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궂은 날씨에 이렇게 많이 오신 것을 보니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듯합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무릇 위기는 스스로 경계하며 대비하는 자를 벌주는 법이 없고, 방심하고 교만한 자를 피해가는 경우도 없는 법인데, 지난 10여년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합니다만 북한이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노리고 핵을 만들고 있을 때에 우리는 평화나 노래하며 입고 있던 갑옷까지 벗어던지는 모양새였거든요. 그래서 정권을 바꿨는데, 이제는 또 함부로 총질을 해대는 북한의 만행에는 눈을 감고 시도 때도 없이 촛불을 휘둘러 우리의 미래를 태우려 드는 철없는 사람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특히 그 와중에 우리 국민은 북한 핵위협까지도 까마득히 잊고 있으니 아직도 ‘햇볕’에 마취된 채 깨어나질 못한 것이나 아닌지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1. 북한 核: 왜 위협이고 폐기는 가능한가? 또 그 함의(含意)는?
核은 차원이 다른 무기
사실 핵폭탄은 재래식 폭탄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무기입니다. 폭풍으로 쓸고 열로 태우고, 백혈병 같은 원자병도 일으키고 휴대폰 같은 현대 전자장비들을 통째로 마비시키는 전자자기파라는 것도 발사합니다. 20km 상공에서 히로시마급 한 발만 터트리면 한반도 전체를 마비시키는데 충분합니다. 단 한 발이 무서운 것이고, 그래서 절대무기, 정치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북한 핵실험에 온 세계가 경악했는데, 정작 우리는 ‘설마 동족에게 쓰겠느냐?’는 전혀 비합리적 논리로 국민을 오도(誤導)해 왔습니다.
우리가 동족이라서 안 쓴다? ‘200만, 300만의 자기 국민도 굶겨 죽인 사람입니다. 4억 달러, 많아야 6억 달러면 살릴 수 있다는데, 무려 7억-9억 달러씩이나 들여 김일성 묘지나 만들고, 그 못지않은 돈으로 핵이나 만들면서, 참혹하게도 굶겨서 죽인 사람입니다. 특히 2004년 영국 BBC방송대로라면 ‘1997년, 수없이 굶어 죽어 나가던 바로 그런 때에도 서울시를 전멸시키는데 얼마면 되는지 정치범들로 독가스 실험을 했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무슨 자비심으로 동족(同族)을 다 찾겠습니까?
‘미국 핵우산이 있으니까. 설마 뭐-’ 쉽게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중국·러시아 같은 다른 나라의 핵이라면 몰라도 우리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은 미국 핵우산으로도 카버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남북의 군사력 균형은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직·간접적 다양한 도발의 위험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입니다. 혹시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굴욕적이거나 노예적인 평화에 불과할 것이고, 누군가가 ‘남북관계에서의 핵은 고스톱 판의 싹쓸이 패와도 같다’ 던데, 그런 평화는 사실상 한반도의 자유민주통일은 불가능하게 하는 반면, 한국은 졸지에 전략적 난장이가 되어 전쟁이냐? 항복이냐? 이리저리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점차 한반도 적화의 길로 끌려들게 만들 것입니다.
北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무릇 통일은 그것이 평화적이건 군사적이건 어떤 형태의 통일이건 간에 궁극적으로 군사통합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그래서 만들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이 직접 확인까지 해 주었지요? 북한 핵 실험 때, 우리 언론이 ‘미국과 대화하려는 것’이니 뭐니 중언부언(重言復言)하니까 “그게 아니고 통일의 원동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더욱이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만, 지금 북한에게 있어 핵은 김정일 체제 정통성의 방증(傍證)이자 권위의 상징입니다. 미국의 위협에서 북한을 수호하기 위해 핵을 가져야 하고, 김정일 체제니까 핵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거든요. 또 이제는 북한이 먹고 사는 수단이자 대외교섭력의 바탕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핵이 아니라면 미국이 무엇 때문에 북한과 마주앉을 것이며, 북한이 무슨 수로 저렇게 온 세계에서 중유니 식량 같은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 핵 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 않게 생겼습니다. 북한이 핵 폐기의 길로 들어 선 듯이 환호하던 작년 2․13 북경회담 직후에도 북한 지도층들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우리가 조국보위를 위해 수백만의 인민을 굶겨 죽여 가며 만든 핵입네다. 어떻게 포기합네까?’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1994년 제네바 합의 후 온 세계가 둘러서서 ‘너 그것 만들면 혼내 준다’고 지켜보는 가운데 절치부심(切齒腐心), 만들어서 실험까지 했습니다.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더구나 핵을 만든 그 체제, 그 사람들이 다 그대로 있는데 결국 작년 2월 아미티지가 2차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한반도가 자유민주체제로 통일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항구적 핵 폐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핵을 아예 기정사실로 인정하려고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년 6월 북경 세계발전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북한 핵문제 해결은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정치, 경제 지원은 계속할 것”이라고 아주 당연하다는 어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쇼에 환호성과 기대가 대단히 높습니다만 이것 역시 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원래 핵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려면 핵탄두와 핵물질, 핵시설 그리고 핵기술 이 네 가지를 모두 폐기해야 되고,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단 한 발이 무서운 핵탄두와 언제든 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 물질을 폐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對北합의의 문제점
그런데 전(前)에 벨(Bell) 대장은 북한이 만든 핵 물질이 52kg이라고 했고, 그 외에도 RAND연구소의 베네트(Bennett)박사는 KGB자료라면서 舊소련이 망할 때 56kg을 확보했다는데 북한은 이번에 “36kg 정도 가지고 있다”고 신고한다니까 신고의 신뢰성 자체도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제일 중요한 핵탄두만도 무려 여섯 발에서 많게는 스무 발까지 된다는데 이번 신고에는 모두 빠져 있고, 고농축우라늄(UEP) 문제도 ‘간접시인(間接是認)’이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어물쩍 넘기고 있습니다. 합의된 것은 뭐냐? 시설, 그것도 그 수많은 핵 시설들 중에서 다 낡아빠진 영변의 3개 시설만 불능화한다는 데 불과합니다. 그러니 불능화해봤자 그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차차 다 폐기하게 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시인도 않고, 신고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어떻게 폐기시키겠습니까? 실제로 前 미 북핵특사 리처드 프리처드(Charles L. Pritchard)는 북한 고위 관리들이 “영변 핵 시설만 해체하겠다는 것이지 핵 물질이나 핵무기 폐기는 아예 논의 대상도 아니다. 