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최근 한국외국어대를 정년퇴임한 김우룡 명예교수의 '左派 뿌리 뽑아야 放送 바로 선다'란 글이다. 이 글은 대한언론인회가 발간하는 월간 '대한언론(9월1일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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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은 한국방송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었다.
KBS 사장에서 해임된 정 아무개는 체포돼서 검찰조사를 받고, 정부와 맞장을 떠온 MBC의 엄 모사장은 뉴스테스크 말미에‘PD수첩’허위보도에 대하여 대국민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공영방송의 위기요, 방송 저널리즘의 종언이다.
한 마디로 우리 방송은 부끄러운 것을 모른다. 2002년 효순 미선양 사망 사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방송, 2007년 BBK 사건 공방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방송 보도는 구원투수로 나섰다.
석 달 넘게 계속된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 때에도 예외없이 반미 반정부 투쟁이라고 하는‘진보적 여론’ 조성에 총대를 맨 것이 공영방송 아니었던가. 수치(羞恥)를 아는 것은 군자의 도리다. 부끄러운 것을 모를 때 우리는 후안무치 또는 철면피라고 부른다.
선전 선동적인 메시지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특히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부도덕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이 거짓일 때는 중대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지금 우리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방송의 존재이유를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영방송이란 무엇인가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방송이 집단적 선전자 선동자 그리고 조직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공산당의 주구’와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비판적인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사들은 말한다. “촛불시위와 쇠고기 파동에 대한 보도를 보고 있으면 ‘미친 소’가 아니라‘미친 방송’처럼 보인다”고.
2억8000만 명의 미국 사람들이 매일 먹고 있어도 단 한 사람 광우병에 걸린 일이 없다는 쇠고기를 둘러싸고 우리 국민은 무슨 호열자나 페스트 전염병이라도 창궐한 듯‘황당무계’한 쇼를 벌였으니, 이게 모두 누구 책임인가?
설령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해도 방송이 이처럼‘분탕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송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확산의 속도가 빠르다. 시청각에 호소하는 TV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PD 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겉으로 드러난 좋은 뜻과는 달리 양대 방송사의 반복되는 ‘풀무질’로 민심을 오도하였고, 마침내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었다.
국민을 꼭두각시로 만든 방송, 특정 이념에 사로 잡혀서 선전 선동의 나팔수로 전락한 방송, 정치적 독립성이 결여된 방송이 사장 퇴진을 둘러싸고 이제 와서‘공영방송’사수(死守)를 외치고 있으니‘화려한 추상어’가 그럴싸하다.
과거 10년 언론 정책의 특성은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갈라서 서로 치게 만드는‘夷以制夷’전법으로 일관되었다. 비판언론, 메이저신문에는 신문고시, 세무조사, 취재원봉쇄 등 탄압으로 일관하였고 친정부적인 마이너 신문과 방송에는 당근을 베푸는 시혜정책을 펴왔다.
나치 선전수법의 하나인 낙인찍기는 친정부적인 매체의 상투적인 술책이었다. 예컨대 조 중 동 메이저 신문을 공격할 때 항상 갖다 붙이는 표현이 있다. ‘친일 언론’‘족벌 언론’그리고 ‘수구언론’이란 딱지가 그것이다.
친일 언론이란 말은 언뜻 듣기에는 일제하에 총독부 앞잡이 노릇이나 한 것처럼 들린다. 하와이에 망명해서 내는 신문이 아닌 바에야, 그 당시 이 땅에서 내는 신문이 부분적으로 총독부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공과를 엄격히 따져서 평가할 일을 나쁜 말로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제하의 민족지는 ‘감옥에서 펴내던 신문’ 이라고 평가해야 옳다. 족벌 언론도 마찬가지다. 좌파들은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태도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주주가 결정할 문제이다. “돈 낸 사람은 경영에서 손 떼라.”이 말은 자본가를 자선사업가로 착각한 데서 나왔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면 방송사 허가가 우선적으로 나온다. 경영의 책임성과 논지의 일관성을 고려한 조치이다.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과거 신문 방송은‘동업자’라고 하여 서로의 허물에 눈을 감고 있었다. 침묵의 카르텔은 청산되어야 할 유산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래 권력은 편가르기를 조장해서 정치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대신 ‘미운’신문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지난 9월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이병순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는 KBS 사원행동측 사원들. 이들은 한겨례신문 출신의 정연주 사장 시절 '공영방송 kbs'가 친노 세력에 의해 짓밟힐 때는 침묵하다가 kbs 출신인 이병순 사장의 취임에는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KBS MBC는 주인 없는 회사로 표류해 왔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임에도 불구하고 양대 방송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의 의식과 가치를 혼돈에 빠뜨렸다.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는 은혜 입은 자로 하여금 정권에 대한 충성을 십분 발휘토록 하였다. 노무현 정권의 이념적 성향을 프로그램에 끝없이 투입하였고 친북, 반미좌파 이념이 보도의 기조를 이루었다.
전문성도 없고 방송철학도 없고 방송 경영에 대한 비전도 없는 인사가 공영방송의 수장을 맡아서 방송의 위기를 자초하였다.
이데올로기의 돌격대장이 정권의 버팀목을 한 탓에 국정 파탄, 가치 혼란, 무질서 사회라고 하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왔다.
방송은 의식(意識)산업이다. 따라서 방송보도는 객관성 형평성 균형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기자는 오로지 사건의 냉정한 관찰자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 방송 기자나 앵커는 곧장 해설자 논평자로 나선다. 미디어와 미디어 종사자가 특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억지논리를 펴고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면 우리는 그를 사이비 기자라고 부른다.
사이비 언론의 특성은‘선택적 보도’에 있다.
선택적 보도는 나치 선전수법의 하나로 어떤 기사는 취재하여 보도하고 어떤 기사는 멋대로 제외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KBS와 MBC의 미친 소와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보면‘선택적 취재보도’가 뚜렷이 나타난다. 예컨대 경찰의 과잉진압은 크게 보도하고 폭력 불법 시위는 다루지 않게 되면 정부는‘나쁜 놈’이 되고 시위대는‘좋은 놈’이 되고 만다. 이런 방송을‘이상한 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촛불문화제라는 말 속에도 전형적인 선전수법이 숨어 있다. 시위나 데모라고 해야 사태가‘문화제’로 미화돼서 불린다.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고 자유발언이 이어져도 데모는 데모이다. 그러나 우리 방송은 여과 없이 이를‘문화제’로 다룬다.
이를 완곡어법이라고 부르는데, 유쾌하지 못한 현실을 더욱 기분 좋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선전술이다. 그러나 우리 공영방송은 빗나간 시위대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불법 폭력행위를 바로 잡는 일은 외면하였다.
KBS나 MBC는 법치주의와는 정반대로 나갔다. 민주사회의 질서수호자인 경찰을 무슨‘공적 1호’ 다루듯 하였고, 일부지만 폭도들에게 동조하는 야당과 한 편에 서서 사회혼란을 부추겼다. 법치주의 실종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종언이기도 하였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캐치프레이즈‘국민의 방송’이 한 낱 구호로 만 끝나서야 되겠는가. 이제라도 공영방송은 명실공히 국민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왜곡방송, 편파방송, 노영방송을 청산해야 한다. 정파적 저널리즘의 기수, 이념의 나팔수 노릇을 거두고 이제 모두‘제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이다.
金寓龍
한국외대 명예교수
'共營방송' 짓밟은 자들이 '공영死守'외치다
- 김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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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5, 1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