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월간조선 1999년4월호에 실린 禹鍾昌 월간조선 기자의 기사 全文이다. 기사 제목은 [우리는 宋斗律(在獨 학자)이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김철수)임을 확인했다]로 되어 있다.
要 旨
1982년 9월, 귀순한 李韓永(金正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으로부터 최초 제보 받음, 宋斗律 訪北時의 첩보, 독일 정보기관 동향 자료, 귀순자 증언, 黃長燁 진술 토대로 실체 확인 작업.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고 결론.
「의문의 여지없이 명백함」
國家情報院(국가정보원·구 安企部)이 서울지방법원장에게 「在獨(재독) 학자 宋斗律(송두율)씨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북한 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고 밝힌 回信(회신)을 보냈음이 확인되었다. 國家情報院長의 官印(관인)이 찍혀 있고, 문서번호, 시행일자, 문서 발송부서의 연락처 등이 명시된 이 回信은 지난 2월23일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되었다. 회신은 표지를 포함해서 A4 용지로 3장이다.
이 회신은 서울지방법원이 「98가합 86702」 사건의 재판과 관련하여 「사실조회」 신청을 한 데 대해 國家情報院이 공식 의견을 밝힌 것이다. 「98가합 86702」 사건은 在獨 학자 宋斗律씨가 망명한 북한 노동당 비서 黃長燁씨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으로, 서울지방법원 민사 16부에 계류중이다.
宋斗律씨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훔볼트大(대) 뮌스터大(대) 등에서 강의하며, 북한의 사회주의를 북한의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內在的(내재적) 방법론」을 발표해 국내 운동권과 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온 在獨 학자다.
宋씨는 망명한 黃長燁 비서가 그의 책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宋斗律씨는 김철수란 가명의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 주장하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작년 10월13일 소송을 제기했다. 黃비서가 언급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는 북한 권력 서열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다가 1994년 金日成(김일성) 장례식 때 갑자기 장례위원 서열 23위로 발표되었는데 다른 장례위원과 달리 직책, 나이 등 인적사항이 빠져 있었다.
소송을 맡은 서울지방법원 민사 16부는 國家情報院에 두 가지 사항을 질의하는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하나는 북한에서 宋斗律씨를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있다면 근거자료 제시)이고, 또 하나는 「북한의 진실과 허위」란 책에 실린 宋斗律씨 관련 공표 내용에 대한 참고의견이다.
독일 정보기관 자료 협조
國家情報院은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을 통해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북한 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함」이라 밝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귀순자들의 증언, 외국 정보기관 제공 자료 및 각종 첩보 등 수많은 자료가 있으나 보안상 그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사실조회 회신 형식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계속해서 국가정보원은 「정보기관의 활동 내용 공개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재판부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검증 절차 등 적절한 방법을 이용하여 재판부에 한정, 상기 근거자료들을 확인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재판부에서 원한다면 확인해 줄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회신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정보원이 「김철수」를 추적하게 된 과정을 재판부에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김철수란 이름을 국가정보원이 처음 포착한 것은 1982년 9월. 귀순한 李韓永씨가 『金正日로부터 서독에는 조선노동당 구주위원회가 있는데 위원장은 김철수라고 말하는 것을 得聞(득문)하였다』는 진술에서 시작되었다. 추적에 나선 국가정보원은 한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김성수씨」가 김철수인 것으로 추정한 바 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
그러던 중 宋斗律씨가 金日成 장례식 때인 1994년 7월에 북한을 방문하고, 또 1998년 2월에 訪北(방북)했을 때, 그 과정에서 입수된 각종 첩보와 독일 「헌보청」(헌법보위청의 약자)의 동향 자료, 그리고 귀순자 증언, 황장엽 진술 등을 토대로 실체 확인 작업을 재개한 결과, 宋斗律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라는 사실을 명백히 확인하게 되었다고 회신에서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이 회신에서 宋斗律씨가 김철수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독일 정보기관의 자료 협조를 받았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회신에 등장하는 최초 제보자 李韓永씨는 북한 金正日의 전처 성혜림씨의 조카다. 李씨는 1981년 한국에 귀순했으나 1997년 2월15일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인 최순호 등 2명의 남파 공작원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회신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국가정보원이 그동안 논란은 되었으나 입장 표명을 유보했던 「김철수와 김성수 관계」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김철수와 김성수」 관계
문제의 논란은 작년 8월호 月刊朝鮮(월간조선)이 黃長燁 비서의 책(북한의 진실과 허위)을 인용, 「宋斗律씨가 김철수란 가명의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주장을 소개한 데 대해, 한겨레신문이 한달 후 독일 본 駐在(주재) 총영사관 작성의 「영사증명서」를 근거로 「宋斗律씨는 김철수와 무관하다. 독일 駐在 한국대사관이 1989년 徐敬元(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在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를 내사한 결과,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는 북한 공작원은 조선노동당 구라파위원회 위원장 김성수(62)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보도하면서 비롯되었다.