미국도 이제 이스라엘처럼 핵을 가진 북한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언론과는 달리 5월8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라이스와 힐이 검증 전문가를 협상에서 배제시키고 있다’면서 ‘북 핵 협상이 사기(詐欺)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다’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고,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도 부시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해 주는 대신 북한은 핵 폐기 시늉만 내고, 그것을 외교성과로 급조하려는 것 아니냐’ 의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부시 정부에게 있어 북한 김정일 집단은 아예 기본 인식부터가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9․11 이후, 그러니까 테러 특히 WMD와 결합된 테러를 제1의 안보위협 요소로 보고 있던 미국에게 있어서의 북한은-WMD 다 갖고 있지, ‘테러지원국’이지, 인권유린과 마약문제로 세계의 의구심을 사고 있는 대표적 깡패국가지- 현실적으로도 각종 안보위협 요소들을 두루 다 갖춘 아주 특별한 안보위협 집단이 되어있었습니다. 1989년 6월23일 워싱턴포스트에는 잭 앤더슨(Jack Anderson)의 이런 칼럼이 실렸습니다. 이란인 테러리스트가 폭탄비행기로 백악관을 폭격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그 테러리스트들이 1982년 북한 원산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9․11 당시 워싱턴에 있었는데, 미국인들은 마치 오늘 북한이 핵을 만들면 다음 주에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어가고 그 다음 주에는 뉴욕이나 워싱턴 한복판에서 펑 터질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악의 축’이니 ‘폭정의 전초기지’니 하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核폐기보다 북한 체제 보호에 더 관심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북한이 핵 실험까지 했고, 특히 시리아에 핵기술을 수출한 것이 탄로가 나 난리가 났고, 심지어 북한이 개발한 핵탄두를 북한 스커드 미사일에 실을 수 있도록 경량화하는 작업을 이란에서 하고 있다는 ‘이란과의 핵협력 설’까지 있는데도, 굳이 이렇게 ‘간접시인’ 편법까지 동원하며 사실상 묵인하려 들고 있으니, 도대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 즉 CVID를 고집하던 부시 정부의 금지선(Red Line)이 어디까지 후퇴할 것인지? ‘북한이 핵을 가진 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그래서 결국 북한 핵이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중국은 몰라도, 미국까지 왜 이렇게 바뀌어 갔는가? 작년 3월 2․13북경회담 직후에 피터 브룩스(Peter Brooks)가 왔기에 북경회담 결과에 대해 좀 따졌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의 대답이 대개 비슷한데 은근히 ‘그럼 어떡하나? 중국은 앞을 가로막고 한국은 발목을 잡는 데 우선 더 만들지나 않게 막아 놔야지 다른 도리가 없지 않으냐?’는 식이고, ‘북한 핵 확실히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 ‘그거 한국 정부에 먼저 이야기하라’고 비아냥대기 일쑤입니다. 한국 때문에 안 된다는 어투가 아닙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DJ는 한창 핵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5억 달러의 돈과 물자를 끈기 있게 지원하면서 그것이 문제가 되니까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 만들면 내가 책임진다’고 까지 절절한 변명을 대신하더니, 막상 핵 실험을 하니까 느닷없이 ‘부시 때문’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더욱이 한국이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경제든 군사든 어떤 대북제재도 성공하기가 어렵고, 앞장서서 발목을 잡으려 들면 사실상 북한의 핵 폐기는 불가능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로는 핵이 안 된다면서, 언필칭 ‘평화’를 내세워 결과적으로 핵 폐기보다는 북한 체제 보호에 더 관심을 쏟아 온 것이 되었습니다.
예컨대 많은 전문가들은 정말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스라엘처럼 ‘군사력으로 직접 핵시설을 파괴하든지, 적어도 김정일이가 ‘핵 포기 않으면 얻어맞겠구나’ 겁은 나게 해야 해결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실제로 리비아의 가다피도 미국 항공폭격에 한 방 얻어맞고야 태도를 바꿨고, 김일성이도 1994년 클린턴이 영변을 군사공격하겠다니까 어쩔 수없이 제네바로 나간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미국이 군사제재란 말도 꺼내기 전에 절대로 안 된다고 말리고 또 안할 것이라고 미리 다짐까지 해주었습니다. 이거야 원 안심하고 핵 잘 만들라는 격려밖에 더 되겠습니까?
“대화가 부족해 核을 만들었습니까”
심지어 UN에서 경제제재를 말해도 그것도 위험하니 ‘대화’로 해야 한다며 막아서고, PSI 같은 것은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고 아예 말문부터 막았습니다. 아니 온 세계가 함께 하는데, 또 6·25 이후 서해해전을 비롯해서 군사충돌이 얼마나 많았는데 겨우 선박 하나 검색한다고 전쟁이 납니까? 또 ‘대화’. 참 점잖은 말씀이지만, 아니 대화가 부족해서 핵을 만들었습니까? 제네바 합의 이래 핵실험까지 12년, 얼마나 많은 회담을 했습니까? 또 그 회담한다고 얼마나 퍼 주었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회담과 회담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은 그 ‘대화’가 주는 여분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핵실험까지 마음 놓고 질주해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화로 된다면 미국인들 왜 대화로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2003년 중반 당시 미 국무차관 볼튼이 제 사무실을 들렸습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일본과 한국, 대만까지도 가지게 될 테니 중국이 나서서라도 해결해 주지 않겠는가?” 하고 묻습디다. 저는 ‘단연코 아닐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사실상의 핵 강국인데 새삼 그거 만들어 눈총 받을 리가 없고, 한국은 그럴 입장에 있지 않다. 만약 대만이 핵을 가지면 중국은 오히려 쾌재(快哉)를 부를 것이다. 대만이 고립되고 힘으로 때릴 명분이 생길 테니까.
그 반면 중국에게는 북한이 적절한 핵 국가로 존재하는 것이 더 쓸모가 있고, 북한이 전쟁 같은 중대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 말썽을 부려 주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북한이 조금만 말썽을 부리면 미국도 일본도 체면불구 북경에 매달려오지 않았던가? 당장 지금도 중국이 언제 지금처럼 ‘의장국’이니 뭐니 국제 외교의 중심에 서 본 일이 있었던가? 중국 지금 해피하다. 무엇 때문에 적극적이겠느냐? 그랬더니 “실은 나도 동감인데 그래도 워싱턴에는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무리 대화한다고 퍼 주고 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외교적 압력을 넣고 2005년 9월에는 마침내 BDA은행을 걸어 금융제재도 시작합니다. 이 금융제재는 제법 효과적이었던 듯합니다. 뉴스위크에 의하면 2006년 1월 김정일이가 후진타오와 만난 자리에서 “금융제재 때문에 북한 체제가 붕괴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2․16과 4․15 태양절은 북한 최고 명절입니다. 매년 국민에게 선물도 주고 그랬는데 2006년에는 못했습니다. 돈을 만들 수가 없어서. 나름으로는 큰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북한은 7월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쾅쾅 쏘아 올리고, 10월에는 핵실험까지 단행합니다. 북한 특유의 극한외교를 시도한 셈일 것입니다.
