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의 이념과 전략

무초의 평 중에서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라는 말은 미국의 프로 외교관이 약소국의 지도자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李承晩이 독립운동과 建國期에 민족의 지도자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한국은 공산화되어 우리는 지금 김정일 治下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李 대통령은 독립운동기엔 좌익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했고(金九와 함께), 건국기엔 미국의 좌우합작 움직임과 공산당 세력의 선동을 저지하고 反共자유민주 국가를 건설했다. 萬難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해내도록 그를 몰아붙인 힘은 이념적 확신이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콜레라균 정도로 보고 자유민주주의를 민족의 희망이라고 믿었다. 당시는 東西 이념전쟁, 즉 냉전이 시작된 시기였다.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라는 말이 李承晩에게 해당된다. 李 대통령의 뛰어난 세계정세 감각은 이념적 自覺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당시 駐韓 미국대사 무초의 이승만 평이 재미 있다.

'李 대통령은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사로 단련된 성격을 국가원수가 되고나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적일 때는 훌륭한 역사적 이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되면 그는 독립투사 시절의 본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으나 위기 때 일처리를 잘 했으며 자신의 뜻을 고급 영어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습니다. 그는 제퍼슨類의 민주주의자임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부인(注: 프란체스카 여사)이 그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초의 평 중에서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라는 말은 미국의 프로 외교관이 약소국의 지도자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李承晩은 韓民族史上 2대 외교관이다. 羅唐연합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金春秋와 韓美동맹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을 만든 李承晩.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 레이건, 대처 같은 이념형 지도자는 국가 대전략을 구사할 줄 안다. 그들은 확고한 이념과 전략을 바탕으로 외교, 안보, 법치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여 그 속에서 경제가 잘 되도록 유도한다.

東西냉전의 핵심은 이념전쟁이었다. 한반도에선 아직도 그 이념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념의 시대는 갔습니다'라고 외치는 대통령은 안보, 외교, 법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안보가 실패했는데 경제만 성공할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