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이야기


스위스는 1515년 프랑스와 베니스 공화국 연합군에 패배한 이후 500년 동안 전쟁에 휘말린 적이 없다. 외교적으로는 중립이고, 군사적으론 全국민의 예비군化 및 요새化에 성공한 덕분이다.
1963년 10월4일 이후 스위스는 민방위법에 따라 새 건물을 지을 때 核방공호 건축을 의무화하였다. 주거지와 병원 등에 약30만 개의 방공호와 약5100개의 공용 방공호가 있다. 큰 것은 2만 명을 수용한다. 핵폭탄이 터지면 全인구의 약114%가 방공호에 들어가 장기간 생존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스웨덴은 全인구의 약80%, 핀란드는 약70%를 대피시킬 수 있는 핵방공호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全국민의 약3분의 2를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있지만 핵방어 능력은 거의 없다. 2005년 스위스 의회에 핵방공호 건설 의무 조항을 폐기하자는 제안이 제출되었지만 정부는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쓸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 기존의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스위스가 핵방공호를 유지 관리하는 데 쓰는 돈은 매년 약1억5000만 달러이다. 전국 방공호의 총가격은 약100억 달러로 추정된다. 주택용 방공호 건축비는 개당 평균 약9400 달러이다. 자신의 집에 방공호를 짓기 싫은 이는 행정당국에 1곳(1.5室) 당 약1300 달러를 납부, 공용 방공호 건축에 쓰도록 하고 시설을 배당받는다.
스위스 식으로 핵방공호를 짓는다면 인구가 약7배인 한국은 약700억 달러를 들여야 한다. 與野가 한때 가입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합의하였던 국민연금 지급률 10% 포인트 인상안을 실천하는 데는 2100만의 가입자가 매년 약35조 원을 더 내야 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그런 추가부담 2년분이면 5000만 한국인이 북한의 핵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핵방공호를 만드는 게 국민연금을 더 받는 것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듯하다.







저는 月刊朝鮮과 한진관광이 공동주최하고 愼鏞碩 한국인권재단 이사장(전 朝鮮日報 파리
특파원)이 안내하는 제5차 역사문화 기행에 참여하여 지금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오늘(18일)오후 1시30분 인천공항을 떠날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공 10
km입니다. 여기서 내려다 본 시베리아 땅은 숲과 田畓입니다.
이번 여행의 경로는 스위스의 추리히 공항에 내린 다음날 육로로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의
코모로 이동하여 그 뒤 독일 남부의 바덴바덴, 戰犯 재판으로 유명한 뉴렌베르그, 체코의
프라하, 베를린 등지를 여행하고 프랑크푸르트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機內에서 참고자료를 보고 있습니다. 車中에서 강연회도 있고 설명도 해야 되기 때문
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읽는 유럽 역사책과 機內에서 읽는 것과 현지에서 읽는 맛이 다 다
릅니다. 책에 현장감각이란 것이 더해지면 활자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라고 하면 알프스, 시계공업, 은행이 연상됩니다. 스위스에 로마군대가 들어온 것은
서기 전 107년이었습니다만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게르만족에 밀려 나
가고 게르만족이 스위스에 터잡고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리스도교를 받
아들였습니다. 스위스는 1032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게 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이란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대의 수많은 도시국가와 小公國을 아우르는
느슨한 제국이었습니다. 거창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중앙집권적인 국가도 아니었고 소속 국
가들이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그런 중심부도 없었습니다. 로마라는 이름을 빌린 페이퍼
캄퍼니 비슷한 연방국가라고 할까요. 그 중심부는 항상 독일이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전
성기를 만든 샬레마뉴 大帝는 9세기에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를 통일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아들들 사이에 제국이 분할되었습니다. 독일을 차지한 왕조 속에서 오토1세
가 출현했는데, 906년에 그가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일 황제라고도 불리었습니다. 14세기부터는 오스트리아의 합스
부르그 왕조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하게 되었지요. 이 합스부르그 왕조의 오스트리아 군
대는 1806년 나폴레옹이 지휘한 프랑스 군대에게 대패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합스부르그
왕조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불리지도 않게 되고 이 제국은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프러시아가 독일민족의 챔피언 국가가 되어 외교의 鬼才 비스마르크와 참모총장 몰
트게의 리더십하에서1871년에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전체 독일을 통일하게 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을 제1제국, 비스마르크가 통일한 독일을 제2제국, 히틀러가 집권한 뒤 나치
가 통치한 독일을 제3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가
장 얕은 나라입니다. 불과 60여년 전에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공장을 만든 나라가 독일입니
다. 독일이 일으킨 이런 학살과 전쟁도 민주주의의 토대가 약했다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
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 특히 침략전쟁을 결단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세계의 민주화가 진행되면 전쟁의 횟수도 줄어들 것입니다.