그러자 우리 대통령도 마치 북한 부탁이나 받은 듯이 ‘북한 핵도 이해할 만한 일’이니 뭐니 해가면서 미국 이 금융제재 푸는 데 엄청 공을 들입니다. 2005년 11월 APEC 경주 한·미 정상회담(頂上會談)에서는 하도 졸라대니까 부시 대통령이 짜증을 다 내고 갔다는 말도 있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이 시점 매년 있은 한·미 정보관계자들 간의 회의에서는 ‘안보위협에서 북한 핵을 빼라’는 지침을 두고 ‘말도 안 된다’는 미국과 한·미간에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북한의 수석변호인’
미국 입장에서는 협공당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미국이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CVID를 포기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7년 북경 2․13 합의에 이어 4월에는 마침내 이 금융제재까지 풀어 주고 말거든요. 실은 이때는 북한 체제가 무너지든지 핵이 폐기 되든지 양단간에 결론을 낼 수 있었다는 전문가도 많았는데, 그렇게 해서 또다시 북한 깡패외교만 성공시켜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발 더 나갑니다. 핵 실험의 여진(餘塵)이 완전히 가라 앉기도 전인 2007년 10월, 평양까지 가서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핵 문제는 슬쩍 비켜가고 말았거든요. ‘6자회담에서 잘 되고 있지 않으냐’는 핑계를 댔지만, ‘잘되고 있다’는 것도 진실이 아님은 물론 무엇보다도 북한 핵은 주변 각국에게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세계 안보이슈의 하나일 뿐인 반면 우리에게는 바로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런 우리 대통령이 어렵사리 만난 김정일과 핵은 버려두고 평화나 노래하고 퍼주기를 계속하면 북한은 무엇 때문에 핵을 포기할 것이며, 6자회담인들 어떻게 힘을 받겠습니까?
미국도 맥이 빠질 만하지 않습니까? 실은 원래 미국도 핵 확산에 항상 단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결국 인도를 받아들였고, 파키스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에 비하면 북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북한 핵문제에는 오히려 좀더 집요했던 셈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국만 믿고 있지 않고 이라크든 시리아든 직접 나서서 파괴해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핵 폐기에 주도적(主導的)으로 나서기는커녕 세계가 함께 해결하자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그것도 모자라 한편으로는 도와주고 또 한편으로는 변호하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 간섭과 제재를 막아주느라 바빴습니다. 오죽하면 햇볕정책 지지론자였던 로버트 아인혼까지도 한국이 ‘북한 수석변호인 같다’고 어이없어 했겠습니까?
어쨌든 그 결과 한·미동맹만 큰 상처를 입고, 북한 핵 위협은 이제 우리 눈앞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어 당당하게 ‘국제핵클럽’에 들어가고 우리는 한반도 적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겪게 되는 게 아닌지 은근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럼 ‘평화롭게 같이 살지 뭐’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화적 경쟁으로는 북한이 우리를 이길 수가 없고, 그걸 아는 북한이 핵을 갖고도 인내하며 궁극적 패배를 자초할 리도 없습니다.
2. 오늘 북한의 실상과 통일의 시대
죽은 망령이 지배하는 시대착오적 체제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극한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오늘 북한의 상황은 어떠냐? 우습게도 더 한심합니다. 예컨대 지금 북한의 국가원수가 누굽니까? 김정일입니까? 아닙니다. 법적으로 14년 전에 죽은 김일성이가 영구 국가원수입니다. 고금동서(古今東西)에, 죽은 망령이 통치하는 나라는 아마 지금 북한이 유일할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정상적인 체제라고 하겠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희한한 체제를 고수하느냐? 김정일의 왕조적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북한 핵은 물론이요, 북한의 사회적 참상(慘狀)과 한반도의 불안정까지 많은 문제들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막강하던 구소련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정보화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계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대착오적 체제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실제로 이제 거의 거의 한계에 온 듯합니다.
그것도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만찬이 롯데호텔에서 있었습니다. 건너편 ‘보도’ 완장을 찬 친구가 갑자기 “여보 김선생 우리 서로 봐 주기요!” “뭘 봐줘?” “우리가 통일하면-우리가 김선생 봐 줄 것이고 남측이 통일하면-김선생이 우리 봐 주기요.” 그 참담해하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하- 이거 다 갔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을 쾅 때립디다. 실제로 YS 중반쯤에는 세계의 공산독재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가운데, 미CIA, 연합사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도 곧 붕괴할 거라고 내다보고 있었고, 우리 정보관계자들도 ‘북한은 이미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적극적, 전략적이었더라면 이 불행하고 불합리한 동족간의 갈등관계는 이미 벌써 끝이 났을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정일 체제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니 단순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오히려 핵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 외교관계협회 회장 리처드 하스는 클린턴과 DJ가 버팀목이 돼 주어서 그랬다고 하고, 황장엽씨는 대놓고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가슴을 치는데, 그러나 이러니 그 체제가 어떻게 온전하겠습니까? 저 참혹한 식량난도 저들은 천재지변 같은 데다 핑계를 대지만 주민통제를 위한 半 고의적 인재(人災)라는 것 아닙니까? 1995년 북한 농업담당자 한 사람이 귀순해 왔습니다. 가만 보니까 ‘집단농을 개인농으로 바꾸기만 해도 3배 증산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중앙당에다 건의를 했답니다.
답이 없어서 두 번, 세 번째 하니까 중앙당에서 내려와 “이 동무, 식량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요. 입 좀 다물라요” 하더랍니다. ‘이크 이거 수용소 행 되겠다’ 싶어 귀순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황은 좀 다르지만 농업담당비서 서관희는 총살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또 사악(邪惡)한 체제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긴 지금 북한체제는 국민을 먹이고 보살피는 정상적인 체제가 아닙니다.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전쟁체제, 그것도 총력전 체제나 다름없습니다. 통치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통치관행이나 군사제일주의라는 통치 방식도 문제입니다. 도대체 이런 시스템, 이런 방식으로 이 총체적 경쟁의 시대, 세계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갑니까? 수백만의 주민이 굶어 죽고 줄을 이어 도망(逃亡)을 치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김정일의 ‘간접침략’ 승부수
여기에 햇볕이든 뭐든 돈 좀 쏟아 붓는다고 뭐가 달라지고 기사회생(起死回生)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퍼 주기만 하면 다시 살아나는 양, 1995년 이후 대략 8조-10조나 퍼 주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는 여전히 굶주리는데 김정일 측근들만 호의호식하며 핵이나 만들었지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체제가 바뀌고 개방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체제문제는 항상 요지부동(搖之不動)이고, 또 김정일에게 “우리도 중국처럼 개방해야 삽니다” 했더니 “당신 나 죽으라는 말이냐? 수많은 동구라파 국가들이 개방을 했지만 지도자가 살아남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더랍니다. 맞습니다. 맞지만 이래서야 무슨 미래인들 있겠습니까?
