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槿惠씨는 2002년에 李會昌 당시 총재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고 왔다. 그 후 朴 의원은 金正日을 비판하지 않는다. 김정일 비판 없는 북한 정권 비판은 논리상 불가능하다. 그의 訪北에 김정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무슨 목적으로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더 조사해봐야 할 대목이지만, 朴 의원의 反共자세는 訪北 이후 거의 중성화되었다.
북한정권은 역대 한국의 대통령과 대통령감을 상대로 한 공작을 계속해왔다. 그들은 朴正熙 대통령을 죽이기 위한 세 번의 시도 끝에 陸英修 여사를 살해하는 데 성공한다. 미얀마를 방문중이던 全斗煥 대통령에 대한 金正日의 암살지령으로 17명의 장관급 엘리트가 죽었다.
북한정권은 물리적으로 대통령을 제거하는 방법과 함께 이념적으로 去勢시키는 공작을 폈다. 북한은 1973년 도쿄에서 한민통 조직을 조종하여 金大中씨를 의장으로 추대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엔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를 앞세워 노벨평화상에 집착하던 김대중을 유혹, 제1차 평양회담을 成事시키고 반역면허증인 6.15 선언을 만들어냈다.
북한정권의 對南공작 담당이던 김용순은 1993년에 일본 아사히 신문기자 고바야시 게이지의 중계로 金泳三 대통령 당선자에게 “취임 연설문을 민족적 관점에서 써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를 받아들인 金泳三은 취임연설에 이런 대목을 끼워 넣었다.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 다 주지 못합니다. 김 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도 같은 민족인 북한보다 나을 것이 없고, 자유민주주의나 자본주의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 다 주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이 대목은 金日成의 말을 金泳三이 대신 해준 격이다. 이때부터 金泳三 대통령의 머리 속으로 좌경적 민족주의가 들어가 정책화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전면적 부정, 보수층 공격, 중앙청 철거, 소위 역사바로세우기에 따른 12.12 사건과 광주사태 재수사, 全斗煥-盧泰愚 구속, 보수분열 등등. 연설문 공작은 성공한 셈이다. 金日成은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카터에게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듣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감동’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李明博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이념을 떠난 실용’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북한의 공작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좌경화 흐름에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보인다. 대통령 주변엔 ‘이념적 기회주의자’로 분류될 사람들이 많다. 애국시민들의 국가보안법死守투쟁을 공개적으로 경멸한 인물도 있다. 李 대통령의 ‘이념을 떠난 실용’은 친북좌익과 싸우지 않으려는 자세로 해석되었다. 이것이 좌파선동세력에 역습의 기회를 준 것이다.
"남조선 대통령의 이념을 해체하라!"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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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20, 00: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