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 대선사께서 저 꼴을 보셨으면

"너그들 얼굴을 보니 집에 가서 전 부치고 떡할 걱정이 가득 차 있다. 오늘은 고마 돌아가거라."
조계사 앞을 지나가면
정말 가관이다

여기 펄럭 저기 팔랑
이리저리 나부끼는 현수막에는
경찰복음화 중지하라는
구호까지 적혀 있다.

어제 오전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일본 청년들이 단체로 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낯 뜨거워서 혼났다.

30년 전
부산에서 군 복무할 때 일이다.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
경봉대선사께서 계셔서
매달 한 차례씩
극락암 호국신도 회원들과 함께
버스 10대로 올라가서
설법을 두 차례 들은 적이 있다.

첫번째 법회에서
큰 스님께서는
'공부는 물이 흐르듯이 거침없이 하라'는
말씀으로 큰 감동을 주셨다.

회중의 90%가
평범한 아주머니-할머니들인데
공부에 대해서 그처럼 실감나게
말씀하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 달 법회는 마침
음력 설 바로 전날에 열렸다.
서면, 지금의 부전역 지하철역에서
버스들이 출발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많은 신도들이 모였다.

시래기국 한 바라로
점심 요기를 한 후
법회가 시작됐다.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시며
자리에 올라 좌정하신 스님은
죽비를 탁 치며 입을 여셨다.

'너그들 얼굴을 보니
집에 가서 전 부치고 떡할 걱정이
가득 차 있다.
오늘은 고마 돌아가거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찾아온
신도들은 그 길로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공부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마음 바탕이 비어 있어야지
욕심이나 근심걱정이 꽉 차 있으면
되는 일이 없는 법이라
공연히 시간 낭비 말라는 말씀.

그로부터 꼭 31년
세상에서 내로라는 이들의
연설과 설교와 강연을 들어 봤지만
그날의 큰스님 설법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멋진 스피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님께서 지금 환생하셔서
조계사를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불전(佛典) 어디에
출가한 승려의 몸으로
하고 싶은대로 막말 다 쏟아놓고
국가지도자와 정부와 타종교를
저주하며 싸우면서 득도하라 써 놓았던가?

스님께서
지금 조계종을 본거지로
종교전쟁을 획책하고 있는
저 무리들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너그들 눈을 보니
세상 권세와 명리에 대한
정욕이 가득 차서
지글지글 붙타고 있구나.
고마 선방으로 들어가서
눈 감고 입 다물고
마음이나 갈고 닦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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