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공천결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출신들은 대거 공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987년 설립된 전대협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 등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해오다 1992년, 1993년 지도조직인 「정책위원회」 등이 이적단체(利敵團體)판정을 받았던 조직이다. 역대 정부 공안기록과 전대협 출신 전향 지식인들은 전대협이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에 의해 장악됐었다고 기록 및 증언해왔다.
이번에 공천 받은 전대협 출신은 우선 17대 국회의원 7명(1기 : 이인영(李仁榮)·우상호(禹相虎)·김태년(金太年), 2기 : 오영식(吳泳食)·정청래(鄭淸來)·최재성(崔宰誠)·백원우(白元宇) , 3기 임종석(任鐘晳)·이기우(李基宇)·한병도(韓秉道))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전대협 출신인 김성환(金星煥), 오중기(吳仲基), 정진우(鄭鎭宇), 박형룡(朴亨龍) 김만수(金晩洙), 박완주씨가 각각 노원 丙, 포항 북구, 부산北강서乙, 대구 중남구, 부천 소사, 천안乙에 공천됐다.
대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와 자주평화통일학생추진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美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親美예속 파쇼정권을 규정하는 전제 하에, 반전과 반핵, 美대사관 폐지, 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폐기, 국가보안법철폐, 現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利敵단체』라고 판시했었다.
한편 이번에 공천 받은 전대협 출신 중 우상호, 오영식 의원과 김만수 후보는 2006년 프리존뉴스 강길모 대표에 의해 主思派출신 정치인으로 실명이 거명됐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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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x1 ] <전향자들,『전대협의 주체사상 추종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전대협의 親北·反美노선은 소위 주체사상(主體思想)파로 불리는 金日成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됐다는 데 기인한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전대협 수사결과를 담고 있는 「主思派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전대협의 조직실체」 등 복수의 공안문건들은 『전대협은 항상 金日成과 한민전(북한의 對南선전매체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추종하는 지하혁명 조직에 의해 조종돼 왔다』고 적고 있다.
이들 기록은 현재 통합민주당 의원이자 18대 총선 예비후보인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 당시 전대협 1기, 2기, 3기 의장들이 모두 主思派 지하조직원이라고 적고 있다. 그 중「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1987년 5월 전대협 제1기가 결성된 이후 19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主思派 지하혁명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 핵심조직원임이 그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은 1986년 12월 고려대 중심 主體思想 신봉자들이 결성한 主思派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金日成 主體思想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킨 자이고,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1988년 1월20일 主思派 지하조직 「反美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전남대), 김종식(한양대) 등도 主思派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음》
<『위수김동, 친지김동 金日成·金正日 추앙』>
전대협의 主體思想 추종은 전향 主思派 지식인들에 의해서도 잇따라 제기돼 왔다. 主思派에서 전향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홍진표(洪晋杓)씨는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는 主思派가 장악했으며, 主思派는 극소수 학생만이 추종했던 이념이라는 전대협 출신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主思派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金日成 原典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主思派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金日成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金日成과 金正日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전대협 연대(連帶)사업국장 출신으로 主思派에서 전향한 이동호(李東湖) 북한민주화포럼 사무국장은 『전대협이 북한의 主體思想을 추종했으며, 한민전의 투쟁방침을 따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며 이렇게 증언했다.
『主體思想으로 무장한 「反美청년회」등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 전대협을 건설했다. 대중조직인 전대협은 합법조직을 지향, 사상·투쟁노선을 대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대협은 主體思想을 신봉하는 그룹에 의해서 지도됐기 때문에 그들의 노선과 자료 등 곳곳에서 主體思想 노선이 나타나 있다』
反美청년회 핵심맹원이었던 강길모(姜吉模) 프리존 미디어 편집인은 『전대협은 主思派에 장악됐던 것이 아니라 主思派가 만든 것이 전대협이며, 主思派가 아닌 전대협 간부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9월20일 서울프레스센터 자유민주주의학회 세미나, 2006년 12월 월간조선 등을 통해 열린당 내 主思派출신 정치인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현재는 盧武鉉 정권 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내가 속한 조직에서 교양됐다. 전대협 출신 열린당 의원 우상호·오영식씨, 청와대 제1부속실장 문용욱씨, 前제2부속실장 이은희씨, 前청와대 대변인 김만수씨, 前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여택수씨 등.(…)우리는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를 찬양했다』
<과거 主思派 전력 여부 부인해 온 의원들>
역대 정부의 수사결과와 전향한 主思派 지식인들의 증언은 전대협이 主思派에 장악됐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 출신 386의원들은 과거 主思派 전력 여부를 전면 부인(否認)해 왔다.