한겨레신문은 김성수씨가 「광주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거쳐 1966년 서독으로 건너간 직후 간첩 김장현(구속)에 포섭돼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았다. 徐敬元 의원 밀입북 사건 당시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역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무렵 宋斗律씨는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독일에 김철수라는 가명을 가진 북한 공작원이 두 사람이라는 얘긴데, 어느 것이 진짜 김철수인지 黃長燁씨는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면서 『黃長燁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안기부는 처음엔 「黃長燁씨 개인 의견이다. 宋斗律씨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黃씨의 책을 대외에 배포했으므로 더 이상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확답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 회신에서 국가정보원은 「김성수씨는 김철수가 아니다」고 명백하게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회신에서 「국가정보원도 한때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바 있는 프랑크푸르트 거주 김성수를 상기 인물로 추정한 바 있고 1989년 서경원 방북 사건과 관련, 독일 본 총영사관 작성 영사증명서에도 이같이 작성, 본국에 보고했다」고 언급한 뒤 「그러나 실체 확인 작업을 재개한 결과 송두율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사실을 명백히 확인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 근거의 하나로서 국가정보원은 김성수씨의 입장을 회신 말미에 첨부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김성수씨는 「영사증명서」 보도가 있은 직후인 1998년 8월31일, 국가정보원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이때 김성수씨는 『연륜이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비교도 할 수 없는 尹伊桑(윤이상)이 부위원장이고 자신이 위원장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은 유럽 「민협」(민족민주운동협의회의 약칭) 결성 이후 조종자도, 노동당 구라파위원장도 아니다』라는 해명서를 보냈다는 것.
이와 함께 「영사증명서」는 군사 독재정권이 민주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왜곡 날조한 것이라 주장하고 「在獨 민주인사 음해대책위」 명의의 성명서(1998년 9월5일)를 월간 「말」誌 및 월간 「인물과 사상」사 등에 발송, 해명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는 것이다.
「사실조회」 신청 공방
이런 내용이 담긴 국가정보원의 사실조회 회신이 법원에 접수된 지난 2월23일은 3차 재판이 열리기 이틀 전이다.
1차 재판은 작년 11월19일, 서울민사지방법원 565호 법정에서 열렸다. 원고 宋斗律씨와 피고 黃長燁씨는 불참했다. 1차 재판에서 黃씨의 소송 대리인 朴鍾元(박종원)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한 「사실조회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宋씨의 소송 대리인 安相云(안상운) 변호사는 「피고가 우선 구체적인 답변이나 주장을 하고 난 다음, 그 답변이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답변이나 주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고의 사실조회 신청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였다. 국가정보원의 회신은 재판의 핵심 관심사로 등장했다. 2차 재판은 지난 1월28일에 열렸다. 국가정보원의 회신은 이날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2차 재판에서 安相云 변호사는 원고측 준비서면을 통해 「피고(黃長燁)는 책자(북한의 진실과 허위)의 내용이 진실하다는 취지의 주장이나 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며 「이 사건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피고는 네 가지 사항에 관하여 釋明(석명)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첫째, 피고가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에서 기술한 내용이 원고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되는 것을 인정하는지 여부, 둘째 피고가 위 책자의 내용에 대해 그것이 진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여부, 셋째 원고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김일성과 접견하였다는 부분이 진실하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여부, 넷째 피고가 국가정보원에서 언제부터,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 여부다.
