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약진 운동 당시 철강증산운동의 모습(konas.net)
50년 전인 1958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에 속했던 중국은 ‘십년 내로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공산당의 지시대로 전 국민이 강철 제련에 투입돼 결국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참극을 빚어냈습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당시 중국 공산당이 ‘대약진운동’을 벌이면서 농민들로부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식량을 징수하는 한편, 농민들을 공산주의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게 하면서 대기근이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학자들은 마오쩌둥의 잘못된 개인 의지와 지휘가 이번 참극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와츠모어대학의 역사학 교수 리리롄(李麗蓮)은 대약진운동으로 발생한 대기근은 “자연재해나 사회, 정치질서의 파괴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 과거의 대기근이나 세계적으로 발생한 대기근과 다르다”며 마오쩌둥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마오쩌둥이 대기근 진상을 안 뒤에도 대약진운동을 중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오쩌둥이 청조 황제보다도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대담한 언론으로 꼽히는 ‘염황춘추(炎黃春秋)’지의 양지성(楊繼繩) 부사장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중국 전 식량부 부부장 저우보핑(周伯平)이 통계국장 및 식량부 부장과 함께 대기근 당시 사망자수를 통계한 적이 있지만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를 당장 소각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대기근으로 중국에서 1,400만~4,000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무원 발전센터 야오젠푸(姚監復) 전 주임은 이와 관련해 사망자 숫자보다는 평화 시기에, 그것도 자연환경이 좋았던 시기에 세계 역사상 보기드믄 대기근이 발생한 원인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신화사 중견 기자였던 ‘염황춘추’지의 양지성 부사장은 지난 90년대 초부터 대기근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 올해 5월 100여 만 자에 달하는 저서 ‘묘비’를 발표했습니다.
저자는 이 서적의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말합니다. “독재정권이 철저히 멸망하기 전에 나는 묘비를 세워 후세사람들에게 알리려 한다. 인류사회가 역사의 어느 한 단계까지 발전했을 때, 어느 한 국가에 ‘전 인류를 해방시킨다’는 명의로 사실상 인류를 노예화 하는 제도가 설립됐다. 이 제도는 ‘천당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사실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