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나-대전현충원을 다녀와서


모처럼 화창하게 개인 일요일.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딘가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동작동 현충원은 여러번 찾았지만, 대전현충원은 한번도 찾아보지 않았던 것이 생각나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전현충원. 당연히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묘소부터 찾았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사병 29번 묘역 박동혁 병장의 묘소. 마침 어제가 박병장의 기일이었기 때문인지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석 앞에 놓인 한 통의 편지.
결례임을 알면서도 편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박병장의 친구가 어제 박병장 묘소를 찾아와 참배한 뒤 놓고 간 편지였습니다. 편지에는 친구를 잃은 아픔이 절절이 배어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여러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올해로 두번째로구나. 목포에서 찾아오는게 쉽지만은 않아. 그땐 임시 묘표였는데 지금은 정식으로 됐구나. 축하한다. 아니, 축하할 일이 아니지...
벌써 누가 다녀갔나봐. 네 부모님이실까. 네 부모님께 불효했구나, 내가....연락 한번 못하고....
네 일 있고도 한참을 배탔어....
널 잃은 뒤로 진한 친구가 없어 정말 힘들었어. 네가 여기 있다는게 실감이 잘 안 나. 익산으로 가면 네가 웃으면서 마중나와 있을 것 같아...
동혁아, 나 배를 타기보단 육군에 가기로 했다. 아마 내가 원했던 건 군이 아닌가 싶어.... 학사장교 시험을 보려 한다. 멀리서나마 기도(?)해주라. 넌 불교지. 그럼 불공(?)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네 군정신을 내가 이어받아야겠다....
넌 정말 좋은 놈이었고, 진한 친구였는데...
나한테는 인생에 있어 큰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지. 화난다, 그날이!
네 묘패를 보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은 왜일까?...
너 피우라고 던힐 사 왔다. 내가 기억하는 건 말보로 맨솔인데 그게 없대.....
2003년 9월20일 00
* 너무 격식 없이 쓴 것 같아 미안하다. 너 그런거 꽤 따지는 놈인데...>
(친구이름을 적어오긴 했는데, 제가 쓴 글씨를 제가 못 읽겠네요. 워낙 악필이라...)

황도현 중사 묘소앞에서는 지난 8월29일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열린 북한기자대구테러사건 규탄대회 때 연단에 올라오셨던 황중사 부친 생각이 나더군요.
그날 황중사 아버님은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잊혀져 가고 국민들과 언론은 북한 미녀(?) 응원단에 넋이 나가 있는 현실을 개탄했었죠. 황중사 아버님은 연단에서 내려가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르며 '도현아, 아버지가 여기에 왔다 간다. 도현아, 아버지가 여기에 왔다 간다!'고 외쳤습니다. 제겐 그 소리가 '아버지는 너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잊혀져 가고, 북한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환상과 동조가 판치는 혼탁한 풍조와 싸우러 여기 왔다 간다. 아들아, 아버지를 지켜봐 다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87년 박종철이 죽었을 때, 그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종철아! 아버지는 아무말 없대이'라고 말해 온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었죠. 박종철 아버지는 지금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장인가로 그 동네에서는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황중사 아버님의 애끓는 탄식은 누가 기억해 줄까요? 황중사 아버님에 대해 이 나라, 이 사회는 어떤 대접을 해 드릴까요?
한상국 중사 묘소에서는 지난 6월29일 광화문 앞에서 열렸던 추모집회때 소복 차림으로 나와 한없이 울음을 삼키던 고인의 미망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박동혁병장의 묘소는 사병 29번 묘역에, 조천형,황도현, 서후원,한상국 중사의 묘소는 사병 28번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한중사의 묘소는 나머지 세 분과는 조금 떨어져 있죠. 윤영하 소령은 장교 11번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조금 아쉽더군요.
여섯 분을 한 군데 나란히 모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소령은 장교라서 한데 모시는 것이 어렵다면 나머지 분들 만이라도 한군데 나란히 모셨으면 고인들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윤영하 소령 묘소 앞에는 초등학교 어린이 두 명의 편지가 놓여 있더군요.
윤영하 소령님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가 편히 살고 있다고, 눈물도, 아픔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라는 내용의 편지...
'아직도 어린 제자들에게 나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계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초등학생들도 저 분들의 희생의 의미를 아는데,그 죽음을 욕보이는 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여섯 분의 묘소를 돌아보며 새삼 DJ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더군요. 국군의 최고통수권자로서 이 여섯 분의 죽음 앞에서도 태연히 일본으로 월드컵을 관람하러 갔고, 북한으로부터 이 여섯 분의 희생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던 점, 그리고 그 후에도 여전히 '6-15공동선언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었다'고 헛소리를 해대는 점- 정말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경찰묘역에 들려 1989년 5-3 동의대 사태 당시 학생들에 의해 '살해'된('살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입니다) 경찰관들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경위 최동문, 경사 박병환, 경사 정영환, 경사 조덕래, 수경 모성태, 수경 김명화....
이 분들을 불태워 죽인 자들은 작년에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받았죠.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답답한 일이 많은 요즘,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전의를 다지려 대전현충원을 찾았습니다만, 마음은 더욱 답답해지는군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잊혀지고, 대한민국에 반역했던 자들은 영웅처럼 개선하는 세상....
정말 개같은 세상입니다.

우리만이라도 그 분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국가가 아무리 국토의 한 조각을 떼내 그 분들을 모시고 성역이라고 칭한다 해도, 그 분들을 국민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 뒤집어지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그 분들을 기억해 주는 이들마저 없다면, 그 분들의 영혼은 구천을 헤맬 것입니다.
그 분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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