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法者들을 편드는 언론과 야당에 맞서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 여사의 작품 가운데 “마른 잎은 굴러도 대지는 살아 있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외람스럽게도 이 제목을 흉내 내어 “정권은 굴러 다녀도 아스팔트는 살아 있다”라고 표현한다면, 누구 말대로 미쳤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지 도심의 도로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서로 편리하게 오가야 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잉 정치문화의 욕구로 채워져 있는 인간들은 곧잘 도심의 광장 내지 대로를 자기 집 거실 정도로 이용하려는 것은 그것이 주간일 때 허용될 수도 없지 않으나, 야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대로의 교통을 무작정 방해하면서 시민의 안면(安眠)과 정밀(靜謐) 평온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야 함에도 ‘촛불 등’을 들고, 설겅설겅한 정치구호를 허공에 날려 보내면서 시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위문화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촛불시위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들의 시민 내지 개인 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어서 안 되는 ‘야간’이라는 환경에 위해(危害) 마저 주려는 고의성을 은밀하게 띠고서 몇 만 명이라는 시위 꾼을 운집시켜 마침내 그 다중(多衆)의 위세를 과신한 군중심리(群衆心理)에 의하여 권부(權府)의 핵을 향해 POLICE LINE인지 STATE LINE을 넘어서는 것은 법과 질서를 근본부터 유린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물대포’라든지 ‘최루 가스’이라든지 전경 차량으로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다소 무거운 억지선을 마련하더라도 그러한 무정부(無政府)를 고의적으로 야기하려는 세력을 막는 것이 치안을 1차적으로 맡은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이든 상식에 속한다. 바꾸어 표현하면, 정권(政權)이 길거리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상황을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은 첫째로 이 나라는 수가 틀리면, 통치자를 운전석에서 하시라도 끌어 내릴 수 없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못 마땅하면, 헌법에 의거해서 ‘탄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할 일이지 ‘조리돌림’이나 ‘문화혁명적 홍위병 난동’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사적(私的) 린치는 우리 헌법이 절대로 허용치 않는다. 둘째로 밤의 고요와 정밀, 평온, 안면 등을 해치려는 어떠한 세력으로부터도 개인 또는 집단의 안녕과 재산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요즘 이 나라의 방송 매체들에게는 어느 나라의 미디어인지 그 국적(國籍)과 정체성(正體性)을 알아보기 힘드는 것은 본인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해방 후의 남노당 떨거지들이 신문사와 방송국에 침투해서 그들의 당파성(黨派性) 내지 정파성(政派性)을 선전하는 똥 나팔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방송 미디어들이 방송 기자들이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친북좌경적인 학자들을 동원해서 떠들게 하는 하나는 시위꾼들의 ‘표현의 자유’와 ‘시위의 자유’라는, 소위 헌법적 권리를 경찰이 유린하고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과잉방어’로서 ‘물 대포’ ‘방패막이’ 곤봉 등등을 마구 쏘아 젖히거나 마구 휘둘러 시위자들에게 마구잡이로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떠들게 하고 있는 일이다.
시위꾼들이 peace line을 넘지 못하게 전경 차량들로 바리케이드를 쳐놓으면, 차량 지붕 위로 벌 떼 같이 올라오는가 하면, 차량을 넘어뜨리기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어디 ‘평화적인 표현의 자유“이고 ”평화적인 시위의 자유“에 들어가는 것인가?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연상될 정도이다. 소위 ’개미군단‘보다 더 많은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물밀 듯이 청와대를 바로 코 앞에 둔 통의동(通儀洞) 대로를 메우고 밀칠 때 경찰이 물대포를 쏘지 않고 그 시위꾼들을 정중히 청와대로 모시란 말인가? 이 기회에 미국에 있었던 법질서를 사수하기 위해 공권력이 벌였던 ’군사작전’ 을 방불케 했던 사례를 두 가지 들고 이 글을 끝막음하고자 한다.
