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이며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운찬의 비경제적, 비현실적, 비학자적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12일 서울대에 초대된 중고등학생들로부터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질문을 받고 “경제는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투자하느냐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대운하를 반대한다. 운하를 건립할 돈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 속에서, 대운하의 방대한 혜택을 중시하는 국민들은, 군중을 향한 정운찬의 인기영합주의(populism)와 그의 몽상적 경제관념을 발견한다. 대운하 재정은 한반도의 자연을 차세대에 맞게 재정비하는 필수자금이고, 과도한 대학등록금은 건달교수들에게 낭비하는 봉급을 줄이면 된다. 대운하 재정의 출처도 따져보지 않고 등록금에 사용하라고 주장한 정운찬은 진지한 학자로 보기 힘들다.
학자들의 전형적인 우유부단한 어법으로, 정운찬 전 총장은 “운하건설을 두고 ‘예스’와 ‘노’를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반대 논리가 충분히 있지만 (공개적으로) 펼치지 않는 것은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전제하고, “운하 건설로 물류가 안 되면 관광을 한다는 것인데, 그건 지금도 충분하지 않느냐. 내 생각은 무조건 운하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경제학적 측면에서 볼 때 운하를 건설하더라도 나중에 하고, 지금은 교육과 R&D쪽에 신경을 쓰는 게 낫다는 말이다”라고 주장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는 한국의 관광자원 부족과 건설시대의 종말을 간과한 몽상한 주장으로 보인다. 건설에 열광적인 이명박 정부가 끝나면, 어느 정부가 운하건설을 할 수 있다고 정운찬은 판단하는가?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운찬 전 총장은 앞서 다른 학생이 ‘대학 등록금 급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은 걸 떠올리며 “아까 등록금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는데 운하를 만들 돈이 있으면 등록금을 주는 것이 낫을 것이다”이라며 “여유있는 사람들에게서 넉넉하게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게 가장 좋고 현재 어려운 상황에서는 생활 정도에 따라 부자들이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등록금 문제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주장 같아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몽상한 학자들의 주장은 언제나 너무 이상적이라서 너무 비현실적이다. 한국의 대학이 유지하는 도덕적 수준을 고려한다면, 어느 누가 더 등록금을 내겠으며 어느 누가 덜 등록금을 내겠는가?
정운찬 전 총장은 기부금 입학에 대해서는 사립대학들 간에 차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서 반대한다는 절대평등의 시각을 드러냈고, 정부가 등록금을 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재정적 부담을 들어서 반대했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운찬은 “기부입학은 ‘○○대는 10억, △△대는 8억’하는 식으로 사립대간 랭킹이 생길 우려가 있어 힘들고, 등록금을 졸업한 뒤에 내도록 하는 건 정부재정이 많이 들어서 지금은 어렵다”고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서 너무 비싼 대학등록금을 대학당국이 앞장서서 낮춰야 한다는 대학의 책무는 찾을 수가 없다. 한국대학의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교육지상주의에 빠진 한국인들의 상태를 대학당국과 대학교수들이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있다면, 우선 한국 대학의 등록금을 줄이고 대학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너무 비대하고 등록금은 너무 비싸다. 옛날에 종교시대에는 종교들이 민중의 피땀을 빨아먹은 적이 있는데, 지금 과학시대에는 교육기관이 민중의 피땀을 빨아먹고 있다. 불필요한 대학을 줄이고 등록금도 많이 낮추어야 한다. 대학에서 불필요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전공에 매달려서 세월을 낭비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너무 많다. 몽상하고 시대착오적 세계관을 가진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건달수준의 교수들을 많이 퇴출시켜야 한다. 대학교수들이 방송에서 하는 낡고 몽상하고 망국적인 발언을 보면, 대학교수를 대폭 줄이거나 봉급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울대의 백낙청, 정운찬, 김용옥의 가치관과 판단력은 종종 소시민의 그것들보다 더 몽상하고 무지한 것이다.
만약 대학교수들을 줄이지 않으면, 대학교수들의 봉급을 줄여야 한다. 생산성에 비해서 교수들의 봉급이 높다. 대학의 정교수들은 봉급을 너무 많이 주고, 시간강사들은 대학당국이 너무 착취한다. 교수들의 봉급은 줄이고, 시간강사들의 봉급을 높이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바람직하다.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미국의 교수들에 비해 한국의 교수들은 생산성은 낮고 봉급은 높아서, 지나치게 우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사(文士)에 대한 한국인들의 맹목적 우대풍습 때문에, 교수직을 내걸고 사실상 사회적으로 건달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교수직을 너무 선호하다 보니까, 소나 개나 한국사회에서는 겸임교수 명함을 들고 다니기 좋아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고 건달을 많이 치는 계층이 대학교수들이다. 대학교수가 받는 사회적, 물질적, 도덕적 대우는 능력과 생산성에 비해서 지나치다.
