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경단체의 '주한미군 괴롭히기' 20年史

무장폭동 일으킨 평택범대위 참가
1993년 출범한 환경운동연합의 환경운동은 反개발, 反美, 反核 등의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환경연합이 출범 이전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문제는 국군(國軍)과 주한미군(駐韓美軍)의 소위 환경파괴, 환경오염 문제였다.

대표적 사례가 「매향리」였다. 1988년 6월14일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12월12일 주민들은 사격장 내 폐자동차 등 포격 목표물과 대형원형표적을 점거하는 등 반대시위를 격렬하게 전개했다. 사격장을 이전하든가, 집단 이주를 시켜주든가,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보상을 해주라는 요구였다.

환경연합의 전신인 공해문제연구소의 최열은 활동가 권헌열과 황상규를 현지에 파견했다. 당시 주민대책위 전만규는 『우리는 좌경(左傾)이나 반미(反美)가 아니다. 생존권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서울의 환경운동권은 삼고초려 끝에 지역민들과 결합한다.

반대운동은 격렬해졌다. 시위대는 1989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중 3주간에 걸쳐 포격장을 점거 농성했다, 5월29일 미군 부대에 들어가 차량과 집기를 부수고 기지를 완전 점거했다. 최열은 같은 해 6월22일 김근태 등 전국 22개 단체 소속 60여 명을 데리고 매향리 답사를 추진했다.

<반미(反美)운동의 메카가 된 매향리>

매향리는 이후 반미(反美)운동의 진앙지로 변모한다. 결정적 계기는 2000년 5월8일 훈련 중이던 A-10기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농섬 해상에 500파운드짜리 포탄 6발을 떨어뜨리는 사고였다. 이날 사고로 주민 여섯 명이 부상하고 가옥 700여 채가 파손됐다.

민노총 한총련`범민련 등 국내 좌파운동권이 총동원됐다. 5월12일 소위「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 국민행동」은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YMCA) 건물 앞에서 「주한미군 매향리폭탄투하 규탄 및 소파 개정 서명운동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미군은 사격장을 즉시 폐쇄하고 피해 주민들에게 사과하라』『불평등한 내용으로 가득 찬 협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연합도 따로 성명을 내서 『미군은 주민 생존을 위협하는 폭격연습장을 폐쇄하고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을 하라』며『주둔군지위협정의 불평등 부분을 전면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2000년 6월에는「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이하 매향리범대위, 상임대표 문정현, 홍근수, 권영길, 단병호, 오종렬, 이종린, 전만규, 청 화, 최용운)」가 만들어졌다. 매향리범대위에는 대표적 친북인물인 오종렬, 문정현, 홍근수, 권영길, 단병호, 이종린 등이 참가했다.

매향리범대위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2000년 6월6일 집회에는 매향리 주민들과 韓美행정협정(SOFA) 개정 국민운동본부, 환경연합, 민노총, 한총련 등 3,000여명이 참가했다.

집회가 끝난 뒤 시위대는 대책위 사무실에서 사격장 정문까지 1㎞ 구간에서 사격장 철책을 둘러싼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사격장 정문 현판에 페인트를 뿌렸고, 절단기를 이용해 사격장 주변 철책 곳곳을 파괴했다. 6월17일에는 사격장 출입문을 부수고 영내로 진입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방관 속에서 매향리는 反美의 메카가 되어 갔다.

2001년에는 마침내 주민들의 집단소송도 승리했다. 이석태 변호사(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가 주도한 집단소송은 2001년 4월11일 『국가는 원고 14명에게 1억32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매향리 주민들은 52년 마을 농지와 인근 해상을 美공군 사격장으로 제공한 뒤 전투기의 기총 및 포탄투하 훈련으로 주민의 인명 피해와 가옥훼손, 소음피해 등을 입었다며 1998년 2월 소송을 냈었다.

판결이 나오자, 환경연합은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지난 51년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된 미군의 폭격연습으로 인한 소음 피해를 우리 법원이 최초로 공식 확인하고 배상한 것』이라며 『매향리 주민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환호했다.

