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정착을 위해선 10년 독재가 필요하다"

李承晩은 엘리트였으나 엘리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중속으로 뛰어들었고, 대중은 이에 보답했다.
어제 문화일보 빌당 강당에서 열린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에서 李承晩 연구의 개척자인 연세대 석좌교수 柳永益 박사는 두 시간 동안 흥미로운 강연을 했다.
 
그는 '李 대통령은 평생 동안 쉼 없이 구체적인 활동을 한 사람이다'고 평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李 박사는 집필, 강연, 출판, 외교, 교육, 모금 운동을 다양하게 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고, 이를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런 활동과 선전의 양이 축적되면서 한국인들 마음에도 李承晩이란 이름 석 자가 새겨졌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여러 조직이 거의 동시에 자발적으로 李承晩을 최고 지도자로 추대한 것도, 당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李 박사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해방직후에도 좌익들까지 이승만을 최고 지도자로 모시려 했다. 90평생을 관통한 그의 지속적 활동은 나라만들기에 집중되었다.
 
 그는 '거듭 태어난 기독교인'이었다.
종교적 신념이 그의 천재적 능력과 결합하여 위대한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그는 엘리트였지만 엘리트주의자는 아니었다. 5년여 만에 미국의 3大 名門대학교(조지 워싱턴-하버드-프린스턴)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는 미국에 남아 엘리트 코스를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즉시 귀국하여 YMCA 활동에 뛰어들었다(일본경찰이 추적하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나라만들기의 근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建國 후 교육개혁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한국의 기적적 발전을 만들어냈다. 李 대통령은 한국의 박사 1호인데, 현재 10만3000명의 한국학생들이 미국에서 유학중이다. 인구가 스무 배나 되는 중국과 인도보다 많다. 李 박사가 문을 연 거대한 흐름을 탄 것이다. 한국의 성공을 가져온 교육열의 효시가 李承晩인 것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든 李承晩을 대중이 보답했다. 미 군정이나 좌익들이 李 박사를 제거하려 했으나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가 李 박사의 보호막이 되었다.
 
 李 대통령만큼 나라만들기에 대한 비전과 수단과 전문성을 가진 한국인이 없었다.
 
1948년 헌법을 만들 때 기초위원들은 내각제에 합의했으나 당시 국회의장이던 李 박사는 대통령중심제로 고치지 않으면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윽박질러 관철시켰다. 이를 두고 李 박사를 욕하는 이들이 많으나 그 뒤의 한국사는 李 박사의 고집이 정당했음을 입증한다고 柳 교수는 말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정치안정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정치안정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였기에 가능했다. 내각제는 국민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교양을 갖추었을 때만 성공한다.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당은 4.19 義擧 직후 내각제로 개헌했으나 張勉 정부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5.16 군사혁명을 불렀다.
 
 李 박사의 대통령제 관철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李 박사가 주도했던 1919년 필라델피아 韓人회의는 한국인들이 세우게 될 독립국가의 '정부의 정책과 조직 大綱'을 발표했는데 이런 요지이다.

 <우리는 형식상, 그리고 정신적으로 代議的이면서 간소하고 체계적인 정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앞으로 10년간 강력하고 혹은 거의 전제적인 중앙집권적 정부가 필요하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권위를 나누어주고 민주주의 정부의 책임을 맡길 만한 교육 받은 인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서재필 요약)>
 
 李承晩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독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이것이 결코 反민주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온실속의 白面書生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국 현대사는 李承晩의 신념이 정당했음을 당당하게 입증했다.
 
권위주의적 통치로써 안보, 경제, 교육을 성공시킨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은 민주투사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보다 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다.

 

 

----------------- 이하는 제가 작성한 댓글 입니다.

 

 

이명박 이라는 사람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발칙한자들이 우리 정치사에 존재를 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사람이 서울시장이 되고 대권을 꿈꾸는 자리까지 올라오기에는 너무도 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는 김대중이나 노무현 떨거지만 아니라면 그 어떤 인물도 밀어주겠다는 확신에 찬 대중들이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었기에 BBK 의 두세배쯤 되는 역풍이 몰아쳤어도 이사람은 대통령이 되었을 것 입니다.

이번 대선은 이미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거의 결정이 난것이나 다를바 없었습니다.

이명박이라는 사람은 그런면에서 시운을 잘 타고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명박이 부끄럽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박근혜씨가 무엇이 맥점인지도 모르고 자꾸 후퇴를 하다가 결국은 이기고도 진 선거를 치루었기 때문 입니다.