하나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있었던 미국 뉴욕 주에 있었던 철도노조의 대파업(strike)이었다고 생각된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노동조합과 할리우드 등에 적색분자들이 침투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소란을 일으켰던 시기가 아마도 ‘60년대 중반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저 유명한 레이건 대통령도 일개 배우로서 할리우드라는 영화계에서 적색분자들을 이 잡듯이 찾아내 퇴출시키는 운동을 벌였던 것은 꽤 알려진 일이다. 적색분자들이 뉴욕 주의 철도 노동조합에 침투해서 대파업이라는 분란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이 좌익 노동자들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D-day가 다다랐을 때 철도노조의 파업은 주요시설의 파괴 내지 무용화(無用化)를 시도하면서 그 막이 오르자 당시 뉴욕 주 당국은 ‘노동자의 파업을 벌일 법익’과 ‘공공질서의 법익’(불특정 다수의 통행권)을 비교해서 노동자의 권익보다 공중의 권익이 압도적으로 무겁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파업을 분쇄하는 철권을 내리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들이 상상하기로는 경찰 병력이 현장에 투입해서 체포하여 연행하는 그런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미국은 개인의 신상보호의 차원에서 총기휴대가 가능한 나라이다. 주 당국은 주 방위군과 인근 주에서의 방위군을 차출해서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작전으로 총격을 가하는 살벌한 토벌을 벌임으로써 대파업을 막아내고, 이로써 전국적으로 파급될 거대한 노동운동이 피로 젖은 채 침묵으로 끝났다. 이로써 향후 미국에서는 과격한 노동조합의 파업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관련될 때에는 우리나라처럼(노동조합을 한없이 보호하는 레닌의 ‘노동조합 국가’처럼)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나라에는 드물다. 또 하나의 사실은 미국이 학생시위들을 한국처럼 그것이 주어진 민주국가의 응분의 권리인 양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베트남에서 식민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프랑스가 종전 후 디엔비엔푸 등지에서 호치민 군대와의 대접전에서 패하고난 뒤부터 점차 본국으로 물러남과 동시에 미국이 그 자리를 1965년경부터 메워 나가기 시작함으로써 전운이 베트남과 미국 간에 감돌기 시작한 것이 저 유명한 베트남 전쟁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여론은 양 갈래로 갈라져 매우 뒤숭숭하였다. 전쟁을 지지하는 쪽과 反戰으로 갈라져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학내 분위기가 맹렬한 반전 운동으로 學內 면학 분위기가 심히 침해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본인은 ‘70년대 후반에 모종의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미국 문화원에 들렀다가 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 못 하지만, “대학가의 모반”이라는 책 한권을 우연히 대하게 되었다. 그 내용이 저널리즘을 통해서 전혀 접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얘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월남전이 최고 피크에 달했을 때의 미국 대학가, 특히 동부의 아이비 리그(미국의 전통-명문 대학교인 하바드, 예일, 프린스톤 등등을 일컫는 말)의 학내 면학 분위기는 급진적 행동주의 과격학생들에 의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뜨려져 있었다.
미국의 대학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규모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한 도시를 연상케 한다. 하바드 대학 구내가 사진으로, 스케치 뎃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어디 어느 곳에 어떤 부류의 학생들이 얼마씩으로 집단을 이루어 항거를 한다든지 하는 것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으며,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주 방위군과 군견이 얼마나 동원되었고, 어떠어떠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는가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작전지도가 곁들여져 있는 가운데 주 방위군이 쳐 들어간 방향으로의 화살표와 학생들이 달아난 방향의 화살표, 그 달아난 방향을 막아선 주 방위군의 화살표 등등과 양쪽이 부딪쳐 전투를 벌인 곳에 곱표(X)가 그려져 있는 상황을 보고 본인은 미국이 이렇게도 ‘무서운 민주사회’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비록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원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이기는 하나 총격으로 쓰러진 남녀 대학생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굴러져 있는가 하면, 군견이 달아나는 학생들의 팔과 뒷등을 물어뜯는 장면의 사진도 있었다. 한 가지 꼭 지적해야 할 것은 미국의 신문-방송들은 ‘엠바고’(보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조건으로 취재는 허용되지만, 국가이익을 위해 철저히 신문-방송이 협조한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전은 엄격히 취재가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대부분인가 하면, 엠바고의 조건에서 허용되거나 보도를 허용하는 부분 등 그 조건이 각기 달랐다.
