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反共·勝共 그리고 親北

80년대엔 "악마 지배 북괴를 이겨야", 90년대 "위대한 金日成 수령님"
통일교가 기반이 된 평화통일가정당은 『북한의 체제 유지·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체제 구축』,『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을 초월한 통일이념』,『조총련을 참여시켜 北日관계를 개선한다』는 등 (以上 18대총선 관련 자료집)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위헌적이고 對北유화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가정당의 주축인 통일교가 원래 친북적이었던 건 아니다. 통일교 교주 文鮮明은 경전(經典)에 해당하는 「원리강론」에서 공산주의를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6·25동란은 단순한 동족상잔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 두 세계 간의 대결이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결(원리강론 p.502.)』이었다는 등 철저한 반공적(反共的) 주장을 펴고 있다.

東西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통일교는 反共主義에 입각해 韓國과 美國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1959년 美國 포교를 시작한 통일교는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중심이었던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과감한 『찬전(贊戰. 전쟁찬성)운동』을 전개, 美행정부와 CIA의 지원을 받는 등 빠른 성장을 거듭한다.

한국에서도 군사정권 당시 反共분위기를 활용, 『승공(勝共)운동』을 전개하고 반대급부로 경제적·정치적 배려를 받았다. 1983년 12월20일 잠실체육관에서 文鮮明은 소위 『전국승공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文씨는 이날 『통일운동의 최종목적』이 『공산주의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일소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악마가 지배』하는 『북괴』를 이기고 남한 내의 『지하조직을 적발』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역설했다.

<金日成에 『위대한 수령님...진정 현대역사의 위인』>

「反共의 화신」 같았던 통일교는 90년대 남북관계 변화상황에 맞춰 표변(豹變)하기 시작한다. 우선 1991년 文鮮明과 金日成이 만남을 가졌고, 이후 국내 133개 지부를 두고 있던 「국제승공연합」은 「남북통일국민운동연합」으로 탈바꿈해 소위 통일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1994년 金日成 사망 당시엔 「세계일보」 박보희(朴普熙) 사장이 조문을 보냈다. 당시 조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진정 현대역사의 위인은 떠나가셨으나...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수령님의 위업을 굳건히 이어나가리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등의 내용을 담았다.

<평화자동차, 「휘파람」 등 일곱 개 차종 생산>

현재 통일교는 맹렬한 對北사업을 벌이고 있다. 평양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남포시에는 2002년 4월 준공된 평화자동차총회사가 가동 중이다. 이곳에서는 1600cc 승용차 「휘파람」, SUV 「뻐꾸기」, 미니버스 「삼천리」 등 일곱 개 차종이 생산된다.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에는 1993년 통일교가 인수한 보통강호텔이 있고, 호텔 옆에는 「세계평화센터」라는 문화컨벤션센터가 위치해 있다. 文鮮明의 고향인 정주지역에는 30만 평 규모의 「정주세계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세계 통일교 신도들의 순례가 줄을 잇는 통일교의 성지로서 북한 당국도 적지 않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2003년 4월 설립된 「평화항공여행사」는 평양관광, 백두산관광, 기타 북한 관광 코스를 마련하고 있다. 2000년 1월에는 평화자동차회사 계열의 「평화토건」이 설립됐고, 2005년 5월에는 같은 계열의 「평화무역」이 설립됐다. 기타 세계평화여성연합과 세계평화청년연합이 각각 북한어린이돕기, 북한사랑1퍼센트운동, 새터민을 위한 통일소원음악제 및 북한 보일러 지원 등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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