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을 다룬 영화 '크로싱'을 보고

이 영화를 태어나게 한 분들은 '소수의 義人들'(A Few Good Men) 이다. 그런 의인들이 있기에 한국은 저주 받지 않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 영화 크로싱(Crossing)을 보았다. 서울삼성동 코엑스몰 지하 메가박스에서 試寫會(시사회)가 있었다.

축구선수 출신 김용수는 폐결핵에 걸린 아내를 구해내려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북한의 병원에선 약을 구할 수 없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 약을 사 가지고 돌아가려고 했다가 중국 公安에 쫓긴다.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독일대사관으로 뛰어들어가 한국으로 온다. 그 사이 아내는 죽고 아들은 꽃제비가 된다. 김용수는 아내가 살아 있는 줄 알고 한국의 약국에 가서 폐결핵 치료제를 사서 보내려고 한다.

약국 주인은 '이 약은 보건소에 가면 공짜로 줍니다'라고 말한다. 김용수(차인표)는 '공짜요?'라고 묻는다. 자신은 목숨을 건 탈출을 하여 폐결핵 치료제를 사 오려고 했는데, 남한에선 그것이 공짜라니? 나는 무슨 존재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잠기는 듯 묘한 표정이 된다.

김용수는 한국에서 탈북 브로커를 구해 아내와 아들까지 탈북시키려고 한다. 브로커는 휴대전화로 김용수의 부인이 이미 죽었다고 알려준다. 이때 김용수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예수님은 어떻게 남조선에만 계십니까? 예수님은 부자나라에만 사십니까? 북조선엔 왜 오시지 않습니까'

이 대사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참으로 진지하게 만들었다. 함경북도의 탄광촌과 시장통, 가정 집의 소도구들, 꽃제비들의 사는 모습, 기차역의 풍경, 교화소의 가혹한 신문 등 탈북자들 눈에도 북한의 현실 그대로라고 한다. 脫北시인 장진성씨와 함께 보았는데, 그는 '전깃불이 너무 밝은 것을 빼고는 북한과 같다'고 평했다.

아들 준이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몽골국경을 넘어 고비사막으로 들어가는 데까진 성공하지만 헤매다가 그곳에서 죽고 만다. 울란바토르까지 날아가서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하던 용수는 아들의 시체를 인수받아 사막에 매장한다. 이렇게 끝나는 영화니까 마음이 무겁다. 父子가 재회하는 것으로 해주었더라면 어두운 영화에 약간의 빛이 들어갔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날 만난 한 영화평론가는 아들을 죽게 한 것이 영화의 格을 높였다고 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북한 시장통 장면은 몽골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등장인물들도 몽골인이라고 한다. 韓民族도 한때는 몽골에 살았으니 겉모습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몽골사람들이 북한사람들 연기를 남한사람들보다 더 잘 소화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在美동포인 패트릭 최氏가 돈을 대어 제작한 것이다. 패트릭 최씨의 부친은 뉴욕에서 고려서적이란 큰 서점을 운영했던 崔應杓 선생이시다. 뉴욕에서 애국운동을 하고 있는 분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배급망을 통해서 全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쉰들러리스트'를 봤을 때처럼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하여 북한인권 문제가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試寫會에 참석했던 영화평론가 趙熙文 교수(인하대학교)는 '국제시장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므로 영화 그 자체로서 성공한 것이다'고 했다.

대한민국적 가치에 도전하는 영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인간애와 가족애를 중심에 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여간 고맙지 않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김정일에 분노하고 북한동포를 동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크로싱' 관람을 권하고싶다.

차인표의 북한인役은 완벽했다. 좌경화된 문화-예술 풍토에서 이런 역을 맡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는 인사를 통해서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과 관심을 호소했다.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자리에서 '10년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꽃제비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국수를 허겁지겁 시궁창 물에 씻어 먹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크로싱'은 내 삶을 다시 생각하는 작품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태어나게 한 분들은 '소수의 義人들'(A Few Good Men) 이다. 그런 의인들이 있기에 한국은 저주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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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싱 (Crossing, 2008)

