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일색의 'PD수첩 해명방송'

모든 것은 '조중동'과 정부 탓, PD수첩 번역자 정지민 씨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터뷰 자료만 제시”
7월15일 방영된 'PD수첩' 화면. 아래 사진은 미국시민 인터뷰 미방영분 장면.
MBC ‘PD수첩’이 15일 밤 방영한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편은 기존 주장의 반박,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변명의 일색이었다. 모든 것이 조·중·동과 정부의 탓으로 돌아갔다. 평소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것과는 달리 녹화방송 분이었던 이번 편에서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의견은 받지 않았다.

'단언하건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PD수첩이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한 부분은 ‘번역상 오류’와 진행자의 ‘말실수’ 뿐이었다. 진행자 송일준 시사교양국 부국장은 오프닝멘트에서 “계속 공격을 받는 것은 PD수첩이 내용을 왜곡해서 허위의 사실을 전했느냐는 부분인데, 시청자 여러분께 단언하건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번역상의 몇 가지 오류들”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며 다음 네 곳을 수정하는 화면을 내보냈다.

1. 로빈 빈슨(故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너무 놀라운 일이었죠. 우리 딸이 걸렸던 병에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요/ 걸렸던 → 걸렸을 수도 있는 병에(could possibley have)
2. 2008. 4. 8 미국 WAVY TV: 의사들에 따르면 아레사가 vCJD라는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의사들에 따르면… 걸렸다고 합니다 → 의사들은… 의심합니다(Doctors suspect)
3. 로빈 빈슨(故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아레사가 어떻게 인간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걸렸는지 → 걸렸다면(If she contracted it)
4. 보건당국 보도자료(버지니아 보건당국 vCJD 사망자 조사)/ vCJD → 뇌질환 관련 사망자

수정 화면 후 진행자는 본인의 말실수 즉, ‘광우병에 걸렸을 수도 있는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말한 점도 사과했다. 그러나 이 ‘번역 및 말실수’가 프로그램 전체의 구성에 준 영향력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번역 자막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거나 혹은 일부 의역을 통해서 정확하지 못한 표현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기존의 내용을 되풀이했다.

‘한국인 광우병 발병 확률 94%’에 대해서는 프로그램이 끝나기 직전 진행자의 간단한 멘트만으로 사과 없이 처리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알려드리겠다”는 말로 운을 뗀 진행자는 “MM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이 94%라고 해서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94%(4월29일자 보도)라는 것은 부정확한 표현”이었다고 말하면서 “전하고자 했던 취지는… 다른 나라들보다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취지’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MM형 유전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 인간광우병 발병으로 이어진다고는 확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날 PD수첩은 크게 ▷‘주저앉는 소(다우너소)’는 광우병 위험소가 맞다 ▷故 아레사 빈슨에 대해 ‘광우병 의심진단’이라고 한 것은 왜곡이 아니다 ▷파장을 일으킨 번역가 정 씨의 주장은 조·중·동이 과장보도한 것이다 ▷정부의 ‘PD수첩’ 수사는 언론탄압이다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전체적인 제작방향과 구성 내용이 아닌 지엽적인 부분만이 반복 거론됐다.

'주저앉는 소'는 무조건 광우병만 의심?

특히 PD수첩은 美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마이클 그래거 씨를 다시 찾아가 인터뷰하며 ‘주저앉는 것이 광우병의 주요 증상’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주저앉는 소’의 다른 원인은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젖소’가 ‘이런 소’로 번역된 이유는, 젖소는 4년까지 사육이 가능하므로 광우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광우병이 발견된 소 중 젖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치 시청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울까봐 아예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는데 오해하셨군요. 설명이 늦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외에 제3의 전문가의 의견이나 美 당국자의 해명은 없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인 30명 중 1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물보호단체”라는 설명, 그리고 마이클 그래거 씨의 소개자막에 ‘의학박사’라는 자막이 덧붙여진 것이 눈에 띄었다.

파장을 일으켰던 PD수첩 번역가 정지민 씨가 제기한 故 아레사 빈슨 관련 의혹 역시 해명되지 못했다. PD수첩은 ‘로빈 빈슨(아레사 빈슨의 母)’의 미방영 인터뷰 중 로빈 빈슨이 ‘인간광우병’이라고 발언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내보내며 왜곡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혹의 핵심이 되었던 ‘로빈 빈슨이 CJD와 vCJD를 분간하지 못하고 혼용했다’는 점, 사망 전에 있었던 아레사 빈슨의 위장우회 시술과 점진적 증상 여부의 부분은 다뤄지지 않았다.

해명 방송의 결론은…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또한 PD수첩은 이날 정 씨가 누락되었다고 주장한 美 시민인터뷰를 공개하면서, “이것이 조·중·동이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고 하는 중요한 취재 내용의 전부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취재내용 일부만 접했을 번역자의 의견이 중대한 의혹의 근거가 됐다”며 ‘조·중·동’의 PD수첩 관련 보도가 과장됐다고 비난했다. “사실 이 문제는 저 신문사 기자들이 직접 전화해서 PD수첩의 내용에 오류는 없었는지 확인만 해 본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 그런데 한 번역자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PD수첩을 왜곡방송이라고 몰아가는 언론들이야말로 그 의도가 궁금하다”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방송된 화면은 촛불집회 장면들. PD수첩은 정부의 쇠고기 협상화 과정을 열거하며 정부의 ‘졸속협상’으로 화살을 돌렸다. “국민이 원하는 건 ‘안전’인데,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라는 것. 결국 이날 방송은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라는 식의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PD수첩 번역자 정지민 씨,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터뷰 자료만 제시”

정지민 씨(PD수첩 번역가)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송에 대해 “기존 보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터뷰 자료만 제시하고 있다”면서 “결국 원본 자료에 뭐가 있는지 더 의문만 남겼다”고 평했다.

정 씨는 반복적으로 보여 준 아레사 빈슨 어머니와의 인터뷰 장면에 대해 “그 장면은 PD수첩의 당초 주장과 달리 빈슨의 어머니가 CJD와 vCJD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그는 “PD수첩이 제시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는 ‘다우너 동영상’을 보여주며 생방송 중에 전화를 통해 실시한 것”이라며 “질문도 광우병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품체인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5일 오전, 정 씨는 개인블로그를 통해 “거짓과 사실을 대충 섞으면 결국 거짓 아닌가”라며 장문의 반박글을 올린 바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결코 사소한 단어 몇 가지의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미국 취재자료의 상당부분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왜곡을 논할 수 있다는 점 ▷PD수첩이 정말 왜곡을 반증하고 싶다면 자료제출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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