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치고 또 습관처럼 거리로 나갔다. 오후 7시20분 시청역 5번출구 주변은 아예 노숙자들이 점령했다. 벤치 하나에 한두 명씩 술에 쓰러진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냄새나는 터널을 숨을 안쉬고 빠른 걸음으로 뚫고 가보니 시청광장이 탁 트였다. 촛불이 거의 사라졌다. 광장 주변을 경찰버스 32대가 꼬리를 물고 둘러쌌다. 차 하나의 길이가 10여m이므로 광장 둘레가 채 400m를 넘지 않았다. 광장으로 들어오려면 5번출구쪽과 국가인권위 건너편 지하상가쪽 출입구쪽뿐이다.
시청 건물을 등진 채 광우병기독교대책회의 주최의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참석자는 200여명, 촛불을 켠 사람은 그 절반 정도,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잔디밭 안쪽은 초록 끈으로 출입을 막아 참석자들은 잔디밭 앞 돌바닥에 앉아야 했다. 뒷줄 20여명의 얌체들은 새로 깐 잔디에 궁둥이는 깔고 발만 돌쪽으로 내밀고 앉았다. 두어 명은 아예 새로 깐 잔디에 앉아 놀고 있는데 아무도 내쫓지 못하고 있었다. 무더위에 촛불집회를 延命(연명)하는 집회란 생각이 들었는데 사회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앞으로 대책회의 주최의 집회는 매일 하지 않기로 했다. 참여단체들이 돌아가며 그 명의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쯤 대책회의 주최 집회를 하려 한다'
광우병대책회의의 참가단체가 1800개라 들었는데 이들이 앞으로 하루씩만 하면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을 다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자는 광장을 둘러싼 경찰을 비난하며 '오늘 집회중 경찰이 쳐들어와 저희를 잡아갈지 모릅니다. 절대 충돌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잡혀갈 겁니다'란 취지로 말했다. 이 정도로 참가자들을 선동하면 '같이 죽자'는 식의 응답이 나와야 하는데 호응이 별로였다. 이때 '추억의 아이스께끼'란 글씨를 쓴 손구루마를 끌고 한 50대 아저씨가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사회자가 한창 열을 올리며 말하는 바로 옆까지 돌진(?)했다. 참석자들이 깜짝 놀라 시선이 쏠렸다. 이 아저씨는 집회를 하는 건지 잘 모르고 가까이 갔다가 참가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 우측으로 90도를 틀어 '아이스께끼' 하며 지나갔다.
10여분쯤 구경하다 광장을 나오는데 경찰 30여명이 광장에 들어오려는 시민들을 지하도로 돌아가라고 하자 서너 명의 시민들이 언성을 높이며 왜 경찰이 길을 막고 시민들의 갈 길을 막느냐고 했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경찰의 몸을 밀치며 소리를 질렀으나 경찰은 데응하지 않고 돌아가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열이 오른 서너 명중 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주위에 서서 구경하는 내게 '시민의 통행자유를 막는 게 말이 되냐'고 외쳤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옆의 구경하던 젊은이에게 같은 말을 했지만 그 젊은이도 대꾸없이 지하보도로 내려가버렸다. 촛불의 피로감이 곳곳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7시50분 청계광장, 파이낸스센터빌딩 앞 녹지의 벤치 10여 곳은 술취한 노숙자들이 모두 차지했다. 광장에선 결식아동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플래카드를 단 한 단체 주최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동아일보 앞쪽엔 황우석씨의 연구를 재개하도록 해달라는 황씨 지지단체 모임 10여 명이 대형 앰프를 사용해 영상화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 앞뒤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며 한 중년의 1인 시위자가 지나가던 이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었다.
문경·예천농민포럼의 전경수 회장(55)이었다. '한반도 대운하를 만들어 문경·예천의 경제를 소생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검은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우산의 펼친 면에 정부가 '소고기 문제를 덮으려고 대운하 건설을 중단했다'는 내용을 써붙였다. 대운하 소리만 듣고도 흥분하는 사람들은 이 1인시위자를 못살게 군다. 전경수씨는 그러나 점잖게 대응한다.
'욕이란 욕 다 듣습니다. 사실 우리가 최전방에 나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운하가 再開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개장한 세종문화회관 주차장 자리의 공원엔 요즘도 노숙자가 없다. 벤치는 10여개가 되지만 벤치마다 중간에 팔걸이를 두어 누울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심가는 요즘 녹지가 늘어나고 광장도 새로 조성한다. 광화문 네거리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본딴 광장 조성공사를 시작했다. 이 어렵게 만든 녹지와 광장이 노숙자와 집회꾼들의 차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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