1심 판결 후인 2001년 8월, 나머지 주민 1899명도 8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국방부는 2005년 8월12일 사격장 전체를 완전 폐쇄했다. 2006년 9월 매향리대책위는 소위 평화마을을 조성키 위한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 범국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친북단체와 함께 우리 땅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결성>

환경연합은 매향리件 이외에도 소위 주한미군의 환경훼손과 SOFA개정, 기지이전 등을 이유로 주한미군을 끈질기게 압박해왔다.

환경연합은 1995년 3월6일 오전 부산에서 민주주주의민족통일부산연합(전국연합), 민주당 부산지부 등 소위 30여개 정당·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우리 땅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송기인·배다지·노무현 등 8명) 결성대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1995년 3월6일 부산항 8부두 미군 전용부두와 동구 범일동 55보급창, 부산진구 연지동 7관구사령부(일명 하야리야부대) 등 부산지역 3개 美軍시설 26만 여 평의 즉각 반환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날 채택한 결성 선언문에서 『미국 쪽이 한국전쟁 당시 전쟁물자 하역을 위해 이들 지역을 군사시설로 조성한 뒤 지금까지 무상 점용해 왔으나, 현재는 더 이상 군사 목적상의 기능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한국 쪽에 마땅히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다지 부산연합 상임의장은 『부산시와 정부가 최근 미군시설에 대해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선에서 미국 쪽과 협상을 갖겠다며 주민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있는 것은 주권국가의 체면을 내버린 사대주의 외교의 전형』이라며 『정부가 자주적으로 對美협상에 나서 독립국가의 자존심을 되찾으라』고 요구했다.

환경연합이 참여한 「우리 땅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연합」은 2002년 5월 의정부로 나섰다. 이 단체 참여인사 300명은 5월2일 소위「평화시민선언」을 발표, 『미군기지 신설 백지화와 조건 없는 기지반환』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의정부역 동부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선언문을 발표,『분단과 대결의 구도 속에서 군사 도시, 미군기지, 기지촌으로 상징되는 도시문화를 강요받아온 의정부를 「평화의 도시」로 선언한다.』고 주장, 사실상 미군철수를 주장했다.

또 『미군기지는 빠른 시일 내에 조건 없이 반환돼야 하고, 반환된 기지는 시민 평화공원으로 조성돼야 한다.』며 『대결과 폭력의 상징물인 미군기지, 탱크 저지선 등 시설물은 철거를 요청하고 새 기지의 신설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 SOFA 전면개정 촉구, 「국민행동」서울역서 집회>

환경연합이 주한미군을 압박하는 유효한 수단 중 하나는 SOFA였다. 주한미군이 환경오염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데, SOFA의 처벌규정이 미진하다는 주장이었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이재용 대구 남구청장은 2000년 7월2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미군기지 환경문제와 SOFA 개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대화」에서 SOFA 전면 개정을 위한 행동강령에 공식 서명했다.

이날 채택된 행동강령은 △소위 불평등한 SOFA 조항 및 본 협정, 합의 의사록, 양해사항 전면 개정 △SOFA에 국내 법규와 같은 수준의 환경조항 신설 △미군의 각종 범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 및 수사권, 재판권, 형(刑)집행권, 손해배상청구권 완전 보장 △미군기지 사용료 납부 등으로서 주한미군을 위축시키는 내용들이었다.

SOFA개정운동은 장외투쟁으로 연결됐다. 2000년 7월29일 환경연합·참여연대 등 100여개 소위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불평등한 SOFA 전면개정 국민행동」은 서울역 광장에서 5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미국사과 촉구 및 SOFA 전면개정 국민대회」를 가졌다.

국민행동은 성명서를 통해『미국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규정돼 있는 현행 SOFA 규정은 결국 미군 범죄를 확산시키고 환경오염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동반자 시대를 추구하는 韓美관계에 걸맞게 불평등 조항들이 전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94개 미군시설물이 환경파괴의 주범?!』>