李仁榮의원은 2006년 당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을 主思派로 기록해 놓은 자료는 모두 『군사정권 시절의 容共조작』이라고 말했다. 吳泳食의원은 당시 보좌관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任鐘晳의원과는 보좌관을 통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 禹相虎의원은 강길모씨의 증언에 대해 『그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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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x2 ] <386전대협, 『北인권법은 부당한 간섭』 비판>
전대협의 主體思想 추종 여부를 접어두고서라도 전대협이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이라는 親北노선을 주장했던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전대협 386출신들은 20대에 세례 받은 이 같은 인식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이들은 17대 국회에 진출해 北韓인권 및 北核문제와 관련, 수차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2004년 12월1일 전대협 출신들이 주축이 된 26명의 국회의원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한 비판서한을 駐韓미대사관에 전달했다.
여기는 전대협 1기 李仁榮·金太年·李哲禹, 2기 吳泳食·白元宇·鄭淸來·崔宰誠, 3기 任鐘晳·李基宇·韓秉道·卜箕旺 의원 등이 망라됐다. 서한은 △북한인권법이 북한 내정(內政)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며 △북한인권법은 궁극적으로 북한 정부(政府)의 몰락을 겨냥하고 있고 남북 대화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전대협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성명의 요지를 보면 아래와 같다.
《무력충돌을 야기하는 對北제재, 봉쇄와 같은 강경정책은 제1, 제3의 미사일 발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이 앞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사업은 남북을 잇는 마지막 끈이다. 이 사업들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악화될 것이다. (2006년 10월13일 北核사태 관련 성명 ; 전대협 1기 李仁榮·禹相虎·金太年, 2기 吳泳食·鄭淸來·崔宰誠, 3기 任鐘晳·李基宇·韓秉道 등 국회의원 77명 참가)》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조속히 나서야 하며, 우리 정부는 北美 양국이 직접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미국은 고압적인 태도로 굴복을 강요한 對北강경제재조치가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정부가 對北포용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경제협력은 지속돼야 한다. (2006년 10월10일 北核사태 관련 성명 ; 전대협 1기 李仁榮·金太年, 2기 鄭淸來·白元宇 등 국회의원 24명 참가)》
《<일본의 對北선제공격론과 UN 對北제재 결의안은 동북아 안정과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명백한 침략주의> 이렇듯 일본이 주도한 대북제재 결의안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파괴함은 물론이고 6자회담을 파탄 낼 것이고, 나아가 남북경협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2006년 7월13일 일본규탄 성명 ; 전대협 1기 李仁榮·禹相虎·金太年, 2기 鄭淸來·崔宰誠, 3기 任鐘晳·李基宇·韓秉道 등 국회의원 43명 참가)》
《북한의 核완전폐기와 함께 평화적 核이용 보장을 촉구한다.(…)현재 북한은 심각한 에너지난에 직면해 있다.(…)北美간 적대적(敵對的) 대결구도 청산과 신뢰구축의 계기로 삼음으로서 한반도 平和體制를 위한 큰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停戰協定 체제를 해소하고, 한반도 平和協定을 새롭게 체결하기를 촉구한다. (2005년 9월12일 6자회담 직전 성명 ; 전대협 1기 李仁榮·金太年·禹相虎, 2기 白元宇·鄭淸來·崔宰誠, 3기 任鐘晳·韓秉道 등 국회의원 18명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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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3] <전대협 출신 국회의원들 발언록>
<정청래 의원, 『우리가 조선일보의 명줄을 끊겠습니다』>
△ 鄭淸來 의원은 국보법폐지와 6·15실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①2004년 8월4일 국보법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②2004년 12월23일 국보법폐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③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했고, ④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 鄭의원은 ①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했고, ②2005년 7월14일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서명했으며, ③2006년 7월13일 「UN과 日本의 對北제재 규탄 결의안」에 서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金正日 정권을 비호하는데 앞장서왔다.
△ 鄭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직전인 2006년 10월4일 칼럼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굶겨 죽이기」식의 對北봉쇄도 바람직하지 않거니와(···)외세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터」를 지켜 나가길 한가위 보름달 밑에서 소망해 본다』며 외세인 미국이 북한을 압박해 위기가 고조됐다는 식의 인식을 보여줬다.
△ 2006년 9월16일 칼럼에서는 『북한의 군사력이 더 세다? 이는 전형적 사기이다(…)守舊의 한줌 손바닥으로 세계의 눈을 가리려 하는가?(…)이제 保守·守舊세력들은 하나를 해야 한다. 숭미주의자로서 부시의 말에 「수그리」하고 말문을 닫던가 아니면 「부시반대」의 反美주의자로 나설 것인가? 결단하라. 親美투사들이여! 反美투사들이여!』라고 썼다.
△ 鄭의원은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자, 북한이 아닌 미국을 비난하며 對北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했다. 그는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미국은 고압적 태도로 굴복을 강요한 對北강경제재조치가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정부가 對北포용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 경제협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 鄭의원은 같은 해 10월15일 열린당 김희선·박찬선·임종인, 노동당 이영순 의원과 함께 금강산을 방문, 『북한의 핵실험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강경일변도 對北정책 때문』이라며 『이번 금강산 방문은 금강산에 가도 인질로 잡히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금강산 개성공단 사업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 鄭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2004년 5월25일 소위 재야원로들과 전대협 동우회의 만남에서 『몸을 낮추고 개혁의 깃발을 선명하게 들고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힌 후, 특히 反통일세력인 조선일보 제자리 찾기에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인터넷 통일뉴스 보도). 실제 鄭의원은 조선일보 등 보수세력에 대한 극도의 감정을 드러내왔다.