기본정보: 드라마 | 한국 | 112 분 | 개봉 2008.06.26

감독: 김태균

출연: 차인표(김용수), 신명철(김준이)... 더보기

등급: 국내 12세 관람가

공식사이트: http://www.crossing2008.co.kr/


제작노트

1945년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과 북한. 2008년에 이르러 ‘그 절반의 땅’ 북한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1996년 이후,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많은 북한주민들은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의 선을 넘나들면서까지도 하나 둘, 살던 땅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2008년 오늘의 대한민국… 우리는 민족의 절반이 겪고 있는 그러한 고통과 시련을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하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왜 그들이 그곳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들의 눈물과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민족의 비극적 헤어짐 이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지독히도 무관심했던 우리… 이것이 <크로싱>의 시작입니다! 살기 위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한 가족의 안타까운 엇갈림을 통해 ‘절반의 땅 , 그곳’ 에 사는 그들의 눈물과 사연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Director’s comment

내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기억 하나는 10년 전 봤던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TV를 통해 너무나 가슴 아픈 영상을 보고 말았다. 꽃제비라 불리는 다섯 살, 여섯 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국수를 허겁지겁 더러운 시궁창 물에 씻어 먹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커다란 회의가 느껴졌다. 너무나 가까운 곳, 금방이라도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믿기지 않았고, 공포스럽고 부끄러웠다. 그 이후 내 머리 속에서 그 아이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크로싱>은 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 삶이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을까? 그 때 그 부끄러움이 <크로싱> 이란 작품을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Real Story_ 현재 혹은 오늘의 이야기 <크로싱>

<쉬리><공동경비구역 JSA><태극기 휘날리며><태풍><국경의 남쪽><남남북녀><동해물과 백두산이>등 북한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이 있었다. 소재와 장르면에서 다양한 작품들이 북한을 이야기했지만, 영화 <크로싱>은 한국영화 최초로 2008년, 오늘을 살아가는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관객들은 그 동안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북한의 현재모습,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현실에 공감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Crossing Story_ 잔인한 엇갈림 <크로싱>
영화<크로싱>은 가족의 약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와, 그를 찾아나선 열한 살 아들의 안타까운 엇갈림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아버지와 아들. 그러나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 걷잡을 수 없이 죽음의 길로 내몰리는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은 관객의 가슴에 오래도록 안타까움 가득한 슬픈 영화로 기억될 것 이다.

3개국 비밀 로케이션!
한,중,몽골에 이은 8천km의 대장정 기획, 제작 4년의 기간 동안 철저히 비밀리에 준비된 영화 <크로싱>은 작품의 특성상 비공개는 물론이고, 실제 탈북 경로를 담아내기 위해 중국, 몽골의 해외촬영이 필요했다. 우선, 영화 <크로싱>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위해 제작팀은 한국 영화 최초로 몽골의 고비사막으로 날아갔다. 고비 사막은 중국과 몽골에 걸친 아시아 최대사막으로 고도가 높고, 날씨 변화가 커 장비사용과 이동의 어려움이 많았고, 험난한 곳이었다. 어려운 촬영여건의 날들이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고비 사막과 초원, 현지마을의 풍경, 더불어‘울란바토르’국제공항의 촬영을 허가 받는 등, 이제껏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케일과 영상미를 선사한다. 또한, 준이와 용수의 탈북 여정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중국의 ‘요녕성’부근에 있는 드넓은 옥수수 밭, 대규모 벌목장과 현지 기차 안 풍경 등을 담아내어 새로움을 더했다. 한국, 중국, 몽골을 오가며 총 8천km의 대장정을 펼친 <크로싱>. 고된 촬영을 견딘 제작진 덕분에, 관객들은 광활한 로케이션이 안겨주는 압도적인 영상미를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순박한 시골마을을 완벽하게 재현하다!
북한의 현재를 다룬 영화 <크로싱>에서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평양의 거리가 아닌, 북한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함경도의 시골 마을에 대한 재현이었다. 실제 북한 마을에서의 로케이션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므로, 제작진은 치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북한의 마을을 몽골과 강원도로 옮겨 재현했다. 각종 자료와 영상물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을 재현해 나갔다. 강원도 영월 ‘마차리’에 제작된 ‘북한 마을’ 오픈세트에서는 북한시골마을의 대문, 창문, 외벽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한 미술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나무 울타리와 옥수수 밭을 만들고, 포장 길을 흙으로 교체하는 등, 영화 속 준이 가족의 행복했던 배경이 되는 준이집, 미선이집, 마을 동네길, 용수와 준이의 자전거길, 마을잔치와 개울가 장면 등이 촬영되었다.
또한, 몽골 사람들의 분위기와 생김새가 북한주민들과 묘하게 닮아 있어, 제작진은 상당부분 북한주민이 등장하는 장면을 몽골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한다. 몽골의 ‘비이요’ 마을을 북한의 시골로 변화시켰고, 허허 벌판이던 몽골 ‘울란바토르’ 근교 공터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모든 미술, 소품 장비를 동원, 완벽하게 북한의 시골장터로 변모됐다. 덕분에, 영화 속 북한의 시골 장터장면, 용수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 TV를 팔아 식량을 구입하는 장면, 준이가 처음으로 꽃제비 아이들 틈에서 국수를 얻게 되는 장면 등이 리얼하게 담기게 되었다.

