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탱크가 주석궁에 돌입할 때

*이 글은 필자가 1997년 여름 조선일보 勞報에 기고했던 글이다.


나는 지금(1997년 6월 3일) 스페인의 남부 코르도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미국인 15명과 함께 단체관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톨레도를 거쳐 오늘 오후 여기에 도착했다. 미국인 15명 중 14명이 60, 70대의 은퇴한 노인들이다. 수년 전에 아내를 먼저 저승으로 보내고 나서는 혼자서 단체여행단에 끼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는 유태인 영감 샘과 말동무가 되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사병으로 참전하여 1944년 12월 히틀러의 마지막 반격작전인 발지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던 이였다. 소련군이 포로수용소를 해방시키면서 구출되었다.

샘 영감은 '영화를 보면 서부전선에서는 신사적인 전투를 한 것처럼 돼 있는데 말짱 거짓이다'라면서 '전쟁의 실상은 인간이 동물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전투 중에는 포로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왜냐구요. 전투중에 포로를 잡아놓으면 관리할 방법이 없어요. 병력이 부족해서 죽을 지경인데 누가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감시하고 밥 주고 합니까. 그러니 독일군을 붙들면 그 자리에서 사살해 버렸어요'

동족 사이에 증오의 불길이 붙으면 그건 겉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내전은 이민족간의 전쟁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6.25동란 때 연대장을 지냈던 한 예비역 장군은 '치열한 고지 쟁탈전 끝에 국군이 인민군 고지를 점령하면 포로가 된 인민군을 살려둘 수가 없었다'고 실토했다.

전우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자빠지는 것을 본 뒤에는 동물적인 복수심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할 수 있던 인도적인 조치는 '찔러죽이지 말고 쏴 죽여라'고 명령하는 정도였지요'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한 예비역 대령은 '베트콩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대장이 '포로 모모명. 사살 모모명'이라고 무전으로 보고를 해오면 '포로는 무슨 포로야. 포로는 제로!'라고 소리친 뒤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베트콩 포로를 한명 살려서 데려오다가는 내 부하 두 명이 죽을 판인데 어떻게 합니까.'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는 약 60만 명이 전사했다. 미국이 치른 다른 전쟁의 전사자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링컨은 전쟁 종반에 가면 북군의 셔먼 장군에게 초토작전을 허용한다. 셔먼은 남군의 심장부인 조지아주를 불바다로 만들고 무자비한 살육전을 감행했다. 남군의 지지기반을 철저하게 파괴하여 戰後에도 딴 소리를 못하게끔 기를 죽여놓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로 해서 링컨 대통령은 지금 남부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

남북전쟁은 서양 전사상 최초의 총력전(Total War)으로 꼽힌다. 정규군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전쟁에 동원되고 전쟁의 결과에 따른 부담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 전쟁에서 양쪽은 수백 미터의 지근거리에서 총격을 시작하여 백병전으로 승부를 짓는 참혹한 양상으로 싸웠다. 미국은 그러나 이 남북전쟁으로 해서 다음 세기에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내부 통합과 국가 동원력을 갖추게 됐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분리주의자들이 끊임없는 독립을 시도하여 미국연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었다.

전쟁중에는 민병대 수준이었던 남북 전쟁은 전쟁 종반에 가면 백만 대군으로 늘어난다. 총력전을 하느라고 미국의 軍官民이 死力을 다하다보니까 군사력, 산업생산력, 국가 통합력, 정신력이 큰 걸음으로 성큼 성장해버렸던 것이다. 스페인은 16세기의 세계 최대 강국이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뒤따라가면서 남미의 거의 전부와 북미의 상당부분(샌프란시스코, 콜로라도까지), 그리고 필리핀까지 식민지로 삼고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의 전부(이탈리아와 지금의 베네룩스 3국은 속국화했다)를 영향권 아래 두었다.

동쪽에서 西進해 오는 이슬람제국 오스만투르크를 레판도 해전에서 격파하여 기독교 문명의 수호자가 되었다.

세계를 진동시킨 16세기 스페인의 대폭발은 그 전 7백년에 걸친 스페인 탈환전쟁이 꼭지점에 도달한 시점과 일치한다. 서기 711년 시리아에 근거한 움마야드 종파의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고 순식간에 거의 全域을 점령하자 기독교 군대의 聖戰, 즉 탈환전이 그 뒤 7백년간 이어졌다. 서기 1236년에 코르도바가 기독교군에게 넘어가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이슬람의 마지막 교두보 그라나다가 함락되었다. 스페인 통일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이탈리아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스페인의 문화재는 거의가 이 7백년의 탈환전쟁과 관계가 있다. 스페인의 전성기 1백년(16세기)은 이 7백년의 전쟁 끝에 이뤄진 통일 직후에 해당한다. 당시에 문화적으로는 기독교가 후진이었고 이슬람은 선진이었다. 두 문명이 총력을 다해 대결하는 과정에서 양쪽 모두 군사, 문화, 과학부문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음을 이 시대의 어마어마한 건조물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전쟁은 인간을 동물화 하는 동시에 그 능력을 극대화하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높은 열을 받는 물질은 질적인 변화를 하는 것처럼 전쟁을 겪은 민족도 그런 본질적 변화를 통해서 세계사를 뒤흔드는 섬광이 되는 수가 많다. 미 MIT대학교의 루시안 파이 교수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재난현상(Disaster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그 후에는 살아남은 데 따른 자기 운명에의 확신을 갖게 되고 드디어는 '뭔가 나은 일을 성취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하며 그렇게 운명 지워져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을 겪은 일본, 내전과 외전을 동시에 경험한 중국, 그리고 6.25를 치른 한국, 이 세 나라는 지금 16세기의 스페인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국력의 대 폭발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전쟁을 가장 큰 계기와 동력으로 삼아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미화도 외면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쟁을 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의 전차가 사이공 독립궁의 철문을 밀어버리면서 돌입했던 장면처럼 우리 국군이 평양의 주석궁에 탱크를 진주시킬 때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다. 통일독일은 동독군 장성들을 한 명 남김 없이 예편시켜 서독군 체계하에 편입시켰다. 따라서 전쟁과 군대를 무조건 경멸하는 태도는 전쟁광보다 더 해롭다. 군대와 전쟁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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