安변호사는 이 준비서면에서 재차, 답변이나 주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고의 사실조회 신청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朴鍾元 변호사는 宋斗律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준비서면은 黃長燁씨와의 면담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黃長燁씨 주장
黃씨는 준비서면을 통해 『나는 金日成, 金正日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그들을 섬겨온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의 허위와 기만을 더 참을 수 없어서 가족과 친지를 다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들과 결별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宋선생이 냉정하게 북한 통치자들의 허위와 기만에 찬 말과 행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전망이 없는 그들과의 관계를 하루라도 빨리 끊고 우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우리와 서로 힘을 합쳐 나가자는 것을 간곡하게 권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黃씨는 또 『지난 세월 동안 북측과 연계된 행적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 떳떳이 입국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어떻게 기사 내용을 문제삼아 명예훼손 소송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원고(宋斗律)를 만나 온 국민 앞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黃씨의 소송 대리인 朴변호사는 「기사 내용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허구와 기만적 실체를 깨우치기 위한 예시로서 오로지 국가안보와 민족통일의 관점에서 기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내용의 진실성은 앞으로 사실조회 등을 통하여 밝혀질 것이나, 그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北체제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고 손꼽힐 정도의 黨(당) 서열 고위 핵심으로서 체제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피고 본인의 진술이야말로 진실성의 가장 강력한 담보이자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재판이 진행중이던 지난 2월 초, 黃長燁씨는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이 회고록에서 黃씨는 宋斗律씨의 정체와 관련해 새로운 증언을 했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독일에 있는 송두율 교수와 남한의 소설가 황석영과도 만난 적이 있다. 송두율 교수에게는 주체사상의 진수를 알려주려고 시도했으나,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실 북한 당국이 그를 신뢰하는 차원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들의 나쁜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그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을까. 김용순(편집자 주·북한 노동당 비서이며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나에게 송두율 교수를 교양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송두율은 주겠다는 것인지 달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미치광이여서 다른 사람이 상대하기 어렵소. 황비서께서 좀 영향을 주어 그의 머리를 고쳐 주시오』
김용순과 통일전선부 일꾼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면 송두율 교수 본인은 뭐라고 말할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또 黃씨는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영화감독 申相玉씨와 대담(月刊朝鮮 1999년 3월호 보도)에서도 宋斗律씨에 대해 언급했다. 月刊朝鮮측이 『宋斗律씨가 과거 주체사상에 관한 논문을 쓴다며 대신 써달라고 해서 써 주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혹시 1994년 한길사에서 펴낸 한국사 시리즈 22권에 실린 송두율의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주체사상」이라는 논문이 아닙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黃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내 직속 비밀연구소에서 써 주었습니다. 주체철학을 선전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습니다. 나중 가져온 것을 보니 내 논문을 많이 고쳤더군요. 한길사 책에 실린 논문이 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고 말했다.
한길사에서 펴낸 한국사 시리즈 22권은 「북한의 정치와 사회―2」편이다.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주체사상」은 이 책의 63페이지에서 89페이지에 실려 있는데, 저자는 宋斗律씨로 되어 있다. 기자는 한길사 발행인 金언호씨에게 이 논문이 실리게 된 경위를 물어보았다.
金언호씨는 『宋교수가 북한 전문가이고, 글을 잘 쓰고 현대사상에 밝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고를 청탁했다. 宋교수가 독일에서 보낸 원고를 그대로 실었다』고 말했다.
金씨는 또 『1992년인가 1993년쯤 宋斗律 교수에게 원고를 청탁했다』며 『원고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金씨는 宋씨의 글 내용에 대해 『주체사상의 배경이라든지, 객관적 역사적 정황, 그리고 주체사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金씨는 宋교수와 연락을 안한 지가 2년쯤 된다고 했다.
宋斗律씨의 입장 표명
한편, 宋斗律씨는 송태수씨(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와 인터뷰에서 소송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인터뷰는 월간 말誌 1999년 1월호에 실려 있다.
이 인터뷰에서 宋斗律씨는 『月刊朝鮮은 지난 8월호에서 黃長燁씨의 입을 빌어, 교수님을 「북한 노동당 권력 서열 23위의 김철수」라고 주장해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라는 송태수씨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黃長燁씨가 입국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요. 만약 저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면 진작에 발표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랫 동안 조용히 있다가 이번에 「21세기와의 대화」의 출판과 제 입국 바로 직전에 이런 발표를 한 점에서 볼 때 「조선일보」는 사실에 근거한 보도와는 전혀 무관한 「동물적 반사행위」를 보여주는 대중매체에 지나지 않아요』
송태수씨가 『「현재, 김철수는 안기부 조사 결과(송두율이 아닌 제3의 인물) 누구다」라는 본 대사관의 영사증명서를 근거로 (宋교수께서) 소송중인 것으로 압니다. 소송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으며 소송 비용은 어떻게 지불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宋斗律씨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10월13일(1998년) 安相云 변호사를 통해 黃長燁씨를 상대로 서울지법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어요. 사안이 민감하기 때문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정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다행히 「21세기와의 대화」가 나오자마자 두 달 만에 4쇄까지 찍을 정도로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 책의 인세를 소송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3차 재판은 지난 2월25일에 열렸다. 이틀 전에 접수된 국가정보원의 회신이 쟁점으로 등장했다. 기자는 3월8일 오후 2시, 黃長燁씨의 소송 대리인 朴鍾元 변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朴변호사는 고려대 법대 출신이며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宋斗律씨 소송 대리인 安相云 변호사보다는 사법시험 3년 후배. 기자는 朴변호사에게 3차 재판의 분위기를 물어보았다.
