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신 애국자들께 건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상을 드리는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경제전문가로서 제가 보는 ‘우남 애국상’은 ‘우남 자유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승만(李承晩) 박사야말로 개인의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유방임주의 정책과 자유시장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로서의 이승만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 주는 예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6·25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53년 2월에 정부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화폐개혁을 하게 된 주요 목적의 하나가 과도하게 발행된 화폐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계획한 경제 관료들은 국민들의 구(舊)화폐 중 일부만을 신(新)화폐로 바꾸어 주고 나머지는 강제저축을 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완강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정부라 할지라도 개인이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통령의 반대에 경제 관료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차례 경무대(景武台)로 들어가 읍소하고 또 읍소했습니다. 간신히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내기는 했습니다만, 대통령의 완고한 주장 때문에 하마터면 화폐개혁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할 뻔 했습니다.
이 사례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주의 이념에 얼마나 투철한 인물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러한 신념이 있었기에 그는 북한, 중공, 소련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통령의 12년 통치는 국내외적으로 가장 혹독했던 시련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자기 정체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6·25전쟁 중에도 언론을 검열하거나 통제하지 않을 정도로 자유주의의 원칙은 지켰습니다. 그래서 언론기관들은 마음 놓고 그와 그의 정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해에는 어김없이 자유선거를 치를 정도로 민주제의 운영에 충실했습니다.
선거는 전쟁 중에도 실시됐습니다. 그 때문에 그의 통치기간에는 국회가 해산되거나 헌법이 정지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독재자로 몰리게 된 것은 한국의 현실을 모르는 채 선진국의 잣대로 가혹하게 평가한 외국 언론들의 무책임한 비판이거나, 이승만 때문에 공산화를 이룩하지 못했다고 통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비난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렵게 조성해 놓은 자유주의적인 풍토 속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성과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일할 엘리트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의무교육제가 도입되어 국민 다수가 문맹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도 그의 중요한 업적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업적은 수많은 고급인력이 육성된 것입니다. 자신이 미국 유학생 출신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외국 유학을 적극 권유하였고, 미국 원조자금으로 수많은 유학생과 기술자를 미국에 파견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군사 장비를 다루기 위한 군 장교들과 하사관들의 미국 파견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귀중한 엘리트 집단은 1960년대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를 이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승만 박사의 자유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남 애국상’이 제정된 것에 대해 한없이 기쁘게 생각하며, 이 상을 받게 되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굳건하셔서 대한민국의 자유화와 발전에 계속 기여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8월14일
제1회 우남 애국상 시상식 祝辭
- 李承潤 前부총리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8-08-18, 1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