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나(2)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인가(2)


노태우(盧泰愚)와 이승만(李承晩) 비교

우리의 정부·군대·언론·국민은 침략을 받으면 저항은 했지만, 그 이전에 미리 자신들의 책임 하에서 스스로 안보와(安保)와 전쟁을 놓고 고뇌하면서 결단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국가와 국민이 위기에 대해서 일체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1988년 7·7 성명에서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서로를 불신·비방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고통스런 분단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남한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논평하는 언론인의 문법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니라 南侵전쟁이다.

우리가 절대로 잊어선 안될 한국전쟁의 책임소재를 애써 애매모호하게 만든 노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했다.

그 뒤 우리 정부는 과연 그런 협조를 해오고 있는가. 북한의 허물은 덮어주고 북한을 감싸주는 것이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일부 在野, 정치권 인사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과 북한이란 장르가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황금어장이라고 본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도 남과 북의 중간에 서서 兩非論이나 兩是論을 토해내고 있다. 남북한 대결구도에서 과연 중립적 입장이 가능한가. 나치즘과의 대결에서 중립적 입장이 가능했던가?

UN의 승인 하에, 즉 국제사회의 공인 하에 세워진 국가, 그것도 민주화된 국가를, 그런 공인을 받지도 못한 노예사회와 평등하게 놓고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사람은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그런 입장을 유행시킨 노(盧)대통령의 6공정부가 휴지화 돼버린 남북합의서를 제외하면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북한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던 지도자이다.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는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데서도 같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안하고 독자적인 국방정책을 폈기 때문에 살았고 월남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순응했다가 망한 경우다.

일본(日本)은 미국에 국방을 의존함으로써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과 책임을 못 다하고 있다). 이승만(李承晩)은 북진통일이란 카드로써, 朴대통령은 자체적인 무기체제 개발이란 카드로써 미국을 위협하고 자극하여 國益을 도모하였다.

1954년 2월4일 이승만(李承晩)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최근의 외교 문서 공개 때 포함돼 있었다. 이 친서는 외교적 문체를 무시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차있다.

[당신은 '우리와 협력하고 전쟁을 다시 시작하지 말자'고 말하는데, 한국의 생존을 부차적인 중요성으로 다루고 있는 나라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한다면 우리는 중국처럼 적화되든지 지난 40년간의 한국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敵에게 팔려갈 바에야 차라리 싸워서 같은 민족과 통일을 이루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자유민이 될 것이 홀로 싸워 실패하면 노예가 되겠지만 어쨌든 통일은 되는 것이다]

[좌우간 우리는 결심을 해야 할 때다. 한국의 통일에 대한 당신의 현재 정책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알려주시오]

'예스냐 노냐'고 단독 직입으로 들이대는 李承晩의 대담한 안보외교 덕분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제의 구축과 한국군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오늘의 한국안보와 경제번영, 그 토대는 李承晩 대통령의 처절한 자주국방 의지가 마련한 것이다.

북핵(北核)문제를 외국사건 다루듯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려버렸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힘의 논리]를 대담하게 구사함으로써 그들의 도발의욕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통제하면서 경제안정·정권교체·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성공했다. 노(盧)대통령은 북방외교엔 성공했으나 남북한 협상에선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김일성(金日成)과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면서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북한핵(核) 문제에 대해서 애써 과소평가 하려는 자세를 유지하였다.

1989년 여름 미(美) CIA팀이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 核개발의 의혹을 브리핑한 뒤에도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그 심각성을 축소, 또는 은폐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초기에 북한 核문제를, 외신기사를 인용하여 주로 보도함으로써 마치 외국문제 다루듯 하였다.

기자는 지금도 1990년 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 고위 관료들을 찾아다니면서 북핵(北核)문제가 머지않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 같으니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통일되면 우리 核이 될 텐데" "그런 게 왜 기사거리가 되죠?"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군인 출신인 노(盧)대통령까지도 우리 국방은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核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盧대통령이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면 지금쯤 그런 비화가 흘러나올 만한데 아직 그런 게 없다. 기자는 김종휘(金鍾輝) 안보담당 수석비서관을 그가 미국으로 도피하기 직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도 그는 북한 핵(核)개발의 상황이 별 것 아닌데 과장되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었다.