본인은 이번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정부-여당(친북좌경의 야3당과 같은 반역적 인식에 동조하는 예도 보인다)은 보다 사태를 적극적으로 수습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취하기보다 오히려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어 청수 경찰청장 이하 전경들은 참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 마음 한 구석에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더욱이 야3당의 정치인들이 어 청장을 방문해서 “과잉진압”에 대해서 항의했을 때 “시위자들이 오히려 불법시위를 하였다” 고 반론을 제기했다. 미국이 우리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하면 ‘공공질서의 공적’들에게 가차 없이 총격을 가함으로써 상당한 희생자가 났으리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는 나라이라는 점을 시위꾼들이나 정부-여당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공짜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여당이 법질서 파괴범들에 밀려 “국민의 뜻”이니 “민심”이니 “성난 민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범법자들의 요구를 죄다 들어주면서 항복하는 나라는 미국이고 유럽 어느 나라이고 간에 눈 닦고 보아도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
하너리 맞습니다. 사살을 한시킨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그랬다죠. 한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수립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거라고.
김영일님 좋은 하루되세요. (2008-06-04 오전 7:55:)
김영일 우리나라 법질서의 확립은 미국 정도는 되어야지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들과 붉은 시민단체들을 도요다와 놈현이 우군으로 보아 온 온정과 특혜가 이 나라를 '시위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죠. (2008-06-04 오전 7:56:)
한마디 한 십여년 이상을 시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디만, 시위현장에서 최류탄과 화염병이 날리는 광경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극렬한 시위가 없이 그 나마 나라가 조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저희들 편인 좌익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니까 그 동안 잠수하고 뒤에서 세력을 키워 오다가 이제사 수면 위로 그 실체를 들어 내 보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겁니다.
그 동안 이명박이 들어내 놓고 좌익척결을 외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이 땅위에 독버섯처럼 퍼진 나쁜사상과 사악한 무리들을 청산해 나가는 좌익척결의 결연한 모습을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지금 그가 실추된 민심을 반전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사실 아닐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경찰청장이 불법을 저지르는 자에게 진압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이의가 없고 그의 임무에 매우 충실하였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또 이를 항의하는 의원들의 질책에 한 발 짝도 물러서지 않는 기세로 응수하는 것을 보고 저는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전통가족문화인 호주제를 살립시다!] (2008-06-04 오전 9:05:)
서 석영 어청수씨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 좀더 과감한 불법시위에 대한 억제책을 보여 줘야 합니다
법을 위반하는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함을 법을 지키는 경찰이 보여 주지 못한다면 시민은 국가존립의 이유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2008-06-04 오전 9:06:)
보수우익 김영일선생님의 말씀을 새겨 듣자면~
六十而耳順을 너머~
[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신 공자님 말씀이 새롭습니다.
김선생님~!
저의 소견으로는 실용정부나 보수우익세력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얄굿은 현실을 간과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분명 잘 아시면서도~ 애둘러 우회하고 계신 것만 같습니다.
