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 김정일 정권은 조총련 간부들을 대상으로 북한에서 만든 강연자료를 배포했다.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이한 조선반도 정세에 대하여'란 제목이었다. 이 강연자료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8월11일부터는 북한의 형편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과 무역과 합영, 합작 그리고 금융거래를 지장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북동아시아에서 세계에서 으뜸가는 경제대국들에 둘러싸인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국제경제교류상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과 정보산업시대에 필수불가결인 희귀한 광물자원, 높은 교육수준의 인적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주체적인 잠재력을 백방으로 살릴 수 있게 됨으로써 2012년에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충분히 열어나갈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서게 되었다.'
이는 김정일 정권이 8월11일로 예정되었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에 큰 기대를 걸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문서는 8월11일에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주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8월11일에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조선이 삭제되는 법적조치가 정식으로 발효되게 될 것이며 10월 중에 조선에 대한 100만t 중유에 해당되는 에너지 지원이 완수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의 무력화도 완료될 것이다.
-조일(朝日)간에서 후속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6자외상회의가 열릴 것이 예상되며 그 직후에 조선반도의 정전상태의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조․미․중․남)이 별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제2단계행동조치가 마무리되면 제3단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 제3단계 논의의 초점은 조선의 핵신고에 대한 검증과 핵시설의 해체 및 핵물질(플루토늄) 포기에 상응하게 미국과 남조선이 확언한 핵무기 부재에 대한 검증과 조미, 조일관계정상화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5개국에 의한 조선에 대한 경수로의 제공,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안보체제수립 등으로 될 것이 예상된다.
․ 핵무기 문제는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안보체제 수립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다.>
북한정권은 8.11 조치 이후엔 경제적 원조가 쏟아져 들어오고 미국과 관계 정상화도 착착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기대는 어긋났다. 북한이 제출한 核관련 신고서가 워낙 엉터리로 작성되어 미국 등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측 관계자는 이 문서를 읽고는 '핵을 폐기할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문서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엄격한 검증 틀을 만들어야 한다. 검증 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미국도 8월11일로 예정되었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조치가 김정일에 큰 정신적 타격을 주어 뇌졸중을 일으키게 했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런 추측이 그럴 듯하게 들릴 정도로 북한정권의 기대는 높았었다. 미국이 속아넘어가 주지 않았다는 점이 김정일의 誤算이었을 것이다. 도쿄신문은, 김정일의 발병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조치를 연기한 데 따른 스트레스가 직접적인 촉발 원인이라고 지난 15일 중국 당국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었다. 김정일이 쓰러진 것은 지난 8월14일로서 그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예상됐던 8월11일까지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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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文
[강연 자료]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이한 조선반도 정세에 대하여
-주체97(2008)년 7월-
-머리말-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영도(先軍領導)에 의하여 조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6자회담의 일련의 합의가 착실하게 이행되는 등 오늘 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조선이 핵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는데 맞추어 6월26일 아침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조선을 ‘테러지원국’명단에서 삭제하는 과정에 착수함과 동시에 조선에 대한 ‘적성무역법’ 적용을 종식시킬 것을 정식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6월30일에는 부시가 조선을 ‘글렌수정법’(핵시험을 실시한 비핵국에 대한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법) 적용대상에서 5년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20008 회계연도 추가경정예산법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정부가 조선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위하여 총 1억3600만 달러 중 당면 8600만 달러의 재정지출을 집행할 법적조치를 취하였다.
이 일련의 주요 경제제재 해제조치는 6자회담의 2005년 9월19일 공동서명 이행을 위한 2007년 10․3합의에 명시된 제2단계행동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한 2008년 4월8일의 조미싱가포르회담에서 합의한 미국 측 의무사항의 이행조치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료-1)
조선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고 핵선제공격으로 “김정일 체제를 전복시키겠다”고 떠벌리던 부시 대통령이 그에 초강경으로 맞선 조선에 대한 정책을 180도 바꾸어 우리나라의 핵신고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40분에 백악관에서 조선에 대한 주요 경제제재의 해제를 선언한 의의는 자못 크다.
