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은 스스로를 사형시킨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살인자는 자신의 죄로 죽음의 올가미(法)를 스스로에게 씌우는 것이다>
사형제: 중범자 죽일 권리 없단 말인가?

중죄인은 자신이 저지른 죄값으로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 30일로 ‘실질적인 사형폐지국가’가 됐다. 殺人과 같은 범죄에 대해 법률상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지난 10년간 사형집행을 한번도 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나라를 말한다. 국제 민간 운동단체인 ‘앰네스티(AmnestyInternational)'가 붙여주는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때인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의 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이다. 현재 58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다. 조선일보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인 지난 10년간 사형집행이 없었던 것은 좌파적 성향의 정권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좌파는 범죄자의 범죄행위 그 자체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 몰렸다”고 범죄자를 비호하며 범죄의 極惡性과 反社會的 파괴행동을 비호하며 범죄의 원인과 배경을 중시해왔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문화계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적 좌파 선동의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한 예로 들어보자. 劇속의 주인공은 惡意 없이 순수한 눈을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가 저지른 殺人은 우발적이었고, 빗물 같이 흥건한 두 눈의 눈물은 그의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었다. 게다가 천사 같은 수녀의 거룩한 긍휼은 보는 이들에게 ‘이래도 안 울어?’였다. “사람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는 수녀의 일갈에 청중들은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이 저 아름다운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것이 바로 煽動이다.

물론 사람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 그러나 그 죄인은 그의 罪값으로 죽음의 굴레를 쓰는 것이다. 아무도 그를 죽음으로 떠밀어 넣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간의 냉철한 理性이다. 죄에 대한 警覺心을 가지고 법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함을 훈계해야 할 책무가 수녀(종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지은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저세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도와 헌신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 가난이나 불평등, 사회적 차별 등이 더 큰 문제라고 사회적 선동을 誘發함으로, 범죄자에 대한 처벌보다 사회.경제적 비리와 부조리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인권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여 사형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드디어 종교. 시민. 인권단체는 사형제 폐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法條文에 남아있는 사형제 규정만 정리하면 명실상부한 사형제폐지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우리사회는 언젠가부터‘有錢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자신들의 범죄전과를 억울하다는 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권위는 인권회복과 더불어 보상받는 이들을 大量放出 하는 기막힌 세상이 되었다. 과거 犯罪전과가 말 그대로 별이 되고 훈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상은 과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新天地가 되었는가?

우리 국민적 특성을 일컬어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 무슨 사건이 발발했을 때 그 반응과 분개지수가 매우 높다. 곧바로 뒤집어지기라도 할 기세로 끓어오르고 분개하는 양상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꼬집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냄비는 화덕에서 내려놓는 순간 빠르게 식어버리는 결점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오래두고 곱씹어보거나 깊은 통찰력을 요하는 것이 냄비근성의 대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도둑이 매채든다”는 씁쓸한 광경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당당히 ‘세상이 잘못되어서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배짱 두둑한 犯罪者들을 볼 수 있다.

아프지만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21명의 여인들을 살해한 유영철사건, 4모녀를 살해한 전 프로야구 선수, 2명의 초등생을 죽여 시신을 훼손한 사건, 등등의 수많은 살인자들을 보면 의외로 뻔뻔하고 뒷심 있게 군다. 살인자들이라고 흉악한 몰골을 한 것도 아니다. 사람의 형상을, 그것도 애처로운 모습으로 글도 쓰고 유영철 경우 그림솜씨도 수준급이라고 그의 글과 그림을 공개 한 적도 있다. 이때 사람들은 불과 얼마 전에 그 殺人者를 향하여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분개했던 因果 應報적 감정이 다분히 퇴조된 것을 보게 된다. 이미 냄비는 식어지고 머릿속의 지우개는 그 처참한 광경들을 빠른 속도로 지워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짐짓 너그러워지기도 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씨앗이다. 그리고 그 싹을 틔우는 자들이 反사회적 사형제폐지선동자들이다.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은 인권의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성, 그들이 力點的으로 주장하는 誤判가능성, 정치적 惡用 가능성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중요한 이유로 범죄예방효과가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재수감 중인 死刑囚 58명이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인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어야 옳은 것 아닌가? 이 살인자들이야말로 “사람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고 가르쳤어야 하고, 그 인권의 神聖한 尊嚴性과 거룩함과 함께 感化感動 시켰어야하며, 범죄는 예방되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사법제도는, 그동안 법제도 개선노력과 과학수사 기법의 개발로 誤判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정치적 악용이라는 주장에 대하여는, 이데올로기적 反國家的 事犯으로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을 받은 전과자들이, 지난 10년 걸쳐 좌파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이라고, 독재에 항거했다고 주장하여 사면복권내지 보상까지 두둑이 챙긴 터에 살인자들까지 隱德의 범위로 덮는 것은 법을 모독하는 것이며 준법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이다.

사형폐지론자들은 인과응보의 감정을 내세우며 사람들이 사람에게 응보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가는 것은 神의 영역이라는 지극히 온당한 논리를, 加害者가 아닌 정상인들에게 궤변을 늘어놓으며 終身복역을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인魔는 죽지 않는다’(사형제폐지)는 확신이 있어, 정작 살인자는 죽음의恐怖로부터 해방된 평안의 囚衣를 입고 세월을 죽이다보면 노무현, 김대중 같은 내 기분대로 대사면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수도 있고 보니, 生을 덤으로 얻는 횡재한 살인범도 없으란 법 없다. 종신형이란 이름의 평안을 누릴 그 은총을 누가 주는 것인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살인자에게는 법도 한낱 조롱거리밖에 안 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58명의 囚衣를 입은 殺人者들의 하나님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앞으로도 쭈욱)

“사람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 그것은 살인자에게 죽음의 올가미를 씌울 때에, 그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驚句다. 그렇다 “사람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 殺人者는 사람을 죽인 殺人罪로, 자신이 저지른 罪의 무게에 눌려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살인자는 자신의 죄로 죽음의 올가미(法)를 스스로에게 씌우는 것이다> [林素影 북한인권 논설가: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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