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재민(主權在民)'과 '법치(法治)'

公權力의 嚴正한 行使 없이 自由民主主義체제 유지될 수 없다
광우병 괴담으로 시작된 촛불시위를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논리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모 대학 학생회는 전경버스에 “불법주차, 헌법 제1조(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의거해 민중의 법으로 견인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주정차 위반(?)’ 스티커를 부착하기도 했다. 또 어느 대학교수는 주요 일간지 칼럼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이명박 대통령은 무조건 국민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촛불시위자들의 요구대로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간 관련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사실이 왜곡ㆍ홍보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수입하려 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미국민과 세계인이 모두 즐겨먹는 것으로, 광우병 발생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관련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둘째, 촛불 시위자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야간에 도로를 점거하거나, 청와대로 “진격”하는 등 “정권 타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정당한 ‘국민의 주권’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셋째, 촛불 시위가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만의 시위대가 法을 어기면서 권부(權府)의 심장부인 청와대로 몰리는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는 것은 경찰청장의 절대적인 임무다. 시위자들은 이런 방법 이외에 얼마든지 합법적인 루트를 통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법률이 보장하고 있다. 심야에 불법 시위를 저지하려는 전경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는 행위 등은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요약할 때, 상기 “주권재민”의 주장 속에 숨어있는 위험성은 (i)촛불시위를 과연 “국민의 뜻”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국민”은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일부의 의견을 국민의 뜻으로 쉽게 간주해선 안 된다. (ii)백보를 양보하여 “국민의 뜻”이라 해도 “민주(民主)”와 “주권재민”은 자유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적법 절차에 의거 행사되게끔 법률이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제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근대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두 형태로 구분된다: (i)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 (ii)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가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는 대의제(代議制)ㆍ간접 민주주의다. 국민의 대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선출해 이들에게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함으로써 참정권을 행사하고, 임기 후 선거를 통해 심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민민주주의’는 ‘민중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socialist democracy)’ 곧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으로 보다 직접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실제로 그런지는 차치하고)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형성기와 근대 민주주의 혁명기에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발전ㆍ성장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열었고, 오늘날 보통선거의 실시를 통해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하는 모든 계층을 포용하여 현대 대중민주주의로 발전했다.

이에 비해 ‘인민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ㆍ자본주의가 정의(正義)를 구현하지 못한다며, 사회주의적 이상을 제시했고, 부르조아의 포용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 만의 전정(專政)을 추구했다.

우리 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은 의심할 바 없이 ‘자유민주주의’를 뜻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인민민주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북한 같은 공산체제도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그들은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예컨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국호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가 충실히 구현되기 위해선 “법치(法治)”가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 법치가 준수되지 않으면 방종으로 흘러,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해 어떠한 자유도 구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역대 자유민주주의 사상가들은 “나의 자유가 고귀한 만큼, 他人도 같은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나의 자유 행사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규제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촛불 시위자들이 자기만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신봉하여 타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 예컨대 자동차 운전자들의 도로 통행 권리, 심야에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면, 이는 마땅히 규제되어야 하며, 법적으로 제한 받아야 하는 근거가 성립된다.

“법치”를 수반하지 않는 “주권재민”과 “민주”는 “폭민(暴民)정치”와 다를 바 없다. 촛불 시위를 아테네式 직접민주주의에 비교하는 논리도 있으나, 이 또한 비약이다. 고대 아테네는 인구와 지역이 오늘날 우리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고, 오늘날과 같은 컴뮤니케이션 기제(機制) 곧 대중 매스컴이 발달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모두 모이지 않고도 의견을 개진ㆍ교환할 수 있는 현대 매스컴이 발달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불과 100일 전에 국민들의 정당한 “주권재민” 원칙에 의거, 합법적으로 출범한 권력이다. 향후 5년간 집권과 통치를 법적으로 보장받은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法에 부여된 수단(선거 등)을 통해 뜻을 펴면 된다. 정당한 권력을 불법 시위로 무너뜨리겠다는 것은 불법 행위이며, 이는 또한 법으로 다스려져야 한다.

경찰은 法을 집행하는 공권력(公權力)이다. 공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안녕,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합법적으로 그리고 엄정(嚴正)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공권력의 엄정한 행사 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촛불 시위자들은 “주권재민”과 “민주”의 이름으로 불법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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