이는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앞에서 미국정치사상 가장 호전적이고 반동적인 대통령 부시가 무릎을 꿇고 항복 선언을 한 것이나 같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조치는 반세기 이상에 걸치는 대미(對美) 대결전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영도를 따라 나아가는 조선인민이 조국해방전쟁승리이래 쟁취한 또하나의 역사적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1.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영도(先軍領導)와 탁월한 대미(對美)전략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미국이 對조선적대시정책을 전환하고 조선과 평화공존의 길에 나서도록 하는 것을 대미전략의 기본 목표로 삼아오셨다.
이 전략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적 억제력을 끊임없이 강화하시면서 강경책에는 초강경으로 맞서는 원칙적 입장과 대화에는 대화로 응하는 영활한 외교술을 배합하여 영도하심으로써 그처럼 호전적인 부시정권을 조선과의 직접적인 대화마당으로 끌어내시었을 뿐 아니라 끝내 적대시 정책을 전환하는 실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까지 몰아넣으시었다.
△ 부시의 강경책에 초강경으로 맞선 선군영도
무엇보다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시의 강경책에 대해서는 선군의 위력으로 초강경으로 당당히 맞서시었다.
① NPT에서의 탈퇴와 핵무기 보유 선언
․ 부시정권이 조선을 ‘악의 축’ (2002년 1월 대통령 교서 연설)으로 낙인찍고 핵선제공격대상(2002년 3월 ‘핵태세 재검토 보고서’)으로 지정한데 이어 11월에 ‘고농축 우라늄에 기초한 핵개발 의혹’을 날조하면서 중유 제공을 중단하여 1994년 10월 조미기본합의문을 뒤집은데 맞서서 조선은 2003년 1월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시켰다.
․ 또한 부시정권이 2003년 3월에 이라크를 무력 침공한 직후, 뉴욕대표부를 통하여 미국 측에 핵무기 개발의사와 그를 위한 핵연료봉 재처리의 개시를 통고하고 7월에는 그것이 마쳤다는 것도 알렸다.
9월3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1차회의에서 핵억제력 강화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하고 10월3일에는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무기 개발에 쓸 것을 공표하였다.
2004년 1월에는 미국의 핵무기 개발 연구소인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핵커 명예소장 일행을 초청하여 플루토늄을 담아놓은 유리그릇을 직접 확인하게 하였다.
2005년 2월10일에는 드디어 외무성 성명을 통하여 핵무기 보유를 전 세계에 선언하였다.
②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의 단행(자료-2)
조선은 부시정권이 2005년 9․19공동성명에 조인했다가 그 직후에 이를 뒤집듯이 ‘위조지폐설’을 날조하여 조선에 대한 금융제재를 실시하고 6월에는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하며 8월 말~9월에는 금융제재를 세계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데 대하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맞섰다.
․ 무엇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2006년 7월4일 ‘스페이스 셔틀’ 발사시간에 맞춰 조선 동해에서 6발의 탄도 미사일을 서로 다른 곳에 배치한 이동식 발사대에서 발사하여 매우 좁은 지역에 100% 도달시키는 높은 명중률을 보여주었다.
․ 단군절인 10월3일에 핵실험을 할 것을 역사상 처음으로 사전에 공표하고 6일 후에는 최첨단의 핵소형화 기술을 구사하여 매우 작은 규모의 핵폭발시험을 성공시킴으로써 최신식 전술핵무기의 개발기술의 소유를 세계에 과시하였다.
△ 조미직접대화에 끌어내는 영활한 외교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시에 부시정권을 조선과의 직접대화에 끌어내는 영활한 외교술도 구사하시었다.
우리나라는 핵실험 단행 직후인 10월11일과 17일에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담화 등에서 핵선제 사용과 핵이전을 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는 한편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조미사이에 신뢰가 조성되어 미국의 위협이 없어진다면 핵무기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부시정권에 대하여 조선과의 직접대화에 성실하게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부시정권은 교전상태에 있는 조선과 핵대결을 계속하느냐 혹은 직접대화를 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으며 결국 그처럼 거절해 온 조선과의 직접대화를 스스로 제기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 1월에는 부시정권 발족 이래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조미직접회담이 진행되게 되었다.
△ 6자회담과 관련한 영활한 전략적 구상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자회담을 조미대화를 안받침하는 국제적 틀로, 조미간의 합의를 ‘국제공약화’하는 마당으로 전변시킴으로써 미국이 정권교체를 구실로 조미합의를 뒤집을 수 없도록 만들 전략적 구상을 세우시어 다국간 외교를 주도해 오시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전략적 구상은 핵실험을 계기로 2007년 1월에 열린 조미베를린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실현되어 나갔다.
