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광화문 일대 상점 주인들이 촛불난동의 주동단체와 정부를 상대로, 경찰은 주동 단체와 인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 소송이 불법폭력시위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을 남기게 될지 모른다.
1984~85년 사이 영국에서 있었던 탄광노조 파업 때도 이런 류의 소송이 노조측을 굴복시키는 데 일조했다. 탄광노조는 대처 정부가 경제성이 없는 탄광을 폐쇄하기로 하자 파업을 시작했다. 1984년 8월 요크셔의 두 광부가 요크셔 탄광 노조를 상대로 '불법파업을 하여 손해를 끼쳤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영국의 탄광노조는 노조원들의 찬반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파업을 시작했었다. 영국 법원은 파업이 불법임을 확인했으나 탄광 노조 지도부는 불복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법정모독죄를 적용하여 노조위원장과 노조에 대해 20만 파운드가 넘는 벌금을 선고했다. 노조가 벌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자 법원은 노조의 재산을 압류해버렸다.
이 무렵 영국의 탄광 노조가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소련의 비밀지원을 받았다는 폭로기사가 터졌다. 당시 탄광노조의 핵심 인사들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영국인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에 대해서는 동정적이었으나 외국의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파업을 하는 데 대해선 냉담해졌다. 여론의 지지를 잃은 파업임이 드러나자 파업대열에서 이탈, 작업현장으로 복귀하는 광부들이 늘어났다.
그해 12월엔 파업광부가 파업거부 광부를 태우고 가던 택시를 향해서 높은 데서 돌을 던져 운전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다시 여론이 악화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광부들이 늘었다. 다음해 2월이 되면 탄광노조원들중 과반수가 직장으로 복귀했다. 노조 대의원들은 그해 3월 파업 종료를 결의하였다.
영국 탄광노조는 한번 파업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했었다. 대처 영국 수상은 1년간 원칙대로 파업에 대처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그 이후 탄광은 거의가 폐쇄되고 탄광노조뿐 아니라 영국의 노조 전체가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히 잃었다.
영국탄광노조도 피해자 소송으로 손을 들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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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01, 17: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