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은 불가능"

"독일식 '흡수통일 공포증' 극복해야"…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위기관리포럼’(대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반도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프리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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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건강악화를 계기로 북한의 체제 변화와 관련된 논의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위기관리포럼’(대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반도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아래는 이날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위한 우리들의 준비’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교수) 전(前) 호주국립대 교수의 발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남한에서 남북경제 차이가 너무 커서 많은 사람들은 독일식 흡수통일을 경제적 재앙으로 보게 되고 단계적인 통일을 기대한다.

이 의견을 지지한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중국식 시장화를 시작할 경우, 세월이 갈수록 남북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조만간 경제 문제가 최소할 수 있는 통일을 이룩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감스럽지만 북한 사회의 특성을 분석해보면 이 희망의 근거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식 개혁의 필요조건 중에는 개방이 있는데, 쇄국(鎖國)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중국식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요롭고 자유로운 남한이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은 쇄국정책과 백성에 대한 엄격한 통제다.

북한 정권이 중국식 개혁을 시도하려면 개방과 정치의 온건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방을 통해 남한의 실정에 대해 알게 될 북한 주민들은 ‘부자국가 남조선’과 흡수통일을 통해서 자신의 난관을 빨리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유지해서라도 현재의 중국과 같은 수준까지 국내 정치를 자유화한다면, 흡수통일에 대한 희망과 착각에 빠진 인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북한과 달리 중국 지도부는 같은 민족이 사는 선진국의 존재라는 도전에 직면하지 않아서 북한 기득권 계층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자유화를 하더라도 체제를 붕괴할 위험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개방과 자유화는 북한 체제를 죽이는 것이다.

결국 개혁과 개방 그리고 단계적인 통일의 시도는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도부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경한 쇄국 정책과 민중에 대한 엄격한 통제의 유지는 북한 국가의 계속적인 생존의 조건으로 여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옳은 판단이다. 요즘 남한 사회에서 통일이 늦어도 된다는 의견이 펼쳐지지만 통일을 연장하는 정책은 사실상 현존한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제 부담을 감소하기 위해 통일을 연기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통일을 위한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는 것보다 악화되는 것을 간과한다.

통계를 보면 1990년대 중반에 대북 지원이 본격화됐을 때부터 남한의 적지 않은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성장률은 남한을 상회한 적이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세월이 갈수록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사회부문에서도 위험한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15년 동안 남한은 공업사회에서 탈공업 사회로 변화하고 북한은 자생적인 비공업화 때문에 전(前)공업사회로 퇴보하고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프리존뉴스
공업의 붕괴로 인해 북한 국민들은 주로 전근대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북한 기술자나 의사는 원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10년 동안 경제 악화를 탈피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다음에 아무 능력과 지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북한 학생 대부분은 김일성 시대에도 주체사상공부, 노동동원 그리고 학교 시설의 부족 때문에 공부의 질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에 학교 상황은 기근과 경제 위기로 인해 밑바닥에 떨어졌다. 그 때문에 북한 어린이들은 기초지식마저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두 개 코리아 사이에는 교육수준과 세계관에서 적지 않았던 차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국제환경을 보면 통일을 가속화하는 이유가 있다. 심각해지는 중국의 대북진출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북한에서 친중 정권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권이 생기면 한반도의 분단화는 장기화될 뿐만 아니라 경쟁하는 강대국의 노리개가 될 것이다.

한편, 북한 정부와 협력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하자는 입장은 착각에 불과했다. 통일을 이룩하자면 북한 사회에서 통치계층에 도전하다가 정권을 전복하거나 정치노선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의 형성과 강화를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러한 세력은 평양 통치계층들의 항쟁과 단속에도 불구하고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있지만 이 과정을 가속화시키면 통일을 좀 더 빨리 가져올 수 있다.

현 북한 정권이 개혁과 개방을 정치적인 자살처럼 보는 조건에서는 북한에서 통일을 초래할 수 있는 변화를 시작하도록 하는 방법은 북한 주민, 지식인, 하급 간부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그들에게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의 기회를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아래에서 압력이 있어야 북한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북정책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통일의 달성만이 아니다.

1990년대 중엽부터 한국사회에서 흡수 통일에 대한 공포가 심각해진 이유는 흡수통일이 야기할 수 있는 경제적 위기와 장기적인 사회적 모순에 대한 우려다. 독일경제가 통일 후에 입은 타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는데 남북한 격차는 동서독 격차보다 훨씬 커서 한국의 경우에는 흡수통일의 부작용도 훨씬 클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단계통일론에 대한 착각적인 환상의 이유가 됐다. 그러나 좋든 싫든 흡수통일의 대안은 없고 통일을 연기하는 정책은 문제를 첨예화할 뿐이다. 그래서 어려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정말 높지만 통일의 쇼크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이제 계획해야 한다.

통일을 가속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통일이 갑자기 생길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준비 조치의 필요성을 느낄 필요가 있다.

정리/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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