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동팀(경찰기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관련한 촛불집회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을 ‘ 참 야마(핵심, 결론이라는 뜻) 안 잡히는 시위네 (원제)” 제목 아래 ‘조선노보’에 기고한 내용을 재게재하는 것이다.
현장 기자들의 ‘이모저모 스케치’를 통해 촛불집회 보도의 뒷면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도가치가 있다는 판단이다. 조선노보 편집자는 “이번 촛불시위는 엄마 손을 붙잡고 나온 초등학생부터 전문 시위꾼까지 참가자층이 다양했던 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부터 이명박 정부 퇴진까지 각종 구호가 어지럽게 섞이는 통에 그 실체를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는 게 중론”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의미하는 '카오스모스(chaosmos)'인가 아니면 단순한 '카오스(chaos)'일 뿐인가.
촛불집회가 40일 넘게 이어지는 동안 참 다양한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이런 참가자들에 대한 반응 역시 다양했다. 시내 한 복판 대로를 막고 행진하는 시위대에 막혀 멈춰 버린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시위대를 향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야유했다. 반면 그 옆에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가던 사람은 시위대에 경적을 울리며 '힘내라'고 응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명박산성은 왜 쌓냐'며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는 것을 보여줘야 여론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한 경찰서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담배를 피며 '어청수 오래 갈까'를 말한다. KBS 앞 촛불 시위 참가자들을 주먹으로 위협하던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은 나름대로 논리 정연한 촛불 시위대 주장 앞에 '너네는 빨갱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택시기사들은 '촛불시위하는 사람들도 좋은 일하려고 하는 건 좋은데, 그 쪽은 차 막힐까봐 콜 받아도 안 갑니다'라고 했다.
17일 서울광장 시위참가자는 '여의도까지는 걸어가야지 재밌는데, 광화문까지만 갔다 오니 재미가 없다'고 했다. 의경들은 자기들끼리 욕을 섞으며 '××, 비나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핑크색 염색머리에 코스프레 복장으로 집회에 참가한 소녀는 한 편의점에 들어가 '왜 여긴 외국산 담배는 안 파냐'고 따져 묻는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무리를 지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행진하는 시위대를 바라보며 어떤 무리를 따라 취재를 할까 고민하며 생각했다. '참 야마 안 잡히는 시위다. 이건 확실히 카오스다.'
원숭이처럼 조롱당하는 전경들
'야, 초코파이 줄까, 오예스 줄까? 초코파이가 더 맛있어, 임마. 초코파이 줄게 포즈 좀 잡아봐. 사진 찍어줄게.'
군대도 아직 다녀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한 청년이 시위대를 막아선 전경에게 외쳤다. 군중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한 전경이 채증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자 '야 이 ×새꺄! 사진 찍지마!'란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떤 사람은 전경들을 향해 초코파이가 담긴 봉투를 던졌다. 군중들은 '먹어라! 먹어라!'를 연호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시위대가 전경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당기고 있었다.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며 이를 막자 시위대는 '평화시위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비폭력!'을 외쳐댔다.
광우병괴담 믿고 있는 참가자들
'아 그놈들은 글쎄 광우병으로 죽은 소를 도축해서 그걸 갈아서 다시 소들에게 먹인다잖아. 그러니 광우병이 안 걸리겠어?'
새벽 1시. 모처럼 '일찍' 시위가 끝났다. '조중동 쓰레기'라는 구호 속에서 수첩도 꺼내지 못하고 취재하던 후배들과 목이나 축이자고 정통호프에 들렀을 때 40대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광우병에 대한 저마다의 지식을 늘어놓았다.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만사가 귀찮았다. 누가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시켰는가. 역설적이게도 그 시각 수백명의 시위대는 '공영방송을 사수하자'며 잘못된 정보 입력의 한 진원지를 향해 여의도로 몰려가고 있었다.
청계광장 가득 메운 군중에 충격
촛불시위 첫날 본 청계천 광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경찰이 300명 정도 모일 것이라고 예상한 집회 현장에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를 들고 서 있었다. 그 중 절반 가까이는 여자 중·고생들이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종종 시위대로부터 '조선일보 기자 사라지라'는 위협도 받고, 반대로 경찰들에게 팔 꺾이고 아스팔트에 넘어졌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시위참가자들의 심정을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답은 찾지 못했다. PD수첩, 연예인 팬카페, 아고라, 아프리카, 반미, 친노, 고유가, 청년실업, 신빈곤층….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동인(動因)을 발견했지만, 행진하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멈춰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논쟁하는 시위대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란 힘들었다. 오히려 주전론(主戰論)과 주화론(主和論)이 대립하고, 서로를 '프락치'라고 말하여 의심하는 차이와 다양성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정답은 없고 현상만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 익명에 오염된 학생들
촛불 시위 한 달을 넘긴 15일. 초기와 비교하면 한참 적어진 500여명의 시위대가 조선·동아·중앙 세 신문사를 차례로 돌며 신문사 외벽에 'OUT 조중동' 스티커를 붙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튀는 높은 목소리로 '조중동은 쓰레기!' '조중동이 신문이면 파리가 새다!'를 연호했다. 대오를 따라 중앙일보를 향해 걸어가는 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집에서 조선일보 봐요? 왜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조선일보는 한 번도 안 봤는데요. 그 쓰레기 신문을 왜 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도 보지 않고 쓰레기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은 이랬다. '그걸 꼭 봐야만 아나요. 왜곡보도, 조작보도 한다는 거 인터넷에 다 나와 있는데? 언니 왜 그런 걸 물어봐요. 혹시 프락치 아니에요? 깔깔'
인터넷이 현실 공간을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 하나 있다. 모두가 익명의 가면을 쓰고 활동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물결 속에서 요즘 아이들은 익명의 정보를 세상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고 있었다. 말문이 막혔지만 너무나 당당히 말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버스승객은 야유, 외제차 운전자는 응원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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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23, 18: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