헐값에 판 [재처리시설] 카드

주한미군 측이 같은 군인 입장에서 전(全), 노(盧) 두 사람을 보는 태도는 경멸과 증오심이었다. 대북(對北) 안보는 자신들에게 책임지게 해놓고 등 뒤에서 안심하고 12·12와 같은 流血하극상과 5·17과 같은 정치드라마를 꾸미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직과 명예를 장교의 2大 덕목으로 생각하는 미군장교들은 12·12 때 全장군쪽에서 한 속임수를 잊지 못했다. 노(盧)대통령은 처음부터 북한 核문제를 [민족생존의 문제]로서 절실하게 끌어안지 않고 미국에 의탁하는 자세를 취했다.

1991년 11월 盧대통령이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핵 재처리 시설의 영구 포기를 천명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은 박(朴)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이 재처리 시설이나 기술을 개발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왔다. 북한 核개발이 남한을 자극, 그 쪽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했다. 우리의 원자력 기술연구 상황은 명백했다. 재처리 시설을 가질 필요도 가까운 장래에 가질 이유도 없었다.

굳이 장래의 가능성을 담보로 하여 결백증명을 해 보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 점 의혹이 없었다. 그러나 [핵 재처리 시설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중요한 카드가 된다(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남한이 할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면 美·中·日은 더욱 열심히 對北압력에 나서게 된다). 한국은 이 카드를 對美, 對北用으로 두루 쓸 수 있었다. 적어도 李, 朴대통령이었다면 브래지어를 벗으라니까 팬티까지 벗어던지는 식으로 값싸게 카드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 재처리 시설 포기는 남한에서 미리 화근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종용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핵 재처리 시설의 포기를 근거로 하여 북한의 재처리 시설 포기약속을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에 담을 수 있었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북한은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갖고 있지 않는데 전과자와 선량한 사람을 같은 조건으로 속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공동선언은 현재까지 아무런 실천도 결과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써 對北 설득이 되나?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북한 핵(核) 대책은 "평화적 방법으로, 대화를 통해서,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란 말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말로 하겠다는 것이다. [힘의 외교]의 대가(大家)인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 [진짜 전쟁](Real War)이란 책에서 말한 것이 있다.

<공산주의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하책(下策)은 자신의 카드를 보여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하지하책(下之下策)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는 일이다.>

金泳三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물리적 수단은 쓰지 않겠다]는 下之下의 카드를 쓴 셈이 된다. 특공작전, 예방폭격, 대응개발, 재처리 시설 도입 가능성 따위의 여러 카드를 쥐고서 상대가 이쪽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말로만 하겠다고 해버렸다.

말로 들을 북한인가. 그 길로 우리의 對北 지렛대는 날아 가버린 것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對北 핵 정책은 對美 완전의존 및 對北 유화 제스처로 시종하고 있다. 對北의존의 결과는 숱한 오판이다. 지난해 3∼4월에 기자가 만난 정부 내 핵문제 담당 관료들은 "북한은 외교용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으므로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쓰면 포기할 것이다"는 견해였다. 북한 귀순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일성(金日成)은 국가 생존차원에서 핵을 개발하고 있으니 끝까지 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1년 뒤의 결과는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옳았고, 외교관들은 지난 1년 세월을 북한의 생리를 배우고 깨닫는 데 허비했음을 보여주었다. 외무장관과 당시 통일원장관은 "북한은 앞으로 두 달 버티기 어려울 것", "9월까지는 특별사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식의 公言을 거듭했다. 그 예측이 빗나가도 두 장관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읽은 적이 없다.

두 장관을 몇 번 만나본 기자의 느낌으로 그들이 핵문제를 과연 민족생존의 차원에서 절실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지 하는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북한 핵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어느 나라보다도 북한과 김일성(金日成) 체제에 밝은 우리로서는 적어도 그들의 핵 전략에 대한 해석은 미국보다도 더 정확히 할 수 있어야 했었다.

