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주주의와 김 형오 의원"

이렇게 정신 나간 자가 입법부의 首長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6월 20일자 조갑제 닷컴의 ‘대문글 난’(최신정보 난)에 현재 독일에 체류하고 계신 한 병훈 님이 쓴 게시문 ‘국회의장 내정자 김 형오의 촛불 예찬“을 읽고 본인은 너무나 놀란 바가 있었다. 평소 신문 등을 구독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이런 정보를 게시자가 어떻게 접했는지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조 갑제 님 자신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서 논평한 것을 보고 이제 안심하고 필을 드는 바이다.




안 그래도 5월 말경인지 6월 초순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김 형오(金 炯旿)의원을 압도적으로 차기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내정을 천거했다는 소식이 있고 바로 이튿날 오전 7시 KBS의 라디오 프로 진행을 맡은 백 운기와의 인터뷰에서 김 형오 의원이 보여준 것은 내정자로서의 품위가 아니라, ‘아니 벌써’ 초당적인 의장 자리에 오르기라도 한 양, ‘거들먹거리는 목의 힘’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는 비탄이 나오기까지 했다.




프로 진행자 백 운기 씨는 지난 마지막 임시국회 때 “한나라당은 당론으로써 FTA 비준 동의안을 임 채정 국회의장에게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것을 요구했을 때 임 의장은 거부했는데, 그때 김 형오 의원이 국회의장이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행동했겠느냐?”라고 김 의원에게 물은 바가 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친북좌파 세력이 주장하는 것보다 한 발 더 앞선 것이 아니었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지금 ‘국민의 뜻’은 ‘재협상’에 있지 않습니까? 미국 산 ‘쇠고기 수입’을 백지화하고 재협상하라면서 FTA 비준과 연계시키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본인이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FTA 비준 동의안을 직권으로 상정시킵니까? 어렵지요.”




김 의원 자신이 범야권으로부터 당의장에 필요한 표를 얻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 소속해 있는 당의 당론을 헌신짝 같이 내던져버리고 야권에 아부 굴신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인 것이다.




한나라당이란 ‘군사 정당‘ 민주당 등등 온갖 잡동사니 잡탕의 '정체성'에서 오는 탓인지 YS이고 이 회창이고 간에 제대로 굴러먹은 인간이란 두 눈을 닦고 보아도 발견하기 어렵다. 당직자들이란 자도 어디 날라리 악극단 뒤를 따라다니다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코미디 일색이라 하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 얼마 전 의원회관에서 있었던 한나라당 초선 의원을 위한 워크숍에서 김 형오 의원이 행한 발언은 앞으로 국회의장이란 내정자가 아니라면, '미친 인간'의 소리로 치부해도 좋으련만, 그 발언은 議會民主主義(입법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신 나간 자가 입법부의 首長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발언의 요지는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혹자는 ‘촛불집회’를 디지틀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할지 모르나, 어디까지나 이 문제는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촛불집회가 ‘세계 정치문화’에 일점의 획을 긋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형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의 表象이다.”




직접민주주의라는 형태는 고대 희랍이나 로마에서 보듯이 ‘소도시 국가’에서, 아니면, 원시 사회에서나 아니면 群集生活을 영위하는 하이에나와 같은 동물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오지에 추장이 거느리는 사회에서는 부족민이 모두 모여 ‘중대사’를 결정하는가 하면, 하이에나는 우두머리가 병들거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으면, 하이에나 일족이 모두 모인 가운데 부두목인 자가 뭔가의 의사와 암시를 밝힌 다음에 어제 같이 1인자의 우두머리로 모시던 자를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어 죽이는 것이 새로 지배자가 탄생되는 의례(儀禮)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동물 사회뿐만 아니라, 고대 원시 인류사회에서도 흔하게 작용했던 직접민주정치의 의례적 관행(慣行)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간접 민주주의’(間接民主主義)는 역사적 발전의 소망스러운 긍정적 결과물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고대 희랍이나 로마에서 보듯이 상당한 理性과 素養, 그리고 품위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그렇지 않고 엉성한 感性과 충동(衝動)에 맡겨진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개판‘이요, ’6.25 전후에 우리들이 겪었던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욱이 오늘날 행정부에 대해서 막중한 행정수요와 복잡다단한 통치행위를 요구하는 ‘적극적 행정시대‘에 어느 분야이고 전문적 식견이 없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의 어느 부처이고 그 돌아가는 업무를 바라볼 때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는 냄새조차 맡기 어렵다.




우리는 고단위로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가치관’의 시대에 살고 있는 터에 중고등 학생과 방송매체들이 마치 ‘사이언스’지에 참여하는 듯한 ‘과학 전문가연’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링 위에 뛰어든 것을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지구촌을 바라보기도 창피하기 그지없다.



