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7일 KBS에 방영된 '한국 사회를 말한다-귀향, 돌아온 망명객들'이란 프로는 거물간첩 혐의자 송두율씨만 민주인사로 미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대법원이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는 반국가단체라고 확정판결한 한민통(일본. 요사이는 한통련으로 개명)의 조직국장을 지낸 郭東儀씨를 이렇게 묘사했다(KBS 인터넷에 떠 있는 시나리오에서 인용).
<정부의 조건 없는 귀국허용조치에 가장 기뻐한 것은, 곽동의 한통련 의장이다. 한통련이 결성된 건 지난 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다. 김대중 구명운동을 시작으로 번져나간 한통련의 활동은 해외 민주운동세력의 구심이었다.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재일교포 청년들에게는 조국의 존재를 알리며 희망을 안겨주었고(하략)>
대법원이 反대한민국 활동 단체라고 판단한 한민통에 대해 KBS는 '민주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북한정권의 평가법이다. 북한정권은 한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행동을 민주운동이라고 부른다. 우리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한민통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아 김대중씨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뒤엎으려고 했던 조직이다. 박정희 정부보다 훨씬 악독한 전체주의 정권인 북한정권을 위해 복무한 조직을 민주운동단체라고 평가한 KBS에 대해서는 당연히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 프로에서 KBS는 곽동의씨를 미화하고 그의 뜻대로 하지 않는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경직된 조국의 모습' '불분명한 정부의 태도'식으로 보도했다. 반국가단체원을 편들고 국가를 공격하는 문법이 아닌가. 이게 국영방송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애국단체들은 국가에 반역한 국영방송에 대해 시청료를 내지 말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곽동의에 대해선 이런 자료가 있다.
*1980년7월19일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金大中씨에 대한 제3회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다. 여기에서 金大中씨는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는 반국가단체 한민통의 핵심 간부가 되는 郭東儀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피의자는 金在華의 사위 곽동의에 대해 말하시오.
'제가 곽동의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1971년8월경 金相賢의원으로부터입니다. 당시 金의원은 일본을 자주 왕래하고 있었고 해외교포문제연구소라는 연구소를 운영, [在日韓國人]이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民團 비주류파인 소위 베트콩파에서는 곽동의가 조총련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했습니다. 1971년11월경 신병치료차 渡日, 동경에 체류하고 있을 때 舊민단 동경본부단장 정재준이 저의 대통령 낙선 위로를 겸한 파티를 동경 신주쿠 소재 야키도리 집에서 열어준 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정재준, 배동호, 조활준, 양상기, 유석준, 김은택, 김군부 등 민단 비주류인 베트콩파들이 참석했으며 곽동의가 참석해 처음 인사를 했습니다. 1972년2월 중순경 경제시찰차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리니 마중나온 성명미상의 駐日 한국 대사관 직원이 민단 이야기 끝에 곽동의는 조총련과 내통해 사상적으로 불순한 사람이란 말을 해준 일이 있습니다'
-피의자 진술에 의하면 곽동의가 사상적으로 불순하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는데 곽동의를 사상적으로 의심해보지는 않았는지요.
'1971년11월 중순경 저녁 때 그 동안 자주 왕래하던 조활준의 주선으로 긴자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김재화와 본인 셋이서 회식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본인이 '곽동의에 대해서 사상을 의심하는 말이 많은데 사실이냐'고 했더니 김재화는 화를 내면서 '모략이다. 내 사위는 6.25때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고 북송 때는 니이가다에 가서 철로를 베고 누워 이를 저지하려고 투쟁한 일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식사후 조활준에게 물었더니 '곽동의에 대해서 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나의 의심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하가에 그후부터는 곽동의를 경계심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1980년 駐日한국대사관은 한민통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곽동의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곽동의는 광복 직후 남로당에 가입활동하다가 1948년12월 남해군 인민위원장 박종환의 지령에 의해 밀항 도일했다. 그는 리츠메이칸 대학에 재학중이던 1950년9월경 조총련 요원에게 포섭되어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여 작전 방해 공작 후 월북하라]는 지령에 의해 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부평 미군 탄약 중대에 복무중 기회를 잡지못해 동 부대에서 탈영하여 재밀항 도일했다. 곽동의는 1960년경부터는 조총련으로부터 월10만엔의 보수를 받으며 민단 조직 와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4월 북한간첩 윤효동에게 포섭되어 북괴 공작선편으로 입북, 간첩 교육과 민단 파괴, 대남공작지령을 받은 후 동년 5월에 귀환한 그는 조총련 부의장 김병식으로부터 민단 와해 및 대남공작 자금으로 5000만엔을 받았다.
곽동의는 1973년7월13일부터 8월4일 사이 배동호, 조활준, 김종충 등을 조종하여 김대중과 한민통 일본본부를 결성하도록 하고 자신이 동 조직국장에 취임하였다. 1977년8월13일 조총련 중앙본부로부터, 그간 한민통이 조총련의 의도대로 효과적인 反韓활동을 전개하여 왔고 북괴가 의도하는 민주 민족통일 해외 한국인 연합을 결성하여 연대 투쟁 체제를 구축하는 데 공헌한 대가로 특별자금 5000만엔을 받아 개인주택 구입에 사용함으로써 비난을 받은 사실이 있음>
KBS의 또 다른 親北거물 미화 사례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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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0-07, 01:47