몇 달 전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종합 분석한 [국가정보 판단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이 한 두 개의 핵 폭탄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 며칠 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엔 "핵 문제가 연초에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왜 金 대통령은 굳이 애써서 [근거가 약한 낙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역시 북한 핵은 미국의 문제이며 우리의 안보는 미국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대북(對北)비관론이나 강경론은 인기를 얻는 데 불리하다고 판단하는가?

최근의 안보장관 회의에서 金 대통령은 또다시 "북한 핵 문제가 UN 안보리로 넘어간 이후에도 대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북한이 남한 정부를 상대로 核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데다가, 그들을 실질적인 대화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이젠 알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희망이나 예측과는 달리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우리 정부의 오판(誤判)과 무력증이 드러날 때 김영삼(金泳三) 정부엔 위기가 올 것이다. 안보대처능력의 문제는 다른 행정적 실수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을 부를 것이다.

개방에 의한 붕괴보단 전쟁 승률이 더 높아?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핵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성격에 있다. 핵개발에 대한 투명성 이전에 그것을 개발하는 체제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김일성(金日成) 체제의 대남(對南) 무력통일 전략과 폐쇄정책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핵의 투명성은 영원히 확보될 수 없는 목표이다. 金日成 체제를 투명한 쪽으로 변화시키면 그 결과로서 핵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그런 변화는 곧 金日成 체제의 붕괴를 뜻한다.

미국 국무성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받아들인 후에도 인권 및 테러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이미 공언한 바 있다. 이는 핵문제 해결에의 접근방식이 핵개발 저지에만 집착하는 각론식이 아닌 체제변혁으로의 유도라는 총론식임을 뜻한다. 체제를 지키려고 손댄 핵(核)개발 때문에 金日成은 체제의 변화를 강요당하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던진다. 급속한 체제 변화에 따라 통일의 날이 예상외로 앞당겨질 가능성과 金日成이 전쟁을 결심할 가능성이 있다.

강요된 체제 변화가 金日成 정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는 전쟁에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체제의 변화가 정권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확신이 높을수록, 즉 개방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개방보다는 승률이 더 높은 전쟁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정보 부서에선 북한 군사력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증강되는 추세라고 말하고 있다. 내년까지는 상승 곡선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 증강추세가 피크에 왔을 때, 즉 군수산업의 피폐와 외화 부족으로 무기체제의 현상 유지가 어렵게 되기 직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때쯤이면 원자폭탄도 확실하게 갖고 있을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이 더 약화되기 전의 그 순간에 최후의 도박을 걸 가능성이 제일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때 남한이 약하게 보이면 전쟁에의 유혹은 더욱 강해진다. 결국 북한 핵 문제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서야 돌파구가 나올 것이다. 그 순간이 통일前夜일지도 모른다.

장거리 로켓포의 인질 된 수도권

정부와 일부 언론은 지금이 긴장 상태가 아니라고 자꾸만 국민을 설득하려고 한다. 영어로 [결정적인 순간]을 [진실의 순간] (The Moment of Truth)이라고 하듯 현실을 직시해야만 결단의 순간을 맞는 자세를 제대로 가다듬을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않은 휴전선상의 변화가 하나 있다. 북한군이 지난 2∼3년 사이에 다연장 로켓포<북한에선 방사포(放射砲)라고 부름>를 후방에서 남쪽으로 전진배치 함으로써 수도권을 사정거리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민군은 약 2000문의 로켓포를 갖고 있다. 18개의 발사대로 구성된 1개 대대는 수초 사이에 720발을 쏠 수 있고, 이는 2㎞×0.5㎞의 지역을 불바다로 만든다. 정확도는 미사일보다 약하지만 지역집중사격을 하면 도심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다.

