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自由세력으로 위장한 美 좌파 인사

김정일의 친구 '메들린 올브라이트' 前 국무장관 (3)
[1]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그녀의 아버지(조셉 코벨)는 한 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얼마 전 소수의 인터넷 독립언론들은 그녀의 유태계 혈통을 폭로한 바 있다. 대다수의 유태계 ‘일루미나티’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 비러시아 유태인들로 레닌/스탈린의 적색테러를 지원했다.” (美 월간 베니티 페어, 1997년 11월호)

[2] “1930년대 미국에서 유태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지하세포의 80% 이상을 차지했으며, 1947년 스미스 법안에 의해 기소된 공안사범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유태인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를 만인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미국 공산당의 유태인 수뇌부는 간부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개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외부의 눈에 띄는 직위에는 항상 지방출신의 비유태계 인물을 배치했다.”

(출처: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K. Kann, Joe Rapoport, 1981; Klehr, Haynes & Firsov,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 1995; A. Liebman, Jews and the Left, 1979)

[3]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국제정치 분야에 심취하게 만든 대학시절 은사는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아버지인 조셉 코벨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2005년 5월9일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 말하건대 미국은 물론 ‘북한이 주권국가’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명백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김대중·김정일 정권 옹호 발언-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이 만나기로 한 것 자체가 역사적이지만 만일 그들이 일부 매우 심각한 문제들에 관해 모종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 회담은 더욱 역사적인 것이 될 것이다.” (2000년 4월13일 미 상원 세출위원회 대외활동 소위 참석 발언)

▲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평양은 아름답고 인상적인 도시다. 나는 김 위원장과 6시간 동안 회담했을 뿐 아니라 만찬과 집단체조 관람 등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good listener) 훌륭한 대화 상대자(good interlocutor)이다. 그는 실용적이고(practical) 결단력이 있다(very decisive)는 인상을 줬다.” (2000년 10월24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가진 북한 방문 결산 기자회견)

▲ “내가 생각하기에 남·북한과 외교를 하면서 가장 (큰) 결실로 느끼는 것은 분명히 작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한 일은 한반도의 전체 역동성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나는 김 위원장에 관해 김 대통령이 느낀 것과 많은 부분, 똑같이 느꼈다. 김 위원장은 합리적인 대화자(interlocutor)였다. 또 전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원맨쇼(one man show)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매우 흥미롭고 친근감이 있다고 느꼈다.” (2001년 3월7일,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1일(2002년 2월1일) NBC방송의 아침 종합 뉴스 프로그램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2002년 1월29일) 국정 연설에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싸잡아 취급한 것은 ‘커다란 실수’라고 못박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행정부를 떠날 때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출 중단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협정의 체결 가능성도 탁자 위에 남겨 놓았는데 그것을 멀리 한다면 실수’라고 전제하고 ‘북한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들 세 나라를 한데 묶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 “김 위원장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같은 개혁가는 아니나 그와 대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는 전체주의 교육을 받았고 비현실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나 미치광이가 아닌 끈질긴 협상가다.” (2003년 1월13일 르피가로 인터뷰)

▲ “부시 대통령은 계속 ’악의 축’에 관해 얘기하는데, 진실은 이들 악의 축 3개 나라(북한, 이란, 이라크)와 우리의 관계가 과거보다 나빠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나 이란과 얘기하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에선 혼돈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06년 9월13일 합동기자회견)

▲ “‘악의 축'으로 대변되는 네오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면서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분법적 시각은 진지한 검증 과정을 통해 실패가 입증됐고, 세계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으며, 무력만으로는 악에 맞설 수 없다.” (2007년 3월20일, 독일 일간지 디 벨트 인터뷰)

▲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북한이 이웃국가들이나 미국에 위협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최고 목표가 돼야 한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대북 협상을 거부해선 안 될 것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어릴 적 비스킷이나 초콜릿, 껌을 건네준 미군을 통해 미국을 기억하고 있고, 미국인들은 한국전에서 3만6천명 이상의 미군이 사망한 점을 들어 한국이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금 한국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중략) 김 위원장은 여성에게 정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매우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박식한 사람이다.” (차기 미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내는 메모: 미국의 명성과 지도력 회복 방안, 2008년 1월9일)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와 공산주의의 기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악한 자가 악한 일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듯 현자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비밀결사에 의하지 않고서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다. 이 교단의 특별한 목표는 기독교를 말살하는 것이고 모든 시민정부를 전복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76년 5월 1일)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용어는 1830년대 말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유럽 내 비밀조직인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광명회)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한 지파로서 18세기 후반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창설됐다.