△ 鄭의원은 2004년 9월2일 민언련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조선일보는 친일신문이 아니라 일본신문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守舊언론들이 과거사 청산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본인들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일부 언론들은 말 같지도 않은 논리로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 鄭의원은 盧武鉉의 노사모집회 참가에 대한 2003년 12월20일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차떼기 당을 박살내고 조선일보의 명줄을 끊겠습니다.(…)守舊·冷戰·기득권 세력을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개혁세력은 모두 노사모들입니다.(…)진짜로 개혁의 언덕을 향해 다시 한 번 진격명령 사인을 하러 오신 거지요? 잘 알겠습니다.』
<이인영 의원, 한총련 수배자 전원사면 촉구>
△ 전대협1기 의장 출신인 李仁榮 의원은 국보법폐지와 6·15실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①2004년 8월4일 국보법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②2004년 12월14일 국보법연내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들어갔으며, ③2004년 12월23일 국보법폐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④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 李의원은 ①2005년 7월29일 「한총련」 관련 구속자·수배자 전원사면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②2007년 5월21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을 위한 성명을 냈으며, ③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
△ 李의원은 ①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했고, ②2005년 7월14일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참여했으며, ③2006년 10월13일 북한 핵실험 후 「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하는 성명에 서명하는 등 金正日 정권 비호에 앞장서왔다.
△ 참고로 李의원의 칼럼을 일부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자주의 나라, 아 그리운 나라.(…)평소에 온건하다고 생각했던 장로님과 목사님께서 기도 도중 『저 오만한 미국으로부터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게 하시옵고~』 느닷없이 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어쩔 수 없어 두 손을 꼭 잡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그리던 자주의 나라였습니까? 아니 얼마나 목청껏 외쳐보고 싶었던 자존의 선언이었겠습니까? (2002년 12월9일 칼럼 中)』
『사학법 개정은 자기 확신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신념행위였습니다. 그것은 改革과 守舊의 칼날 같은 대척점에서 망설임 없는 확고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훼절하거나 물러서서 방치한다면 우리 가슴에 자기 부정의 독버섯이 싹트게 됩니다.(…)지난 해 사학법은 우리에게 改革과 守舊의 건곤일척의 대척점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2006년 4월20일 칼럼 中)』
<임종석 의원,『탈북자 入國은 부도덕한 인력매매』>
△ 전대협3기 의장 출신인 任鐘晳 의원은 국보법폐지와 6·15실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①2004년 8월4일 국보법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②2004년 12월14일 국보법연내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들어갔으며, ③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 任의원은 ①(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金日成종합대학 지원을 주도해 통일부를 통해 지난해 말까지 7억1천7백만 원을 지원했으며, ②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했고, ③2005년 7월14일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참여했으며, ④2006년 10월13일 북한 핵실험 후 「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하는 성명에 서명하는 등 金正日 정권 비호에 앞장서왔다.
△ 任의원은 2005년 1월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 반쪽인데, 주적(主敵)이라는 표현은 그것을 송두리째 부정한 것』이라며 북한정권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 왔지만, 정작 탈북자와 납북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해왔다.
△ 任의원은 2004년 10월21일 통일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펴낸 자료집을 통해,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의 하위 의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북자 기획입국 주도단체는 악덕 상업자』이며, 탈북자 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인력매매로 전락했다』,『인권에도 반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한다』고 맹비난했다.
△ 任의원은 2004년 10월22일 통외통위에서 『남북화해협력 없이 납북자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만큼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해결의 절박성을 외면하는 주장을 폈다.
△ 任의원 역시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자, 북한이 아닌 미국을 비난하며 對北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했다.
『北美간 갈등과 대결, 그중에서도 북한을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던 결정적 요인은 미국의 對北금융제재에 있었다.(…)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비롯해 어떤 경우에도 남북경협의 모멘텀이 실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북한이 공언한 바와 같이 PSI에 입각한 북한 진출입에 대한 검색과 봉쇄는 對北선전포고로 간주될 것이다(2006년 10월13일 칼럼 中)』
△ 2005년 4월12일 칼럼에서는 『미국은 증명할 수 없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였고(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존재 관련 워싱턴 포스트 기사 등), 북한은 핵 보유와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北美간 불신이 초래한 예견된 불행 이었다』며 북한의 핵무장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 任의원은 2006년 9월8일 한 칼럼에서 『韓美관계는 지금 악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배타적 지역주의, 冷戰·守舊세력의 온존, 뿌리 없는 선거용 정당은 한국정치의 삼중고(三重苦)입니다. 한국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고 냉대 받는 비극의 중심엔 바로 삼중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만 해도 冷戰·守舊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反정부투쟁의 소재로 변질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통합민주당, 전대협 출신 대거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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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24, 0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