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晝의 암흑이 펼쳐진 지난 10년"

趙甲濟 대표의 임승준자유언론상 수상 연설

한국 언론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가신 임승준 선생님의, 자유언론에 대한 고귀한 뜻을 받들어 만든 임승준자유언론상 제3회 수상자가 된 것을 대단히 감사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상을 만들어주신 손장순 여사님과 이 상을 진행하시는 대한언론인회 조창화 회장님께 특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의 受賞을 축하해주시기 위하여 이 자리까지 왕림하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임승준자유언론상은 제정된 지가 오래지는 않으나 저보다 먼저 이 상을 받으신 南時旭, 柳根一 선생께서 이미 이 상의 권위를 높여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賞의 명칭에는 自由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자유당이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상당히 훼손시킨 이후 자유는 평화, 평등, 민족이란 말에 눌려서 한국사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헌법정신에 비추어 자유통일이라고 써야 할 터인데 굳이 자유를 피하고 평화통일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한국 사회 일각에 자유를 부정하거나 기피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자유라는 단어와 결합되면 자연스럽고 그렇게 되어야 힘이 있어 보이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言論이란 말입니다. 자유언론, 이 거룩한 명사가 붙은 賞을 받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에 저에게 상을 주시기로 결정한 이유는 작년의 대통령 선거를 前後한 집필 활동이었습니다. 유권자들이, 反헌법적 좌파정권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식시킨 힘의 원천은 언론자유에서 나왔습니다. 태생적으로 자유언론을 싫어하는 친북좌익의 得勢 속에서도 언론자유가 죽지 않고 기능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大覺醒이 이뤄졌고, 조용히 투표로써 좌파정권을 끝장 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힘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이번에도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일을 해냈습니다. 그 언론의 말석에 제가 있었고, 임승준자유언론상을 주관하시는 분들이 저를 발견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소란스런 좌파 득세기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를 낙관했습니다. 조지 오웰이 1984년이란 소설에서 말했던 대로 2 플러스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2 플러스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임승준 선생님과 같은 선배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 쟁취한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일어났던 자유언론의 反좌파투쟁은 그 본질이 거짓과 진실의 대결이었습니다. 언론의 무기는 사실이고 사실상 사실뿐입니다. 진실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 그대로 자유언론은 사실에 기초할 때만 자유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직업적 언론인뿐 아니라 자기 표현 수단을 가진 모든 한국인들이 사실을 무기로 하고, 사실을 나침반으로 삼아 권력을 장악한 反자유-反언론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언론인들의 苦鬪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선배언론인들께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싸워서 확보했던 언론자유의 교두보가 있었기에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日帝시절의 민족언론활동을 이어가는 한국언론의 정신 또한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언론과 언론인의 탈을 쓴 선전선동 기관과 기관원들은 정권의 뒷받침하에서 대한민국을 헐뜯고, 建國과 호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선배세대를 조롱하고, 학살자와 반역자를 감싸고, 국가이념인 反共자유민주주의에 칼질을 하고 저널리즘의 윤리를 더럽혔습니다. 선배언론인들이 피, 땀, 눈물로써 쟁취한 언론의 자유를 가꿔가야 할 시점에서 권력을 위하여, 비뚤어진 개인적 신념을 위하여 자유를 남용하고 낭비했습니다.

더욱 비극적인 현상은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절을 겪어 보지도 않은 젊은 기자들이 공짜로 얻은 그 언론자유를, 임승준 선생이나 대한언론회 회원들이 싸워서 만들어준 그 언론자유를 政權이나 私益을 위해서 악용하여 법질서와 국민교양을 파괴해간 점입니다. 지난 10년은 한국언론사의 가장 영광된 시대였고 또한 白晝의 암흑이 펼쳐진 시대였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지금 언론의 힘으로 언론을 어떻게 淨化할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언론인에게는 사실은 항상 신념보다 중요합니다. 좌파권력을 등에 업고, 사실을 자신의 신념에 종속시키고 왜곡시켜온 反언론적 언론인을 언론계에서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漢字가 신문지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국의 地名 人名 표기도 우리식 表記가 아니라 중국어 발음으로 교체되었습니다. 訃告란에서도 한자가 없어졌습니다. 드디어 대통령, 장관들의 이름도 한글전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경, 전대, 삼협 같은 말들이 한글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신문 紙面은 정확한 뜻이 아니라 암호와 소리를 전달하는 일종의 대자보로 전락했습니다.

언론의 1차적 기능은 정확한 의미와 정보의 전달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한국에 진정한 언론이 있는가? 한글전용을 하는 신문 잡지가 과연 언론인가, 의문입니다.

韓國語는 70%의 漢字語와 30%의 한글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國語의 두 가지 表記 수단은 漢字와 한글입니다. 한글은 國語 그 자체가 아니고 國語의 표기수단입니다. 한자는 외국어가 아니고 國語의 중요한 표기수단입니다. 세종대왕 이전까지는 漢字가 국어의 유일한 표기수단이었습니다. 한자를 추방하면 한국어의 70%는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암호나 소리화함으로써 國語는 반신불수가 되어버립니다.

한국의 언론출판인들은 한글전용이 민족적이고 漢字사용은 사대주의라는 미신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한글전용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자신들의 존립근거인 한국어의 70%를 암호화하여 國語를 장애자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 실패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문명적 자살행위로서 반드시 그 代價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좌파의 언론자유 위협행위는 일단 저지되었으나 한글전용과 한자말살에 의한 韓國語의 暗號化는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이에서 비롯되는 한국인의 정신적 혼란과 知的 황폐는 이미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행위와 언어생활에서 일상화된 부정확성, 경박함, 무례함, 不孝不忠이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정신을 닮는 언어의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자유언론도 국어가 파괴된 자리에선 결코 설 수조차 없습니다.

한국어를 파괴한 신문출판인들, 특히 漢字를 모르는 철부지들에게 迎合하여 한자를 몰아낸 신문사의 책임자들, 발행인, 편집인, 간부들이 結者解之해야 할 문제입니다. 국어의 정상화는 오늘날 말과 글로써 먹고사는 지식인의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인사말이 장황해져 죄송합니다. 1970년대, 60년대 신문을 뒤지면서 그때의 열악했던 환경속에서 만들어낸 紙面이 요사이의 紙面보다도 질적으로 더 낫고, 저널리즘의 정신이 더 살아 있음을 여러 번 느꼈던 적이 있었고, 오늘 이곳은 언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자리라 몇 가지 걱정과 激情을 토로하였음을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상을 주신 임승준자유언론상기금과 대한언론인회에 감사를 드리면서 두 조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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