즉 2007년 1월6일~17일의 조미베를린회담의 합의는 제5차 6자회담 제3단계회의의 2월13일 합의로, 2007년 9월1일~2일의 조미제네바회담은 제6차 6자회담의 제2단계회담의 10월3일 합의로 국제공약화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이 핵실험을 계기로 명실 공히 핵보유국이 된 조건에서 그 이후의 6자회담에서는 핵무기를 제외한 조선의 현존 핵계획의 포기와 그에 상응한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의 정치․경제적 보상이라는 구도에 따라 ‘행동 對 행동’의 원칙에 기초하여 합의가 이룩되도록 주도하시었다.
․ 김계관 부상은 핵실험 이후인 2006년 12월에 진행된 제5차 6자회담 제2단계회의에서 “우리는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완전히 철회하고 신뢰가 조성되어 더 이상 핵위협을 느끼지 않게 될 때에 가서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현단계에서는 현존하는 핵계획에 한해서만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미국은 그 직후인 2007년 1월 조미베를린회담에서 이것을 양해하였으며 6자회담의 2007년 2․13합의나 10․3합의, 2008년 4월8일의 조미싱가포르 합의에도 이것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따라서 6월26일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조선이 제출한 핵신고서에 핵무기가 제외된 것은 조미를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양해사항으로서 응당한 것이다.
2. 조선에 대한 ‘테러지원국’명단 삭제와 ‘적성국 무역법’ 적용 종식 조치가 가지는 의의
이번에 부시정권이 취한 조선에 대한 주요 경제제재의 해제조치가 가지는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로, 해적선 ‘샤만호’의 평양침입이래의 백년숙적이고 해방 후 조선반도의 남반부를 강점하고 공화국을 일관하게 적대시하면서 압살하려고 미쳐 날뛰어 오던 미국이 부시정권에 이르러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 전환을 법적․제도적 조치로서 실천에 옮겼다는데 있다.
부시의 아버지 정권시기인 1992년 2월 김용순 조선노동당비서와 캔터 미국무성차관사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고위급회담이 이루어졌고 클린턴 정권시기 2000년 10월에 발표된 조미공동선언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사이의 적대관계종식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처럼 조선을 적대시하는 대표적인 악법들인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 무역법’ 적용을 다 같이 폐지하는 것과 같은 전환적 조치를 실천적으로 취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사변이다.
※ 2000년 6월19일에 클린턴 행정부 당시 ‘적성국 무역법’ 적용의 폐지를 발표했으나 제한적인 일부 제재해제에 그쳤고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그것마저도 사실상 똑똑히 집행되지 않았다.
특히 지난 6월27일 오전 0시1분에 발효된 ‘적성국 무역법’ 적용의 종식조치는 미국에 있어서 조선이 더는 교전대상국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취해지는 국내법적조치로서 앞으로 조선전쟁의 종신선언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적성국 무역법’은 제1차 세계대전시기의 1917년에 법제화된 미국의 교전대상국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로서 조선에 대해서는 1950년 6월 조선전쟁이 시작된 직후에 적용됨.
※ ‘테러지원국’의 지정은 1987년 11월 남조선 안기부가 조작한 ‘대한항공기폭파사건’을 구실로 1988년 1월에 집행됨.
둘째로,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전후 반세기에 걸쳐 세계적으로 펼쳐놓은 조선에 대한 경제적 봉쇄망을 분쇄하는 돌파구를 열어 놓았다는데 있다.
미국은 조선전쟁직후에 적용한 ‘적성국 무역법’으로 미국 내의 조선의 자산을 동결하였으며 반세기이상 조선과의 무역과 투자, 금융거래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금지하여왔다.
또한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라 조선에 대하여 20년 동안 물자수입금지와 국제금융기구의 융자금지조치를 취해왔다.
이와 함께 동맹국들에도 이 법적조치를 추종할 것을 강요해 왔다.