능력에 비해서 부당한 대우나 존경을 받게 되면, 반드시 우대받은 사람은 부패하게 되어있다. 대학에서 부당하게 돈을 많이 받고 공치사를 많이 받은 교수들은 세상이 다 그렇게 부당하게 대우받는 공간으로 착각하게 된다. 대학생들이 맹종적으로 청취하는 '상아탑 속의 가상세계'를 오래 겪는 교수들은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오류투성이고 문제가 많아도 자아비판능력이 없다. 그래서 방송에서 떠드는 교수들의 주장은 소시민의 의견보다 더 무지할 경우가 많다. 다만 자신의 무능을 손쉽게 비호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양비론을 우유부단하게 남용한다. 그 결과 학자의 주장은 수용하든 말든 아무런 실리적 차이가 없는 비실용주의적이고 흐리멍텅한 몽언(朦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능한 학자의 우유부단함은 진리에 대한 여지가 아니라 자신의 무책임에 대한 변호이다.
능력에 비해서 과대평가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교수가 바로 서울대 총장을 했고 경제학자인 정운찬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실세계에서 정운찬이 가진 무능함과 우매함은 지난해 경선기간에 여야 정당이 그를 영입하려고 한다는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국민들이 충분히 파악했다. 지난해 여야 정당의 대통령 후보 물색 기간에 고건에 이어서 정운찬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영입대상으로 들먹거려졌다. 하지만 그 때에 방송이 한없이 띄워준 정운찬은 너무도 무능하고 유약한 행동을 국민들에게 연출했다. 그는 좌파성향의 학자들이 흔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무책임과 몽상성을 그 때에 보여줬다. 요리조리 책임과 의무만 회피하는 말장난에 오래 젖어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해방되기 힘들어진다. 용기과 결단과 지혜가 없는 정운찬의 모습은 지난해 대선기간에 충분히 보여줬다.
비겁하고 우매한 판단을 가진 인물로 국민들에게 비쳐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4월 12일 대운하에 대해서도 무책임하고 비겁한 발언을 젊은 중고교 학생들에게 쏟아놓았다.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학자로서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어린 학생들보다 더 진취적이고 선구적인 주장을 펼쳤어야 옳다. 지금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자들은 과거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하는 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대운하 반대에 대한 정운찬의 주장에는 비판과 딴지에만 유능하고 건설과 도전에는 무능한 학자적 무책임과 회피의식이 스며했다. '대운하에 투자될 국가의 재원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주라'는 인기영합주의는 어린 학생들에게 매우 해로운 학자의 망언이 될 수 있다. 탁상공론으로 교육지상주의에 빠진 민중을 착취한 학자들은 파괴적이고 몽상한 환경지상주의를 어린 학생들에게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
대운하의 재원이 국가의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것인지 따져 보지도 않고, 대운하에 드는 돈을 대학생의 등록금으로 주라는 선동을 하는 경제학자는 불성실하고 진정성이 없는 건달학자이다. 대운하가 가진 방대한 경제적 혜택과 자연환경 보호적 측면을 무시한 정운찬의 대운하 반대는 하급수준의 논리에 근거해있다. 경제를 경제문제로 국한시켜서 오판하는 파편화된 지식장사꾼의 무지를 정운찬에게서 느낄 수 있다. 100년의 江川 대정비사업을 위하여 최대 30조원의 재원이 드는 '대운하'가 뭐 대단한 재정적 부담이 되는 국책사업이라고, 경제학자 정운찬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국가재정에 밝은 정운찬은 김대중 정권시절에 '국가재정 도둑놈'들을 키운 수십조원의 벤쳐자금과 수백조원의 공적 자금이 낭비되는 것에 어떤 반대를 했는가?
김대중의 망국적이고 도둑적인 '벤쳐자금'과 '공적자금' 투입에 침묵했 자들이 이명박의 대운하를 많이 반대하고 있다. 탁상공론에 빠져있는 학자들은 많은 경우에 비현실적이고 몽상하다. 대학교수들 중에 통일의 명분에 매료되어 김정일 체제를 비호하고 환경보호에 매료되어 건설을 악마시하는 망조든 몽상가들이 많다. 대운하 건설의 재원이 어디에서 조달되는지도 파악하지 않고, 낡은 강천의 둑을 방치하자는 정운찬의 사고방식은 자연보호도 할 수 없고 국토정비도 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대해진 대학들을 대폭 축소 조정하여 '교육이 민중의 돈을 착취하는 블랙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한국에 필요한 경제학자의 예언자적 주장이다. 한국에서 교육계보다 더 민중의 돈을 쉽고도 많이 날치기 하는 분야가 없다. 옛날에 종교계가 암처럼 비대하고 부패해서 망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교육기관이 암처럼 비대하고 부패해서 한국은 망할 것이다.
'필요한 대운하에 드는 재정을 대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사용하라'고 중고교생들에게 연설을 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대운하의 방대한 혜택을 고려하는 국민의 눈에, 진지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를 구하는 학자연예인에 불과해 보인다. 한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총장이 대운하를 저런 수준의 저급한 논리로 반대한다는 사실에서 한국의 대학은 교욕지상주의에 빠진 민중의 돈이나 착취하는 야바위꾼들의 장사판이 아닌가 의심된다. 정운찬은 19세기의 둑들을 21세기의 둑으로 바꾸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혜택들을 포괄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해 보인다. 대운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필자의 눈에, 정운찬은 낡은 경제이론을 가진 몽상하고 유약한 학자로 보인다. 마치 백낙청과 강정구가 유약하고 해괴한 몽상가인 것처럼...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정운찬의 몽상한 대운하 반대
- 조영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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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13, 1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