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잔혹했던 강제 수용소가 무너지게 된 것은 총도 칼도 아닌 문학의 힘이었다!
舊(구)소련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소설가, 솔제니친이 최근 세상을 떠나자 악명 높았던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 나치의 아우슈비치 수용소, 그리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수용소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쓴 실제의 얘기를 통해서 수용소의 실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오늘은 강제 수용소 얘기를 다룬 작가들의 얘깁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세계 2차대전에 참가해서 포병대 대령까지 진급했지만 구 소련 스탈린을 비판한 편지를 친구에게 보낸 일이 발각돼 10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 1960년쯤 소련정부가 문화생활에 대한 통제를 좀 완화시키자 강제수용소 생활을 다룬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1970년에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그러나 소련 당국이 강력한 공산주의 체제로 다시 돌리자 1973년 불란서 파리로 가서 ‘수용소 군도’ 1부를 출판했습니다. 소련의 KGB가 1부 필사본을 압수하자 3권으로 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판을 한 뒤 소련에서 강제 추방당해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이 시베리아의 끝 캄차카 반도의 마가단에서 근 10여 년 동안 추운 날씨 속에서 인간 이하의 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소련당국이 독특한 방식으로 40년간 자행했던 고문과 인간말살 등이 잘 묘사 되어 있고 수용소에서 갖은 고통을 겪은 여러 죄수들의 증언들도 사실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강제수용소를 소련말로 굴락이라고 부르지만 굴락은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입니다. 그런데 굴락이 곧 정치범 수용소라는 말로 쓰여졌고 이곳에서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 탄압받아야 했습니다. 굴락 은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통치 당시 최소한 470여개의 수용소 집합체가 있었고 각각은 수천 개의 개별 수용소로 이루어져 있어 무려 500-700만의 수용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소련의 굴락을 그대로 따른 것이 바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입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탈북자 강철환 씨는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는 1977년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함경남도 요덕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10년간 살았습니다. 1972년 북한을 탈출한 뒤 자유남한에 입국해 요덕 수용소내의 반인륜적인 인간말살의 상황을 북한주민들과 자유세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펴냈습니다.'
수용소의 노래라는 이 책 역시 한국은 물론 영어로 번역이 돼 국제사회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낱낱이 전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청소년들과 군부대 젊은이들에게 양서를 무료로 보급하는 청소년 도서재단의 이성원 이사장은 이렇게 전합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같은 공산주의 관계인데 책을 읽어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인간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이런 일을 하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해 보니까 수용소 보내는 감독자들 관리자들을 아주 인간 중에서 인간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골라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강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것이 강철환 씨 수용소의 노래에 아주 잘 나와 있어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생한 사람들의 증언은 2차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많이 희생된 유태인 수용소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탈북자들을 말 합니다.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밤의 안개’ 라는 제목으로 당시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그렸습니다. 청소년 도서재단 이성원 이사장의 말입니다.
'플랭클은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사람인데 빈 학파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중의 한 사람으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나오면서 인간에 있어서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을 누르는 방법, 그런 위기에 처하면 사람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살아남는다 그것을 가지고 정신 심리학적인 책을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도서재단의 이성원 이사장은 특히 북한 수용소 초창기에는 남한에 동조하는 인사를 비롯해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정적들을 구금했지만 나중에는 북한 주민들까지 가둬놓는데 이용했다면서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 합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스탈린 하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공산주의에서 자기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정말 악랄하다고 보면 죽이고 오래 교육을 시켜 병신을 만들던지 사상을 전환시키려고 한 거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점점 정치범 수용소를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아주 무섭게 강화하고 있죠.'
구소련 반체제작가 솔제니친이 노벨상을 받게 한 구소련의 정치범 수용자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가 무너지게 된 것은 바로 총도 칼도 아닌 문학의 힘이었습니다. 글을 통해 전파된 세계시민들의 관심과 자각이 강제 수용소를 무너뜨렸다고 이성원 이사장은 말 합니다.
'소련이 무너지는데 스탈린치하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 파쇼 체제 이것을 영원히 추방하는데 프랭클의 ‘밤의 안개’ 를 통해 아우슈비치에 큰 영향을 주었고…'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수용소의 노래 저자 강 철환 씨는 간절한 바람을 나타냅니다.