'五十而知天命'을 훌쩍 지난 저로서는
'평양공산당, 광주/전주공산당 및 대구공산당 등등의
추악하고도 단발마적 준동일 따름이라고 사료되옵니다'만~
그런 점에서도 어청수 경랄청장의 노고가, 안타까울 지경이고요~
(2008-06-04 오전 10:31)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 여사의 작품 가운데 “마른 잎은 굴러도 대지는 살아 있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외람스럽게도 이 제목을 흉내 내어 “정권은 굴러 다녀도 아스팔트는 살아 있다”라고 표현한다면, 누구 말대로 미쳤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지 도심의 도로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서로 편리하게 오가야 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잉 정치문화의 욕구로 채워져 있는 인간들은 곧잘 도심의 광장 내지 대로를 자기 집 거실 정도로 이용하려는 것은 그것이 주간일 때 허용될 수도 없지 않으나, 야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대로의 교통을 무작정 방해하면서 시민의 안면(安眠)과 정밀(靜謐) 평온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야 함에도 ‘촛불 등’을 들고, 설겅설겅한 정치구호를 허공에 날려 보내면서 시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위문화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촛불시위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들의 시민 내지 개인 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어서 안 되는 ‘야간’이라는 환경에 위해(危害) 마저 주려는 고의성을 은밀하게 띠고서 몇 만 명이라는 시위 꾼을 운집시켜 마침내 그 다중(多衆)의 위세를 과신한 군중심리(群衆心理)에 의하여 권부(權府)의 핵을 향해 POLICE LINE인지 STATE LINE을 넘어서는 것은 법과 질서를 근본부터 유린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물대포’라든지 ‘최루 가스’이라든지 전경 차량으로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다소 무거운 억지선을 마련하더라도 그러한 무정부(無政府)를 고의적으로 야기하려는 세력을 막는 것이 치안을 1차적으로 맡은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이든 상식에 속한다. 바꾸어 표현하면, 정권(政權)이 길거리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상황을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은 첫째로 이 나라는 수가 틀리면, 통치자를 운전석에서 하시라도 끌어 내릴 수 없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못 마땅하면, 헌법에 의거해서 ‘탄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할 일이지 ‘조리돌림’이나 ‘문화혁명적 홍위병 난동’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사적(私的) 린치는 우리 헌법이 절대로 허용치 않는다. 둘째로 밤의 고요와 정밀, 평온, 안면 등을 해치려는 어떠한 세력으로부터도 개인 또는 집단의 안녕과 재산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요즘 이 나라의 방송 매체들에게는 어느 나라의 미디어인지 그 국적(國籍)과 정체성(正體性)을 알아보기 힘드는 것은 본인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해방 후의 남노당 떨거지들이 신문사와 방송국에 침투해서 그들의 당파성(黨派性) 내지 정파성(政派性)을 선전하는 똥 나팔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방송 미디어들이 방송 기자들이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친북좌경적인 학자들을 동원해서 떠들게 하는 하나는 시위꾼들의 ‘표현의 자유’와 ‘시위의 자유’라는, 소위 헌법적 권리를 경찰이 유린하고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과잉방어’로서 ‘물 대포’ ‘방패막이’ 곤봉 등등을 마구 쏘아 젖히거나 마구 휘둘러 시위자들에게 마구잡이로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떠들게 하고 있는 일이다.
시위꾼들이 peace line을 넘지 못하게 전경 차량들로 바리케이드를 쳐놓으면, 차량 지붕 위로 벌 떼 같이 올라오는가 하면, 차량을 넘어뜨리기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어디 ‘평화적인 표현의 자유“이고 ”평화적인 시위의 자유“에 들어가는 것인가?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연상될 정도이다. 소위 ’개미군단‘보다 더 많은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물밀 듯이 청와대를 바로 코 앞에 둔 통의동(通儀洞) 대로를 메우고 밀칠 때 경찰이 물대포를 쏘지 않고 그 시위꾼들을 정중히 청와대로 모시란 말인가? 이 기회에 미국에 있었던 법질서를 사수하기 위해 공권력이 벌였던 ’군사작전’ 을 방불케 했던 사례를 두 가지 들고 이 글을 끝막음하고자 한다.
