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일본이 본 서울

그때 올림픽 통해 보여줬던 화합·개방 정신 어디갔나!
일자 일본 신문을 보고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냉정한 시선에 놀랐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티베트 탄압, 성화 릴레이 소동, 보도 규제 등을 열거하면서 중국을 비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면 칼럼을 통해 '중국은 아직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나라'가 못 됐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언론 역시 좀처럼 흥분을 안 한다. 20세기 초반 전쟁을 선동했다가 심하게 덴 뒤부터, 적어도 주류 언론은 감정적 논조와 표현을 배제하는 관행을 몸에 익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본 언론이 감정적일 만큼 호의적으로 바라봤던 올림픽이 있다. 바로 서울올림픽이다. 개최지 선정에서 일본 나고야가 서울에 패한 일 때문에 일본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개회식 당일인 1988년 9월 17일, 일본 신문들이 쏟아낸 서울올림픽 관련 기사는 150개가 넘었다. '도배질'한 것이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묘사한 일본 선수단의 입장 순간은 이렇다. '(한국인에게)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장기이지만, 경기장이 박수로 끓어 올랐다. 일본 선수단은 한국 국화인 분홍색 무궁화를 흔들어 답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선수단을 이끈 기수(旗手)의 말을 전했다.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한 바퀴 행진은 짧았다. 경기장을 더 걷고 싶었다.'

히로히토 당시 일왕의 근황도 보도됐다. '덴노(天皇) 폐하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황거(皇居)의 TV 앞에 앉아 선수단 입장과, 성화 점화, 공연을 열심히 지켜보셨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인류 공통의 소망'이라는 다케시타 당시 총리의 발언도 주요 뉴스로 실렸다.

친한파 정치인인 하라다 중의원(자민당)은 1985년부터 3년 동안 일본 공영방송 NHK의 서울특파원을 지냈다. 그는 '서울 발령을 받기 전 다른 친구들처럼 한국이 싫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이 '독재'라는 암울한 모습만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사람들은 밝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를 친한파로 만든 것은 서울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냉소하던 청년들도 달라졌다. 지금 마이니치신문의 전·현직 서울특파원, 후임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담당 기자는 모두 1967년생이다. 다른 일본 언론의 한반도 담당 역시 60년대 후반생이 두터운 층을 이룬다. 대학 시절 서울올림픽을 경험하면서 하라다 기자와 같은 특파원들이 발신한 호의적 보도를 통해 지성을 쌓은 세대들이다.

일본 언론은 왜 서울에 호의적이었을까. 지금 베이징엔 왜 호의를 전하지 않을까.

당시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서울이 모스크바의 이념 과잉, LA의 상업주의를 극복하고 스포츠 정신을 회복시킨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개막식 르포기사에서 체제가 달랐던 중국과 소련에도 큰 박수를 보내는 한국 국민들의 모습을 감동적 논조로 기록했다.

20년 전 서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서울은 민주화를 통한 내부의 화해, 12년 만에 동·서를 한자리에 모은 국제적 화해를 달성한 뒤 낮고 열린 자세로 세계를 맞았다. 지금 베이징에서 전해오는 '강한성당(强漢盛唐·힘있고 번성했던 중국 고대의 한나라 당나라)'의 위압적 복고도, 세계의 거리를 뒤덮은 붉은 깃발의 민족주의도 없었다.

베이징을 폄하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2002년 세계를 향해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네 글자만을 외쳐댄 것처럼, 한국이야말로 '1988년 서울', 용서와 화합, 겸손과 개방의 기억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 아닌가…. 베이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선우정·조선일보 도쿄특파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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