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 박사는 ‘한국의 모세’

대한민국의 탄생은 이승만 박사의 견고한 독립 의지 덕분.
역대 정권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건국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를 놓고 광복절(光復節)이냐 건국절(建國節)이냐 논란도 많다.

좌파적 입장에 선 일부 학자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을 제기하는 쪽을 친일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건국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트집이다. 건국절로 개칭한다고 광복의 의미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 건국절 지정을 반대하는 부류는 이기주의에 매몰된 단체,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이 못마땅한 친북용공세력, 태극기와 애국가도 친일파가 만들었으니 없애버리자고 하는 대한민국 파괴세력들이다.

광복은 수십년 동안 독립운동을 해 온 선열들의 희생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의해 일본이 패망함으로 주어진 피동적 결과이다. 반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은 대한민국 건국은 외세와 공산세력과의 투쟁의 산물이다. 건국을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조국을 파괴하는 반역행위이다.

대한민국처럼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건국의 역사에 대해 가장 무지한 나라라는 조롱을 받을 만하다. 건국 기념관도 건국을 상징하는 인물의 이름을 딴 도시는 고사하고 거리조차 없다. 세종로(世宗路), 충무로(忠武路), 율곡로(栗谷路), 백범로(白凡路)는 있어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호(號)를 딴 우남로(雩南路)는 없다.

역사왜곡을 업(業)으로 삼는 사악(邪惡)한 사학자(史學者)들로 인해 건국대통령을 가장 홀대하는 무례하고 몰인정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파당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으면서도 건국을 외면하는 발칙한 후예(後裔)가 되었다. 좌파들은 김구를 비판하는 것은 금기(禁忌)시 하면서도 이승만을 헐뜯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구 선생이 훌륭한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말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북에 동조했던 것은 그의 과오였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발해 남북 단일정부 수립에 노력했다고 하지만 김일성은 이미 북한 단독정부를 수립해 놓고 남한의 선거와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남한 지도자들에게 남북연석회의를 제안했다.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이 발표한 4.30공동성명에서 남한의 미군철수를 주장, 내전이 없을 것이라 하면서 평화를 가장하고 결정적으로 “남조선 단독선거 결과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선거에서 수립되는 단독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다.

1946년 2월 8일 북한은 단독정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결성하고 무상몰수의 토지개혁을 시작했다. 1947년 12월 중국 공산당은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정식 정부로 승인했다. 김구 선생이 평양을 방문한 시점인 1948년 4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5월 1일에는 2월 8일 이미 창건된 조선인민군 사열에 김구 선생을 참여시켰다. 김구와 김규식은 그걸 보고 와서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북에 다녀온 김구와 김규식은 1948.5.6 공동 성명에서 “북조선 당국자는 단정(單政)은 절대 수립하지 아니하겠다고 확언하였다”라고 했지만 북한은 이미 단정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또 '북조선당국자는 단전(斷電)도 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지만 5월 14일 북한은 남한에 송전을 중단했다. 김구 선생은 이미 단독정부를 세워 놓고 남한을 공산화시키려 했던 김일성의 음모를 읽지 못하고 너무 과신했다.

반면 이승만 박사는 공산주의의 실체를 가장 잘 꿰뚫어 보고 있어 공산당들로부터는 ‘극우’ ‘반동’ 심지어는 ‘친일파’로 매도당하기까지 했다.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은 것이다. 공산주의와 협력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남긴 이승만 박사는 공산당의 거짓선동에 속지 않고 단호했다. 공산당이 이승만 박사를 비난한 것은 이 박사로 인해 남한의 공산화가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건국 초부터 대한민국의 적(敵)이었다. 건국을 방해했고 건국한지 2년도 안 되서 남침을 감행했다. 수십년간 대남도발과 만행을 저질러왔으며, 지금도 친북좌파세력들을 조종하여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데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 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연방제 통일 그들의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雩南 李承晩 박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예속에서 다시 김일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은 ‘한국의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한 민족의 지도자이며, 당대에 선견지명과 예지력을 갖춘 최고의 지식인이며 위대한 선각자였다. 아시아의 거목이고, 세계적인 외교가였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 건국사와 이승만 박사에 대한 재평가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건국을 제대로 평가하자면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해방이후 불과 3년 만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갖춘 대한민국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승만 박사의 독립의지가 견고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아시아 최빈국(最貧國)으로, 남한은 세계 속의 경제대국으로 그 운명이 엇갈렸다. 강제적 폐쇄사회가 자율적 개방사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건국 이후 육십 성상(星霜)을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중심, 아니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것으로 확신하면서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24일 초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남긴 말을 임기 초부터 좌파세력들의 난동에 흔들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새겨듣기 바란다. “첫째, 일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하고 둘째,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2008년 8월 14일

봉태홍 / 라이트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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