자금 관리대상 명단이 친북좌파들의 신정권에 대한 협박성 카드로 악용될 때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용철이 몸을 은신한 카톨릭정의사제구제단은 순수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임수경을 평양에 밀입국시킨 좌파성향의 종교단체로서 한국사회의 좌경화와 좌파정권의 등장에 크게 공헌한 친북단체이다. 이제 신정부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형국이 전개될 것이다.
명단을 시기적으로, 선별적으로 시간차로 천천히 공개하려 할 것인가? 김용철과 카톨릭정의사제구제단은 하루빨리 명단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눈덩이처럼 커지는 국민적 의혹을 불식시킬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좌파의 정치공세와 연계되었다는 불필요하고도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삼성이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시절을 전후로 해서 비자금을 조성하여 여야 정치인과 검찰 등 모든 유력인사들과 그들에게 준 내역을 전부 공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전 현직 대통령들과 비서관들도 삼성비자금에 의한 관리대상자 명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점에 대해서 김용철측은 모른다고 발뺌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왕 폭로한다면 얼마를 어떻게 주었는지도 전부 아는 대로 소상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VI
김용철 삼성비자금폭로사건은 대선에서 정권교체라는 큰 흐름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총선에서는 나름대로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지도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 상성비자금문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반환점을 넘어섰으며, 삼성의 운명과 국내 정국에 미칠 파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과거 박계동 의원이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은닉의혹을 폭로함으로써 그 돈의 일부가 김대중에게 은밀히 전달된 정치자금 액수도 공개되었지만, 분노한 여론과 언론의 화살은 집권층에게 향했으며 집권세력이 부패세력으로 刻印⋅斷罪되었고, 민정계 노태우파와 김영삼 민주계 집권세력간의 분열상을 노정했으며, 결국 반세기동안 국정운영의 주도세력이었던 반공보수우익세력이 무너지고 친북좌파에게 집권의 길을 여는 단초를 제공한 역사적 경험을 심각하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김용철 삼성비자금 폭로사태는 노패우 비자금 폭로사태이후 가장 큰 대형폭로사건으로서 단순히 기업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섬이 전달한 정치자금과 연계되었기에 현재의 정치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적 정치풍토와 관행으로 미루어 볼 때, 과연 대기업의 떡값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 지도층 인사중에서 과연 누가 있을까? 삼성비자금 폭로사건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 쪽은 여야할 것없이 한국의 지도층과 대기업, 공안당국이 될 것이고, 가장 큰 反射利益을 얻게 되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북한의 김정일과 삼성을 먹이감으로 군침을 삼키는 多國籍 企業일 것이다.
공안기능이 무력화되어 법질서가 혼탁해지고 극렬좌익이 세상을 어지럽히면서, 다시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민주투사라는 탈을 쓴 좌경세력이 득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또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삼성이란 굴지의 기업이 경영난에 빠져서 나라경제가 더욱 어려운 수렁에 빠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三省發 不況이 시작되었다”는 푸념 섞인 흉측한 소문이 장안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런 폭로사태가 내포한 위협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초지일관되게 사회의 엄정한 기강을 확립함은 물론 불순한 좌경극렬세력에 대한 엄정한 법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또한 이명박 신정부는 심기일전하여 민생을 챙기는 한편, 국정운영에 한 치의 착오가 없을 것을 당부한다.
2008년 3월 2일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2>,
<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의 저자
삼성비자금 특검사태가 총선정국에 주는 함의(含意)
- 이주천(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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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02, 1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