낯설지만, 정겨운 함경도 사투리
북한을 소재로 했던 대부분의 영화 속에 등장한 북한 말의 뉘앙스는 대부분 ‘평양’에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크로싱>은 현재 북한에서 가장 탈북자 수가 많고, 중국을 자주 오고 간다는 함경남, 북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 북한말로 인식되어 있는 평양 말과는 또 다른 함경도 사투리는 배우들에겐 매우 까다로운 숙제였다. 미묘한 말의 차이를 알아가며, 사투리가 입에 달라붙도록 하기 위해 차인표, 신명철 두 배우는 촬영 전 뿐만 아니라 촬영 내내 두 명의 북한 말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모든 장면마다 억양과 톤 조절에 대한 조언을 받아 연기했다.

600:1의 경쟁률을 뚫은 ‘슛배우’신명철 탄생
영화 <크로싱>의 제작과정의 난관은 오직 ‘북한’만이 아니었다. 영화의 주인공 ‘준이’는 북한 아이들처럼 말라있는 외모를 가지면서도, 흡입력있는 연기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5개월 동안 제작진은 영화, 드라마, CF 모델 등 모든 분야의 아이들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600여명의 아이들과 1대 1 면접 및 오디션 과정을 거쳤지만, 선택은 그 어느 누구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오디션이 계속 되던 어느 날, 김태균 감독은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무려 세 번이나 오디션에서 떨어진 ‘신명철’이란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던 것이다. 곧바로, 김태균 감독은 ‘신명철’ 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한다. 그날 명철이는 마지막 오디션 현장에서 진짜 ‘준이’가 되었다. 명철이가 준이로 결정되기 직전, 명철이가 선보인 가슴 아픈 눈물 연기로 오디션 현장은 뜨거웠고, 그런 명철이를 바라보는 김태균 감독의 눈가 또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명철이의 남다른 진심연기는 곧바로 현장으로 이어졌다. 말 수 적고 순박한 모습의 산골 소년이 촬영 내내 슛 사인만 떨어지면 완벽한 ‘준이’로 변신, 단 번에 OK를 받아내는 재능을 선보인 것. 스탭들에게 ‘슛배우’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흡입력 있고, 가슴 찡한 연기를 펼친 그는 영화 <크로싱>이 찾아낸 또 하나의 자랑이다.


◎ Q&A _ 감독

<크로싱>이 처음 출발하게 된 계기
2005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패트릭 최’ 프로듀서로부터 <태양의 부재>(원제 In the absence of sun)라는 작품의 영화화 제안을 받았다. 그로부터 6개월 동안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인터뷰가 덧붙여 지면서 탄생한 것이 영화 <크로싱>의 출발이다. <크로싱>의 초고가 완성 된 후 이 작업이 주는 무게감에 눌려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던 중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이루어지면서, 2006년 여름 드디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어쩌면 <크로싱>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작품이었던 것 같다.

용수역에 차인표를 캐스팅한 이유는?
그건 직관이다. 우연히 작은 모임에 갔다가 차인표씨를 보았는데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민감한 이야기를 누가 진정성 있게 아야기 할 수 있을가? 이 영화를 충실이 재연하려면 배우도 분명히 희생할 부분이 많았다. 좋은 잠자리를 제공할 수 도 없고, 먹는걸 제대로 제공할 수도 없고… 모든 부분들이 스탭과 동등하게 열악한 상황에서 해 나가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차인표씨는 이렇게 같이 희생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또 컴페션활동을 하고 있는걸 알고 있어서, 누구보다 북한의 아이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작업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신인인 신명철을 준이역에 캐스팅한 이유는?
준이 역시 직관이다. 나에게 캐스팅은 항상 직관적인 것 같다. 여러 상황상 전체를 끌고 가면서 영화 경험이 거의 전무한 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신경 써 줄 수 있을까? 너무 무리일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탈락시킨 후, 계속 명철이 얼굴만 떠오르고 상상이 되었다. 그 아이가 사막을 가로 지르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만 떠올랐다. 때 타지 않은 얼굴에서 보여지는 순수함에 가능성과 확신을 얻어 마지막 네 번째 오디션을 하면서 결정했다.