다시 스위스로 이야기를 돌립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스위스의 작은 나라 셋이
연맹하여 합스부르그 왕조에 저항하기로 한 것이 서기 1291년8월1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스위스 연방을 만드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 저항운동을 배경으로 한 전설이 윌리엄 텔 이야기입니다. 활을 잘 쏘는 윌리엄 텔이 아
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쏘아 맞추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것입니다. 영국을 제외한 당
시 유럽 군대는 활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활은 멀리서 쏘는 것이라 비겁한 무기라고 하여
금지시킨 나라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騎士道가 한창 떨치고 있을 때여서 군인은 당당하게
칼로 결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개인기 위주의 전투를 가르쳤는데, 13세
기에 침입한 몽골 기마 군단의 활과 기동과 조직적 전술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
전연패한 것이 중세 유럽 군사였습니다.

1315년 스위스 군대는 침공한 오스트리아 군대를 대패시켰습니다. 이를 본 스위스의 다른
小國들이 연맹에 가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추리히, 베른, 루체른 같은 나라들이지요. 오스트
리아 군대를 連破한 스위스는 간이 커졌습니다. 이제는 합스부르그 왕조의 영토로 들어가
싸우면서 국토를 넓히려 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 남부에 있지만 당시는 유럽의 강국이었던
부르고뉴 公國 군대를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나라로 분열되어 있다가 통합한 나라들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팽창주의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도 그런 예입니다.

스페인을 통일한 찰스 5세와 필립2세 시절의 스페인이 세계제국이 된 것, 독일 통일 이후
거대한 국력을 주체하지 못한 독일이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경우가 있습니다. 스위
스는 그러나 1515년 프랑스와 베니스 공화국 연합군에게 대패하여 실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알아차리고 對外팽창정책을 포기합니다. 그리고는 중
립국임을 선언합니다.

스위스 군인들의 용맹성은 유럽 諸國에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傭兵으로 이들을 많이 데려
갔습니다. 바티칸 용병이 대표적입니다. 16세기초 유럽은 마틴 루터 교수 때문에 종교분쟁
에 휩싸입니다. 독일 비텐버그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루터는 바티칸의 부패행태에 분노합니
다. 특히 교황청이 면죄부를 돈 받고 팔아 성 베드로 사원을 짓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 없
었습니다. 그는 1517년10월31일 95개조의 항의서를 발표하여 바티칸의 카톨릭에 도전합
니다. 全 유럽이 루터의 종교개혁에 찬동하는 신교도와 카톨릭파로 갈려 피비랜내 나는 내
전, 전쟁, 음모, 쿠데타를 되풀이합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스
위스에도 신교도들이 생기고 세를 확산해갔습니다. 특히 장로교의 창시자가 된 프랑스의 칼
빈이 제네바로 와서 이 도시를 금욕주의의 원칙에 따라 독재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스위스가 하나 다행이었던 것은 종교 내분에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은 점입니다. 이는 대단
한 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독일은 그 반대였습니다. 독일의 신교도는 독일
의 구교도를 치기 위해서 프랑스의 신교도를 끌어들이고 독일의 구교도는 독일의 신교도를
치기 위해서 프랑스의 구교도를 불러들여 국제전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스위스가 종교 내분을 內政으로 국한시키고 외세의 개입을 차단한 것은 대동단결의 정신이
나 대승적 관용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大義를 위해서 小利를 버리는 이런 자세는 스위스
사람들의 尙武정신에서 나왔다고 저는 추정합니다. 그런 대범한 정신은 명분을 중시하는 文
民전통에선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어쨌든 유럽을 거의 130년간 참화로 몰아넣었던 종교
분쟁에서 스위스가 안전하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 스위스의 번영 토대가 되었습니
다.