하나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있었던 미국 뉴욕 주에 있었던 철도노조의 대파업(strike)이었다고 생각된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노동조합과 할리우드 등에 적색분자들이 침투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소란을 일으켰던 시기가 아마도 ‘60년대 중반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저 유명한 레이건 대통령도 일개 배우로서 할리우드라는 영화계에서 적색분자들을 이 잡듯이 찾아내 퇴출시키는 운동을 벌였던 것은 꽤 알려진 일이다. 적색분자들이 뉴욕 주의 철도 노동조합에 침투해서 대파업이라는 분란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이 좌익 노동자들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D-day가 다다랐을 때 철도노조의 파업은 주요시설의 파괴 내지 무용화(無用化)를 시도하면서 그 막이 오르자 당시 뉴욕 주 당국은 ‘노동자의 파업을 벌일 법익’과 ‘공공질서의 법익’(불특정 다수의 통행권)을 비교해서 노동자의 권익보다 공중의 권익이 압도적으로 무겁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파업을 분쇄하는 철권을 내리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들이 상상하기로는 경찰 병력이 현장에 투입해서 체포하여 연행하는 그런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미국은 개인의 신상보호의 차원에서 총기휴대가 가능한 나라이다. 주 당국은 주 방위군과 인근 주에서의 방위군을 차출해서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작전으로 총격을 가하는 살벌한 토벌을 벌임으로써 대파업을 막아내고, 이로써 전국적으로 파급될 거대한 노동운동이 피로 젖은 채 침묵으로 끝났다. 이로써 향후 미국에서는 과격한 노동조합의 파업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관련될 때에는 우리나라처럼(노동조합을 한없이 보호하는 레닌의 ‘노동조합 국가’처럼)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나라에는 드물다. 또 하나의 사실은 미국이 학생시위들을 한국처럼 그것이 주어진 민주국가의 응분의 권리인 양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베트남에서 식민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프랑스가 종전 후 디엔비엔푸 등지에서 호치민 군대와의 대접전에서 패하고난 뒤부터 점차 본국으로 물러남과 동시에 미국이 그 자리를 1965년경부터 메워 나가기 시작함으로써 전운이 베트남과 미국 간에 감돌기 시작한 것이 저 유명한 베트남 전쟁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여론은 양 갈래로 갈라져 매우 뒤숭숭하였다. 전쟁을 지지하는 쪽과 反戰으로 갈라져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학내 분위기가 맹렬한 반전 운동으로 學內 면학 분위기가 심히 침해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본인은 ‘70년대 후반에 모종의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미국 문화원에 들렀다가 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 못 하지만, “대학가의 모반”이라는 책 한권을 우연히 대하게 되었다. 그 내용이 저널리즘을 통해서 전혀 접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얘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월남전이 최고 피크에 달했을 때의 미국 대학가, 특히 동부의 아이비 리그(미국의 전통-명문 대학교인 하바드, 예일, 프린스톤 등등을 일컫는 말)의 학내 면학 분위기는 급진적 행동주의 과격학생들에 의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뜨려져 있었다.
미국의 대학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규모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한 도시를 연상케 한다. 하바드 대학 구내가 사진으로, 스케치 뎃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어디 어느 곳에 어떤 부류의 학생들이 얼마씩으로 집단을 이루어 항거를 한다든지 하는 것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으며,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주 방위군과 군견이 얼마나 동원되었고, 어떠어떠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는가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작전지도가 곁들여져 있는 가운데 주 방위군이 쳐 들어간 방향으로의 화살표와 학생들이 달아난 방향의 화살표, 그 달아난 방향을 막아선 주 방위군의 화살표 등등과 양쪽이 부딪쳐 전투를 벌인 곳에 곱표(X)가 그려져 있는 상황을 보고 본인은 미국이 이렇게도 ‘무서운 민주사회’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비록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원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이기는 하나 총격으로 쓰러진 남녀 대학생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굴러져 있는가 하면, 군견이 달아나는 학생들의 팔과 뒷등을 물어뜯는 장면의 사진도 있었다. 한 가지 꼭 지적해야 할 것은 미국의 신문-방송들은 ‘엠바고’(보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조건으로 취재는 허용되지만, 국가이익을 위해 철저히 신문-방송이 협조한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전은 엄격히 취재가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대부분인가 하면, 엠바고의 조건에서 허용되거나 보도를 허용하는 부분 등 그 조건이 각기 달랐다.