소위 주한미군 환경오염 공격은 전국적으로 계속됐다.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은 2000년 11월9일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 기지가 98년 의정부 수해 발생 이후 하수종말처리장을 가동하지 않은 채 엄청난 양의 오폐수를 방류해왔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 안창희 사무국장은 『기지와 인접해 있는 개울에서 악취가 계속 진동해 지난 5일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하수종말처리장이 가동중지 상태인데도 하수가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소위 환경단체의 주장 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문제제기 자체만으로 『주한미군=환경파괴범=악(惡)』이라는 선전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2001년 8월 주한미군 한강오폐수 방류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 부소장 앨버트 맥팔랜드(56)사건과 관련, 환경운동연합의 서형원 환경조사팀장의 인터뷰는 이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전국에 산재한 94개의 미군 시설물들이 환경파괴의 주범임에도 이번 사건은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아무런 대응책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히 드러낸 것』이라며 94개의 미군시설물이 모두 환경파괴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환경연합의 「주한미군 괴롭히기」는 오폐수 방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경연합은 2001년 11월8일 『주한미군이 지난달 20일부터 경기 파주시 진동면 용산리, 초리, 서곡리 일대 스토리사격장 인근 공여지 216만평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폭 5m, 길이 10㎞의 군용도로 개설공사를 벌이면서 주변 산림 2만2500평을 불법 훼손했다』며 『이는 SOFA(한미행정협정)규정을 위반한 것이므로 미군 당국을 고발하겠다』고 주장했다.

환경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소장 김호철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미군문제위원회는 2001년 11월21일 주한미군이 경기도 파주시 스토리사격장 일대 대규모 삼림을 훼손한 사건과 관련, 국방부와 환경부 등에 공개질의서를 제출했다.

환경연합과 민변은 국방부와 환경부에 보낸 공개질의서를 통해 ▲불법적인 무단삼림훼손에 대해 주한미군을 상대로 법적조치를 취할 지 여부 ▲유네스코와 정부가·접경지역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위한 조사사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발생한 대규모삼림파괴 행위에 대한 환경부의 견해 등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反MD」아미티지車 계란세례>

환경연합은 김대중 집권 이후 「국가미사일방어(MD)반대」 등 부시 美행정부 규탄운동에 집중했다.

2001년 3월5일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올바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민간모임」을 갖고 미국 부시 행정부에 『MD체제 철회』를, 남북 당국에 『한반도 평화선언과정상회담 정례화』 등을 촉구했다.

같은 해 5월10일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하자, 환경연합·녹색연합·전국연합 등으로 구성된 「NMD·TMD저지 및 평화실현 공동대책위」는 아미티지 부장관의 일정대로 쫓아다니며 그림자시위를 벌였다.

공대위 소속 회원 10여명은 9일 방한한 아미티지 부장관의 숙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국비경쟁 낭비 조장하는 NMD·TMD 결사저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NMD·TMD결사저지」 「군사대결 강요하는 NMD·TMD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채 밤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10일 오전 하얏트 호텔 앞에서 아미티지 부장관의 외교차량에 계란을 던졌다. 당시 아미티지 부장관의 외교차량에는 아미티지 부장관 대신 켈리 미 국무부차관보가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金씨 등은 계란을 던진 뒤 『아미티지 부장관의 방한은 미사일 방어체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참여를 강요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즉각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부시방한 곳곳서 『전쟁공포 조성 말라』비난>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이후 對테러전을 본격화하면서, 소위 반전평화운동의 기치를 내건 反美운동은 절정에 달한다.

환경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으로 민간인 피해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며 2001년 10월과 11월, 잇따른 반전평화 시국선언대회를 개최했다. 미국의 보복전쟁 반대, 한국의 전쟁지원 반대, 일본의 자위대 파병 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환경연합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극렬한 시위를 이끌었다. 환경연합을 비롯해 민노총·민노동·한총련 등 소속 2000여 명은
2002년 2월2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종로4가 종묘공원에서 「부시 방한 반대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미국의 무기 강매 중단, 對北적대정책 철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미군기지 반환 등』이 주제였다.

이날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불태우려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2002년 反美열풍 속에서 애꿎은 차기전투기(FX)사업 기종도 이념 논란에 휩싸였다. FX 기종으로 미국 보잉사의 F15K가 2002년 3월27일 내정된 것과 관련, 소위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선 것.

환경연합·참여연대·YMCA 등 8개 시민단체는 이날 『평가 작업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2단계 평가를 중단하고 1단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FX사업은 F15K와 프랑스 라팔이 경쟁했는데, 객관적으로 프랑스 라팔이 F15K 선정을 뒤집을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팽배한 反美정서 속에서 미국무기에 대한 반대운동까지 전개된 것이었다.