1618-48년 사이 독일은 30년 전쟁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열강들이 이 전쟁에 참여
했습니다. 독일 사람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웨스트팔리아 조약은
그 뒤 약250년간 유럽의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이 조약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교
내 구교냐의 선택은 국가나 정부가 정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일종
의 종교선택의 자유 선언이지요. 이런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120년간을 싸운 것을 생각
하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헌법상의 권리로서의 종교자유란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이란 자는 17세기 유럽 사람들이 누렸던 종교의 자유조차 주민들에게 금하고
있으니 이 자야말로 한반도의 1등 가는 守舊세력입니다. 이 자를 추종하는 남한내 친북세
력이 진보라 자칭하고 기자 학자들이 그대로 따라 불러주는 것은 거의 정신병적 상황입니다
웨스트팔리아 조약은 스위스를 중립국으로 인정해주기로 약조하였습니다. 그 뒤 지금까지
400년간 스위스는 한번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습니다(프랑스 대혁명 뒤 프랑스 군대가 들
어와 스위스를 통치한 적은 있지만 스위스 사람들의 저항으로 곧 물러나고 유혈사태는 벌어
지지 않았다).
전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유럽에서 스위스처럼 오래 평화를 유지한 나라는 달리 없습
니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급인 것도 장기간의 평화시기에 축적해둔 富의
결과일 것입니다.

스위스 사람들이 이뻐서 유럽 열강들이 이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
다면 국제관계를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스위스 국민의 무장력이 침략전쟁을 저지한
것입니다. 스위스는 인구 약7백만 명에 군대가 약40만 명입니다. 대부분이 집에서 근무하
는 우리식의 예비군입니다. 군복무기간이 몇년인지 아십니까. 요사이는 좀 줄었는데 그래도
20년이랍니다.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면 기관총을 들고 집에 돌아가는 군인들을 많이 만납
니다. 이들은 집집마자 무기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알프스 땅속은 복잡한 군사시
설로 하나의 지하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2차세계 대전 때 독일군도 스위스 공략을 엄두
내지 못했습니다. 핵폭탄이 터졌을 때 세계에서 생존률이 가장 높을 나라가 스위스라고 합
니다. 약70%가 지하로 숨어들 수 있답니다.

스위스는 중립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극도로 신경을 씁니다. 유엔 기구가 많이 와
있으나 유엔 가입국은 아닙니다. EU에도 가입하지 않고 유로도 쓰지 않습니다. 스위스는
군사문화 때문인지 여자들에 대한 참정권을 아주 늦게 인정하였습니다. 1971년입니다. 한
지역은 1991년에 연방정부가 위헌 판결을 하니까 할 수 없이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습
니다. 스위스는 칸톤이라 불리는 수십개의 지역정부가 중앙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스위
스 사람들 가운데 3분의 2는 독일어를 쓰고 프랑스어는 18%, 이탈리아어 사용자는 약10%
입니다. 로마시대의 古語를 지금도 쓰고 있는 종족이 1% 정도 됩니다.

스위스는 유명한데 스위스 사람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웬 일일까요.
시스템이나 법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선진사회는 영웅을 허용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1000년간 공화국을 유지해온 베니스가 그런 경우이고 스위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스위
스 사람들은 경제나 과학 군사에는 밝은데 예술에는 좀 둔감한 것 같아 이 분야의 유명인사
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남한면적의 약40%를 차지하는 스위스는 인류문명사의 한 寶
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슴도치처럼 작지만 강한 국가들群이 있습니다. 세계제국 唐과 싸워 독립을 보존했던 천년
왕국 新羅, 1000년간 한번도 정변 없이 공화국을 유지하였던 베니스, 지금의 이스라엘와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들은 軍官民이 일치단결하고 尙武정신으로 무장하여 자주국
방을 한 나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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