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도시 코모와 밀라노

月刊朝鮮 역사문화기행에 동참하면서

저는 지금 月刊朝鮮 趙甲濟 편집장과 함께 月刊朝鮮과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 제5차 역사문화기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18일 스위스 추리히에 도착한 月刊朝鮮 역사문화기행단 일행은 9월20 현재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코모라는 도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코모 북쪽에 있는 몰트라시오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몰트라시오는 코모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습니다.

코모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로 인구는 약 8만 명이며, 실크 등 견직물 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한시간 정도 달리면 화학, 섬유, 기계 공업이 발달한 밀라노라는 북부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가 나옵니다.

꼬모시 인근에는 코모호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수는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고이면서 생긴 호수입니다. 주변의 경관이 좋아 코모호 일대는 국제적인 관광지 및 휴양지로 오래전부터 명성을 떨쳐 오고 있습니다. 코모호는 우리나라 소양호처럼 길쭉하게 생겼으며 Y자를 거꾸로 놓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호수는 최고 수심이 410m로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합니다.

이번 제5차 역사문화기행의 첫 소식은 月刊朝鮮 趙甲濟 편집장이 9월18일 스위스 추리히에서 편집장의 개인 홈페이지(http://www.chogabje.com)에 올려 놓았습니다.

저는 月刊朝鮮 역사문화기행단이 스위스 추리히에 도착한 후부터 오늘(9월18일)까지 약 3일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스위스 추리히에서 이탈리아 코모로 오는 길의 풍경>

9월18일 오후 6시, 저를 비롯한 역사문화기행단 일행은 스위스 추리히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전세 버스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추리히는 온통 숲과 나무에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숲과 나무가 하도 울창하여 시내를 다니는 자동차나 전차조차도 숲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행은 추리히 시내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 호텔에 비즈니스 센터가 있어서 인터넷 접속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9월19일, 이날 일정은 추리히를 출발하여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코모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밀라노로 이동하여 밀라노 대성당과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을 관람한 후, 다시 코모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추리히를 출발한 일행이 코모와 밀라노 거쳐 다시 코모로 돌아오니 저녁 아홉시가 넘었습니다. 이날 일정이 다소 힘들었는지 일행 중에는 호텔에 돌아온 후 저녁 식사를 거른 채 곧바로 잠자리에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도시 코모와 밀라노

추리히에서 코모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군데군데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와 수직으로 수백 미터를 깎아 내리는 산 봉오리 군락이 조화를 이루는 그림 같은 경관이 이어 졌습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제국의 병사들이 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이 길을 넘나 들었다고 합니다.

이 길을 넘어오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산 중턱에 수많은 마을과 농가가 있었으나 이런 건물을 짓기 위해 자연을 훼손한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농가나 마을은 모두 산의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들어 서 있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산을 깎아 평탄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과 마을을 산과 언덕의 굴곡에 맞추어 지어 놓은 것입니다.

추리히를 출발한지 약 4시간이 지나자 버스가 코모시에 들어섰습니다. 코모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일행은 다시 밀라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밀라노 시내의 좁은 도로와 다닥다닥 붙은 건물이 답답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전차와 자동차가 뒤섞여 달리는 거리가 몹시 어수선 해 보였습니다.

밀라노 시내의 중심부의 건물은 대게 중세 유럽풍의 형태를 뛰고 있습니다.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만 모두 들어낸다면 곧바로 수 백년 전의 세월로 되돌아 갈 듯이 보입니다.


<공사중인 밀라노 대성당의 모습>

일행을 태운 대형 전세 버스는 목적지인 밀라노 대성당을 찾기 위해 비슷비슷하게 생긴 밀나노 시내의 2차선 혹은 1차선의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다녔습니다. 버스가 밀라노 좁은 길목을 수없이 꺾어 돈지 한 시간만에 밀라노 대성당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당의 하얀 대리석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지만 외부 수리를 하기 위해 성당의 외벽을 상당부분 가려 놓아 성당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성서에 나오는 각종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두컴컴한 성당 내부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더욱 화려하게 보입니다. 성당 안에서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밀라노 성당 내부>


<밀라노 성당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밀라노 대성당 관람을 마친후 일행은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벽화를 보기 위해 聖 마리아 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한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에 25명까지만 이 그림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40 명이었기 때문에 스무 명씩 A와 B조, 두 조로 나누어 관람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는 밀라노 시내의 성 마리아 성당 모습. 사진 왼쪽에 깃발 있는 곳이 벽화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다.>