더욱이 북한이 오늘 저 모양이 된 것은 김정일이가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무력적화통일 정책에 지나치게 올인해 온 때문입니다. GDP의 25%(황장엽 50, 김덕홍 70)나 군사비로 써댔다니 그 경제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덕분에 사상 초유의 군사력을 쌓아 놓았고 핵무기까지 만들었습니다만, 그 대신 197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보다 앞서가던 북한 경제가 다 거덜이 나고 마침내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밀려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김정일로서도 적화통일을 실제로 이루기 전에는 오늘의 체제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이가 북한주민의 참혹한 굶주림은 외면한 채, 핵만 움켜쥔 채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나 ‘간접침략(間接侵略)’ 같은 가당치 않은 승부수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모택동이가 마르크시즘, 홍군과 함께 통일전선책략을 승리의 3요소로 꼽았는데 북한도 일찍부터 그런 ‘간접침략’에 매달려 왔습니다. 지난 10년, 역사를 왜곡해가며 우리를 위해 피 흘린 동맹은 적대시하면서, 북한 핵 실험을 비호하고 선군정치까지 찬양하는 책자와 영화, 방송, 인터넷사이트 같은 것들 속에는 이런 북한 간접침략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대한민국의 국기(國基)가 흔들린다고 얼마나 우려했습니까? 실로 선전포고도 없고 포성도 울리지 않지만 전면남침 못지않은 제3의 전쟁이자 위협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위협들도 북한 핵을 등에 업고 전개 될 것이고, 핵으로 한껏 높아진 북한의 위세가 간접침략의 효과를 극대화 해 줄 것입니다. 정말 적화통일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친북세력, 기회주의적 세력은 얼마나 늘고 또 극렬해지겠습니까?
통일은 우리의 생존과 발전 위한 기본 바탕
결국 지금 북한은 ‘더할 수 없는 위협이자, 구원을 기다리는 병(病)든 동포’이기도 한,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특히 그런 그들이 핵을 개발함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싫든 좋든 통일번영의 새 길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외통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핵을 그대로 두고는 우리가 살아남기 어렵고, 자유민주통일 외에는 북한 핵을 제거 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반세기 이상 지속된 동족 분단의 모순이 북한 핵으로 인해, 지금 어떤 운명적 한계상황에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핵실험 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실험은 선전포고와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동아일보가 그대로 받아 장문의 특별 논설을 실었습디다. 참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절실하게 공감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쉽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냉철하게 보면 오늘의 상황은 이렇듯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료합니다. 이것 우리가 희망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듯이 원하지 않는다고 회피할 수도 없고, 굳이 회피하려 들면 패배밖에 남지 않을 그런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러지 않아도 이 21세기 세계화 시대는 나라의 덩치부터 커야 자기 주권이라도 좀 챙길 수가 있는 강대국 위주 제한 주권시대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아남고, 보다 나은 내일을 열어가려면, 이 분단 대치 상태는 어차피, 또 시급히 극복해야 할 장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뜻밖에 적화통일은 은근히 비호하면서, 자유 민주 통일은 ‘전쟁 난다’, ‘난민이 수백만씩 몰려온다’, ‘통일비용이 몇 백조다’ 이런저런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흔히 독일 통일의 부작용을 사례로 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분단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독일인이 있습디까? 저는 못 보았습니다. 사실 ‘자유 민주통일만 전쟁 난다’는 것부터가 너무 기만적이고,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 같은 이는 난민 걱정은 기우(杞憂)일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또 통일비용?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투자비용이요, 영원히 않는다면 모르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시일을 천연(遷延)하면 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그런 비용이요 부담입니다.
그 반면 우리가 지금도 물고 있는 분단비용은 또 어떻습니까? 국가적 자존심의 훼손, 안보상의 굴욕, 경제적 손실 등등 얼마나 막대합니까? 그런가하면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을 비롯해서 ‘통일한국이 선진강국들을 따돌리고 세계 6, 7위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화려한 예측을 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실제로 2.2배의 국토에 통일된 7000만의 폭발하는 민족적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저 듣기 좋은 덕담만은 아닐 것입니다. 흔히 통일을 민족 久遠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라 21세기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필수적 기본 바탕인 것입니다.
이제는 北동포의 눈물을 닦아줄 때다
그리고 북한 주민도 우리 동포입니다. 언제까지 저대로 버려 둘 것입니까? 사단장 군단장 시절, 벌레를 영양식으로 삼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참혹하기 짝이 없는 증언 앞에서 저도 눈물깨나 흘렸습니다. 예편하면서 그런 것들 다 털겠다면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미 의회에서 북한 종교자유 청문회니 이런저런 초청장이 오고 그러면 또 참석 안할 수가 없어서 나가는데 그러면 오히려 더 참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탈북동포들이 여기서는 못하던 이야기를 그곳에서는 하는 것입니다. 실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참혹한 만행이 우리 한반도 상에서 바로 지금도 자행(恣行)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 북한 동포들이 하느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지…
이제는 북한 동포의 눈물도 닦아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우리 모두가 민족사에 죄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북한은 이미 핵 실험으로 선전포고를 한 상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과정을 평화롭게 관리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는 셈입니다. 서둘러 저들을 구해내지 못하면 장차 우리가, 우리의 아들딸들이 오늘 북한 주민의 저 참혹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 북한 어린이의 37%가 영양실조요 45%가 비정상 발육 중이라니, 통일이 되더라도 10년, 20년 후라면, 자칫 엄청난 장애우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만도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또 온 세계가 문화니 삶의 질이니 새로운 가치를 위해 뛰고 있는데 우리만 동족간의 갈등에 민족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으면 장차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 낙오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년 1월18일 중국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임스 릴리 대사는 미 의회에서 “중국이 북한의 半 정도를 자기 땅으로 생각하고 동북공정(東北工程)과 백두산 주변의 대군이 그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시간을 질질 끄는 것도 북한이 무너지면 진입하려는 것”이라는 증언을 했습니다. 얼마 전 북경 올림픽 성화 봉송 때 중국인들이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앞세우고 서울을 휩쓸고 다닌 폭력시위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만약 북한이 정말로 중국의 배타적 영향력 하에 들어간다면, 우리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난이 될 것입니다. 통일은커녕 우리 한국은 또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아닌 말로 제2의 티베트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 한반도 전문가 에버스타트는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은 중국이 더 커지기 전에 통일을 서둘러야지 아니면 늦을 것”이라고 계속 경고해 왔는데, 혹시 정말로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장차 우리가 ‘햇볕’ 운운하면서 십여 년의 결정적 세월을 ‘북한 체제 도와주기’로 다 보낸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 런지 불현듯 겁이 다 납니다. 그게 아니라도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마치 김정일의 농노처럼 김정일 뒷바라지나해야 합니까? 우리가 완전히 패배 할 때까지 계속 할 것입니까? 어떻게 서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잃어버린 10년’의 안보
韓美관계는 ‘사실상 이혼한 사이’란 評도
그런데 지난 10년, 이런 중차대한 도전과 기회의 시대에, 우리의 안보는 어땠는가? 어이없게도 6·25 이후 한국의 국가안보의 3대 지주(支柱)가 되어 온 국민의 안보의지(安保意志)와 우리 국군의 국방태세 그리고 튼튼한 한ㆍ미 동맹 그 모두가 다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전투는 군인의 몫이지만 전쟁은 국민이 수행하는 것이고 그래서 국민의 안보의지야말로 국가안보의 뿌리요 근본입니다. 그런데 국가 지도자가 ‘군 복무는 썩는 시간’이요 국토 사수(死守)는 ‘땅따먹기 놀이’라고 비아냥대고, 그 뻔한 간접침략에 허둥대는 우리 사회를 보면 과연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의지나 있는지 그것조차 자신이 없었습니다.