자식을 어떻게 교육(가정, 학교, 사회 등 3위 일체의 교육)시켰길래 촌음(寸陰)을 아껴 학업에 열중하기는커녕, 벌 강아지 모양으로 길거리에 나가서 저렇게 ‘집단 히스테리’와 ‘광기’를 부리는가? 라고 힐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참으로 어렵고 더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KAIST 대학의 이모저모를 보고 놀란 바가 있다. 영어로 강의하는 이 카이스트에서는 배우는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교수나 그 실적이 없으면 가혹할리만큼 퇴출되는 것이 학칙이라고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오직 학업의 전진만이 있을 따름이다. 총장은 미국의 저 유명한 MIT 총장을 지낸 분으로서 MIT에 있을 때 ‘기게공학’에 ‘생물학’을 도입할 것을 결정한, 이른바 ‘상상력이 뛰어난’ 참으로 훌륭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이란 세계무대에서 일류대학들과 어깨를 겨루기는커녕 꼴찌에 랭크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나라 친북좌경 정치세력들이 중 고등, 대학, 일반 샐러리맨들이 10년 뒤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현실적인 위험 수위를 지적하면서 면학을 독려해야 함에도 길거리에서 정권을 주울 셈인지 야비하게도 어리고 젊은 세대들을 소 몰 듯이 직접민주주의의 링 위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1917년 러시아의 붉은 10월 혁명처럼 ‘소비에트‘(그 하나의 속성이 길거리 혁명이다. 모 노총은 총파업 을 유발해서 켈렌스키 같이 물렁한 ’중도 정권‘을 ’소비에트‘-노농동맹으로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세력-처럼 타도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를 획책하는 것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에 체류 중인 한 병훈 님은 이 나라의 ‘촛불시위대’를 나치 때 ‘히틀러의 전위대’ (Hitler's Jugend)들이 모닥불로 밤하늘을 밝힌 ‘帝國의 水晶 밤’(imperialitische Kristallnacht)으로 비유할 만큼 위험시 하는 독일신문(su'd Deutche) 등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다.




한 병훈 게시자는 독일 신문들이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을 “촛불 속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면서 촛불시위대를 포퓰리즘으로 성격 지을 뿐만 아니라, MB의 몸 낮춘 사과의 행위도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런 포퓰리즘으로 어려운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점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게시자는 또 유럽에서는 법질서를 유린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경찰은 누구를 막론하고 police line을 넘어서면, 물대포, 최루탄, 최루 가스, 고무탄 등등을 마구 쏘아 제낀다고 한다. 살상의 불상사가 발생해도 언론과 어느 집단에서도 이 땅의 미친 ‘민변’처럼 ‘과잉단속’이라고 따지거나 범법자들을 두둔하는 예는 전혀 없다고 한다.




작년엔가, 외국 이민자들이 빠리에서 소요를 일으켰을 때 가차없이 경찰은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어제 김 종훈이 급거 귀국해서 거의 '재협상'을 한 수준으로 우리 쪽의 요구를 관철한 결과를 발표를 한데도 촛불시위대들이 광화문의 경찰 버스 바리케이드를 넘기 위해 모래와 모래주머니를 실어 나르고, 경찰버스에 로프를 걸어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폭도들이 부리는 것은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대한민국을 모두 불태워먹을 지경이다.




우리 경찰도 흠뻑 모래를 덮어 쓴 나머지 대한민국을 독일 나치 때처럼 태워먹을 것이 아니라, 일제히 총격 사격을 가하기를 바란다. 이 지구상에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수입 안 하면 되는 것이고, 또 안 먹으면 되는 일로서 그 결과로 FTA 비준이 증발됨으로써 ‘무역입국‘을 포기하고 북한처럼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더라도 그런 탈북자 신세를 용인하면 모두 그만이 아닌가?




게시자는 촛불시위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그의 입을 빌면,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는 ‘선동’과 ‘혹세무민’으로 베를린 요소요소에 불을 지르게 하고, 나치의 공작원들이 바이마르 헌법 하의 첫 의회에 잠입해서 의사당을 밤하늘에 빨갛게 소각해버린 것이 모두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폭거이다. 나치나 붉은 소비에트나 중국의 홍위병들이 벌인 공통적인 굿판은 모두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김 형오 의원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울 광장’이나 ‘청계 광장’에 나와서 “세계 정치문화에 신기원을 긋고,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의 형성이자 직접민주주의 표상”의 세계인 촛불집회에 나와서 ‘직접민주주의의 국회의장’이 되기 바란다. 김 형오란 부산 ‘영도다리’ 출신은 서울대 외교정치학과에서 이 용희와 노 재봉으로부터도 배워먹어도 한참 덜 배워먹은 인간이다.




본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입장이다. 김 형오 당신은 위의 두 스승이 없으면, 굴신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 용희 박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어느 제자에게 “네가 이렇게 감옥까지 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 제자는 “교수님, 지금의 제 상황이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답했을 때 그들의 문하에는 김 형오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이 얘기는 이용희 박사의 입으로부터 본인이 직접 들었다.




당신은 굉장히 무능한 사람인지 높은 사람의 등을 타기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동아언론 사태’로 기자들이 텅 비어 있을 때 당신은 노 재봉 교수의 추천으로 시험도 치르지 않고 ‘특채’로 동아일보 출판국(신동아부)에 상륙했으며, 그 결과 기자생활을 오래 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은 노 재봉 교수가 총리로 입각하자, 청와대 비서실에 직장을 바꾸어 상륙한 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힘으로 언론계이고 관계이고 간에 진출할 여력이 자신에게 없었다는 것을 밝혀주는 증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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