그리하여 조선은 조국해방전쟁이후 매우 불리한 국제적 환경 속에서 국가건설을 해야 했으며 특히 소련 및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경제화로 인하여 사회주의 시장이 소멸된 이후 일시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봉착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조선에 대한 국제적인 경제봉쇄를 주도해 온 미국이 그 주된 법적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과 무역과 합영, 합작 그리고 금융거래를 지장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북동아시아에서 세계에서 으뜸가는 경제대국들에 둘러싸인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국제경제교류상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과 정보산업시대에 필수불가결인 희귀한 광물자원, 높은 교육수준의 인적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주체적인 잠재력을 백방을 살릴 수 있게 됨으로써 2012년에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충분히 열어나갈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서게 되었다. (자료-3)
셋째로, 북남수뇌회담에서 발표된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4선언을 이행해 나갈 매우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였다는 데 있다.
-부시행정부의 이번 제재해제 조치는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그 무슨 기대를 걸고 어리석은 친미사대, 반북대결 정책을 일삼음으로써 북남관계를 6․15공동선언 채택 후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은 ‘이명박 정권’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조미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북남간의 민간교류와 협력이 계속 활성화되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대북관계에서 당국 간의 대화나 접촉마저도 차단되는 ‘통미봉남(通米封南)’, ‘통민봉관(通民封官)’의 궁지에 빠져 아우성치고 있다.
그리하여 현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에서 완전히 자리를 잃었으며 남조선 내에서는 이명박의 대북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자료-4)
-이명박은 또한 남조선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인민들의 反이명박 투쟁에 밀려 국정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명박의 무능하고 독선적인 정치행보와 미국과 일본 행각을 비롯한 굴욕적 외교는 인민들의 반감만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5월2일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를 야기하게 되었다. (자료-5)
-우리나라는 북남관계의 현 봉착상태를 타개하려면 이명박 정권이 우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의사라도 똑똑히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그런 속에서 남측 당국자들은 “통일경제특구를 신설하겠다”(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옥수수 5만톤을 지원하겠다”(통일부)고 하는가 하면 “북과 만나 협상하다 보면 10․4선언을 100% 그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위당국자)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 7월11일에는 이명박 자신이 국회시정연설에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엄,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이명박 정권이 궁지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길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여 이행하는 길밖에 없다.
넷째로, 일본 후쿠다 정권으로 하여금 아베 정권시기의 ‘부의 유산’을 청산하여 제재를 철회하고 조일평양선언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몰아가는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였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총련결성 이래 없었던 가장 엄혹한 정세 속에서 투쟁해온 총련 일꾼들과 재일동포들이 8․15 해방 이래 없었던 가장 유리한 정세를 내다보면서 신심과 난관에 넘쳐 사업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지게 되었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얽매어 온 온갖 차별과 구속의 근원은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일본정부와 극우반동세력들이 이에 적극 추종해 온 데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조일관계 정상화를 위하여 가네마루 방조단(訪朝團)과 3당공동선언, 자민, 사민, 사까가께 방조단과 4당공동선언, 무라야마 방조단 등 정당이 나서기도 하고 두 번에 걸친 고이즈미 총리의 방조(訪朝) 등 정부가 직접 나서기도 했으나 이 모든 시도는 미국정부당국과 그 부추김을 받은 극우보수세력들의 방해책동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역사적 교훈은 미국의 對조선 적대시 정책을 짓부숴버려야만 일본당국의 부당한 정책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조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으로 6자회담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납치문제를 구실로 한 대조선 강경책을 더는 지탱하지 못하게 된 일본정부는 우리나라 측에 제재해제 의사를 표시하면서 대화에 응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6월11일~12일에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일정부간 실무회담에서 일본은 단계적인 제재해제를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료-6)
-미국의 제재해제에 의하여 아베 정권 하에서 강행된 제재조치가 거덜이 나고 강경일변도 정책은 사실상 완전히 파탄되었으며 아베를 비롯한 극우익보수세력들은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자료-7)
-일본정계에서는 미국의 제재해제를 환영하면서 일본정부도 이 기회를 놓침이 없이 제재를 철회하여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6자회담 합의와 평양선언의 이행에 성실히 나설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료-8)
3. 금후 전망
현재 조미관계와 6자회담은 제4차 6자회담에서 발표된 2005년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10․3합의인 제2단계 행동조치를 마무리하고 제3단계에 들어서는 전환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 7월10일~12일에 베이징에서 열림 6자회담 단장회의
-이번 6자회담 단장회의에서는 ①각국의 의무이행을 검증하는 체계의 수립 ②조선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의 마무리 ③6자외상회의 개최와 동북아시아 안보체제 구축 ④제3단계의 기본구조와 방향 등이 상정되었다.
