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쪽 분량에 국가 안보·해군 사랑 가득
‘태풍 매미’ 위기 극복 사연 등 일화 ‘눈길’
폭탄주 문화 비판 등 애정 어린 조언 수록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남해안을 엄습했다. 전례 없이 강력한 태풍의 위력 앞에 진해만 B구역에 투묘했던 민간 상선 17척이 암초와 해안에 좌초했다. 남해안 일대에서는 서른 척이 넘는 민간 선박이 침몰했다. 하지만 해군에서는 단 1척의 함정도 좌초·침몰한 사례가 없었다. 피해율 제로의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언론에서는 미처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해군의 주요 함정이 집결한 진해에도 엄청난 위기가 닥쳤다. 120노트의 엄청난 강풍과 해일 파도로 진해 군항 내 부이에 매달려 있던 초계함 4척의 계류 체인이 절단됐다. 초계함은 기관을 가동, 높이 5m에 달하는 파도가 몰아치는 군항 주변을 항해하면서 목숨을 건사투를 벌여야 했다.
좁은 수로 내부에서 부이에 계류해 대피 중이던 고속정 2척도 위험에 처했다. 고기를 잡는 대형 정치어망이 파도에 밀려와 고속정을 덮쳤다. 고속정 2척은 그물에 뒤엉킨 상태로 마구 떠밀려 갔다. 육상에 연결된 로프가 절단된 상태로 떠밀리면서 좌초 위기에 몰린 함정도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면서 비상 이함 허가를 요청하는 통신이 빗발칠 정도였다.
이 엄청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군 장병들의 사전 대응조치와 탁월한 위기 대응 능력에서 나왔다. 원래 태풍이 올 경우 대형 함정은 진해만 특정지역에 투묘했으나 2003년 태풍 매미의 내습 당시에는 마산 서항에 투묘했다. 해군의 판단은 적중해 같은 지역에 투묘했던 민간 선박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해군 대형 함정들은 좌초를 피할 수 있었다.
교범보다 더 일찍, 태풍 내습 48시간 전에 함정대피를 시작함으로써 시간 여유를 갖고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도 피해 최소화에 도움이 됐다. 추석 연휴가 겹친 점을 감안, 사전 조치한 것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해군 전단장·전대장·각급 함장과 정장들의 리더십과 승조원들의 눈
물겨운 노력이었다. 진해 군항과 인근에 대피한 함정은 무려 250여 척. 그중 16척이 위기 상황에 몰렸으나 전단장부터 수병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한 것이 위기 극복의 결정적 동인이 됐다.
그물에 뒤엉킨 채 떠밀리던 고속정의 편대장과 정장은 다리 사이의 교각에 충돌할 위기를 뛰어난 조함 실력으로 극복한 후 저수심에서 비상 투묘해 배를 살려냈다. 해상근무 경험이 부족한 초급 지휘관이지만 탁월한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 배와 승조원들을 구한 것이다. 2000년 이후 해군함정에 위성항법장치(DGPS)를 설치 운용한 것도 위기극복에 도움이 됐다.
이 같은 비화는 최근 발간된 김성만(해사25기·예 중장) 전 해군작전사령관의 회고록, ‘한 해
군의 이야기’에 실려 있는 일화의 한 대목이다. 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유도탄고속함·초계함·구축함 함장과 3함대사령관, 합참전략기획부장,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사관학교장을 역임하고 2005년 6일 예편한 김 제독의 회고록에는 해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일부 사람들은 “회고록이란 자기 자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버무려진 기묘한 책”이
라고 폄하기도 한다. 적어도 김제독의 회고록은 이런 일반적인 회고록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김제독의 회고록에는 자신에 대한 자랑보다는 상관·동료·후임·부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칭찬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서 시작, 36년에 걸친 군생활을 갈무리한 298쪽 분량 회고록의 각 페이지에는 안보에 대한 관심과 해군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녹아 있다. 사람이 아닌 제도와 관행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에서 접근한 내용도 있지만 대안과 개선방향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군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내용도 많다. 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탄주 문화가 군사외교에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문의 02-722-9411~9413
국방일보 김병륜 기자 lyuen@dema.mil.kr
2008-05-30 8면
바다와 싸워 온 해군제독 38년 비망록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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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30, 09: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