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 빛낸 '촛불혁명가'들의 화투판

속박과 굴레의 원천을 내가 아닌 남에게서 찾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자들은 혁명의 시작에서 이미 실패한 자들

크리슈나무르티는「자기로부터의 혁명」을 말한다. 속박과 굴레의 원천을 내가 아닌 남에게서 찾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자들은 혁명의 시작에서 이미 실패한 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위선자가 부패자들보다 더 패악스럽다.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앙드레 지드가 소련 방문 후에 밝힌 성찰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앙드레 지드가 지적한 인민의 고혈을 팔아 치부한 노멘스클라투라는 어찌보면 소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총리가 아무리 구멍난 양말을 신고 기운 옷을 입고다닌다고 해도 수영장 딸린 대저택을 가지고 배때기에 기름 채우기에 바쁜 대다수 특권계층이 존재하는 중국도 무늬만 공산주의로 전락한지 오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실패하게 된 주된 원인은 이데올로기를 내세움에 있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의식화'만으로 그들이 바라는 사회주의식 인간형으로 개조될 줄 알았던 모양인데, 이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것도 처참하게..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언명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그들이 어떤 정치체제를 원하고 어떤 경제시스템을 원하든간에 인간이 바뀌지 않는한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 남의 것을 빼앗아 제 뱃 속을 채우기 위한 아귀와 같은 투쟁만 있을 뿐이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번지르르한 이념을 내세울 뿐이다.

근대 이후로 많은 철학자들이 이념적 정치체제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왔으나 관념에 머물렀고, 예외적으로 마르크스만이 실천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듯 하다. 하지만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공리주의로 모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공리주의는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며, 다수결의 원칙으로 구현되고, 사회계약과 법치주의로서 틀을 잡아갔다.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거나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할 때 자연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천부인권적인 원리대로 '저항권'이라는 것을 행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헌법 제1조 1항을 외치며 저항권을 말해왔다. 그러나 헌법 제1조 1항은 저항권의 행사를 직접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아니며, 반대로 治者와 彼治者의 동일성을 선언한 조항이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그 제1조 1항 이하의 모든 규정들에 나열된 절차적 방법으로 국민의 주권과 기본권을 행사하도록 선언하고 있는 최고규범이다.

이러한 헌법적 절차를 부정하고, 국민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불가피하게 저항권이 행사되었을 경우는 '주권의 행사'가 아니라 '주권의 회복', 즉, 헌법적 질서의 회복에 불과하다. 저항권을 마치 국체(國體)를 때려 엎는 혁명처럼 생각하는 바보들을 숱하게 보게되는데, 촛불을 들어 죽창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법을 어겼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그 역시 법의 절차 안에서 죄의 유무를 다투면 될 일이다. 합법적 질서와 절차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주관적 신념에 의해 민주주의가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어깃장을 놓았던 사람들이 도피처에서 화투를 쳤다는 것은 앞에서 내내 설명한 이념적 위선자들에 다름 아니다.

물론 도피 도중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화투패를 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떳떳한 일은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이지만 도피 중에 적어도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이제까지 민중을 지도할 수 있고, 의식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면, 결국 그들이 원한 것은 무엇인가? 민주? 자유? 평등?

핏발 선 채 이글거리는 눈, 살기가 충만한 주먹, 색색거리는 쉰 목소리, 일사불란한 구호와 요란한 동작, 비장미가 넘치는 노래를 불러대며 마치 아수라의 질곡을 향해 돌진하듯 수많은 폭력과 살육, 희생을 당연시하지만, 그것을 아직도 '진보'라고 생각하는 어이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망신스러운 일이다.

지난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 폭동사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국제적 망신이었다. 언론이든 단체든 개인이든..그들이 이제 그 죄과를 달게 받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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