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토론방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름 남신우 (61, 남, 건축사)
9.11 테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뉴저지 쪽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다 보면 맨하탄 고층건물들이 보인다. 맨하탄 남단부에는 월 스트리트가 있고, 2년 전까지는 그곳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반, 나는 뉴저지 중부에 있는 학교건물 신축 현장회의에 들렸다가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사고가 났다고 전하는 말을 정말 무심코 들었다. 항상 하는 버릇대로 차를 몰면서 라디오를 켜니까,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 둘이 다 불에 타고 있다며 아나운서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나운서가 갑자기 'Oh my God! The building is coming down! This is unbelievabe! - 오 마이 갓! 지금 빌딩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비명을 질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내 방에 들어오니까 창문밖 멀리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갑자기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변이! 내 아들과 딸이 지금 시각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 밑을 지나갈 거라는 생각이 퍼뜻 든 것이다. 맨하탄 바로 강건너에 살고있는 두 아이는 하나는 맨하탄 남쪽에서 하나는 맨하탄 중간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은 모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바로 이 시간쯤 쌍둥이 빌딩 밑을 지나갈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아이들 전화번호를 찍기 시작했으나 이미 전화는 불통이고, 텔레비전에서는 아비규환 중계가 시작되었다. 일을 전폐하고 속이 새까매져서 허둥대기를 3시간, 12시가 좀 넘어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아이는 첫 번째 건물이 얻어 맞은 직후,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나와서 조금 뒤 두 번째 건물이 얻어 맞는 것을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목격하고 디립다 도망치다가, 아는 친구 아파트에 들어가서 내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다.
누나는 어제 늦게 켄터키 주 출장에서 돌아왔으니까, 아마 늦잠을 잘 거라고 걱정 말란다. 조금 뒤에 딸아이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늦게 일어나서 사무실에 나가려다가, 난리가 난 것을 알고 집에 있노라는 얘기였다. 드디어 몸이 풀리면서 맥이 쭉 빠지고 정신이 몽롱하다. 집에 전화를 거니까, 오늘 안 사람은 동네 여자들과 운동하러 간다고 나간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 나는 경천지동 청천벽력의 9.11 테러 사건을 바로 옆에서 바라 보았다.
9.11 테러 사건은 미국과 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나는 유족들과 함께 울고 또 울었다. 시간은 정지한 것 같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열흘쯤 지난 뒤, 9월 22일 토요일에 식구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갔다. 건물 무너진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 보는데, 아직도 매케한 연기와 냄새가 계속 새나오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합판들이 늘어서 있고, 거기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실종된 사람들의 사진과 연락처들이 적혀 있었다.
뉴욕은 온갖 잡탕 사람들이 모인 도시이다. 붙어있는 사진들은 백인, 흑인, 동양인, 남미인, 인간가족의 전시장이었다. 얼마를 걸어서 유니언 스퀘어에 가니까, 이미 그곳에는 반전시위가 한창이었다. 젊은 아이들이 확성기를 놓고 고성으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티베트 중도 있었고, 모여앉아서 흥얼거리는 하리 크리쉬나 중들도 있었고, 공원 한 가운데에는 수천 개의 촛불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날 현장을 보고 나는 서서히 일상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다.
2년이 지난 오늘 아침, 같은 시각에 나는 또 사무실로 차를 몰고 나왔다. 라디오에서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서 열린 추모식이 중계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짝으로 나와서 죽은 사람들 이름을 부르는데, 14번 째 호명은 죽은 사람들의 아이들이 불렀다. 아이는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이 분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라면서, 아버지 보고 싶어요 한다. 그동안 잊고 있던 9.11이 다시 가슴을 친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아저씨 보고 싶어요...
9.11 이후 지난 2년간 나는 서울도 다녀왔고 중국 북경에서 탈북자도 만났고 연변을 들렸다가 북한 국경지대 도문에도 다녀왔다. 매일 탈북자 일에 매어 지내면서, 김정일이가 미웠고, 김대중에게는 화가 났고, 노무현에게는 어이가 없다. 오늘도 1천명 넘는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을 것이고, 3, 4십만이나 되는 탈북자들은 죽기살기로 중국을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지난 2년간 남한은 거의 적화되었고, 세상 잡것들은 아직도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김정일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그런 살인귀들은 상관없이, 9.11 날 눈물을 흘리던 부시 대통령을 못잡아 먹어서 야단이다.
남한의 노무현이나 친북좌익들은 남한을 법이 없는 뻘건 나라로 몰아가고, 북한에서 김정일은 아직도 미국, 일본, 남한을 향하여 핵무기로 공갈을 치고 있다. 내 비위 건드리면 핵폭탄 쓸 거라고.
언제나 이 악몽에서 깨어날 것인가? 김정일이 죽어야 이 악몽이 끝난다. 노무현이 청와대에서 쫓겨나야 이 악몽이 끝난다. 탈북자들이 마음 놓고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야 이 악몽이 끝난다. 남한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좌익들의 반미반전 데모를 맞까부숴야 이 악몽이 끝난다.
남한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금강산 관광 돈 주고 가래도 안 가겠다고 하면 이 악몽이 끝나기 시작한다. 남한 사람들이 청와대 앞에서 매일 인공기 태우다 경찰에 무더기로 잡혀가면 노무현이 어이없는 짓 못 한다. 남한 사람들이 김대중 집에 몰려가서 그동안 죽어간 북한 사람들 살려내라고 시위하면 김대중이 불면증에 걸려서 북한으로 도망칠 것이다.
미국의 부시는 김정일을 역겨워 한다. 일본의 고이즈미는 김정일을 열심히 닥달하고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 까지도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김대중-노무현 패거리들은 국제조폭 살인마 김정일을 신주처럼 모시고 먹여 살려야 한다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생각해도 열통이 터지는 악몽이다. 노무현을 찾아가서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이제까지 개판 친것 다 잊어 줄테니 제발 나라만은 개판치지 말라고.
그러나 김정일이 평양에 뻐치고 있는 한, 노무현이 청와대에 뻐치고 있는 한, 이 모두가 가망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누가 뭐래도 부시는 善의 편에 서서 惡의 축과 싸우는 戰士이다. 누가 뭐래도 김정일은 죽어야 마땅한 인종 살인범이다. 누가 뭐래도 김대중은 나라를 말아먹는 반역세력이다. 이렇게 환히 보이는 일을 남한 사람들은 아직도 우물쭈물이고 강건너 불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9,11보다 더 무섭고 지독한 戰禍가 코앞에 다가 왔는데도!
9.11테러가 나를 바꿨다!
- 남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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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9-12, 1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