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산행(山行)이었다. 스물 한 명이 10시에 모여 예정과는 다른 코스를 탔다. 이북오도청 옆 가파른 바윗길 지나 대남문(大南門)까지 무려 5시간. 구기동으로 다시 내려오니 오후 5시30분이었다. 7시간 넘게 산을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올랐다.
산중(山中) 강연을 준비했지만, 긴 얘기는 하기 어려워 보였다. 마지막까지 동행해주셨던 김석우 前통일원차관님과 大南門에서 합류하신 김규 예비역소장님(향군 안보국장) 말씀에 이어 간략한 상황보고에 나섰다.
『김정일은 오래 가지 못한다. 중공에게 북한을 넘겨줘 한민족 쇠락을 자초할 것이냐, 아니면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통일을 할 것이냐. 대중(大衆)은 자유통일을 원하지만, 겁먹은 지식인이 억지를 쓰고 있다. 나와 몇몇 단체는 2009년 1월, 1천 명의 청년이 모이는 자유통일 집회를 준비한다.』
자유통일이 꿈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청년들은 뜻을 품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개인적 불만이 美國이나 日本처럼 잘 살지 못해서 생기는 국가적 문제라는 투박한 인식이 생겼다. 중첩된 이 고민은 자유통일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는 결연한 의지도 싹텄다. 21세기 화랑(花郞)의 신명(神明)을 받은 「자유투사(自由鬪士)」의 장정(長征)은 이미 시작됐다.
어려워 보이지만, 千명의 청년이 모여 부르짖을 때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이들의 선도(先導)투쟁은 소심한 학자·교수·기자, 선비들에게 힘을 주고, 국민에겐 희망의 증거가 되리라.
시련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믿으며 나가면 반드시 성공한다. 땀으로 절은 옷을 입고 그렇게 말했다.
우이동 산 아래 예약한 식당에 도착하니, 어르신들 여러분이 따로 와 기다리셨다.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세워 온 저들의 사업은 청년이 이뤄 낼 자유통일로 완성될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토론하고 내려오니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