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현대사 강연장에서 무료 배포한
박한진 예비역 대령의 '老兵의 푸른 회고'
한 묶음을 저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순의 대령님께서는
손수 승용차를 몰고 버스정류장까지 나오셔서
저를 태우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전방지역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사는 줄로만 알았지
민통선 안에서 거주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넓은 평야와
겹겹이 늘어선 산맥들이
큰비 온 뒤라 더욱 푸르렀습니다.
말로만 듣던 백골사단 지역
해발 1,000m가 넘는 오성산에서
북한군이 빤히 내려다 보고 있는 그곳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박 대령께서
사라진 옛고향 도창리 터에 세워놓은
망향의 비석 앞이었습니다.
대령께서 손수 쓴 비문은
북한에서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도
고향에 돌아와서 함께 만나자는
간절한 염원으로 끝을 맺어
분단과 실향의 아픔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가
철책선 바로 코앞까지 연결돼 있고
여기 저기 GP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3사단에서 GP장을 지낸 동기생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나중에 걸겠다는 바람에
현장중계를 해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
한탄강 다리를 건너다 차를 세우고
금강산 가는 전철이 달리던 철교를 보면서
저 길로 금강산에 가는 날이 언제나 올까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령님의 댁은 한탄강 제방 근처에 있었습니다.
낚시를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십니다.
60년대 후반 국가안보 차원에서
예비군들에게 농토를 제공하며 정착시킨 마을인데
겉으론 낡았으나 잔디깎이가 놓여있는 차고도 있고
앞 뒤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고
터밭 사이엔 포도나무 넝쿨 밑에 탁자와 의자들을 놓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습니다.
갓 삶은 옥수수들, 대령님네의 노랑 옥수수에다
손님 온단 소식에 옆짚에서 가져온 검은 옥수수까지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코끝에 닿는 공기가 상큼해 에어콘 없이 살아도 되겠다고 했더니
실제로 에어콘을 켜지 않고 여름을 나신다고 하시더군요.
별이야, 당연히 무수히 밤하늘을 수놓고…
사모님께서 손수 챙겨 주시는
터밭 풋고추, 빨간고추, 작은 호박에다 감자까지
쇼핑백 가득 넣고 댁을 나와서
고석정 부근 직강폭포와 번지점프 다리를 건너
옛 노동당 청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건물은 생각보다 약간 작았습니다만
여기저기 뻥뻥 뚫린 구멍과 통째 사라진 벽들이
파르테논 신전이나 원형경기장 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 건물 앞 쪽에 있던 보안서에서
고문을 받던 때를 회상하면서
밤새도록 추위를 이기려고 서서 버티던 고통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대령께선 말씀하시더군요.
6·25 이전까지 철원은 북한의 강원도청 소재지로서
이곳 당사가 바로 강원도당 청사였다고 합니다.
휴전 후엔 원산을 강원도에 넣어 그리로 옮겼답니다.
막 보수공사가 시작된 노동당사 오른쪽 편으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노동당사 매점'이 서 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에미나이한테 이북 어투로 말을 건네고
부라보 콘 두 개를 사서 맜있게 먹었습니다.
해가 기울면서 대령님의 眼力이 떨어져
백마고지와 전망대는 훗날 보기로 하고
정시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신탄리로 넘어와서 기차를 타고 동두천까지,
동두천에선 전철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눈에는
오늘 오후 내내 젖었던
푸르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령님의 애닲은 망향 비문은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동당사 매점에서 부라보콘을 사먹다
- coreano(회원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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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20, 05: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