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상황에서 무엇이 正義이고 不義인가?

절대평등이나 절대공평을 외치는 좌익세력의 위선과 교만

이 세상에 정의를 싫어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불의한 독재자나 살인마도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나 악행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기독교는 하느님의 속성을 정의와 사랑으로 규정했겠는가?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의나 자비보다 더 악용되는 용어가 없다. 정의나 공평을 높이 말하는 자들일수록, 불의한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민주를 말하는 민주투사가 가장 독재적이고, 통일을 말하는 통일운동가가 가장 분열적이고, 평화를 말하는 촛불시위대가 가장 폭력적이고, 진실을 말하는 언론인이 가장 거짓스러운 것은 비극적 상황이다. 좌익세력이 10년 번창한 한국사회에서는 공산사회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위선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공산사회가 자유경쟁과 불평등을 전제한 자유사회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로 판명난 것은 인간실존의 불행한 역설이다. 고상한 종교, 윤리, 지식, 권력은 쉽게 추악한 인간에 의해 착취당할 명분이라는 사실을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고등종교는 잘 지적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사회윤리학의 대가 중에 하나인 라인홀드 니버는 '고상한 명분을 착취하는 인간의 위선과 교만'을 최악의 악으로 보았다. 그는 냉전시대에 공산주의가 인간의 고상한 도덕률을 악용하는 위선을 가장 큰 사회적 악덕으로 보았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지적, 권력적, 도덕적, 영적 교만을 자본가들의 욕적 탐욕보다 훨씬더 사악하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윤리를 주장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약간 이분법적으로 구별했지만, 니버의 사회윤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좌익이념이 가진 위선과 교만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에게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의 지적 교만, 도덕적 교만, 정신적 교만, 권력적 교만은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할 악마적 병리증상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모두 유한한 정의와 이기적 사랑을 가진 존재이므로, 좌익세력의 절대적 정의와 사랑 자체가 거짓이고 악덕이었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거부하는 교만과 위선의 해악을 니버의 사회윤리는 극히 경계한다.

오늘날 '민족자주'와 '절대평등'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착취하는 북한사회의 현실은 타락한 인간실존의 구조적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민족자주를 외치면 외칠수록, 외세에 의존하는 정도는 심해질 것이고, 계급간의 절대평등을 외치면 외칠수록 약자차별과 민중억압은 북한사회에서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 북한의 운명은 남한보다 백배 외세에 의존되어 있으며, 북한의 사회적 불평등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혹독한 처지에 빠져있다. 라인홀드 니버가 악마적 죄악이라고 매도한 인간의 교만과 위선은 북한 김정일 부자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이 얼마나 명분을 잘 착취하는 위선적이고 사특한 존재인가를 확인하려면,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체제를 관찰하면 된다. 인간실존에서, 특히 정치판에서, 절대적 정의, 절대적 공평, 자기희생적 사랑의 한계를 니버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라인홀드 니버의 냉전시대적 정의론은 좌익세력의 위선과 교만을 간파하는 데에 가장 좋은 윤리적 기준이다. 좌익세력은 자신들의 지식과 윤리와 의식의 기준을 절대화하여, 상대방의 지식과 윤리와 이념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악마적 배타주의에 빠진 교만한 세력이다. 좌익세력의 교만과 위선은 가히 종교적이기 때문에, 상대적 정의와 이기적 사랑을 시인하라는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좌익세력의 신격화에 몰입한다. 정의와 사랑의 상대화를 모르는 좌익세력은 니버의 도덕률에 근거해서 판단하면, 자기신격화에 빠진 악마적 세력에 불과하다. 북한과 같이 절대평등의 이름으로 절대독재를 이욱한 공산주의집단에 낭만적 평화주의를 적용하는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은 위선자이거나 시기꾼임을 니버는 잘 알려주고 있다. 절대적 평등이나 정의를 요구하는 자들은 대부분 교만하거나 위선적이다.

라인홀드 니버 이후에 가장 인상 깊은 사회정의론자는 역시 한때 프린스턴 대학에서 가르친 마이클 왈쩌이다. 그의 저서인 '정의의 영역들(Spheres of Justice)'는 다원주의사회에서 어떻게 다양한 기준과 시각에서 정의와 불의를 판가름해야 하는가에 대한 느슨한 기준을 제공해준다. 월쩌는 사회적 분야나 영역에 따라서 다른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정리한 다원주의적 정의론자이다. 왈쩌의 가장 인상적인 주장 중에 하나는 바로 '공산주의와 같은 좌익이념이 주장하는 절대평등(absolute justice)에 대한 비판'이다. 인민들이 계급을 철폐하고 절대평등을 이룩하겠다고 하는 발상자체가 불의하고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왈쩌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기질과 재능이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평등을 들이대는 공산주의야야 말로 가장 불공정하고 불의한 윤리적 폭력이다. 오늘날 전교조가 신봉하는 '절대평등 교육이념'은 다원주의적 후기현대사회에 곧 불의한 폭력이론이 되어버린다.