<『주한미군 철수!』, 여중생 사망 시민단체 규탄대회>

2000년 이후 反美운동의 하이라이트는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였다. 촉발원인은 훈련 중이던 미2사단 공병대 소속 가교 운반용 궤도차량 1대가 지난 2002년 6월13일 오전 10시45분쯤 양주군 56번 지방도에서 이 마을 사는 신효순(14)양과 심미선(14)양 등 여중생 2명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였다.

경기북부 환경연합,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민주노총경기북부협의회 등은 「미군차량 사망 여중생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2002년 6월20일 미2사단 정문에서 소위 『살인만행 주한미군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부시 대통령과 공개사과, 책임자 한국 법정에서 처벌, 불평등한 SOFA 개정』 등을 요구했다.

집회는 계속됐다. 환경연합 등 소속 300여명은 6월26일 미2사단 앞에서 주한미군 규탄대회를 이어나갔다.

환경연합의 反美투쟁은 이 무렵 미군철수 주장으로 확산된다.

환경연합 등은 새로「미군장갑차 여중생 故신효순 심미순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여중생범대위)를 구성, 7월14일 미2사단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기존 주장과 함께, 『미국의 형사재판 관할권 포기』『캠프 하우스 폐쇄』『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했다(경향신문 2002년 7월17일자).

여중생反美집회는 2002년 11월 가해운전병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오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11월과 12월 시청 앞은 反美집회로 얼룩졌고, 마침내 12월19일 노무현 대통령 탄생을 이끌어낸다.

환경연합의 2002-2003년 反美운동의 또 다른 주제는 이라크전(戰) 파병반대였다. 2002년 10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자, 환경연합 등은『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한 또 다른 테러일 뿐이며 무고한 민중들을 희생시킨다』며 반전(反戰)운동에 나섰다.

환경연합은 351개 소위 시민단체와 함께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을 구성, 대규모 집회를 이어갔다. 2003년 10월24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파병 찬성의원들에 대해 17대 총선에서 유권자 심판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주장했다.

2003년 11월16일 럼즈펠드 美국방장관 방한 시에는 『방한 반대』 및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환경연합 등 소위 시민단체의 파병반대는 反美운동의 연장선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이는 비판의 편향성 때문이었다. 반전론(反戰論) 또는 평화론(平和論)의 외양을 띄고 이라크전을 비난했지만, 정작 후세인 등 독재자와 테러행위에 대한 비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영구주둔 의지를 파탄내자』평택범대위 참여>

환경연합의 2005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에도 참가했다.

평택범대위는 평택미군기지 확장(擴張)·이전(移轉)을 반대하며 2005년 7월10일, 2006년 3월15일·4월7일·5월4일 쇠파이프·죽창·곤봉 등을 사용한 不法폭동을 일으킨 단체이다.

이 단체는 전국연합 오종렬, 민중연대 정광훈, 통일연대 한상렬, 평통사 홍근수, 문정현 신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문경식, 민노당 이정미씨 등이 상임대표를 맡았었다.

평택범대위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명분은 소위 한반도평화와 지역주민의 생존권 등이었다.

평택범대위는 2004년 2월22일 결성선언문을 통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은 미국이 핵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중국에 대한 포위를 쉽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미국이 용산 및 미2사단 등을 평택지역으로 옮기려는 것은 핵문제 등으로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중국에 대한 포위를 쉽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우리는 이처럼 평택주민들의 삶을 뒤흔들고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며 군사적 對美종속을 영구화하게 될 주한미군 재배치를 그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주한미군 역할확대를 저지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며, 주한미군의 영구주둔 기도를 파탄 내어 군사적 주권을 쟁취해 낼 것이다』라며 反美의식을 드러냈다.

평택범대위 실제 목적은 미군철수였다. 예컨대 평택범대위 참가단체인 전국연합(상임의장 오종렬)은 2006년 3월11일 한양대에서 열린 대의원대회를 통해 2006년 양대 투쟁과제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과「韓美 FTA 체결 저지투쟁」을 제시했다.