우리 국방 태세는 또 어땠습니까? 협력안보, 집단안보가 기본인 이 세계화 시대에 자주국방(自主國防)한다며 오랜 동맹이나 돌려세우고, 영국 란체스터의 말대로라면 지금처럼 60% 수준의 병력으로 적을 이길 확률은 4.1% 내지 13%에 지나지 않는 다는데 우리는 그것도 많다고 굳이 50만까지, 그것도 법으로 줄여 나가려 했습니다. 또 필부필부를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 묶어세우는 것은 엄정한 군기(軍紀)이고, 전투 시에 그들을 잘 싸우고 살아남게 하는 것은 강한 훈련인데, 인권과 안전을 내세워 군기를 허물고 훈련을 위축시켰습니다. 결국 스스로, 안보 방벽을 허물고 태세와 역량을 헤집어 온 것입니다.
아니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으면 핵에 대한 대책부터 강구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그것 생각하면 더 기가 막힙니다. 완벽한 대비책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고, 미국 핵우산도 한·미동맹이 견고해야 효과가 있듯이, 전략적 차원의 핵억제 전력은 물론이요, 재래식 첨단 전력에 의한 예방억제 역량 같은 것들이 모두 미국의 적극적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전력들이어서, 그나마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한·미동맹을 더욱 튼튼히 하는 길뿐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미관계는 캠벨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은 ‘사실상 이혼한 사이’라고 섭섭해 하고 핼핀 미 하원 전문위원은 ‘못질하기 직전 관속의 시신’이라고 단정짓는 극단적 표현이 지배적이고, 워싱턴에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북한은 중국에 넘겨 핵을 폐기시킨다’는 이른바 ‘미·중 빅딜’ 설(說) 이나 ‘미국은 한국이 없는 동북아 전략을 짜고 있다’는 말들이 떠돌았기 때문입니다. 60년 가까이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정평이 나 있던 한·미동맹이 이렇게 피폐해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되었는가? 무릇 ‘동맹관계’란 ‘공통의 위협을 전제로 이념과 가치를 같이하는 사이에서 공통의 이익과 이해를 위한 상호지원 관계’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북한 핵문제를 위요한 한·미간의 긴 갈등관계를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처럼 김정일 체제와 북한 핵문제를 보는 ‘위협에 대한 기본 인식’부터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김대중 정부당시 한 미군 소장의 말이 아주 상징적입니다. ‘선샤인 폴리시(Sunshine policy)는 무슨? 김정일 구두나 닦아주는 슈샤인 폴리시(Shoeshine policy)지.’ 물론 사석(私席)의 농담이었지만 평소 한국 지도자와 정책을 존중하는 미군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냉소(冷笑)였습니다. 심지어 미 의회 조사국 래리 닉쉬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이 하나가 되어간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연합사 해체’는 결정적 상처
‘상호지원’도 그렇습니다. 이라크 파병도 우리는 큰 생색을 냈지만, 당시 라포트 사령관은 “‘3000명이 무어냐?’고 펄펄 뛰는 럼스펠드를 겨우 달랬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했습니다. 실은 오늘 이라크 상황이 저렇게 어렵기는 하지만, 에너지의 약 80%를 의존하는 이 중동 대 전략자원지대를 버려두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이때는 한국이 새로운 도약의 문을 여는 월남전 못지않은 국가적 기회였을 수도 있었는데 전략적 안목이 낮아 실리(實利)도 우의(友誼)도 다 놓쳐버렸던 것입니다.
더욱이 동맹, 특히 군사동맹관계란 상호간의 깊은 이해와 돈독한 우의가 있어야 그 기능이 살 수 있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군의 훈련장까지 찾아가서 성조기(星條旗)를 불태우면서, 주한미군의 교통사고 하나에는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켜들거나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내고야 끝을 냈습니다. 심지어 한 때는 외출 나온 미군에 대한 크고 작은 위협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이런 반미정서는 당연히 미국의 염한(厭韓), 혐한(嫌韓)정서로 치환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맹의 우의가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2007년에는 한·미 연합사까지 해체하기로 했습니다. 실로 그것은 무너져 내리는 한·미동맹의 상징인 동시에, 동맹에 결정적 상처를 준 조치였습니다. 사실 한·미 연합사 체제는 한·미군사동맹의 핵심적 연결고리이자 튼튼한 한·미군사동맹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현실체입니다. 그 상징성이 지난 50여년 이상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그것도 ‘값싸게’ 지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이 GDP의 9.8%, 싱가포르도 5.6%, 말레이시아도 4-6%를 국방예산으로 쓸 때 우리는 겨우 2.7% 내외 정도로 버티어 왔습니다. 그러고서도 안보가 안정된 나라라고 세계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모두 누구 덕이겠습니까? 앞으로도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고, 연합사는 그 지원을 받아들이는 양호한 체제요, 통로입니다. 또 장기적으로 고구려 역사까지 넘보는 팽창주의적 중국의 위협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도 미국밖에 없고 이때도 연합사 체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쓸모가 많은 그런 기구입니다.
결국 연합사는 지금은 물론 통일 후의, 상당한 미래까지도 함부로 대체할 수가 없는, 가장 값싸고 효율성이 높은 국방체제요, 한국의 중추적 국가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이제 그걸 파괴한다? 당장 우리의 가장 강력한 억제력을 상실해서 자칫 정말로 북한의 오판을 불러오거나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높이게 될 것이고, 나아가 자유민주체제하의 우리의 원만한 통일은 지극히 어려워 질것입니다. 그래서 기억하시겠지만 한국의 전직 국방 수뇌들과 고위 외교관, 경찰 등등 가위 범사회적 범국민적 반대가 이어졌습니다.
