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시 은평구 응암어린이공원에 있는 故 美해군대위 서위렴 전사 기념비.
<윌리엄 해밀턴 쇼 추모공원 건립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박세직, 제5대 해군참모총장 이성호, 서울시 은평구청장 노재동)>는 쇼 대위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미래 세대에게 국가안보와 호국보훈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1950년 9월 전사한 쇼 대위를 안타깝게 여긴 친지와 단체들이 뜻을 모아 1956년 9월22일 녹번리(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 內 그가 전사한 자리에 전사기념비를 건립했다. 이후 기념비는 서울시의 확장과 도시계획으로 철수되었고, 제자이자 친구들인 해군사관학교 제2기생들의 협조에 힘입어 서울 은평구 응암어린이공원(응암1동 85-41번지)의 한쪽 구석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서울시 은평구청에서 관리·보존하고 있는 상태다.
추진위원회는 은평구 녹번천광장(조성 예정)에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이 기념비를 옮길 계획이다.
美 해군장교 제대 후 한국전쟁 발발하자 자원 再입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일제(日帝)시대에 한국에 건너 온 선교사 서위렴 1세(윌리엄 E. 쇼, William E. Show)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그는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수학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美 해군장교로 입대했다.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 PT518 부정장(副艇長)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쇼 대위는 제대 후 부모님이 있는 한국에 와 美군정청 경제협력청(ECA)을 거쳐 진해 해군사관학교 민간인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한 한국해안경비대 창설에도 기여하는 등 대한민국 국군 태동기에 큰 공헌을 했다.
학업에 뜻을 품은 쇼 대위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하버드 대학의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들은 그는 고민 끝에 한국전쟁 참전을 결심했다. 한국어와 한국 지리 및 해안 경비상황에 정통했던 그는 美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으로서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되어 인천상륙작전 수행에 참여하게 된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완수 후 그는 다시 자원해 美 해병대 5연대에 배속되어 서울탈환작전에 직접 참가하게 됐다. 1950년 9월22일 아침, 전날 밤을 새운 쇼 대위가 美해병 7연대의 서울 접근을 위한 적(敵)후방 정찰을 위해 녹번리(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는 순간,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공산군 매복조에 저격당하고 만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2시간 동안 계속된 총격으로 쇼 대위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서울은 탈환됐고, 그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內 한강변 소재 양화진 묘지에 완장됐다. 그의 묘비에는 그로 하여금 한국전쟁 참전을 결심하게 해 준 성경구절 ‘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he lay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John 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이 새겨져 있다.
전사하기 1주일 전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가했던 당시 한국해군 PC-703함장 이성호 중령(후에 제5대 해군참모총장 역임)과 나눈 대화에서 쇼 대위는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습니까.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代물림된 쇼(Show) 가족의 한국 사랑
쇼 가족의 한국 사랑은 대(代)물림되었다. 그의 부친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는 美 감리회 선교사로 1921년 내한해 서위렴(徐偉廉)이라는 이름으로 평양, 서울, 대전 등에서 1960년까지 선교와 교육에 이바지했다. 쇼 대위의 전사 후 외아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인들의 뜻을 모아 대전의 목원대 교회를 준공했다. 1961년 선교사직에서 은퇴한 뒤 미국으로 귀국해 1967년 별세했으며, 유해는 유언에 따라 부인이 안고 와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쇼 대위의 부인 주아니타(Juanita Robinson Show)는 1956년 두 아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외국인학교 교사로 봉사했고, 1963년에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내며 세브란스병원에 의료사회봉사과를 신설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공직에서 은퇴하여 美 오하이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양화진의 남편 옆에 묘역이 예약되어 있다.
쇼 대위의 장남 윌리엄 로빈손 쇼(William Robinson Show)는 서울대 법대 초빙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그의 부인 캐롤 쇼(Carole Cameron Show)는 저명한 미국의 작가로 한국대사관 기록보관소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 Independence'를 출간한 바 있다. 쇼 대위의 손녀 줄리는 1990~1991년 오산의 공군기지에서 장교로 근무했었다.
윌리엄 해밀턴 쇼 추모공원 건립추진위원회는 9월22일(월) 오후3시 응암어린이공원 內 전사기념비 앞에서 ‘윌리엄 해밀턴 쇼 추모 및 발기인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