'수령 독재의 공포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들이 하루 빨리 해체될 날을 고대 합니다.'
舊(구)소련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소설가, 솔제니친이 최근 세상을 떠나자 악명 높았던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 나치의 아우슈비치 수용소, 그리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수용소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쓴 실제의 얘기를 통해서 수용소의 실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오늘은 강제 수용소 얘기를 다룬 작가들의 얘깁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세계 2차대전에 참가해서 포병대 대령까지 진급했지만 구 소련 스탈린을 비판한 편지를 친구에게 보낸 일이 발각돼 10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 1960년쯤 소련정부가 문화생활에 대한 통제를 좀 완화시키자 강제수용소 생활을 다룬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1970년에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그러나 소련 당국이 강력한 공산주의 체제로 다시 돌리자 1973년 불란서 파리로 가서 ‘수용소 군도’ 1부를 출판했습니다. 소련의 KGB가 1부 필사본을 압수하자 3권으로 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판을 한 뒤 소련에서 강제 추방당해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이 시베리아의 끝 캄차카 반도의 마가단에서 근 10여 년 동안 추운 날씨 속에서 인간 이하의 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소련당국이 독특한 방식으로 40년간 자행했던 고문과 인간말살 등이 잘 묘사 되어 있고 수용소에서 갖은 고통을 겪은 여러 죄수들의 증언들도 사실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강제수용소를 소련말로 굴락이라고 부르지만 굴락은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입니다. 그런데 굴락이 곧 정치범 수용소라는 말로 쓰여졌고 이곳에서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 탄압받아야 했습니다. 굴락 은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통치 당시 최소한 470여개의 수용소 집합체가 있었고 각각은 수천 개의 개별 수용소로 이루어져 있어 무려 500-700만의 수용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소련의 굴락을 그대로 따른 것이 바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입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탈북자 강철환 씨는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는 1977년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함경남도 요덕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10년간 살았습니다. 1972년 북한을 탈출한 뒤 자유남한에 입국해 요덕 수용소내의 반인륜적인 인간말살의 상황을 북한주민들과 자유세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펴냈습니다.'
수용소의 노래라는 이 책 역시 한국은 물론 영어로 번역이 돼 국제사회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낱낱이 전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청소년들과 군부대 젊은이들에게 양서를 무료로 보급하는 청소년 도서재단의 이성원 이사장은 이렇게 전합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같은 공산주의 관계인데 책을 읽어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인간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이런 일을 하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해 보니까 수용소 보내는 감독자들 관리자들을 아주 인간 중에서 인간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골라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강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것이 강철환 씨 수용소의 노래에 아주 잘 나와 있어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생한 사람들의 증언은 2차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많이 희생된 유태인 수용소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탈북자들을 말 합니다.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밤의 안개’ 라는 제목으로 당시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그렸습니다. 청소년 도서재단 이성원 이사장의 말입니다.
'플랭클은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사람인데 빈 학파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중의 한 사람으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나오면서 인간에 있어서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을 누르는 방법, 그런 위기에 처하면 사람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살아남는다 그것을 가지고 정신 심리학적인 책을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도서재단의 이성원 이사장은 특히 북한 수용소 초창기에는 남한에 동조하는 인사를 비롯해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정적들을 구금했지만 나중에는 북한 주민들까지 가둬놓는데 이용했다면서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 합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스탈린 하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공산주의에서 자기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정말 악랄하다고 보면 죽이고 오래 교육을 시켜 병신을 만들던지 사상을 전환시키려고 한 거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점점 정치범 수용소를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아주 무섭게 강화하고 있죠.'
구소련 반체제작가 솔제니친이 노벨상을 받게 한 구소련의 정치범 수용자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가 무너지게 된 것은 바로 총도 칼도 아닌 문학의 힘이었습니다. 글을 통해 전파된 세계시민들의 관심과 자각이 강제 수용소를 무너뜨렸다고 이성원 이사장은 말 합니다.
'소련이 무너지는데 스탈린치하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 파쇼 체제 이것을 영원히 추방하는데 프랭클의 ‘밤의 안개’ 를 통해 아우슈비치에 큰 영향을 주었고…'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수용소의 노래 저자 강 철환 씨는 간절한 바람을 나타냅니다.
'수령 독재의 공포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들이 하루 빨리 해체될 날을 고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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