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채운 탈북자 교화소行 버스

金씨는 끝내 통곡했다.
탈북자 김성일씨(48. 2008년 4월 탈북)는 끝내 통곡했다. 회령에서 살았던 그는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을 「교화소(남한의 감옥 같은 곳)」 등으로 보내는 장면을 끝없이 보아왔다.

통상 탈북자는 3년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개천교화소」든 어디든, 한 번 가면 알 수 없는 곳이다. 오전 7시 무렵이면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교화소 행(行) 버스에 올라탄다.

이날 아침은 가족들과 마지막 상봉이 허락된다. 돈 벌러 조선족 식당에서 일하다 공안에 잡혀 온 어머니와 고향에서 기다리던 어린 자식들, 벌목공으로 일하다 잡혀 온 아들과 눈이 빠지게 자식을 기다려 온 노모(老母)... 버스 앞은 피눈물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되고 만다.

『무슨 죄가 있는 사람들입니까? 당(黨)에서 먹여주고, 입혀준다는 사회주의 국가 아닙니까? 그런 나라에서 굶어죽기 싫어 도강(渡江)했던 사람들이에요. 젖먹이 아이 떼놓고 돈 벌러 갔다 잡혀 온 처자들. 이제 그 어린 새끼들과 생이별입니다. 그런 장면 안 본 사람은 북한을 말하지 말아요. 밭에 있던 소도 웁니다. 지나가던 개도 웁니다. 통곡소리가 아침마다 메아리치니, 동물들도 무슨 일인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웁니다.』

金씨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식들만큼은 더 이상 노예처럼 살게 할 수 없었다며 죽을 각오로 강을 넘었다』고 했다. 실제 그는 탈북 당시 「자살약」을 챙겼다. 살아서 다시 돌아가는 건 상상 못할 일이었다. 캡슐 속에 「까만진(농축된 아편)」을 넣고 북한을 떠났다.

사나울 정도로 퍽퍽한 기질의 金씨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의 가슴 속 상처가 눈에 보일 것 같았다. 2300만 동포들의 울부짖음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