왈쩌의 상대주의적 도덕률에 따르면, 승려가 축재하고 것은 불의이지만, 재벌이 축재하는 것은 전혀 불의가 아니다. 사업가가 물건을 잘 팔아먹는 것은 찬양받아야 할 미덕이지만, 종교가가 구원을 팔아먹는 것은 매도당해야 할 악덕이다. 폭력배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악덕이지만,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곧 미덕이다. 강도가 총칼로 부자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은 악덕이지만, 군인이 적군을 총칼로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악덕이다. 왈쩌의 사회적 상황과 직분에 따른 다원주의적 정의론에 근거해서 보면, 오늘날 정권타도에 나선 좌익세력에게 절제해서 적용되는 경찰의 공권력을 폭력으로 매도하는 좌익성향의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도덕한 범죄자들이다. 경찰에게 있어서 최고의 미덕은 불법시위자들에게 강한 공권력(폭력)을 구사하는 것이다.

마이클 왈쩌의 상대주의적 정의론에 따르면, 국가의 공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불법 폭란자들에게 공권력을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 행정은 자비나 사랑이 아니나, 불의와 폭력으로 규정된다. 공권력을 화끈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정부 자체가 곧 불법에 찌들어서 불의하고 불공정한 폭력정부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반정부 폭란에 나선 언론인, 종교인, 교육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반란을 일으키는 수준의 폭력과 불법을 자행하는 것이다. 빈손으로 출가한 승려들이 수십-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애첩까지 끼고 살면서, 후안무치하게 종교편향을 빌미로, 이렇게 허약하고 물렁한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겠다고 설쳐대는 해괴한 망동은 가장 악질의 불의(injustice)이고 위선(hypocracy)이다. 재벌 회장들의 축재를 그렇게 매도하던 좌익선동가들은 승려들의 축재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무소유의 가면 뒤에 가장 악랄한 권력과 소유에 대한 의지를 오늘날 승려들이 보여주는데, 이는 불의 중에 불의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떤 나라에도 반란자들은 있게 마련인데, 그 반란자들이 활기를 띠고 폭력을 구사하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무기력한 공권력을 가진 무능정권이다. 오늘날 정권타도와 체제전복에 나선 좌익세력을 비난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해서 잘못된 판단이다. 반란세력은 어느 국가에서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남한사회에서 언론인, 종교인, 교육자들이 좌익혁명에 나선 근원적인 원인은 무능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게 있다. 자비롭고 화해스러운 듯한 이명박 대통령의 언동과 여당의 행적은 반란자들을 키우는 잔인한 폭력행각이다. 국가안보와 사회법치를 담당하는 정권을 운영하는 통치자들은 불법폭력시위자들에게 용서해줄 권한이 없다. 광우난동자들을 용서하고 경찰청장을 퇴진시키라는 불교계의 승려들은 불의하고 불법적이다. 삼성 이건희의 축재를 그렇게 매도하던 종교인, 시민운동가, 언론인들은 종교계의 부정축재에 왜 고요한가?

오늘날 조계사에서 광우난동자들을 품어주고 경찰이 이를 방치하는 것은 승려들과 경찰들의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불법폭력행위이다. 광우난동자와 종교편향자들의 불법적 깽판에 대한 공권력의 행사가 최고의 정의이고 자비이다. 대한민국에는 도덕적 위선과 정신적 교만에 빠진 좌익 종교인, 언론인, 교육자들의 지나친 평화주의가 하나의 반란적 폭력으로 작동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젊잖은 대처는 정의도 자비도 아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회피와 불의한 방치일 뿐이다. 오늘날 준동하는 좌익세력을 제압하기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라인홀드 니버가 증오한 공산주의의 교만과 위선을 파악하고, 마이클 왈쩌가 주장한 다원주의적 정의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좌익세력의 악독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상황에 따른 다양한 윤리기준을 숙지하여, 불의와 폭력을 제압하는 정의로운 신념을 이명박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좌익세력의 반란극을 공권력으로 제압하고, 절대평등의 교육이념을 불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전교조의 반역교육을 제압하고, 종교차별을 빌미로 정권타도에 나선 승려들을 정당한 공권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현재 이명박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와 자비이다. 오늘날 좌익세력의 교만과 위선을 신랄하게 지적한 라인홀드 니버의 투시적인 사회정의론이나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마이클 왈쩌의 다원주의적 사회정의론을 알고 있는 자에게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나 좌익세력의 깽판은 모두 불의하고 불법적이다. 한국사회에 자기 분수에 맞는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지도층이 얇아 보인다. 특히 좌익세력의 준동을 제압할 경찰의 공권력과 언론의 진실보도가 가장 그립다. 국가의 정당한 공권력이 깡패의 부당한 폭력으로 채색되는 영상물을 미친 듯이 돌려대는 공영방송들의 프로파간다가 참으로 가증스럽다.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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