서울은 그런 집중포화의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다. 敵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 나라의 수도권이 거의 알몸상태로 적의 장거리포에 노출돼 있는 곳은 한국뿐이고 그런데도 긴장이 없다고 우기는 곳도 이 나라뿐일 것이다. 북한의 남침은 입체적 기습으로 시작된다. 지휘소·비행장 폭격, 단·장거리 땅굴과 공정부대를 통한 후방침투, 장거리포에 의한 서울 도심 무차별 포격, 그리고 기계화사단의 前線 돌파… 이런 상황은 각오해야 한다. 스위스 민방위체제의 논리는 [일선 전투부대의 사기는 후방이 교란되지 않고 든든하게 자신들을 받쳐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유지된다]는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군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습을 받고 붕괴해 버린 오점을 한국전과 임진왜란 등 여려 번의 전사(戰史)에서 남기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 대한 확신, 군대의 기율, 개인적 명예심과 책임감 등 국가체제를 채우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한꺼번에 무너질 때 군대는 군중(群衆)으로, 병기는 고철(古鐵)로, 시민은 도망자로 변한다.

이런 국가적 전의(戰意) 상실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초전(初戰)에서 아군이 밀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기보다는 '김일성(金日成)이도 동족인데 같이 살아보지 뭐' 하는 자기합리화의 심리변화가 내 가슴속에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는가. 그럴 만큼 우리의 체제 및 가치관에 대한 신념이 강한가. 현역 육군 소장인 김희상(金熙相)씨는 [중동(中東)전쟁]이란 책의 [교훈] 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기습을 달성치 않고는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이 증명하는 바에 의하면 기습이란 통상 기습당하고자 준비된 사람에게만 성공하는 것 같다. 인간이 기습을 당하는 경우란 교만 나태하며 敵을 경멸하거나 방심하는 경우이지 진지하게 사태에 대처하고자 하면 기습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자위적 선제기습도 배제 않아야

주한미군의 한 간부는 이런 경고를 기자에게 했다.
<미국의 도움 없이는 인민군이 한국군에 대해서 백전백승한다고 본다. 한국군 장교들 중엔 괜히 허세를 부리는 이들이 있지만 3성 장군 이상만 되면, 즉 군단 급 이상의 대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자는 호언장담을 하지 않게 된다. 기습을 당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지휘체제의 정위치 문제이다. 과연 지휘관들이 몇 시간 이내로 지휘소에 도착할까? 그 순간에 눈이 왔다든지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했을 때…>

북한 핵(核)문제는 다행히 한국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함으로써 기습을 예방하고 정상적인 국가의 국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의미심장한 화제(話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화두를 제대로 살려나가면 우리는 우리가 딛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식하면서 아직도 진행중인 국가건설의 길을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北核) 위기는 호기(好機)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한국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공부했더라면 북핵(北核) 위기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뻔히 눈뜨고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 사회에선 6·25 북침설이 나돌고 집권자들마저 전쟁 책임 규명을 기피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한국은 통일 뒤에도 강대국 사이에서 自衛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스위스, 이스라엘과 같은 고슴도치 식(式) 국방전략이 우리의 모델이 될 만하다. 침략을 위한 전쟁은 할 생각이 없지만 自衛를 위해선 언제든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국가란 인상을 주변국에게 강하게 심어주어야만 민족의 活路를 영구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연합군에 의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자 국제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선제공습을 감행, 開戰 30분만에 敵 전투기의 90% 이상을 비행장에서 파괴해버림으로써 戰勢를 결정지었다.

1973년 10월 전쟁 때는 전쟁개시 8시간 전에 '전쟁이 확실하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스라엘 군 지휘부는 先制기습을 주장했으나 장관들이 반대하였다. 국제 여론을 두려워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때 이스라엘은 이미 비밀 핵무기 개발에 성공, 원자폭탄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군도 인민군 기습작전에 의한 전쟁 임박을 상당히 빨리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럴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도 이스라엘 식의 [정당 방위적인 선제기습]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할 만한 배포와 논리를 국가 지휘부가 갖고 있을 것인가. 그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것인가. 그리하여 그 기습으로 파생되는 부담을 한국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핵위기를 全국민적인 主題로 승화시켜 전쟁, 국가, 국민, 책임, 명예란 단어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뇌해 간다면 통일 이후까지 有用할 거대한 집단적 깨달음을 우리는 여기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국가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국민만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정상적인 나라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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