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정권의 후퇴와 이 나라의 운명

'원내대표’라는 홍 준표 쇼꾼이 “국민이 성내면 항복해야지”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의 눈에 비친 막무가내의 미친 시위꾼들이 ‘국민’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지금 노는 꼴이란 두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소롭다. 7일째 거리에서 벌어진 미친 ‘촛불시위’의 狂亂이 이제 권부에 진입하려 온갖 지랄발광을 부리고 있는 마당인데도 한나라당과 정부는 이번 수입 쇠고기 파동에 대해서 ‘당당한 당위성’의 메시지를 국민 앞에 내놓기는커녕 어찌 하면 저 오합지졸의 군상들에게서 노여움을 풀 수 있을까, 안절부절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 나라 장래가 風前燈火가 아니고 무엇인가?




듣자하니 ‘원내대표’라는 홍 준표 쇼꾼이 “국민이 성내면 항복해야지”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의 눈에 비친 막무가내의 미친 시위꾼들이 ‘국민’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민심’수습 안으로 내각 쪽의 몇몇과 청와대 보좌진 가운데 몇몇 사람을 희생 제대 위에 희생양으로 올려서 성난 天心인지 성난 民心인지를 푸는 푸닥거리를 벌이는 방안을 오늘 MB와 당 대표의 회동 때 당 대표를 통해 풀어 보일 예정으로 있다나.




본인은 일본에서 살다가 8.15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역대의 정권들을 두루 보아왔지만 할말을 제대로 당당히 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못 했다”느니 하면서 월령 3개월을 가까스로 넘긴 마당에 ‘사과’를 넙죽 하는 허약한 정권은 처음 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젖비린내 나는 어린 세대들 앞에 ‘국민’이니 ‘민심’이니 하는 추태를 보이면서까지 사과를 했으니 그 후에 올 사태란 눈감고도 훤히 보이는 일이다.




저 젖비린내 나는 세대일망정 사과-항복했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시키는 대로 현 정권은 따르라. 그러지 않으면, 박살내겠다”라고 하는 다이너믹스(역학)를 들고 나오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다. 물론 이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세대는 친북좌익 세력의 한 통속인 방송매체들,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정치세력들, 북을 마음대로 드나든 시민단체들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최면-세뇌 당한 ‘피사체’(被寫體)이자, 현 정권의 타도에 도구로 쓰일 ‘혁명의 전위대’이겠지만, 그 파괴력은 가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 기간(1965년-1975년) 극좌이념에 차 있으나 국가권력에 소외되어 온, 소위 ‘조반파’(造反派)들이 국가주석 류샤오치, 덩샤오핑 등등의 ‘실권파’들을 권력구조로부터 몰아내기 위해서 홍위병 난동을 일으켰을 때 문혁소조(文革小組)의 말단이 바로 젖비린내 나는 그 홍위병이라는 10대-20대의 세대들이 주축이었다.




반혁명분자로 몰려 길거리에 개 끌려 다니듯이 끌려 다니면서 손주 손녀 뻘 되는 젊은 세대에 의하여 귀싸대기를 얻어맞거나 땅바닥에 꿇어앉히거나, 자기 죄과를 스스로 자복하면서 두 손 모아 빌라는 둥 온갖 수모의 조리돌림을 당하곤 한 것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 같다.




그런 홍위병의 악몽이 이 나라에 재현하려는 몸서리나는 순간을 우리 국민이 응시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 있다. 본인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지금의 MB는 黨政을 막론하고 政治力學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정치에 대해서 문외한인 것처럼 보인다. 국내정치이고 국제정치(군사력과 외교력이 바탕 된다)이고 어떤 정치이든 정치는 통치에 관련될 때에는 정치는 힘이다.




이것은 본인이 지어낸 말이 결코 아니다. 어떤 힘이든(치자는 다수의 의석이든, 제계급과 제이해관계의 통합능력이든, 공권력이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이든, 여론의 지지도이든 뭐든 그러한 모든 힘을 통치의 밑바탕으로 自己內面化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통치자이다) 힘이 결여되어 있거나 힘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치는 사실상 실종되고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월령 3개월 된 MB 정권의 현상(現狀)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국내정치 상황인식의 결여와 그 타성(친박 세력 간의 이해조정), 국가중책의 인사에 있어서의 무원칙성, 상당히 덤벙거리는 듯한 외교안목과 졸속행사, 쇠고기 수입이 한미 간의 단순한 교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친북좌익 세력들이 벌일 수 있는 갖가지 돌발변수(突發變數)들을 사전에 점검해서 그 변수들에 대한 대처방안을 사전에 치밀히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돌발 변수 등에 놀라워하는 무대응성 등등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지만, 월령 자체가 말해주듯이, 그 정도의 실책들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실책들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사후약방문 격이 되더라도 그 돌발변수들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손을 쓰지 않고 오직 촛불시위와, 그 성난 10대-20대의 ‘가짜민심’에만 골몰해서 앞으로 더 낮은 데로 저자세로 임할 터이다, 라는 사과성 발언 따위로 계속 나간다고 해서 과연 사태가 해결될 것인가?




어림도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 성서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제 ‘희생양’을 제대(祭臺) 위에 올리는 제물(祭物)로 바치고, 경우에 따라 ‘재협상’도 하겠다는 나신(裸身)을 드러내 보이더라도 저 미쳐 날뛰는 ‘촛불세대’가 한창 집단 히스테리와 집단 광기의 절정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저 혁명의 몸짓을 과연 멈출 것인가? 저 촛불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소위 좌빨 세력이 멈추거나 뒤로 물러날 리가 천하에 만무하다.