차인표에 대한 에피소드
전화 안되고, 분장차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숙소에서 촬영장까지 보통 두 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몽골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즐기고, 불평 없이 사막의 아침 속에서 너무 행복하게 일어나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인데도 가장 황홀한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그 상황을 즐겨줄 때 고마웠다. 영화<크로싱>을 통해 관객들은 아주 평범한 차인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 중 ‘준이’역의 명철에게 가장 놀랐을 때는?
명철이는 애가 어찌나 속이 깊은지. 놀라운 일이 많았었다. 한 번은 극 중 엄마가 뚜껑도 없는 관에 들어가 묶여서 세 시간, 네 시간 숨도 못 쉬고 누워있는데 그 씬이 다 끝나고 명철이가 물병을 갖고 뛰어다니면서 우리 엄마를 찾았다. 사람들이 엄마 저기 있다고 하니 그 엄마 말고 라며 허겁지겁 뛰어다니더니 극 중 엄마를 찾아갔다. 현장의 아무도, 나조차도 물을 갖다 줄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촬영이 끝나고 명철이 혼자 뛰어갔다. 그때 참 심지가 깊은 아이구나 생각했다.
처음 한국에서 찍으려고 계획했던 수용소나 장마당 씬을 몽골에서 찍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엑스트라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몽골사람들이 영화에 리얼하게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스케쥴을 바꿔가면서 진행하고 통역을 통해 많은 엑스트라 동선들을 잡아가면서 촬영하느라 고생도 많았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씬은?
몽골 사막이 제일 어려웠다. 울란바토르에서 고비사막까지 원래 16시간 후에 도착해야 할 자동차가 서른 시간 후에나 도착했다. 그 서른 시간을 쉬지 않고 폭우 속에 밤새 달려 찌그러지고 흙탕물 범벅이 된 채 도착한 차들은 용사 같았다. 대장정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한국에서 장마두 피하며 찍었는데 몽골에 가서 그것도 사막에서 폭우를 만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날씨들이 속을 썩혀 고생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촬영장은?
울란바토르 공항 씬은 우리가 고비사막에서 전세비행기를 타고 바로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내림과 동시에 세팅을 하면서 촬영했다. 스탭들이 비행기타고 와서 촬영하긴 처음이라고 한다. 국제 공항이라 제한구역이 많았지만 나름 즐겁게 찍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북한의 실체적 모습과 남과 북의 현실, 그리고 그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족 역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인간이 무너지는 모습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고 관객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크로싱>?
영화가 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이 분단되고 헤어지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의 확인에 관한 이야기다. 왜 제목이 <크로싱>입니까? 영화 <크로싱> 의 이야기가 엇갈림의 이야기고, 넘는 이야기고, 어떤 관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크로싱이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 Q&A _ 차인표

<크로싱> 출연 결심 과정
2007년 초, 우연히 김태균 감독님을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며칠 후 시나리오를 받게 되었고, 읽고 난 후 출연을 거절하였다. 잘 쓴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했으나, 북한이라는 배경과, 탈북자라는 민감한 소재에 나 혼자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달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출연을 거절했으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생각해 보라는 김태균 감독님의 제안을 놓고 고심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나는 인터넷과 탈북자 수기 등을 통해 탈북자들의 이런 저런 비참한 모습을 접하게 되었고, 그런 비참함에 빠져 있는 탈북자와 가족들, 그리고, 북한 동포들의 현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크게 들어 최종적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촬영 전 몽골 헌팅에 참여했는데..
지난 7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4월에 감독님 및 주요 스탭들과 함께 몽골 헌팅을 다녀왔다. 4월의 몽골 사막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특히 밤에는 너무 추웠다. 사막에 선 나는 실제로 몽골 사막을 건너 탈북하다가 얼어 죽은 많은 탈북자들이 생각났고, 나도 어쩌면 이 사막에 홀로 남겨져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막의 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평선 한쪽부터, 반대쪽 끝까지 수많은 별들이 양탄자처럼 밤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별빛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아름다울 수 있는거구나. 이 사막을 건너 목숨을 부지하려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진 이들에게는, 결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참 동안 했다.