이 조직의 창시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upt)는 1748년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재학 중 많은 책을 읽었으며, 특히 프랑스의 루소 같은 이의 철학 사상에 심취했는데, 그때 그는 기독교교리에 대해 회의적인 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772년부터 모교인 잉골슈타트(Ingolstadt)대학에서 종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색다른 사상을 주창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후 프리메이슨의 조직법을 모방, 발전시켜서 ‘일루미나티’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일루미나티는 기독교 전통에 따른 모든 제도에 반항하면서 자유사상을 불러일으킨 철학적 비밀 단체로서, 특히 예수회와 수천 년을 이어온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Freemason)을 모방해 엄격한 동지애와 비밀 엄수를 강조했다.

잉골슈타트에서부터 시작된 이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1779년에는 바바리아 (Bavaria)지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때 단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괴테, 쉴러, 모차르트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바바리아의 왕 요셉2세까지도 단원이 될 정도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왕정이 아닌 공화국 정부 제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상황이어서 이들은 모임에서 주로 종교철학과 일반 철학에 대해 토론했다.

프리메이슨,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숭배

이들은 주로 루소, 모렐리, 마블리의 사상 따위를 논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루미나티는 평등주의와 합리주의를 근본 사상으로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루미나티가 항상 내세우는 모토(Motto)는 자유*평등*박애였다. 그러나 이들은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 숭배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맨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정치와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포장한 이들의 사조는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기독교와 대립이 생기면서 쌍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조직의 존재를 몰랐던 대중들은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의 중심세력은 프랑스에 이미 세워진 프리메이슨 총종단에 침투해 패권을 장악했고, 1786년에 미라보 후작(Marquis de Mirabeau)은 자코뱅 파리대학에 일루미나티 종단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자코뱅파가 된다. 프랑스에 뿌리를 내린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을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이를 통해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조직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570만 명의 단원을 확보하고 있다.

美 '해골종단'(Skull & Bones), 일루미나티 하부조직

특히 이들 중 일부 그룹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골종단`(Skull & Bones)을 조직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는 1830년에 이미 인간과 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프리메이슨 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 사상은 후에 니체가 받아들여 체계화 시킨 후 세상에 발표했으며, 이는 다시 파시즘(Fascism)과 나치즘(Nazism)의 근간이 되었다.

일루미나티의 프랑스 활동을 보면, 범법자로서 망명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 ‘파리 범법자동맹’이 있었고, 그 산하 조직으로는 ‘공산동맹’(kommunistische Internationale)이 있었다. 특히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프랑스로 유학 와 있다가 이 조직에 가입했다.

당시 공산주의는 일루미나티 회원들 가운데서 도 혁명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어였으며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한편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 뿐만 아니라 ‘러시아 공산 혁명’에도 관여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공산혁명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노동자와 농민을 너무 탄압하고 돌보지 않은 나머지 굶주림을 못 이겨 일어난 자연 발생적인 반정부 폭동이었고, 그것이 공산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여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진실은 따로 있다.

실제로 1814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을 할 때 파리를 점령한 러시아 장교들은 이곳에서 일루미나티 사상과 접하게 된다. 귀국 후 이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에는 두 개의 프리메이슨 종단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북극성종단’(the polar star)과 ‘남극성 종단’(the South Pole star)이 그것인데, 당시 이들은 수많은 부호들과 상류층 사람들을 입단시켰다.

실제로 ‘3면 작전’을 저술한 얀 코자크(Jan Kozak)는 공산혁명당시 러시아에는 3개의 세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러시아 왕가, 유태계 프리메이슨 조직에 의해 무너져

첫째는 러시아의 황제(차르*Tsar)의 권위를 박탈한 임시정부이고, 둘째는 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수많은 프리메이슨 계열 조직중 하나인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1882년 창설)종단, 그리고 셋째는 행동대라고 할 수 있는 조직폭력배가 그 세력들인데, 이중 전체를 통솔하는 세력은 역시 비밀조직이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영국군 첩보장교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전문가인 존 콜먼(John Coleman)박사는 지난 1997년 그의 저서인 ‘The Committee of 300’에서“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주요 공격 목표는 기독교였으며 레닌, 트로츠키, 케렌스키의 배후에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가진 강력한 조직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임시정부의 우두머리로 사회주의자였던 알렉산더 케렌스키(Alexander Kerensky, 1881-1970)는 ‘브나이 브리스’ 단원이었으며 조직 폭력배들의 중심은 사회민주노동당의 ‘블라디미르 레니’이었다.