-조선은 이번 단장회의에서 2005년 9월19일 공동성명에 따라 정당하고 원칙적인 주장을 하였다.
․ 핵신고의 검증에 협력을 표시하면서도 조선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로 이어지는 비핵화가 아니라 조미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모든 핵전쟁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할 체제의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 또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들의 의무이행은 예외 없이 검증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완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단장회의의 합의에는 이와 같은 조선 측의 주장이 반영되었다.
․ 무엇보다도 ‘조선반도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한 검증체제의 수립’에 합의함으로써 핵신고서의 검증에 머무르지 않는 보다 포괄적인 전 조선반도에 대한 비핵화검증체제를 내올 전망이 서게 되었다.
․ 6자회담의 틀 내에서 6자 단장들로 구성된 감시체제를 수립하고 각국의 공약 준수와 이행을 보장할 것과 10월 말까지 영변 핵시설의 무력화와 조선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을 동시에 완료할 노력을 다그칠 것이 합의되었다.
․ 또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안보체제 지침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적절한 시기에 베이징에서 6자외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대하여 재확인하였다.
이번 6자회담 단장회의를 계기로 검증가능한 방법의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 등 2005년 9․19공동성명의 사항들을 조미를 비롯한 모든 참가국들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해 나가는 체제가 마련될 전망이 서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6자회담에서 궁지에 빠진 일본
-한편 이번 6자회담 단장회의에서는 납치문제를 구실로 조선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에 동참할 것을 유일하게 거부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표출되었다. (자료-9)
․ 6자회담 단장회의에서 의장국인 중국은 “일본의 동참이 없으면 6자회담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하면서 일본을 비판하였다.
․ 이전부터 “일본에는 실망하고 있다”고 말해 온 남조선의 김숙 대표는 7월11일 6자회담 단장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중․로의 4개국들이) 일본의 불참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납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였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에너지 지원에 참가하여 6자회담의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오명을 하루빨리 씻기 위해서도 ‘납치문제의 진전’이라는 명분을 세우려고 조선 측에 후속회담을 당장 열어줄 것을 애걸하고 있다.
△ 6자회담 단장회의 이후의 전망
-8월11일에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조선이 삭제되는 법적조치가 정식으로 발효되게 될 것이며 10월 중에 조선에 대한 100만t 중유에 해당되는 에너지 지원이 완수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의 무력화도 완료될 것이다.
-조일(朝日)간에서 후속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6자외상회의가 열릴 것이 예상되며 그 직후에 조선반도의 정전상태의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조․미․중․남)이 별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제2단계행동조치가 마무리되면 제3단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 제3단계 논의의 초점은 조선의 핵신고에 대한 검증과 핵시설의 해체 및 핵물질(플루토늄) 포기에 상응하게 미국과 남조선이 확언한 핵무기 부재에 대한 검증과 조미, 조일관계정상화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5개국에 의한 조선에 대한 경수로의 제공,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안보체제수립 등으로 될 것이 예상된다.
․ 핵무기 문제는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안보체제 수립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다.
-맺음-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를 높이 받들고 건국이래의 위기적 상황을 맞받아 뚫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한 조국인민들이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놓기 위한 총진군을 개시한 올해, 특히 공화국 창건 60돌을 민족적 대경사로 경축하는 올해에 드디어 미국이 對조선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행동으로 옮겼다.
벌써 7월1일 유럽의회에서는 유럽연합(EU)과 공화국의 경제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공화국 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가 토의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숨죽이고 있던 조선에 대한 외국의 투자는 이제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이 우리나라에 몰리게 될 것이다.
공화국 무역성부상은 “지금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는 외국기업들이 줄지어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2년 전에는 8개국 60여개의 외국기업밖에 참가하지 않았던 ‘봄철 평양 국제 상품 전람회’에는 작년에 13개국 150여 기업이, 올해에는 국교가 없는 프랑스까지 포함하여 17개국 180여 기업이 참가하였다.
앞으로 조선의 대외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것이다.