본인은 이번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정부-여당(친북좌경의 야3당과 같은 반역적 인식에 동조하는 예도 보인다)은 보다 사태를 적극적으로 수습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취하기보다 오히려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어 청수 경찰청장 이하 전경들은 참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 마음 한 구석에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더욱이 야3당의 정치인들이 어 청장을 방문해서 “과잉진압”에 대해서 항의했을 때 “시위자들이 오히려 불법시위를 하였다” 고 반론을 제기했다. 미국이 우리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하면 ‘공공질서의 공적’들에게 가차 없이 총격을 가함으로써 상당한 희생자가 났으리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는 나라이라는 점을 시위꾼들이나 정부-여당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공짜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여당이 법질서 파괴범들에 밀려 “국민의 뜻”이니 “민심”이니 “성난 민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범법자들의 요구를 죄다 들어주면서 항복하는 나라는 미국이고 유럽 어느 나라이고 간에 눈 닦고 보아도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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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너리 맞습니다. 사살을 한시킨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그랬다죠. 한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수립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거라고.
김영일님 좋은 하루되세요. (2008-06-04 오전 7:55:)
김영일 우리나라 법질서의 확립은 미국 정도는 되어야지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들과 붉은 시민단체들을 도요다와 놈현이 우군으로 보아 온 온정과 특혜가 이 나라를 '시위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죠. (2008-06-04 오전 7:56:)
한마디 한 십여년 이상을 시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디만, 시위현장에서 최류탄과 화염병이 날리는 광경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극렬한 시위가 없이 그 나마 나라가 조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저희들 편인 좌익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니까 그 동안 잠수하고 뒤에서 세력을 키워 오다가 이제사 수면 위로 그 실체를 들어 내 보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겁니다.
그 동안 이명박이 들어내 놓고 좌익척결을 외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이 땅위에 독버섯처럼 퍼진 나쁜사상과 사악한 무리들을 청산해 나가는 좌익척결의 결연한 모습을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지금 그가 실추된 민심을 반전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사실 아닐 것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경찰청장이 불법을 저지르는 자에게 진압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이의가 없고 그의 임무에 매우 충실하였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또 이를 항의하는 의원들의 질책에 한 발 짝도 물러서지 않는 기세로 응수하는 것을 보고 저는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전통가족문화인 호주제를 살립시다!] (2008-06-04 오전 9:05:)
서 석영 어청수씨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 좀더 과감한 불법시위에 대한 억제책을 보여 줘야 합니다
법을 위반하는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함을 법을 지키는 경찰이 보여 주지 못한다면 시민은 국가존립의 이유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2008-06-04 오전 9:06:)
보수우익 김영일선생님의 말씀을 새겨 듣자면~
六十而耳順을 너머~
[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신 공자님 말씀이 새롭습니다.
김선생님~!
저의 소견으로는 실용정부나 보수우익세력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얄굿은 현실을 간과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분명 잘 아시면서도~ 애둘러 우회하고 계신 것만 같습니다.
'五十而知天命'을 훌쩍 지난 저로서는
'평양공산당, 광주/전주공산당 및 대구공산당 등등의
추악하고도 단발마적 준동일 따름이라고 사료되옵니다'만~
그런 점에서도 어청수 경랄청장의 노고가, 안타까울 지경이고요~
(2008-06-04 오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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