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週에 일본에 가서 만난 朴甲東 전 남로당 간부는 85세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꼿꼿하고 건강하였습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타도되면 평양에 들어가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박갑동 주석'이라고 불러주고 있었습니다. 朴甲東씨는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 격하 연설을 한 흐루시초프에 대해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6.25때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던 그는 남로당 숙청 때 걸려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다고 합니다. 1956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탈린의 무자비한 숙청과 학살을 고발하는 비밀 연설을 하자 김일성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소련에 대한 제스처로서 정치범들을 많이 풀어주었고 이때 박갑동씨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1960년대에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일본에 건너가 살고 있습니다.
박갑동씨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그래도 흐루시초프 같은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에 피를 덜 보게 되었다. 그의 스탈린 격하 이후 공산당 내부에선 피의 숙청이 사라지고 강제수용소도 없어졌다. 김일성만 예외였다'고 말했습니다.
박갑동씨는 또 '김일성이 우상숭배로 가버린 것은 자신이 가짜 김일성이란 것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극단적인 조작을 한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박갑동씨는 보천보 습격사건에 관계했던 박금철을 광복 직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박금철은 광복 때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석방된 뒤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보았는데, 자신이 아는 그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서 놀랐다고 말하더란 것입니다.
김일성이 지휘했다는 보천보 습격사건은 거짓말이란 것이 박갑동씨의 주장이었습니다. 박갑동씨는 '김일성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고 했습닌다. 바로 이 역사조작 때문에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절대로 개방 개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김정일 정권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는 모택동 스탈린에 대한 우상화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인간이 과거를 조작하면 그 조작과정의 포로가 되고 결국은 그 조작이 들통나면서 파탄나게 되는 법인데 김정일의 최후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朴甲東 증언: 흐루시초프 덕분에...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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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9-15, 1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