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 토론 아쉽다

권준욱(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팀장)

기고 |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 토론 아쉽다

 

글 | 권준욱(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팀장)


영국의 저명한 의학통계학자인 더글러스 알트먼은 ‘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흔히 이전에 발표된 의학 논문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약품이나 치료 기술의 장점을 선전하곤 하지만, 근거라고 제기된 논문의 이면에 숨겨진 임상 시험 및 통계적 방법이 갖고 있을 수 있는 허점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 논란을 보면서, 필자는 바로 이 격언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과학적인 사실에 관한 한 올바른 근거와 엄밀한 해석을 바탕으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떠도는 소문이 더 진실한 근거로 간주되고 감정적인 선동이, 차분한 해석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을 입국 금지시킨다느니, 변종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같은 식기를 사용하기만 해도 옮겨진다는 등의 거짓 소문이 인터넷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심지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문에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믿고 이를 다시금 널리 퍼뜨리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과학적, 의학적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인 토론과 분석이 불가능한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말았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물론이고, 의사협회 등 전문가 단체 등이 변종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냉정하고 학문적인 견해를 발표하면, 여론은 이들을 대중의 목소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기 일쑤다.

 

과거 후천성 면역 결핍증, 즉 에이즈(AIDS)가 처음 국내에서 발생했다고 보고되었을 때 사람들은 에이즈에 관한 온갖 근거 없는 뜬소문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이후 에이즈의 전염 경로에 대해 많은 홍보가 이루어진 덕분에, 이제 더 이상 에이즈 감염인을 쳐다보거나 같이 앉아 있기만 해도 전염된다는 소문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에이즈 감염인들이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고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변종 광우병은 분명 공공 보건에 잠재적인 위험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감염 시 치명적인 질병이다.  필자는 이러한 명백한 과학적 사실마저 부정하고 덮으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과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공 보건상 위해를 초래하는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성적으로 토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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