작은자로 출발을 하였으나 큰자로 내려오면 됩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아니 그전에 그 어떤 대통령도 우리는 마지막이 화려한 사람을 못보았습니다.

역발상을 한다면 전두환이 만큼 위대한 하야는 다시 없었습니다.
전두환이 시대는 친위구테타가 충분히 가능하던 시절었습니다.

요즈음 들어서야 큰소리를 치지만 전두환이에게 이길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민중들이 수천명 탱크앞에 들어눕지 못하였다면 오늘까지도 채육관선거는 계속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이번에 친박연대의 공천장사는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역량을 묵사발이 되도록 짓뭉개는 다시없는 패착 입니다.

여기서 다시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서청원씨나 박근혜씨는 다시는 돌이키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명박은 시작은 주사파 등에 엎혀서 등장을 하리만큼 초라하였으나
그러나 저는 이미 300억을 내놓고 거기다가 대통령의 월급 조차도 모조리 다 자선사업에 쓰겠다고 합니다.

박근혜씨쪽의 공천장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당선시에는 주사파들이 좌우에 포진을 하여 이재오의난까지 치른 존재이기는 하나

요즈음 들어서는 조금씩 주사파를 쳐내는 칼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무현이는 그 저질 아가리질이 모든 것을 망쳐 놓았음에 비하여
이명박은 비록 좌우로 갈짓자 걸음을 하는것 처럼 보일지라도 꾸준히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가는 조용한 행보가 주목할만 합니다.

이것이 일정 수준을 넘길 수만 있다면 저는 이윽고 우파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하게 될 것 입니다.

거기다가 선거가 끝난 이후로 박근혜쪽에서는 단한번도 주사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이 없습니다.

물인지 하늘인지 그 놀라운 달관의 모습이 너무도 유유자적 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자꾸 자신의 당파문제에는 초조한 기색이 튀어 나옵니다.

몰린다고는 하나 그래도 너무 외소하여 보입니다. 

지난번에도 특히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단 한가지 김정일에대한 비판만은 신뢰하기 힘든 점수를 기록하어 우파쪽의 많은 분들이 박근혜를 버리고 당선 가능성만을 생각하여 이명박씨를 선택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박근혜씨는 또 동일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씨도 사시인가요 ?

이런 확인사항에서 불만이 쌓여 간다면 우파는 자꾸 견제하는 잽이 들어 갈 것 입니다.
태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고사가 불가피 합니다.

이제 우파는 다시는 회색분자를 선택하는 일만은 없을 것 입니다.

선거를 치루고 이겼다고 하는 순간 이재오의 난을 겪은 우파는 참으로 참담하고 황당하였습니다. 그런꼴을 다시 볼 것 입니까 ?

오세훈이가 대권 운운한다는데 참으로 기가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 입니다.

오세훈이를 대권까지 쥐어 주면 도데체 얼마나 더 기가막힌 최열이를 찾아서 또다시 우파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것 입니까 ?

 

 

---------------------------------------------

 

이명박 대통령 과거사 정비에 불편한 심기

 

CBS 정치부 이재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친일파 명단 공개와 관련해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며 사실상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각종 과거사위원회도 법 개정을 통해 전면 정비할 뜻임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기독교 불교 등 7대 종단 대표와 청와대에서 오찬을 갖고, 일류국가 도약을 위한 '제자리 찾기'를 강조했다. 우리 민족이 열심히 살다보니, 효도나 경로 사상 같은 자랑스러운 정신 유산들이 서양 문물에 묻혀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가족 복원 운동'을 벌이려 한다며, 종교계의 적극 협력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유산 복원을 강조하면서도, 과거사 정비에는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오전에 공개한 친일파 명단과 관련해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일본도 용서한 마당에, 국민 화합 차원에서 친일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시장 재임 시절 후손들이 빌라를 짓기 위해 매각하려던 미당 서정주의 생가를 사들여 복원한 사례를 들었다. 어쨌든 대표적 시인인데, 잘못은 잘못대로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 가서도 사과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맡겼다'면서, 당시 불거진 논란에 대해서도 '국내에선 매사를 너무 정치적으로 따진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각종
과거사 위원회에 대해서도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라고 강한 불신을 나타내면서, 조만간 법을 개정해 전면 정비할 뜻임을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도 이날 각종 과거사 위원회가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놔, 이 대통령의 이런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