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와병설과 국가안보

정부당국의 허술한 정보관리능력
아마 건전한 자유민주적 사고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정일의 와병설 보도를 접했을 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매우 기뻤다. 세계역사상 전대미문의 수령절대주의 폭압독재권력을 김일성으로 부터 부자세습받아 북한을 통치하면서 갖은 반문명적 만행을 저질러온 당사자인 김정일의 건재는 우리민족의 망신이며 한국현대사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와병설과 관련한 최근 보도내용을 보면 정부의 대북정보관리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정부 고위당국자라는 출처를 밝히며 김정일이 무슨 수술을 받았으니,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느니, 이제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이니, 양치질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니 하며 마치 김정일의 일거수 일투족을 생중계하듯이 연이어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정신을 가진 정부당국자라면, 설사 이런 정보를 확인했다고 해도 이렇게 언론에 마구 흘려도 되는 것인가? 우리 정보당국은 김정일 거소에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해서 그리 잘 아는가?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 첩보수준의 내용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여기서 우리는, 김정일 와병설과 관련하여 미국과 일본당국이 침묵하며 사태의 추이를 신중하게 바라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당국이 우리보다 대북정보능력이 부족해서 침묵하는 것인가?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 나라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김정일관련 사항을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한심한 분석기사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이 확인된 사실(fact)이라면, 먼저 나는 한국정보당국의 수준 높은 대북정보수집-분석 역량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김정일 동정관련 정보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내용이 고위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서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는 것은 국익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정보는 아주 민감하고 국가안보에 미치는 파급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 정보세계의 상식이며 기본이다.

정부당국이 국민의 알권리를 고려한다 해도, “김정일 동정에 관한 이러 저런 첩보들이 있으나 아직 확인된바 없다” 정도의 신중한 논평을 내리 수준에서 그쳐야 했다. “김정일이 스스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이니 양치질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니 하는 고위당국자의 발언은 국익을 도외시한 안보정보 문맹자수준의 행태이다.

김정일의 와병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정부당국이 관심을 가져야 할 핵심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첫째, 김정일의 와병설이 사실일 경우이다. 이 경우 우리는 병상의 김정일을 대신해서 누가 북한의 현 상황을 지도, 관리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의 와병에도 불구하고 북한내부에 특이동향이 나타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당국의 위기관리능력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관리 지도그룹은 향후 김정일 이후 북한권력 구도와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부당국이 국가위기관리책의 일환으로 이미 구축해 놓은 북한급변사태 대비계획을 더욱 정교하게 보완, 수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둘째, 만약 김정일의 와병설이 사실이 아닐 경우이다. 이 경우는 우리정부는 1986년 김일성사망설 오판에 이어, 또 한번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정부의 대북정보수집 역량과 정보관리력의 부재라는 국내외적인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시급한 점은 왜 북한이 김정일의 와병설을 자초하며 한국과 서방세계를 기만(?)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동격서(聲東擘西)라는 고사성어처럼 더 큰 일을 벌이기 위한 관심돌리기 인지, 체제내부의 권력단속용인지, 역정보를 통해 우리정부의 대북정보수집역량을 테스트해보려는 고도의 심리전인지, 김정일의 신비주의 습성인지, 서방세계의 오판을 즐기려는 역습성인지를 파악하며, 각 사안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당국은 안보관련 정보보고라인 정비와 정보관리체계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전면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정부가 김정일의 와병설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국가안보적 대응자세일 것이다.

우리국민들은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대두되자 대북정보역량의 섣부른 자신감(?)을 가지고 재빠르게 와병설 정보를 확인해주다가 국제사회에서 우리정부가 와병설 확산의 중심에 서있음을 뒤늦게 자각하고, 여기서 빠져 나오려고 허둥대는 모습보다는 안보사안에 냉철히 대응하는 정부당국의 성숙된 접근을 더 기대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북전략연구소 전문위원 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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