核폐기 없는 평화는 사기
미국으로서도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고위 군 관계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 국방연구원(IDA)의 한 연구위원은 “결국 미군이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前 미 NSC 동북아담당 선임국장 마이클 그린도 “동맹이란 깨질 수 없는 게 아니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매년 그래 왔듯이 작년에도 주한미군 고위 장성들을 초청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연합사 해체돼도 주한미군 정말로 줄이지 않는 거지?” 또 ‘그것은 당장 핵을 만들려는 북한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장기적으로 팽창주의적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미국의 안보이익에도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조목조목 따졌더니, 벨 대장이 ‘그러면서 한국은 지상군을 40%씩이나 줄이느냐? 부시 대통령도 잘 알고 있는데’ 또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그것 거절하면 또 촛불시위 나올 것 아니냐?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라며 식탁만 쾅쾅 두드려 댑디다.
자칫 한미동맹의 뼈대가 부서져 내리고 한국 안보태세의 기축을 흔들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를 일인 것입니다. 꼭 해체해야 한다 해도 때가 있는 법이지 하필이면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중국이 우리를 넘보고, 북한 핵위협이 코앞에 다가서는 이런 때에 연합사를 해체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요구하고 나섰으니 동맹이 어떻게 정상적일 수 있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 안보태세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또 북한 핵 문제도 그대로 둔 채 우리정부는 북한과 종전선언(終戰宣言)하고 평화체제 구축하겠다고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평화체제, 이것 얼핏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은 잘 돼봐야 한반도의 항구적 분단 갈등 체제에 다름 아니고, 지난 반세기 이상 한국의 안전을 지켜오던 전통적 안보체제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들고 한국의 안보태세 자체를 통째로 재구축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입니다. 게다가 도대체 ‘평화체제’의 본의가 살려면 적어도 북한도 우리와 ‘평화공존하겠다’는 의지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북한은 하다못해 헛말이라도 “적화통일을 포기한다”고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몇 번이나 “북한의 평화체제 구축대상은 미국”이라고 못을 박아왔습니다.
한국은 평화의 대상이 아니라 통합의 대상, 적화통일의 대상이라고 명시(明示)를 한 셈이 아닙니까? 그저 협정만 맺으면 평화가 달성되는 줄 아는지 모르지만 그런 협정문서 쪼가리들로 보장되는 평화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건 오히려 침략과 파멸에의 초대장이 된 경우가 수없이 많고, 그래서 역사에는 배반당한 평화협정의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과거 월남사람들은 파리평화협정에 속아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죽고 처형당하고 110만 여명이 해상을 떠돌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핵 폐기 없는 평화란 사기일 뿐입니다. 만에 하나 핵을 보유한 북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적화통일로 가는 대로를 닦는 게 될 것입니다.
4.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
국가도 암 덩어리 하나에 허물어질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언젠가는 우리가 마침내 오늘 북한의 저 참혹한 삶을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때마침 정권도 바뀌었겠다 더 이상 스스로를 자해(自害)하는 데나 몰두 할 일이 아니라 국가안보 목표를 재확립하고 민족의 먼 미래를 열어 나가는 창조적인 큰 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그동안 함부로 헤집고 어질러 놓은 국가안보 태세부터 하나하나 튼튼하게 재정비해야 할 것입니다만, 그 수많은 일들을 모두 다 여기서 논(論)할 수는 없는 일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친북좌익세력(親北左翼勢力)부터 정리를 해서 우리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라도 작은 암 덩어리 하나에 하루아침에 생명을 잃고 허물어져 내리는 법 아닙니까? 국가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국가적 세력이 득세해서 국가적 권위와 신뢰가 흔들리고 사회의 법질서가 무너지면 그런 국가, 그런 사회는 존립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저히 공감 할 수 없는 명분으로 서울의 중심부가 밤마다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되고 거기서는 ‘김일성 찬송가’를 만든 사람이 만든 ‘헌법 제1조’라는 노래가 시청 앞 광장과 세종로 네거리에서 수시로 울려 퍼진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해져 있는지 알 만합니다. 더욱이 이런 극한적 혼란과 갈등에는 북한 간접침략도 이어져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의 쇠고기 촛불시위는 8·15까지 이어질 것이고 그 때쯤에는 김정일이가 직접지원을 해서 우리 사회를 오늘 이라크처럼 만들도록 계획이 되어 있다. 그래서 지난번 샤프 연합사령관이 한국 사회도 테러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금강산에서의 참극으로 명분과 동력을 상당부분 잃었을 법한데도, 같은 제목, 같은 행태의 폭력시위가 계속 강행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기는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실로 문자 그대로 심복지환(心腹之患)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먼저 깨끗이 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정부 못지않게 국민의 깨달음과 적극적 참여가 중요합니다. 물론 일단 정부의 국민 통합의 리더십과 국정운영의 전략 그리고 단호한 법질서 수호의 의지가 문제해결의 핵심이지만, 오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부와 정치의 의지나 능력 모두 그리 기대할 바가 못 되는 것 같기도 하니 국민 스스로 말고는 믿을 곳도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념갈등 같은 간접침략 형태의 전쟁에서는 무엇보다도 확고한 체제수호의 의지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 몫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못지않게 서둘러야 할 것은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추스르는 일입니다. 그것이 오늘 안보상 가장 중요한 과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한·미동맹, 이것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6·25 막바지 이승만 박사가 손을 훼훼 내저으며 도망가는 미국을 겨우겨우 동맹으로 붙들어 맨 이야기는 가위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엮어 놓은 한·미동맹이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지금도 북한 핵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의 길입니다. 또 장차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물론 멀리 통일 이후에도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이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제휴의 대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인식입니다.
그게 아니라도 오늘 세계화 시대는 ‘얼마나 많은 나라와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고 잘 관리하느냐’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되는 시대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우호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서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국가 대외정책의 핵심적 과제이고 한국은 더더욱 두말 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볼수록 지금은 튼튼한 한·미동맹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고 잘 가꾸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反美의 촛불을 한국인의 ‘진짜 정서’로 이해
다행히 새 정부는 한·미관계를 21세기「전략 동맹」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핵’이라는 공통의 위협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안보상의 국제적 과제, 그리고 팽창주의적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미국의 안보이익 같은 것들을 고려하면, 우리가 굳이 햇볕 속에서 길을 거꾸로 와서 그렇지, 아직은 동맹을 재정비할 수 있는 바탕은 충분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면밀히 살펴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최근 누구보다도 친한적(親韓的)인 한 美 고위 외교관은 제게 “지난 10년 사이 한국이 엄청 변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결국 미국을 빼고 북한과 손잡고 살겠다는 젊은이들의 열망 아니겠는가? 국민이 희망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허탈해했습니다. 또 “그것이 신세대들의 기본 인식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혈맹적 한·미동맹으로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촛불시위’ 말만 나와도 경기(驚氣)하는 사람들입니다. 쇠고기를 주식(主食)으로 삼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반미가 아니라 광우병이 겁나서 촛불시위한다’는 것이 어떻게 납득 되겠습니까?