한편 이들은 러시아 공산 혁명에 가장 앞장섰던 순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파에 대해서는 일단 혁명에 성공한 후 대부분 숙청 또는 유배를 보냈으며 이후 레닌파가 권력을 인계받아 악정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산주의는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 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이나 신이 없이도 물질 스스로 존재하고 진화 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다. 유물론은 정신세계를 일체 부정하고 종교, 양심, 도덕, 기존의 가치 등을 전면 부인하고 오직 혁명사상을 전파하며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이다.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종교 말살론

공산주의는 무신론 사상이며 종교 말살론 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아편”이라고 말했으며, 레닌의 경우 “현대 종교 특히 기독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 한 뒤 “교회는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의 원수이기 때문에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형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엥겔스는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을 물질로 구성된 고깃덩어리로만 보았다. 이외에도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는 서기장이 된 다음 “3년 안에 크리스천들을 다 없앤 후 마지막 한 사람 남은 것을 전국 TV에 보여 준 후 처치하여 크리스천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했다.

한편 공산주의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후버 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박사는 그의 저서인 `The Great Terror`(엄청난 폭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56년 2월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폭로하기를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의 90%를 죽였고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은 50%를, 군 장성 급의 60%를 처형했다.”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 소련은 귀족 및 군인, 지식인의 저항에 부딪쳐서 국내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켜 1941년 6월 바바로사(Barbarossa)계획에 의하여 소련을 침공함으로서 오히려 스탈린으로 하여금 공산혁명의 완성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당시 스탈린은 혁명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별하여 애국이라는 명분을 주고 이들을 징집하여 전선(戰線)으로 몰아넣어 이들 전부를 죽게 만들었다. 실제로 모스크바 전투시기인 1941년 6월 22일에서 11월 말까지 단일 전투에서 400~500만의 사상자를 냈다.

소련과 중국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대학살 사례

이 전투에서 제일 먼저 총알받이가 되어 죽은 사람이 바로 혁명의 방해가 되는 모스크바 인사들이었다. 소련은 전체적으로 2차대전시 군인 750만이 전사하였고, 군인부상 1400만, 민간인 사망이 1500만이 발생했다. 스탈린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하였다.

그는 소위 ‘에조프시치나’라고 불리는 대학살로 세계를 경악시켰다. 스탈린의 군부 대숙청은 계속되어 5천명이 넘는 고급장교가 처형되었다. 이 숙청으로 5명의 원수 중에서 3명, 15명의 군사령관 중에서 13명을, 85명의 군단장 중에서 57명을, 195명의 사단장 중에서 110명을, 406명의 여단장 중에서 220명이 처형되었다.

혁명에 방해가 되는 군부의 고급 장교들을 두하체프스키 원수의 죄목에 뒤집어 씌워서 처형했다. 공산주의의 대학살은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1948년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에게 패한 후, 대만으로 탈출을 못하고 본토에 남아 있는 옛날 장개석 총통의 군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공산혁명의 저해요소로서 한국전이 발발하자 이 군인들 20만을 소집하여 한국전에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명분 있게 다 죽일 수 있을까?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말 그대로 UN군의 지뢰밭과 화망(火網)지역을 사람으로 바다를 만들어 공격을 하는 전술이다. 혁명의 방해요소인 장개석 군대의 국부군 출신을 항미(抗美)전쟁이라는 구실로 자연스럽게 제거했다.

그 후 모택동은 전 세계가 경악한 홍위병의 문화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혁명의 적대세력인 지식층을 10대와 20대 초반의 공산주의 맹신자를 동원하여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다. 폭력과 체형 및 체벌 행위를 자행하고 대상자를 비참하게 참살했다.

가난한 자가 지식인과 가진 자에 대한 투쟁은 항구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은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칼 막스의 계급투쟁 정의를 철저히 이행했다. 이때 피해를 입은 인사가 처형된 사람이 10만을 넘고 투옥(投獄) 및 고문으로 불구가 된 인사가 2억에 이른다.

칼 포퍼, “공산주의는 악마가 꾼 꿈”

2차대전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한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Sir Karl Riamund Popper)는 그의 저서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敵)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칼 포퍼는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 공산주의는 날조된 것이며 ‘악마가 꾼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사회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 도래해야 한다고 예견했던 ‘역사주의적 관점’도 오늘날에 와서 오류임이 판명되었다. 칼 포퍼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생각을 도덕적으로 매우 그릇된 발상이라고 보았다.

과학자의 이론, 법관의 판결, 정치인의 정책, 경영자의 결정, 신학자의 교설 등 우리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포퍼는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적 진리, 영원한 지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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