용수 캐릭터에 대해서
용수는 보통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데뷔 후 14년 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맡았던 그 어떤 배역보다도 무기력한 인물이다. 그런데, 촬영이 거듭되면서, 이 무기력한 아빠가 점점 강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 안에 품고 있던, 부성애나 가족을 구하려는 마음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용수를 움직이는 힘으로 뿜어져 나옴을 느꼈다.

용수 가족에 대해서
용수 가족은 북한의 평범한 가족이다. 굶고 병들지 않았으면, 그냥 선하게, 이웃들과 사이 좋게, 오순도순 살았을 평범하고 착한 가족. 용수네 가족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혹은 중국이나 미국에… 세상 그 어디에 살았어도 평범하고, 선하게 살았을 그런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 가족을 흩어지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나의 무관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촬영현장 에피소드
영화 크로싱은 기적의 연속을 경험하게 되는 영화였다. 2007년 7월2일 크랭크인 한 크로싱은 그로부터 3달 동안, 한국, 중국, 몽골, 다시 한국을 오가며 촬영을 했다. 7월2일은 우리나라에 장마가 시작된다는 날이었는데, 그 때부터 약 열흘간 강원도에서 용수집과 야외촬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결과적으로 비 때문에 촬영을 못 한적이 단 하루도 없이 모든 촬영을 스케쥴에 따라 맞추었다. 촬영팀이 날씨에 스케쥴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날씨가 우리 촬영 팀에 스케쥴을 맞춰준 것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촬영 준비를 하러 현장에 도착하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중국과 몽골의 촬영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실제 탈북하는 것보다 더 힘들만큼 정말 많이 달리고 또 달렸다고 하는데…
용수는 달리는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도망가는 장면들인데.. 김태균 감독님은 이런 장면들을 사이즈를 바꿔가면서 아주 여러 번 촬영하길 원하셨다. 달리는 장면들이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농담으로 크로싱 촬영하는 것이 실제 탈북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는데, 편집 된 장면들을 보면서 요즘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해외촬영에 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 몽골 촬영에서 크나큰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해외촬영 가면 으레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해간 분량을 다 못 찍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팀은 그 반대였다. 준비해간 분량뿐 아니라, 한국에서 찍으려고 했던 분량들까지 중국, 몽골에서 더 찍고 왔다. 그만큼, 매 촬영이 순조로웠다. 몽골에서 3주를 지냈는데, 한국에서 기다리는 집사람이나 어머니가 고비 사막에 들어간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 고비사막에서는 게르(몽골 천막)에서 자야 하고, 핸드폰, 인터넷들이 모두 안되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고비사막에 들어가 보니, 정반대의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비사막은 하나도 위험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우리 것 이외에는 단 한 대도 없으니 사고 날 염려도 없었고, 사람이 우리 말고는 한 명도 없으니 강도 당할 위험도 없었고, 공기도 무척 좋고, 경치도 훌륭했다. 그곳은 사람과 대자연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비가 오면 게르로 들어가야 했고, 바람이 불면 쉬어야 했다. 어두워 지면 촬영을 끝내야 했고, 달리 기댈 곳이 없었다.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과 더 친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김태균 감독님에 대해서
감독님은 이상하리 만치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필요로 했기에 더더욱 주연배우로서 감독님을 써포트했다. 아낌없이 다양하고 풍성한 장면들을 많이 찍으셨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선장 같은 모습을 보여 주셨다.

준이(신명철)에 대해서
명철이는 연기 경력이 짧은 수줍음이 아주 아주 많은 아이다. 그런데, 연기는 참 잘 하는 신이 내린 배우란 생각을 했다. 이 아이와 특별히 친해지기 위해 어떤 작위적인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촬영장에서 손잡고 다니고, 업어주고, 안아 주고.. 제가 집에서 아들과 놀 듯이 그렇게 똑같이 대했다. 영화 크로싱 영화 크로싱은 비참한 사정에 처해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울어주는 눈물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참함과 무관심 속에서 울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이제는 무관심 했던 전 세계가 함께 울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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