그렇다고 하면, 답은 뻔한 것이 아닌가? 첫째로 MB 정권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호랑이와 그 호랑이에 잡아먹힌 할멈 동화처럼 팔과 다리 하나씩을 다 떼어줄 때까지 양보의 미덕을 계속했다간 MB정권의 운명은 차치하고라도 대한민국 호의 운명을 우선적으로라도 생각해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촛불시위대와 이들을 부추기는 친북좌익 세력들을 분리시켜야 옳다. 침해된 법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헌법상에 규정된 ‘의법조치’(依法措置)에 따라 촛불의 어린 세대들을 ‘선동’하고 ‘민심교란’을 획책하는 방송매체들을 비롯한 친북좌익의 배후세력(정치인들과 시민단체, 미친 사제단 등등)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 저 경찰 특공대를 출동시키라. 선동과 민심교란들을 획책하는 붉은 무리들을 그냥 두고 물대포만 쏜다고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위기'(risk)가 '기회'(oppotunity)란 말이 있다. 지금까지 실기(失機)해 온 친북좌익 세력을 사실상 정화(淨化)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번 파동을 계기로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이 나라는 다시 일어서지 못 할 것이란 너무나 자명하다. 지난 10년 동안 붉은 두 통치자를 비롯한 남북 연방제 연대세력이 이 나라 구석구석 깔아놓은 김 정일 이미지 덩어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위정자들은 깊이 인식해야 옳다.




전직 두 통치자는 명색이야 가톨릭(천주교)이지만 그 속이 얼마나 위험한 '닫힌 민족주의' 내지 '전체주의'에 경도된, 사이비 크리스찬인데(그리스도 사상과 거리가 먼) 반해서 이번 신정권의 MB는 현실에다가 ‘기독교 사상’을 무턱대고 적용하려는 것이 오늘날 ‘촛불대란‘의 본질이라고 생각된다.




그 기독교 사상을 적용하려는 그 목적성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현실적 단계를 무시하면 오히려 역작용과 반발이 커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옳다. 조선조에 ’서학‘이 이 나라에 전래될 때 부모를 공경하는 유교사상이 담긴 ’제사의식‘과 기독교 사상 사이에 어떤 대립 충돌이 일어났는가를 돌이켜보면 충분하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별 잘못이 없는데도 곧잘 입버릇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의례적(儀禮的)으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값싸게 사과를 하는가 하면, 진짜 사과를 해야 하는 당연한 상황에서는 죽어도 사과를 못 한다는 똥배짱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얼마 전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서 통치자는 ‘사과‘할 성질이 아니다. 그렇게 사과를 할 권한은 소망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계 인사들에게는 있는지는 모르겠다.




대통령이 사과할 일이 있다면, 한미간에 ‘쇠고기 완전개방‘이라는 목표설정이 잘못된 경우이다. 그것이 한미 간의 공동번영과 동맹을 가는 길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사과한단 말인가? 그리고 소소한 외교적 실책은 보완했으면 그 문제는 아래 해당부서와 총리가 사과했으면, 그걸로 넘어가야 하는데도 대통령이 사과함으로써 한미간의 외교 목표를 국민이 바라보는 ’대통령으로서의 근본적 철학‘ (grand policy)이 애시 당초 잘못된 양 국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대통령의 그런 사과는 공동체 구성원 간에 호혜적으로 살아가는 기독교 사회주의 모습의 일환으로서 건전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구약 신약 성서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대 민족이 오랫동안 외세(원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낀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있을 때부터 그 지역은 이 지구상의 비옥한 2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무수한 이민족들이 그 노른자위를 빼앗기 위해 피나는 각축을 다투다가 결국 이민족에 밀려 난민으로 정착한 것이 이스라엘 땅이었다. 그 후로도 이집트, 바빌로니아, 로마 등의 침략을 받은 끝에 나라가 없는 지고이네르 민족이 된 것은 다 아는 일이다)에 시달려 온 탓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마조히즘(피학대증)이 꽤나 심한 민족이라고 생각된다.




구약 성서를 보면, 희생양과 번제(燔祭)가 자주 나온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노여움이 현실로 나타난 것으로 판단한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풍속으로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희생양’과 ‘번제’를 신에게 바쳐 온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마침내 신과 인간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죄를 대속(代贖)할 ‘대속 양’(희생을 치를 ‘어린 양’)이 온다는 메시아 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구약과는 달리 신의 모습에서 '인격화'(personalization)된 모습(화낸다든지, 복수를 한다든지 하는 인간의 발가벗은 모습들)은 보이지 않지만, 구약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꽤나 신약시대에 드리워진 것은 역시 이스라엘 민족이 ‘무서운 절대자’인 신에게서의 ‘마조히즘’(피학대증)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넉넉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본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에 대한 ‘보복의 두려움’과 ‘희생양’의 본질에 대해서 누리꾼들과 좀 더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그것이 본지(本旨)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본인이 성서적 사실을 거론한 것은 금번 MB정권의 ‘사과’와, 학교 시절 열등생이 자꾸 머리를 앞 쪽으로 처박은 채 엉덩이를 높직이 드러낸 채 숨기를 잘 하는 그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을 얘기하기 위해서이다.




마조히즘과 기독교는 오랜 역사적 인연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뒤로 물러나고, 양보하고, 다 좋지만, 이 나라는 얼마든지 양보만 하다가 전체주의의 시궁창으로 들어가도 ‘주님의 뜻’으로 치부해도 좋은 기독교만의 국가는 결코 아니다.




그 마조히즘이란 창녀처럼 날이면 날마다 북한처럼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MB의 순수성이 그렇게도 ‘순정주의적’이고,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데아를 적용시키는 그 신앙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그리스도 사상 자체가 현실적으로 변증법적으로 이 나라에 적용되어야 할 일이지는 모르나, 마구 잡이 식으로 마조히즘을 노래해서는 이 나라와 이 백성이 모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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