과거에는 그래도 ‘좌파정권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변함없는 촛불의 홍수를 보면서 이제는 오히려 ‘아하- 이 반미의 촛불이 한국인의 진짜 정서로구나’ 실망하면서 점차 염한, 혐한정서로 바뀌어 간다고도 합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문제였는데 지금은 국민이 문제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쉽게 해결하기도 어려운, 더 근원적인 문제가 되어 간다는 말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철딱서니가 없거나 아니면 아주 고약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그런 촛불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가 포린 어페어스誌에 기고(寄稿)하면서 일본과 호주는 동맹이라면서 한국은 파트너라고 굳이 호칭을 달리하고, 마이클 그린 같은 지한파 인사도 새삼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고 있던데 이런 사실들이 은근히 더욱 더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한·미간의 신뢰회복부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동맹의 내실을 다지려면 정부의 제법 지혜로운 성찰과 정제된 계획, 그리고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도 걸핏하면 함부로 촛불부터 켜 들 일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미국이 기대하는 동맹적 가치를 적극 개발해 나갈 일이고, 개별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이 동맹관계에서도 호혜적 혜택보다는 위험과 고난, 책임과 부담의 공유가 더 소중하고 필수적일 수 있다는 것도 지혜롭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동맹이란 상호지원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돕고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守護天使)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합사 해체 조기에 再검토해야
그리고 한·미동맹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미간의 현안문제들, 특히 연합사 해체 문제는 가급적 조기에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지연되면 될수록 복원이 어려워지고, 우물쭈물하다가 정말로 연합사가 해체되거나 하면, 한국의 안보와 국방에 돌이킬 수없는 전략적 전술적 문제점을 야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의 公式적 태도는 현 합의를 유지하자는 것이고, 특히 미 의회는 제법 강경한 입장이지만, 리처드 롤리스나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그리고 마이클 그린 같은 직·간접적 관련 담당자 혹은 전문가들의 말은 훨씬 더 융통성이 있습니다. 워싱턴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좁은 안목과 소극적 의지가 더 큰 문제가 아닐 가싶습니다. 미 측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의 개발과, 얼마나 지혜롭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아예 무효화하는 것은 몰라도, 합의안의 시행(施行) 연기나 수정보완 같은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의 재정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합목적적인 對北정책을 지혜롭게 특히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북한은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며 함께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같은 동포이지만, 동시에 공산주의 독재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놓고 서로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엄연한 체제경쟁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같은 동포라는 대의(大義)에 입각해서 일찍부터 북한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왔습니다만, 북한은 다양한 위협과 군사도발 그리고 특히 ‘간접침략’ 등으로 끊임없이 적화통일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핵 실험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간접침략’? 이것도 얼핏 쉽게 생각하지만, 과거 월남전에서는 미국도 월맹은 버려둔 채 베트콩만 제거하려 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북한을 성역(聖域)으로 버려두고는 친북좌익세력을 뿌리 뽑기 어렵고, 그러면 승리는커녕 사회적 안정과 발전도 쉽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10년 햇볕도 이 기본 패턴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여기에는 우리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통상 평화를 위해 활용하는 ‘억제(抑制)’라는 개념은 주로 상대방에게 ‘전쟁을 도발하면 이익보다는 손실이 훨씬 더 크다’는 걸 인식시켜서 도발을 못하게 하는 평화유지방법입니다. 자연히 목소리도 좀 크고 표현도 좀 험악할 수밖에 없고 때에 따라서는 겁도 좀 주어야 합니다. 특히 단호한 응징과 보복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보십시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철저하게 보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소리라도 좀 높이려 들면 우리 사회가 먼저 ‘북한을 자극한다’고 펄쩍 뛰고,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할 수많은 도발이 있어도 한 번도 제대로 된 응징·보복 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先軍정치’를 ‘先民정치’로 유도해야
그러고도 이것저것 열심히 잘 갖다 바치고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핵실험을 해도, 우리 대통령이 평양까지 찾아가 경제협력을 논하고 ‘평화협력지대’라며 북한이 우리 영토를 시비할 단초를 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니 북한이 우리를 ‘아무 때나 뺨 한 대 올려붙여도 괜찮을 만만한 상대’로 경멸하게 만든 것 아니냐 하는 겁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햇볕정책 10년간 북한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할 수 없이 진지했습니다. 그 이상 더 어떻게 헌신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순간에도 저들은 핵이나 만들면서 ‘적화통일의 의지’만 불태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하기야 원래 건강한 평화는 용기 있는 자만이 향유(享有)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 햇볕정책의 결과는 그 증거인 동시에 저들의 ‘적화통일 의지’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판에 우리만 언제까지고 햇볕만 고집하며 분명한 패배의 길을 한없이 갈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통일번영의 미래 대한민국을 내다보면서 목표부터 명확히 세우고 철저히 목표지향적인 대북 전략과 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일일이 중언부언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식량과 에너지를 퍼 주고, 저들은 그럴 돈으로 핵이나 만들어서 다시 우리를 위협하고 강탈하려 드는, 이런 불합리한 관계는 조속히 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대북전략과 정책도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이며 특히 목표지향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힘에 의한 대비(對備)’로 북한의 각종 위협과 도발을 효율적으로 억제하면서 ‘평화적으로 접근’하되, 북한을 잘 아는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는 대놓고 “흡수통일 외에는 길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정권과의 공식적 교류 못지않게 북한 내에 친민주 세력도 길러야 한다”고 하던데 그런 식의 ‘적극적 책략(策略)’들도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북한사회의 개방과, ‘선군정치(先軍政治)’가 아니라 ‘선민정치(先民政治)’가 되도록 체제를 개혁하게 하는 데 보다 더 정책적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남과 북의 동포적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특히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데 보다 더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북한 주민은 물론 북한 지도층도 자유민주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적 심리전도 중요할 것입니다.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야 승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북한에 끌려 다니지 말고 남북관계를 주도(主導)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하자는 대로 끌려만 다녀서는 아무리 잘해도 결국은 질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우연한 승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햇볕, 햇볕 하며 북한의 버릇을 잘 못 들여놓아 매사 하자는 대로 비위를 맞추고 끌려 다니기 바빴습니다. 예컨대 북한의 식량난은 금년에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사실 작년의 흉작에 이어 국제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믿었던 중국의 대지진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쌀을 쌓아놓고 기다리는 우리에게 ‘역도’니 도당이니 별별 모욕을 다 퍼부으면서 은근히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가져다 바치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척 다운스 같은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북한처럼 정권이 분배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한, 외부의 지원은 국민에 대한 탄압만 강화시켜 줄 뿐”이라고 해 왔는데, 탈북자들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 대북지원은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생존해온 인민대중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대외지원에 의존해 온 당·정·군 지배층과 김정일 체제의 권력기반을 강화에만 도움을 주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막고 북한주민들을 더욱 더 탄압하는 결과로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에 대한 햇볕의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인 동시에, 이제는 좀 더 전략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얼른 쌀을 주지 못해 조바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저런 모욕 속에 또 다시 ‘상납(上納)’하듯 쌀을 보내면, 북한의 버릇은 더욱 기고만장(氣高萬丈)해질 것이고 새 정부 역시 북한에 코를 꿰이게 될 것이 명약관화할 것입니다.