전국연합은 이날 대회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등을 통해 『미국의 식민지 지배강화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주한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다 할 것』을 결의하는 등 소위 평택투쟁 목적이 미군철수에 있음을 강조했다.

역시 평택범대위 참가단체 한총련은 2006년 3월4일 14기 한총련 총 노선 최종안을 통해 『이제 우리의 당면한 총 목표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면서, 이를 위해 『반미투쟁의 기본방향을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맞추고 가야하며』 특히『올 상반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 투쟁을 반미투쟁의 기본흐름으로 밀고 나가자』고 결의했다.

<『軍人이 매를 맞나』 軍心 들끓어>

평택범대위의 反美집회는 군인을 때리는 엽기적 행태로 전개됐다. 2006년 5월5일 평택에서는 쇠파이프·죽창·각목 등으로 무장한 평택범대위 폭도들이 현역군인들을 폭행했다. 이에 앞서 4월28일에는 현역 육군대령이 시위대에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국방부는 평택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철조망을 설치했으나, 하루만인 5월5일 철조망 20여 곳이 시위대에 의해 뚫렸다. 이들은 군부대 주둔지역에 난입해 저지하는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군 장병 수십 명은 이들의 난입을 막다가 시위대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다쳤다. 눈 부위에 심한 상처를 입은 병사와 팔이 부러진 병사, 뇌진탕 부상환자 등 11명은 긴급 투입된 UH-1H 헬기에 실려 군 병원으로 후송됐다.

시위대는 철조망 내 장병들이 숙영하던 텐트와 임시초소를 발로 짓밟고 찢었고, 이로 인해 군 막사 50여 곳이 망가졌다. 모래 포대로 쌓아 100여m 간격으로 설치된 군 초소도 상당수 훼손됐다. 시위대는 철조망에 짚단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非충돌(?) 교육을 받은 비무장 군인들은 발길질과 죽봉, 쇠파이프에 처참하게 나가 떨어졌다. 보호 장구도 없이 서 있던 군인이 달려온 시위대의 이단 옆차기에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공개됨으로써 군의
위상과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다.

현지 부대 장병들에 대한 군수 보급 지원도 여의치 않았다. 부대원들은 5월4일 평택 팽성 미군기지 이전부지에 배치된 뒤 이틀 동안 전투식량과 빵만으로 끼니를 때웠고 물도 부족해 7일에야 부분적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됐다. 전기 공급도 제대로 안 돼 밤이면 자체 발전기를 가동했다.

군 관계자는 『인근에 있던 전경 등 시위진압 경찰들이 도시락을 시켜먹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장병들이 많았다』며 『주둔지역이 논이어서 지난 6일 비가 왔을 때 진흙 수렁으로 변하는 통에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다』고 전했다.

시위대에 의해 철조망이 뚫린 뒤 현장을 둘러본 군 관계자는 『군인이 진압하러 간 것도 아닌데 주둔지에 민간인들이 들어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일을 저지른 세력과 방치한 측에 대해 분노가 일었다』며 『양심선언하고 옷을 벗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시위대에 호되게 당했지만 사태 악화 방지를 위해 「적극 대응」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던 현지 부대 지휘관들도 심한 자괴감(自愧感)에 휩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영관급 지휘관을 만났더니 「부하들이 시위대에 얻어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적극 대응을 못하도록 한 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괴롭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광웅 국방장관은 입원한 장병들에게 불법폭력에 유린당하는 장병들의 모습이 믿음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위대의 폭력에 인내심을 갖고 자제해 준 데 대해 믿음직스럽고 아프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호신봉 방패 등 개인보호장구를 항상 지참하라』

환경연합은 현재에도 미군기지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예컨대 이 단체는 2005년 3월9일 141개 시민단체와 연명한「한미동맹 재편 합의를 철회하라」라는 기자회견에서 『韓美 양국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즉각 폐기하고, 토지의 무상 제공을 규정한 SOFA를 전면 개정하라』며 『만일 韓美양국이 굴절된 한미동맹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주한미군은 물론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동맹이 더 이상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고 비용부담마저 강요하는 것이라면, 국민들은 한미동맹의 존재와 주한미군의 주둔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재차 밝혀두는 바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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