성당 매표소 입구를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꺾어 10 m 정도 들어가자 철문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검표원이 표를 검사하고 관람객을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일행이 모두 들어서자 뒤쪽의 철문이 자동으로 닫혔습니다. 철문을 하나 통과하면 그 다음으로 관람객 일행 앞을 유리로 된 자동문이 가로막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리문을 세 개를 더 통과한 후에야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성당 내부에 들어 설 수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이 벽화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림이 그려진 벽면 약 3m 전방에는 허리 높이의 칸막이를 쳐 놓았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1493년부터 97년까지 약 3년 간 그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맞은 편 벽면에는 예수가 십자에 처형당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레오나드로 다빈치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도나르도라는 화가가 그렸다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과 이 그림을 번갈아 보면 두 그림의 수준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도나르도의 예수님 처형 그림은 입체감이 없는 반면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입체감 뿐 아니라 그림 속의 등장 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그린 이 세계적인 보물을 한번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밀라노를 찾아옵니다. 저는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 까다로운 관람 절차를 겪으면서 짜증이 났다기보다 오히려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하는 것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국의 문화재는 남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돌봐야 남들도 이를 귀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라지오 마을을 가다


<꼬모 호수 주변의 풍경.>

9월19일, 꼬모 호수에서 여객선을 타고 북쪽으로 약 1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있는 벨라지오라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벨라지오는 로마 시대 때부터 귀족들이 별장으로 개발한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 벨라지오는 꼬모호 주변 마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상주 인구 80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 해마나 150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온다고 합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보석, 실크, 가죽제품 등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벨라지오까지 가는 여객선은 호수를 지그재그로 운항하면서 호수 양편에 있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선착장을 거쳐갑니다. 꼬모호를 운항하는 여객선은 주민과 관광객을 동시에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月刊朝鮮 역사문화기행단은 전날 머무른 몰트라시오라는 마을에 있는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벨라지오로 들어 갔습니다. 일행들은 배에 오르자 마자 주변의 풍경에 감탄사를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여객선 위로는 관광객을 실은 수상이착륙 비행기가 날아 다녔고, 호수 양쪽에는 석회암 돌산이 기묘한 자태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코모 호수 주변에 있는 별장(여객선에서 바라본 모습)>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호수 가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집이었습니다. 집들 가운데는 별장으로 보이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것도 많았습니다. 집은 한 채가 산중턱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수백 세대가 모인 제법 큰 마을이 호숫가를 따라 죽 늘어 서 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상당히 높은 산꼭대기에 마을이 형성된 곳도 있었습니다. 동네가 형성된 곳은 어김없이 교회가 하나씩 들어 서 있었습니다.

꼬모 호수 주변의 이런 마을들은 길다랗게 생긴 호수 양편 산기슭을 따라 난 1차선 좁은 도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호수에서 배를 타고 바라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치 산중에 아무 길이 없는 데 집이 점점이 들어 서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합니다. 물론 산 기슭을 따라 난 이 길을 따라 벨라지오까지 올 수도 있습니다. 배로 한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이나 차를 끌고 오면 두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꼬모 호수 양편에 난 산 기슭의 이 길은 폭이 매우 좁아서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마주오는 차를 발견하면 어는 한편이 멈춰서야 맞은 편의 차가 지나 갈 수 있습니다.

벨라지오 마을의 건물은 수 백년이 지난 것에서부터 최근에 지은 것까지 다양했으나, 새로 지은 건물일지라도 어느 것 하나 옛 건물의 모습을 흩트리면서 모나게 세워진 것이 없었습니다.


<벨라지오의 한 음식점 야외 천막. 기둥 하나로 천막 세 개를 씌웠다.>

마을 한 켠에는 제법 큰 정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와 고풍스런 분위기의 교회와 건물이 정원 곳곳에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과 고풍스런 건물이 어울린 벨라지오에 관광객들이 쉴새 없이 밀려들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한가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벨라지오를 보면서 관광지 인도마다 노점상이 들어서고, 요란한 음악소리와 고성방가를 들어야 하는 우리 관광지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관광지가 저녁이면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벨라지오 쇼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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