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국경을 건너는 탈북자들. PHOTO-조선일보 최순호 기자.
지난 10년간, 인권의 사각지대를 탈출하는 북한 주민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과연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처지가 돼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만나고 싶었습니다>의 주인공은 조선일보의 최순호 기잡니다. 최 기자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한국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냐’며 자신은 북한의 인권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탈북자들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최순호 기자, 안녕하세요.
최순호: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최 기자께서는 꼭 4년 전이죠. 2004년 9월에 중국 조선족들의 삶을 담은 사진전을 여셨는데. 이번에 갖는 두 번째 사진전의 주제가 탈북입니다. 왜 탈북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셨는지,그리고 사진전의 이름이 <탈북 恨>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최순호: 제가 학번이 87학번이거든요. 흔히 한국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6·10항쟁 세대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회에 진출해 입사를 한 다음에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간 곳이 중국의 연변입니다. 거기 가서 만난 사람들이 탈북한 동포들이에요. 그 동포들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제가 가졌던 허탈감이라는 게…
한반도의 남쪽에서 민주화를 주장했던 그 사람들이 왜 북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모습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지 못하냐는 한스러움이 있었거든요.
탈북에 ‘恨’자를 붙인 것은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리고 자유가 그리우면, 자기가 살던 고향 산천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그리고 강을 건넜겠어요? 제가 97년에 만났던 청진의대 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와 밤새 토론을 했거든요. 그 친구가 마지막에 아침에 헤어지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그 친구가 강 건너편 북한을 향해서 한다는 소리가 “내가 이 처지가 되도록 만든 저 지도자가 죽이도록 밉다” 그러면서 헤어졌어요. 등을 돌리고 가는 그에게 제가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한두 푼으로 도와줘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이걸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가슴 속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거든요. 그 응어리를 푸는 거고. 그때 당시 정말 내가 나약하게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전시회를 하는 거에요.
박성우:전시회가 9월26일부터 10월2일까지 열리죠? 17편의 사진작품이 전시가 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언제, 어디서 찍으셨고,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최순호: 탈북의 과정 중에 제가 가장 내세우는 사진은 대낮에 渡江(도강)을 하는 사진이에요. 97년 10월 말에 찍은 사진입니다. 살얼음이 막 얼기 시작한 두만강가에 정말 손이 시려워서 손을 꺼내놓지도 못할 상황인데, 반대편에서 탈북을 하는 사람들이 건너오는 거죠. 제가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아침 9시부터 가서 기다렸거든요. 저를 소개시켜준 분은 딱 점심시간에, 12시에 강을 건넌다고 알려 주셨기 때문에 저는 3시간 동안 꼼짝도 못하고 숨어서 기다린 거지요.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한 57분 거진 다 돼서, 건너편에서 미세하게 갈대가 움직이더라구요. 그러더니 갑자기 세 사람이 뛰쳐나와서 바지를 벗고 강을 건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강을 건넜어요. 그러더니 강을 건너와서 옷을 입는 거에요. 뒤에 알고 보니까… 낮에 건너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바지가 젖어 있으면, 강을 건너온 사실이 들켜서 잡혀갈까봐 바지를 벗는 거에요.
그 중에 앞에온 남자는 북한의 브로커였고. 뒤에 따라온 두 명은, 북한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자기는 중국의 漢族(한족)에게 팔려가는 여성이었거든요. 건너와서 얼마나 무서우면 정말 꿩처럼 머리를 땅에 박고 부들부들 떨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박성우:사진을 통해 탈북자들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시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내가 본 북한의 인권’ 어떻습니까. 평가를 내려 보신다면…
최순호: 저는 세계 여러 나라 기아의 현장도 가 보고, 파키스탄처럼 지진으로 폐허가 된 현장도 가 봤지만. 국경지대에서 바라보는 북한, 그리고 금강산을 갈 때 주변의 모습, 또 작년 두 차례의 평양방문을 통해,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드는 거에요. 그리고 먹는 문제에 관해서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과연 거기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배가 고파서 굶어죽지 않았을까. 살아있다면 강은 건넜을까. 그리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면 내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이건 뭐냐면, 저와 똑같은, 같은 피를 나눈 한민족의 그 누군가가 아직도 동북3성을 헤매고, 그리고 남쪽에 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리고 중국과 남쪽이 아닌 다른 나라, 전세계에 퍼져서 살고 있잖아요. 이렇게 떠도는 영혼들을 인권의 차원에서 이제는 그들을 우리가 돌봐야 된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남쪽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세계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는 거지요.
박성우: 지금까지 <탈북 恨>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9월26일부터 10월2일까지 사진전을 갖는 조선일보의 최순호 기자와 말씀 나눠봤습니다. 최기자님, 오늘 감사드립니다.
최순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