한편 북한 스스로는 그러면서 어쩌다가 우리가 이것은 좀 너무하다 싶어 조금 우리마음대로 하려고만 들면, 북한은 통상 어떤 사단(事端)을 일으키고는, 벼랑끝 외교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 준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금강산에서 우리의 선량한 가정주부에게 함부로 총질을 해대서 목숨을 잃게 하는 정상적인 국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였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은근히 ‘우리 정부가 김정일과 잘 지내지 못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 잘못’으로 몰아가려 하거나, 아니면 언필칭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며 ‘대북 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가 여기에 항복하면 또다시 북한의 승리로 자리매김 되겠지요.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북한 주민의 고통이 안쓰러워도, 또 남북관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더라도 확고한 전략과 원칙을 가지고 좀 의연하게 기다리면서 어떻게 하든 먼저 서로 존중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북한의 태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뻔한 술수에 휘둘리지 말고 확고하고 의연해야 합니다. 좀 시간이 걸리고 또 일시 긴장이 조성되는 한이 있어도 이런 것은 언젠가 한 번은 겪고 또 이겨내야 할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더 급한 측은 북한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단호하고 히 대처하면 북한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대북정책도 효율적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맺는말: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의 비전과 의지의 문제
DJ에 대한 의문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도대체 왜 DJ 정부는 스스로 승리의 기회를 던져버리고, 참여정부는 굳이 존망의 위험을 스스로 찾아서 나섰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스스로 만든 햇볕 논리에 도취된 채 우리의 안보태세는 스스로, 또 끊임없이 흔들어 대면서, 북한이 붕괴의 위협에 빠져 있을 때는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며 핵을 만들게 하고, 핵 실험 후에는 평화를 내세워 사실상 핵을 기정사실화하려 들더니, 마침내 평화정착을 위해서라며 아예 적화의 길을 열어줄 뻔 했으니 말입니다.
평화? 물론 가장 존중되어야 할 범인류적 가치입니다. 그러나 회피하고 도망하면 뒤따라와 뒤꿈치를 무는 것이 전쟁이고 전쟁을 각오하고라도 단호히 맞서야 지켜지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평화롭게 해결하려면 먼저 전쟁부터 말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를 찾는다면서 사실상 적화의 문, 전쟁의 문, 그것도 굳이 패전의 문을 두드려 온 것이 아닌 가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해서, 무릇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버려두면 위기로 되돌아오는 법인데 ‘햇볕’ 속에서 미루고 회피하고 또 때로는 상대를 도와주기까지 해 가면서 우리에게 있었던 운명적인 기회를 스스로 훼손하고 낭비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 특히 그러다가 우리가 거의 존망의 어려움으로 되돌려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는 듯합니다. 일찍이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종식되었을 때에 앨빈 토플러는 ‘미국은 군사, 경제, 정보 같은 현대국가 힘의 3요소를 두루 다 갖추었는데 구소련은 농업시대처럼 군사력에만 매달려 있었으니 이길 수가 없었다’고 분석했는데, 오늘 남과 북이 꼭 그런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국제사회의 흐름도 재미있습니다. 우선 크게는 전체주의 독재가 배격되고 사회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화가 확산되는 것이 오늘 세계화 시대의 주 된 흐름입니다.
마지막 기회
더 중요한 것은 주변 4강(强)의 입장인데, 2000년 말 군문(軍門)을 떠나면서 미국 RAND, 일본 방위 연구소, 러시아 IMEMO 그리고 중국 사회과학연구소 같은 주변 4강의 대표적 국가 안보 연구소들을 두루 섭렵하는 좀 특이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모름지기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이니 만큼, 주변 4강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나름으로는 일종의 순례(巡禮)의 길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서 각국의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고 조언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 末 귀국할 때는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과 희망을 가슴 가득히 안고 왔습니다.
김정일이 원체 개망나니 노릇을 하니 그랬겠지만, 주변4강에서 모두 원하든 않든 ‘아하- 이제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한국 통일에 대한 일종의 체념적 공감대 같은 것이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반도의 미래가 아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비전과 의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자유우방 동맹국과 더불어 조금만 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한다면, 우리는 예상외로 빠른 시간 내에, 평화적으로, 우리의 헌법정신에 입각한 궁극적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저 참혹한 삶을 살고 있는 북한 동포도 구해내고, 부유한 경제, 찬란한 문화, 튼튼한 안보를 자랑하는 영광된 21세기 대한민국을 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턱없는 만용(蠻勇)으로 민족의 생사와 운명을 시험하러 들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짧은 안목으로 미래를 버려둔다면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영원히 정체되고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 다소의 희생이 따를지도 모르고 또 그것으로 겁을 주는 이도 있지만, 모름지기 역사란 원래 그렇게 희생으로 성장하는 법입니다. 또 오늘의 작은 희생을 두려워하면 내일 더 참혹하고 큰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지혜롭고 용기 있는 자의 것이 되어온 것입니다. 1938년 뮌헨회담 당시 전쟁을 겁낸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손에 공짜로 체코를 쥐어 주고 얻어낸 ‘평화선언서’를 흔들며 “여기에 우리시대의 평화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英佛 양국의 이 국가적 비겁성은 불과 1년여 만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문을 열어 주게 됩니다. 용기가 필요할 때 비겁한 것은 때로는 더할 수 없는 죄악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적화통일 이 외에는 김정일 체제가 살아남을 길이 없고, 자유민주통일 외에는 북한 핵을 해결하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이 엄연한 운명적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겨우겨우 남아 있는 이 마지막 기회의 시간마저 훼손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선 우리 국민이 스스로 안보적 소양(素養)을 길러 모든 상황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와, 진실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무릇 국민이 지혜로워야 정책도 지혜로울 수 있고, 국민의 용기와 의지가 뒷받침 되어야만 지혜로운 전략도 살 수가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위난의 시대가, 미래 한민족 대동(大同)의 세계로 이어지도록 서둘러 이끌고 잘 관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아들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다함께 그야말로 비상한 국가적 용기와 범국민적 지혜를 행동으로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韓國安保와 北核 문제의 含意
- 金熙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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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22, 1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