우리들은 머지않아 공화국 창건 60돌을 맞이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 동안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조국과 더불어 애족애국(愛族愛國)의 길을 걸어왔다.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김일성 장군님께서 잃었던 조국을 되찾아주시고 공화국을 창건하심으로써 우리 재일동포들도 조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주독립국가의 해외공민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1970년대 조국에서 보내온 막대한 교육원조비가 생명수가 되어 일본 방방곡곡에 아담하고 현대적인 우리학교 새 교사가 속속 일어났을 뿐 아니라 민족금융기관은 막대한 금액의 교육원조비가 예금됨으로써 재정기반을 비약적으로 늘려 수많은 동포 상공인들에게 넉넉한 융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일본사람들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대집단 체조를 도쿄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국의 앙양기이자 총련의 앙양기였으며 조국의 번영이자 곧 동포들의 행복이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탁월한 선군영도와 영활한 외교술이 가져온 미국의 對조선정책 전환은 경제 분야에 한한 것이 아니라 조선반도를 둘러싼 전반적인 국제질서가 반세기만에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재일동포들에게도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정책전환은 8․15이래 재일동포들을 구속하던 역사적 근원이 풀려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영하는 조국! 동포들의 행복!” 조국의 번영과 재일동포들의 행복은 그대로 잇닿아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나온 60년을 통하여 체득한 진리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하신 대세는 이미 굳어졌다.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여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유리한 정세에 안도만을 느낄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국인민들의 총진군에 발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당면하여 공화국 창건 60돌을 드높은 열의와 자랑찬 사업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동포 되찾기 100일간 운동’에 총궐기함으로써 새 세대를 비롯한 각계각층 동포들을 다 찾아내고 애족애국의 한길에 묶어세워 새 세기 총련사업과 애족애국운동을 한 단계 더 높이 추켜세우는 데서 돌파구를 열어야 할 것이다.
자료-1
△ 2005년 9․19공동성명의 기본내용: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실현
․ 조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의 포기 및 NPT 복귀를 공약.
․ 미국: 핵무기불배비(不配備)와 핵과 상용무기에 의한 위협제거를 확언
․ 남조선: 자기 영토 내 핵무기 부재를 확인
․ 모든 참가국: 경수로 제공을 토의
-조미: 서로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공존과 관계정상화 추진
조일: 평양선언에 따라 관계정상화 추진
-쌍무적, 다무적 경제협조와 조선에 대한 에너지 지원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
․ 조선반도의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당사국들의 협상개시
․ 동북아시아의 안보와 협조를 도모할 방도를 탐구
- 이상의 공약을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다라 이행
△ 2007년 10․3합의의 완수를 위한 2008년 4월8일 조미 싱가포르 합의의 기본내용
-조선이 핵무기를 제외한 핵계획에 대한 신고를 함과 동시에 미국 측이 조선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 무역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한다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100만t 중유에 해당하는 에너지 제공을 끝냄에 따라 조선 측도 핵시설의 무력화를 끝낸다.
-에너지의 제공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이 조선에 50만t의 식량을 제공한다.
-핵신고에는 영변 핵시설과 플루토늄에 관한 내용만 포함시키되 미국이 제기한 ‘우라늄과 핵협력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조미사이에서만 교환하는 비밀각서에서 언급한다.
※ 비밀각서에는 미국이 ‘의혹’을 제기하지만 조선은 그를 ‘인지(acknowledge)'하되 동의나 인정은 안 한다.
자료-2
․ 「北朝鮮が7月5日に發射した彈道ミサイル7發のうち、6發は北朝鮮が事前に設定していた航空禁止海域內に着彈していたことが、日米兩政府の分析で判明した。日本政府が發射直後に發表した推定落下地點は400~500キロに~がっていたが、實際には半徑5キロの範囲內に北朝鮮の狙い通りに着彈していた。」(読売新聞 06.8.6)
․ 「北朝鮮が6者協議に提出した核計画の申告で、核実'443;で使用したプルトニウムの量を『2キロ』と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たった2キロで起爆できるのか』と疑う見方や『豫想以上に核兵器の小型化技術が進んでいるのかも』との憶測が出ている。米專門家は『事實ならば、考えいていた以上に技術が洗~さりているのかのしれない』と、小型化技術が進んでいた可能性を指摘する。」(朝日新聞 08.6.28)
비밀자료 분석/8월11일 앞두고 기대 높았던 북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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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6, 2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