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9)/독일 드레스덴과 베를린

오늘 (26일) 우리 관광단은 프라하의 메리오트 호텔에서 駐 체코 공화국 李浚熙 한국 대사를 모시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저의 체코에 대한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해주는 것 같은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쉽고 간략한 법입니다.
李대사는 체코의 역사를 잘 정리해 주었는데, 그 핵심은 체코인들이 일찍부터 독일, 오스트리아와 소통하면서 서구와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의 게르만 문화권과 함께 발전 해왔기 때문에 슬라브的 후진성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체코 사람들은 프러시아, 작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같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苦鬪 하는 과정에서 현명한 사고 방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李대사는 말했습니다.

체코인들의 특징을 李대사는 「교양있고, 진지하고, 겸손하며, 잘 훈련ㆍ교육된 점」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체코 사람들은 현명하고 똑똑한데도 어리숙한 척하기도 하면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간다고 했습니다. 무식하면서도 똑똑한 척하고,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너무나 많은 한국의 사정과 퍽 다릅니다.
체코는 현재 1인당 GNP가 약7000달러, 구매력은 1인당 1만4000달러 수준으로 한국을 바짝 좇아 오고 있습니다. 문화와 역사의 축적에서 우러나는 체코의 저력이 아주 단시간에 공산치하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서구로의 복귀를 성공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月刊朝鮮 여행단은 오전 8시30분에 프라하를 출발하여 엘츠비르게 산맥을 넘어 3시간 만에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했습니다. 드레스덴이 州都로 있는 작센(영어로는 Saxony)주는 1871년 독일 통일제국이 탄생하기 전엔 독립王國 이었습니다. 인접한 프로이센(영어로는 프러시아)과 함께 독일민족의 패권을 다툰 적도 있습니다.
드레스덴은 18세기엔 「북쪽의 피렌체」라는 별명을 들었습니다. 유명한 예술가, 건축가, 음악가들이 베니스 같은 이탈리아 지방에서 많이 몰려와 이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드레스덴의 거의 모든 건축물들은 1945년 초의 대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영국 공군이 주도한 공습으로 이 도시에 몰려 있던 피난민 등 3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이 때 불타 없어졌던 오페라 하우스는 동독정부에 의해 복원되어(7년간) 1985년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를 30분간 둘러 보았습니다.
공습 때 부서졌던 석재를 다시 끌어모아 복원했기 때문에 외관은 고색창연합니다. 이 오페라 앞 광장(극장광장) 주변에는 성당, 옛 궁전, 박물관, 교회 등 엄청난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작센 왕국의 위엄이 되살아 나는 듯 합니다.

작센 지역 주민들은 신교를 믿었습니다. 18세기 이 작센의 아우구스투스 왕은 폴란드 왕을 겸하기 위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큰 성당을 지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신교 교회당(십자가 교회와 성모교회)과 성당이 광장 주변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작센, 롬바르디, 프랑크 같은 이름은 게르만 부족의 이름입니다. 앵글로 섹슨족(Anglo-Saxon)도 게르만족의 일파인데 아마도 작센(Saxony)과 색슨은 같은 뿌리의 종족인데 그 일파가 영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운 경우일 것입니다.

고대 한반도에 살던 기마 민족의 일파가 일본에 건너가서 古代 일본을 세운 경우와 같습니다. 한국의 古代史는 민족의 이동, 특히 북방 기마민족의 南進과 渡海를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농경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는 한국사를 붙박이 시각으로 아주 좁게 보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외에 나와서 바라보는 세계 속의 한국이 더 정확한 우리의 모습일 수가 있습니다.

오후 2시20분 우리 일행을 태운, 체코기사 톤다氏가 모는 버스는 다시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수도로 독일 통일의 中心이 되었던 베를린을 향해서 약 세시간 반을 달렸습니다. 차중에서 독일 역사 책을 읽으니 왜 작센 왕국이 프로이센에게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빼앗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독일로 쳐들어 올 때 작센은 나폴레옹과 동맹했고,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습니다. 프로이센은 1806년에 대패하고, 베를인 주변은 점령지로 전락했습니다. 프로이센은 절치부심하여 재기를 노리다가 1813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 군대를 라이프치히에서 대패시키는 데 주역이 되었습니다.

1815년 워털루 전투 때도 저녁 무렵 나타난 프로이센 군대가 웰링턴 장군의 英軍을 도와 나폴레옹 군대를 꺾고 세계사의 전환점을 만듭니다. 프로이센은 이런 결전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일민족의 챔피언」이 되어 1871년 독일 통일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작센은 독일 민족의 숙적인 프랑스 편에 섰다가 주도권을 놓친 것입니다. 그 차이는 州都인 드레스덴과 首都인 베를린의 격차로 나타난 것입니다.

외교란 결국 국제사회에서 줄을 서는 문제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네 대통령은 이 줄서기에서 대성공을 거두거나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과 친북세력은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와는 원수가 되려 하고 가장 못 나가는 집단과는 친구가 되려 했다가 국가 위기를 초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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