─국가정보원의 회신에 대해 어떤 반응이 나왔습니까.
『서류검증은 양쪽 당사자의 대리인이 입회하여 다툴 것은 다투고, 필요하면 관련서류를 복사하는 것이 정상인데 국가정보원은 재판부에 한해 기록 열람을 해주겠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절차를 통한 검증이 가능하겠느냐고 제가 재판부에 물어보았습니다. 재판부는 검증을 하게 되면 자료로 남겨서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판결문에 남겨줘야 하는데 (국가정보원에) 가서 육안으로 보기만 하고, 자료 등사도 못하면 가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검증은 할 수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입장
─宋斗律씨의 소송 대리인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쪽은 검증을 하자는 입장이지요. 그런데 재판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으니까 그쪽에서도 나름대로 사실조회 신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두고 봐야지요』
─사실조회 신청을 할 때 국가정보원에서 회신을 보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까.
『黃長燁씨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도 책임이 있는 것이고, 자칫하면 국가정보원 자체가 매도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사실 관계를 속시원히 밝히고 싶겠지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료를 보여주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비밀자료를 공개 법정에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재판부가 요청하면 열람은 가능하지만 등사는 못한다고 한 것이겠지요』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黃長燁씨는 알고 있습니까.
『만나서 다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분(黃長燁)은 당장이라도 宋斗律씨를 만나 온 국민 앞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고 싶다는 것입니다. 宋斗律씨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다음 재판에서는 뭐가 쟁점이 되겠습니까.
『이 소송에서 다툼은 「宋斗律씨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냐,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단순하지요. 그러나 저쪽(宋斗律)에서 사실조회 신청을 한다고 하니까 두고 봐야지요』
─판결은 언제쯤 날 것 같습니까.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지요. 아마 한 두번 더 재판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제의한 서류 열람은 이뤄질 것 같습니까.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야지요』
─黃長燁씨가 법정에 나와서 진술할 용의는 없답니까.
『그 분은 자기 입장을 잘 정리해서 효율적으로 말을 잘 하기 때문에 대리인이 백 마디하는 것보다 본인 진술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요. 그런 입장도 약간 있는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재판 날짜가 잡히면 북한까지 다 알려지는 판인데, 아마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민사소송에서 당사자 본인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기자는 宋斗律씨의 소송 대리인 安相云 변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安변호사는 연세대 법대 출신으로 1984년 사법시험(26회)에 합격, 연수원 수료 후 개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약칭·민변) 소속이며 「민변」에서 대변인을 지냈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을 많이 맡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회신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판단 자체는 존중합니다. 그러나 黃長燁씨의 진술 하나만으로는 곤란하고, 법률적으로 납득되게끔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제의한, 재판부에 한정된 열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야지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진실이 궁금합니다. 만일 黃長燁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단히 폭발적인 내용이 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黃長燁씨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宋斗律씨의 인권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앞으로 재판에서 쟁점이라면….
『회신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달라고 요구해 놓았습니다. 제 생각은 黃長燁씨가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해 주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黃長燁씨 진술의 신뢰성 여부를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신변안전이 우려되므로 국가정보원 청사 안에서 비밀재판을 하는 것도 한 방안이겠지요』
─宋斗律씨는 국가정보원 회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제가 직접 宋斗律씨와 접촉하지 않습니다. 의뢰인과 대리인 관계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제3자를 통해 결과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소송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되었습니까.
『宋斗律씨가 「민변」에 의뢰를 했고, 「민변」 내부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되었습니다』
宋斗律씨 부인과 국제전화
─손해배상 청구의 범위는 黃長燁씨 개인에서 끝입니까.
『최초 「민변」에서 논의할 때는 그 주장을 한 黃長燁씨 본인과 黃씨 주장을 책으로 펴낸 출판사(통일정책연구소), 이를 보도한 月刊朝鮮, 그리고 국가정보원까지를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일단 黃씨 본인으로 국한시켰습니다. 재판 결과를 두고 봐야지요』
─재판은 언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黃長燁씨에 대한 직접 신문을 하고 난 뒤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2심, 3심이 있으니까 본인의 진술을 들은 뒤 결론을 내리리라고 봅니다』
3월11일 오후 4시(독일 시각 오전 8시)경, 기자는 독일에 있는 宋斗律씨 집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宋씨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宋씨가 장기 여행을 떠나 집에 없으며, 당분간은 전화 통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진행과정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安변호사를 통해 듣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과 관련하여 몇가지를 묻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月刊朝鮮에서 다 알고 있지 않느냐』며 『지금 출근하는 길이라 길게 이야기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 후 기자는 세 차례나 더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만 『지금 부재중이니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겨달라』는 응답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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